소설리스트

무련전봉-281화 (281/853)

제 281장. 독과부

그가 던진 것은 재질이 특수한 바둑돌로 등급이 높은 비보였다.

곽원명이 비보 속에 진원을 주입했기에 겉으로는 무심코 던진 듯 보였지만, 사실은 악의를 품고 있었다.

선경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을 건네받았다. 비록 미리 대비하긴 했지만, 물건을 건네받을 때 그녀의 몸이 흠칫 떨렸다.

곽원명 무리는 그 광경을 보자 눈이 번쩍 뜨였다.

“곽원명, 너 죽고 싶어!?”

선경라가 소리쳤지만, 곽원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힘을 너무 실었군요. 하지만 대인의 실력으로 충분히 받을 수 있지 않았나요? 혹시 지금 대인의 실력이 떨어지신 거 아닙니까?”

말끝에는 이미 목소리가 음산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선경라는 그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 그녀는 상대가 간파한 것을 알고 더는 숨기지 않은 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그렇다고 한들, 너희 잔챙이들을 죽이는 것 따위는 식은 죽 먹기야.”

그녀가 말하는 동안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는 자욱한 빛이 피어오르더니 마치 무궁무진한 매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이의 영혼을 끌어당겼다. 이와 동시에, 주변에는 기이한 향기가 일렁거렸다.

양준의 눈동자는 순간 당황하다가, 금방 정신을 차렸다. 온몸의 진원이 신속히 단전 안으로 흘러들었고, 수라검이 손에 나타나는 동시에 금신의 사악한 기운이 폭발했다.

양준은 검은 기운을 감싼 채 곽원명의 눈앞에 들이닥쳤다.

양준의 반응 속도는 놀랍도록 빨랐다. 선경라가 유혹술을 펼치는 찰나에 이미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선경라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양준이 어떻게 이리 빨리 환각에서 벗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진원 경지 4단계는 물론이고, 신유 경지 무인도 그녀의 유혹술을 이처럼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이 녀석은 대체 어느 종문 출신일까?’

수라검은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곽원명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곽원명의 망연하고 텅 빈 듯한 눈에서 차가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양준은 얼굴빛이 흐려지더니 재빨리 수비 자세로 바꾸는 동시에 온몸의 진원을 폭발시켰다.

양준은 뒤로 뒹굴며 다시 선경라의 곁으로 돌아왔다. 검을 잡은 손이 약간 떨리고 기혈이 역류했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하하하! 과연 듣던 바대로 대인의 환각술은 남다르십니다.”

곽원명이 크게 웃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에는 음탕함이 서려 있었다. 그는 입술을 핥으며 거리낌 없이 선경라를 훑어보았다.

선경라의 예쁜 얼굴에 차가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그녀는 곽원명 무리가 진작 방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대인의 실력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우리가 환각술에 넘어갔겠죠. 그러나 지금은…….”

곽원명이 음흉하게 웃으며 외쳤다.

“여왕께서 몸이 좋지 않으신 거 같으니까 살살해. 여왕님의 백옥 같은 몸에 흠집 내지 말고.”

“곽 형. 걱정하지 마. 우리가 알아서 살살 다룰 거야.”

원석이 고개를 쳐들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더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음험한 눈빛으로 선경라를 노려보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일말의 불안감을 품고 있었지만, 선경라의 환각술을 쉽게 막아 낼 수 있게 되자 금세 사기가 치솟았다.

선경라는 화난 나머지 되려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요염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달콤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너희들이 정말 날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녀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하고 느긋하게 나오자 곽원명은 가슴이 철렁하며 망설여졌다. 그러나 잠시 뒤, 그는 이를 악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칼을 뽑았으면 끝장을 봐야 해. 우린 이미 요녀에게 밉보였어. 이번에 요녀가 도망치게 되면 우리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내가 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거야.”

선경라의 평소 수단과 성정으로 볼 때, 그녀가 만약 이 상황에서 벗어난다면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세상 끝까지 도망친다 해도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일의 심각성을 알고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한번 목숨을 걸고 싸워 보자.”

곽원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반(班) 형, 실력이 가장 낮으니까 저 눈에 거슬리는 사내놈을 맡아. 빠르게 해치우고 우리를 도와줘.”

깡마른 사내는 양준을 보더니 험상궂게 웃었다.

“알았어.”

선경라는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온몸의 진원을 몰래 돌렸다. 그러고는 두 손을 앞으로 휘저으며 소리쳤다.

“감히 날 건드리다니. 황천으로 보내 주마.”

새하얀 견사가 하늘을 뒤덮으며 그들을 감쌌다.

7~8명은 모두 신유 경지였지만 실력이 그리 높지 않았다. 대다수는 신유 경지 1, 2단계였고, 곽원명만 신유 경지 3단계였다.

