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85화 (285/853)

제 285장. 죽여버리겠어!

선경라가 침묵을 지키자 추억몽은 선경라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께서 또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동생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진짜?”

선경라가 갑자기 교활하게 웃기 시작했다.

“물론이죠!”

“그럼 네 옆에 있는 소만이라는 계집애를 줘!”

추억몽은 잠깐 당황하더니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언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양준이 너희들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 너희들이 일 년 동안 시녀 노릇을 한다고 하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때 너희들을 데리고 나갈게!”

“이봐…….”

양준은 그녀를 쿡쿡 찌르며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난 왜 끌어들이는 거야? 그들에게 딴마음을 품은 것은 부인하지 않겠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내의 본능이야. 난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고.”

“그냥 해본 소리야. 사실 나도 빠져나갈 방법 같은 건 없어.”

선경라가 웃으며 말했다.

“양준의 뜻인가요?”

추억몽 쪽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작은 소리였지만,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내 뜻이야!”

“언니는 양준을 참 잘 챙기시네요.”

추억몽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요미여왕이 왜 한낱 능소각 출신의 양준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알게 된 지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저도 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추억몽은 입술을 깨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선경라는 그녀를 압박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거미 알 속에서 양준은 의아한 눈빛으로 선경라를 훑어보며 말했다.

“이봐… 정말 내가 마음에 든 건 아니지? 왜 갑자기 이렇게 잘해 주는 건데?”

선경라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러면 뭐?”

양준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연하인 나를 넘보려는 심산이잖아? 쓰읍… 아파, 아파!”

선경라는 냉소를 머금은 채, 양준의 가슴팍을 꼬집은 손을 풀지 않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연하인 너를 넘보면 뭐? 내 눈에 들 수 있는 것은 네 복이야!”

“내가 감당할 수 없는데!”

양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마음에 들었다면서 왜 날 괴롭히는 거야?”

“나한테 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하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려고?”

“몇 번 만졌다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양준이 정색하며 말했다.

“너도 나한테 입을 맞추었으니 따지고 보면 내가 너한테 어찌한 것도 아니잖아. 서로 주고받았으니 없던 일로 치자고.”

“양아치 같은 놈이 속은 시커메서 수법도 교묘하구나.”

선경라는 화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독과부 혈통은 평생 한 남자에게만 마음을 쏟아. 네가 내 마음을 흔들었으니 평생 도망칠 생각하지 마!”

“세상에 이런 억지가 어디 있어!”

양준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깔깔…….”

선경라는 입을 다물고 생긋 웃었다. 그 미소는 꽃처럼 아름다웠고 표정에는 요염한 빛이 감돌았다.

바로 이때, 밖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깨어난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크게 변해, 바로 귀를 기울였다.

푹- 푹- 푹-

곧이어 살이 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양준은 거미줄을 뚫고 핏방울이 보이는 듯했다.

“공자… 나오지 마십시오. 그들이 밖을 지키고 있습니다. 악…….”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기척이 사라졌다.

잠시 뒤, 뭔가를 씹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선경라의 얼굴이 점점 혈색을 잃었다.

“백씨 가문의 사람이야…….”

오른쪽에서 낙소만의 미세한 울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한 달간 지속된 도망에 정신이 피폐해져 이미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평소 추억몽이 옆에서 그녀를 달래 주었지만, 지금은 거미줄에 묶인 채 추억몽과 멀리 떨어지게 되자, 그녀를 달래 줄 사람이 없었다.

“소만아, 울지 마. 그러다 거미들이 우리 쪽으로 몰려오겠어!”

추억몽은 목소리를 깔고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낙소만이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비록 두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송아지만 한 팔각 거미가 그녀의 앞에서 휘청거리자 이에 놀란 낙소만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끝장이야!’

모든 이들이 그녀가 거미에게 꼼짝없이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낙소만 앞까지 다가간 팔각 거미는 별안간 몸을 돌리더니 느긋하게 떠나갔다.

“후…….”

추억몽 쪽에서 안도하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거미줄을 뚫지만 않으면 큰소리로 얘기해도 상관없나 봐.”

