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91화 (291/853)

제 291장. 만남을 피하다

운려가 웃으며 말했다.

“대인께서 공자가 표향성에 계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저희들에게 시중을 들라고 하셨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한 거지요. 공자께서는 대인의 귀한 손님이시니까요.”

선경라가 두 소녀와 한 여인을 보낸 것이 무슨 의도인지 차치하더라도 이 세 사람은 매우 살뜰하게 그를 보살폈다.

양준이 안내받은 건물은 3층짜리 건물이었다. 2층은 쉴 수 있는 곳이었고, 1층에는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백옥으로 조각해서 만든 커다란 욕조가 있었다. 매우 비싸 보였다. 3층은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아마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았다.

운려의 지시를 받고 약우와 약청 두 묘령의 소녀는 양준의 양팔을 부축한 채, 그의 의사도 묻지 않고 1층의 욕조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안은 안개로 자욱했고 꽃 향기가 가득 풍겼다. 언제 뜨거운 물을 받아 놓은 건지 욕조 안에는 각종 꽃잎으로 가득했다.

양준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다 큰 사내놈이 꽃잎 속에서 목욕을 한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보아도 이상했다.

“공자, 옷부터 갈아입으시지요.”

운려는 시종일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기분이 매우 좋은 듯했다.

양준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참 기다렸지만 운려와 약우, 약청 세 사람 모두 자리를 뜰 생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당신네 대인이 목욕하는 것까지 도우라고 하지는 않았겠죠?”

운려가 입을 가리고 웃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께서 원하신다면… 저희들은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나가 주세요.”

양준이 손을 내저었다.

운려의 눈에는 저도 모르게 놀란 표정이 서렸다. 그녀는 토끼 눈을 뜨고 양준을 힐끗 바라보았다. 약우와 약청은 양준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 사람이 물러난 뒤에야 양준은 옷을 벗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물의 온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피로를 씻어내기에 딱 적당했다.

‘소안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진문을 통해 넘어갔으니 최소한 만 리는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겠지?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능소각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사부님들께선 전투에서 승리하셨나?’

생각할수록 양준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건물 밖에서 벽락이 씩씩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대인이 왜 양준에게 이렇게 잘해 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좋은 거처를 마련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행궁에서 가장 좋은 시녀도 붙여 주었다. 세 사람은 자태로나 기질로나 모두 행궁 안에서 내로라하는 시녀들이었다. 그 어떤 사왕이 와도 이렇게 살뜰한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한창 씩씩거리고 있는 와중에 운려와 약우, 약청 세 사람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

“어라?”

벽락은 잠깐 멍해졌다가 곧이어 크게 기뻐했다. 그녀는 다급히 앞으로 뛰어가 약우와 약청의 손을 잡고 다급히 물었다.

“너희들 괜찮았어?”

약우와 약청은 얼굴을 붉히더니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운려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벽락 낭자, 괜한 걱정을 했구나. 그 공자께서는 호색가 같은 분은 아니셨어. 매우 점잖으시던걸.”

“그럴 리가?”

벽락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대인께서 당부하셨던 말을 전했어?”

“한 글자도 빠짐없이 얘기했어.”

운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데도 아무 짓도 안 했다고?”

벽락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했어.”

운려가 가볍게 웃었다.

“못 믿겠으면 약우와 약청에게 물어봐.”

벽락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약청은 고개를 저으며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벽락, 네가 오해한 거야. 아까 깜짝 놀랐잖아. 난 그 사람이 무슨 변태인 줄 알았어.”

“이상하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난 남자 보는 눈이 정확한데. 그 녀석은 딱 보아도 꿍꿍이가 많은 놈이었어.”

벽락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씩씩거렸다.

“그래! 아마도 처음 와서 쑥스러운 거야. 남자는 다 그래. 너희들도 행궁에 손님으로 온 왕 공자 같은 사람들을 봤잖아. 남자들은 너희들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린다고.”

그녀의 말을 듣자 약우와 약청은 또 긴장되어 몸이 흠칫 떨렸다.

“그는 분명 그런 부류일 거야. 먼저 신사답게 굴어서 너희들이 경계심을 늦추게 하려는 거야!”

벽락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추측에 열을 올렸다.

“아…….”

약우와 약청은 겁을 잔뜩 먹었다.