선경라가 공격하자 그들은 급히 공법을 돌리며 손에 비보를 들고 막아 냈다.

양준이 손을 크게 흔들자 거의 천 갈래에 달하는 검기가 그의 주변에 나타나더니 곽원명 일행 쪽으로 날아갔다. 양준은 동시에 천예혈해당도 펼쳤다. 천 개의 핏빛 꽃잎이 휘날리며 천지는 꽃 바다로 변했다.

상대가 모두 신유 경지인 탓에 양준도 전력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여러 갈래의 공격이 쏟아지자, 적들은 허둥지둥 막아 내기 바빴다.

선경라는 두 손으로 신속하게 결인을 맺었다. 하늘을 가득 메웠던 새하얀 견사는 마치 생명이라도 있는 듯이 그들 중 신유 경지 1단계 무인 둘을 감쌌다. 두 사람은 원래 실력이 가장 낮았는데, 한순간 방심한 탓에 견사에 겹겹이 묶이게 되었다.

양준은 이 기회를 틈타 백호인과 신우인을 펼쳤다. 먹처럼 새까만 두 수혼이 하늘을 우러러 포효하더니 으르렁거리며 두 사람을 마구 물어뜯었다. 예리한 칼날 같은 수천 개의 핏빛 꽃잎들도 협공했다.

두 사람 쪽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곽원명 무리들은 깜짝 놀랐다.

곧이어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선경라의 눈동자에서 경이로운 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양준이 공격하자마자 이 같은 위력을 내뿜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일련의 날카로운 공격은 진원 경지 4단계 무인이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경라는 맨손을 주먹 쥐며 견사를 꽉 잡아당겼다. 이미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던 신유 경지 1단계 무인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두 사람의 협공에 신유 경지 무인 두 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동시에 선경라의 몸에서 더욱 많은 견사가 뿜어져 나오며 나머지 사람들을 덮쳤다.

그녀는 사뿐사뿐 걸어 재빨리 양준 곁으로 오더니 그의 팔짱을 끼고 소리쳤다.

“가자!”

양준이 손짓하자 천 개의 꽃잎이 재빨리 그의 몸속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보법을 펼쳐 선경라와 함께 신속하게 도망쳤다.

‘지금 선경라는 진원 경지 3단계 실력으로 나와 협공해 신유 경지 무인 두 명을 죽였어. 이미 최대치로 실력을 발휘한 거야. 싸운 시간이 짧지만 진원을 많이 소모했을 테니 더 머물면 안 돼.’

“제기랄!”

뒤에서 곽원명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선경라가 달아나고 나서야 그녀가 공격하는 시늉만 했을 뿐,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분이 지나서야, 곽원명 일행은 견사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두들 얼굴이 벌게진 채 두려움에 싸여 선경라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왕은 역시 사왕이야. 중상을 입어도 만만치가 않군.’

“이제 어떡하지?”

원석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곽원명이 노기를 띤 채 말했다.

“요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쫓아가서 죽여야 해.”

“곽 형 말에 따르자.”

남은 일행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서둘러 쫓아갔다.

*선경라가 양준에게 팔짱을 낄 때는 원래 그를 데리고 도망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뛰기 시작하자 양준의 속도는 그녀와 별차이가 없었다. 무슨 기이한 보법을 펼치는지 한 번에 몇십 장을 나아갔다.

그녀가 팔짱을 빼려 하자, 양준이 재빨리 저지했다.

“안 돼! 내 보법은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쓰는 거야. 원기를 전부 사용하면 잠깐 쉬어야 하고, 그때가 되면 네 도움이 필요해.”

양준은 얼른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래.”

선경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 양준의 팔을 잡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반 시진이 지나자, 곽원명 무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들도 선경라가 도망치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알기에 목숨을 내걸고 쫓아왔다.

선경라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번에 도망치면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여줄 테다.”

양준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들에게 잡히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나 먼저 생각해 봐.”

선경라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두려움에 휩싸여 저도 모르게 몸을 떨렸다. 다음 순간, 그녀는 얼굴에 홍조가 피어오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전에 너한테 나를 맡길 거야.”

“어, 그게… 말은 고맙지만, 너한테 당하면 좋은 결과가 없다는 걸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사양할게.”

선경라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그를 힐끔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알고 있었구나.”

“물론 알지.”

생사가 걸린 순간이라 뭘 더 숨길 것도 없었다. 선경라는 탄식하더니 설명했다.

“내 체질이 좀 특별해. 이런 체질을 가진 사람을 ‘독과부(毒寡婦)’라고 부르지.”

양준은 깜짝 놀라서 얼른 물었다.

“그런 체질은 어떤 특징이 있어?”

“만약 내가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면 모든 체액에 독성이 생겨. 숨만 쉬어도 독소를 뱉어내.”

선경라가 미소를 지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제 왜 나랑 입 맞추자마자 기절했는지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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