양준은 잠깐의 상황을 보고, 이 점을 발견했다. 방금 전 백씨 가문의 무인은 거미줄을 뚫고 나갔기에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방팔방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전까지 그들은 최대한 숨소리조차 낮추고 있었던 것이다.

“곽 형, 곽 형…….”

원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여기 있어!”

곽원명이 바로 대답하고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다들 괜찮아?”

“괜찮아!”

고천라도 대답했다.

“그런데 거미줄에 감겨서 꼼짝할 수가 없어.”

원석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걸 찢고 나가도 되지만 곽 형, 밖에 있는 거미들을 어떡하지? 어떻게 상대하지?”

곽원명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비록 신유 경지였으나 고작 대여섯 명이서 6급 요수 2~30마리를 상대하기엔 한참 부족했다. 그리고 이 거미들이 줄을 쏘는 명중률도 너무 높았다. 그들이 날아간다고 해도 도망칠 수 없었다.

“참 운도 없어!”

원석이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왜 이런 곳에 거미가 있는 거야?”

씩씩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들은 선경라는 깔깔 웃으며 비꼬았다.

“쌤통이야!”

곽원명도 참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

“천한 것! 내가 빠져나가지 못하기를 바라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빠져나가면 널 죽도록 괴롭혀 줄 테니!”

선경라는 안색이 차가워지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무인들의 욕설은 점점 더 심해졌다. 창운사지의 고수들도 곤경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선경라를 희롱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선경라는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지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그녀의 몸은 저도 모르게 덜덜 떨렸다. 크게 화가 난 건지 그녀의 눈은 살기로 가득했다.

양준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죽여버리겠어! 언젠간 내 손으로 죽여줄 테야!”

선경라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쥔 채, 중얼거렸다. 평소에 요미여왕인 그녀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던 남자들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이토록 더러운 말들을 처음 들어 보았다. 그런데 지금 수왕 수하의 몇몇 잡놈들에게 온갖 치욕을 당하고 있었다.

“내가 대신 손 봐줄게!”

양준이 가볍게 웃었다.

“어떻게?”

선경라는 고개를 들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잘 들어 봐!”

양준은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점점 안색을 굳혔다.

무인들은 아직도 제멋대로 음란한 욕설을 퍼부으며 실컷 떠들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뚝 끊겼다.

“원 사제, 왜 그래?”

곽원명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는 비명소리가 원석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채고 다급히 물어보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원 사제!”

몇 사람이 더 불러 보았지만 원석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사람들은 불길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또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다른 신유 경지의 무인이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꺼져. 나가지도 않고 가만히 안에 있었는데 왜 날 공격하는 거야?”

말하면서 그는 무공을 사용했다.

그러자 더욱 난리가 났다. 사방팔방의 팔각 거미들이 기척을 느끼고 일제히 그곳으로 기어갔다. 신유 경지 무인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미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사람들은 소름이 돋아 몸을 떨었다. 더는 입을 열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선경라는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며 의아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그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양준은 입을 벌리고 웃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직 멀었어.”

그러자 한 쪽에서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반 형, 거미가 그쪽으로 갔어!”

“뭐?”

반 형이라 불린 무인은 마음이 다급해진 나머지 진원을 운행해 급하게 거미줄을 찢었다. 그가 머리를 내밀자마자 칼처럼 날카로운 거미다리가 날아왔다.

순간, 그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며 새빨간 피가 분수같이 뿜어졌다.

“어떻게 된 일이야?”

곽원명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곧이어 그의 앞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몽롱한 흰색 거미줄을 뚫고 곽원명은 커다란 무언가가 그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송아지만 한 6급 요수였다.

“거미가 공격하기 시작했어. 어서 도망쳐!”

곽원명은 원인도 설명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거미줄을 찢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팔각 거미를 공격하며 몸을 굴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곽원명이 이토록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각자의 수단을 펼치며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푹- 푹- 푹-

아래에 있던 2~30마리의 6급 요수들은 일제히 위를 향해 거미줄을 쏘았다. 날아올랐던 사람들은 얼마 날지도 못하고 모두 거미줄에 묶인 채로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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