운려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벽락 낭자, 얘들에게 겁주지 마. 그 공자는 그런 분이 아니셨어…….”

*목욕을 마친 양준은 깨끗한 옷으로 싹 갈아입었다.

이 옷들은 모두 선경라가 아침 일찍 사람을 시켜 밖에서 사온 옷들이었다. 화려한 옷들을 걸치자 양준의 체형과 잘 어울려 남다른 기질을 풍겼다.

운려와 약우, 약청 세 사람도 그 모습을 보자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밖에는 이미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각종 산해진미로 가득한 상차림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운려는 그에게 죽을 퍼주며 말했다.

“이것들은 모두 소인이 직접 한 겁니다. 따뜻할 때 드시지요.”

그러다 또 말을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공자께선 조금 마르셨어요. 아마도 오랫동안 밖에서 지내셔서 그런 것 같네요. 많이 드셔서 축난 몸을 추스르세요.”

“네.”

양준은 덤덤하게 대답하고 나서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네 대인은요?”

“대인께선 오늘 처리하실 일이 있습니다.”

운려가 웃으며 대답했다.

“난 그녀가 나와 함께 아침 먹으러 올 줄 알았는데.”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말을 들은 운려와 두 소녀의 눈빛이 이상해졌다. 그들은 속으로 양준이 어떤 이유로 오게 된 것인지 매우 궁금해졌다.

‘감히 대인을 옆에 앉히고 식사를 하고 싶어하다니. 다른 다섯 사왕도 그러지는 못할 텐데.’

“그럼 선경라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양준은 음식을 먹으면서 물었다.

운려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대인께선 며칠 동안 좀 바쁘시답니다. 용건이 있으시면 벽락 낭자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녀는 아침부터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수를 쓰는군!”

양준은 코웃음을 쳤다. 어제 선경라는 오늘 찾아오겠다고 말을 해놓고 약속을 어긴 것이었다. 분명 그가 떠나겠다고 말할 것을 알고 만남을 피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식탁 위의 음식을 모조리 비우고서야 양준은 밖으로 나갔다.

요염한 소녀 벽락은 밖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양준에 대한 불만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선경라가 지시한 일이니 그녀도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벽락 낭자!”

“네!”

벽락은 덤덤하게 대답하면서도 도도한 표정을 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네 대인을 좀 만나고 싶어요!”

벽락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인께서는 오늘 성안에 계시는 장로들과 회의 중이셔서 당분간 당신을 만나기 힘들 것 같은데요?”

“회의가 언제 끝나는데요?”

“당분간은 뵙기 어려울 거예요. 대인께서 표향성을 떠나신 지 거의 두 달이 되어가는 데다가 또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서 지금은 용무를 처리해야 하거든요.”

양준은 표정이 굳었다. 그의 기분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벽락은 머뭇거리다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대인께서는 어젯밤에 공자께 진 빚을 갚겠다며 보물 창고에 가보라고 하셨어요.”

“보물 창고?”

양준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이 요녀는 재물로 날 잡아 두려는 건가?’

그는 속으로 재물에 넘어가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행동은 달랐다.

“보물 창고에 뭐 좋은 거라도 있나요?”

“당연하죠!”

벽락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대인의 보물 창고에는 좋은 물건이 아주 많아요. 대인께서 당신의 실력이 너무 낮으니 보물 창고에서 수련에 도움이 되는 보물을 찾아 몸을 강하게 키우랬어요!”

“그럼 지금 당장 가 보죠!”

양준이 재촉했다.

그가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자 벽락은 속으로 양준을 더욱 경멸했다. 그녀는 양준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촌놈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내키지 않았지만 선경라가 분부한 일이니 벽락은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오세요.”

행궁에서 한참 걸은 그들은 조용한 방 앞에 다다랐다. 방으로 들어서서 십 장 가까이 걸어 들어가자 커다란 대문이 보였다. 이상한 것은 대문에 손잡이나 문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양쪽의 벽을 이어주는 또 다른 벽 같았다.

벽락은 허리춤에서 검고 네모난 물건을 꺼내더니 가녀린 손으로 결계를 풀고 그 안에 진원을 주입했다.

쿠르릉-

잠시 뒤, 네모난 물건을 대문에 가져다 대자 커다란 대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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