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2장. 보물 창고
양준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훑어보며 찬사를 금치 못했다.
“여기는 물건을 숨기기에 아주 안전하겠네요.”
벽락은 코웃음을 치더니 도도하게 말했다.
“당연하죠. 이 보물 창고는 적소흑금(赤蕭黑金)으로 지은 거라 신유 경지 정상의 고수가 와도 빠른 시간 안에 열 수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할 수 있죠.”
그녀가 우쭐거리며 말하는 것을 들은 양준은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몰래 입술을 삐죽거렸다. 안전성으로 논하자면 그의 검은 책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들어오세요!”
벽락은 먼저 들어가 양준에게 말했다.
두 사람이 다 들어가고 나자 보물 창고의 대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보물 창고는 밀폐되어 있었지만, 내부가 어둡지는 않았다. 사면의 벽에는 거위 알만 한 보석이 있었는데 그 보석에서 부드러운 빛을 발하고 있어 창고 안은 눈이 부시게 밝았다.
안으로 들어간 벽락은 무표정한 얼굴로 양준에게 소개했다.
“저쪽은 금은보석, 이쪽은 약초와 단약이에요. 또 안쪽에는 무공과 비보가 있어요. 여기는 공법이 있고요……. 음, 알아서 둘러보세요. 절 귀찮게 하지 말고요!”
그녀는 양준과 대화하는 것이 싫어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양준은 코를 만지작거리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벽락 낭자, 당신네 대인이 제가 여기서 얼마나 가져가도 되는지 말하지 않던가요?”
벽락은 냉소를 짓더니 경멸 어린 말투로 말했다.
“얼마나 가져가려고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벽락은 어두운 얼굴로 짜증을 내며 말했다.
“대인께서 당신이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네.”
그녀의 말을 들은 양준은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그는 바로 약초를 모아 둔 곳으로 다가가서 둘러보기 시작했다.
양준이 전혀 사양하지 않는 것을 보고 벽락이 중얼거렸다.
“흥, 역시 촌놈이야. 이해가 안 돼. 대인께서는 왜 저런 인간을 챙기시는 거지.”
그녀는 말하면서 비보 쪽으로 걸어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정교한 귀걸이를 꺼냈다. 청색을 띠는 귀걸이는 투명한 것이 마치 눈물 두 방울 같았다. 귀걸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벽락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양준은 옆에서 냉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경라가 그를 행궁에 가두어 논 것에 악의가 없다고 하나, 양준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양준을 보물 창고에 들인 것이다.
‘자신이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지.’
양준이 원한다면 이 보물 창고를 싹 털어 가도 별 문제가 없었다. 검은 책의 공간은 이 보물 창고보다 훨씬 컸다. 하지만 양준은 검은 책의 비밀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유용한 물건을 찾고 있었다.
양준은 양성을 띠는 약초와 단약이라면 조금도 놓치지 않고 죄다 검은 책 안에 넣었다.
‘음, 신식을 키워 주는 약초와 단약도 희귀한 거니까 놓치면 안 되지. 오색 온신련도 이런 것들로 진화해야 하니까.’
그는 신식에 도움되는 물건들도 전부 검은 책 안에 넣었다. 공법과 무공에 대해서 양준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공법이 필요하지 않았고, 무공도 이곳에 그다지 좋은 것은 없어 보였다.
양준은 등급이 높은 신혼기를 수련하고 싶었다. 신식은 일찍 수련했지만, 신혼기가 없어 지금까지 큰 작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주변의 환경을 둘러보는 데 그칠 뿐이었다.
하지만 이 보물 창고를 아무리 뒤져도 신혼기 같은 것은 없었다. 한두 권이 있긴 해도 모두 지급 이하의 별 볼일 없는 것들이었다. 양준은 그런 것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이런 등급의 신혼기는 수련한다고 해도 크게 소용이 없고, 시간만 낭비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둘러본 그가 챙긴 것은 결국 신식을 키워 주는 소량의 물건들과 양성을 띠는 약초와 단약뿐이었다.
형식적으로 천급 단약 두 병을 챙겨 손에 쥔 양준은 한참 뒤에야 겨우 벽락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묘령의 소녀는 지금 귀걸이를 끼고서 손에 든 거울을 비춰 보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양준이 갑자기 그녀의 앞에 나타나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씩씩거리며 말했다.
“왜 기척도 없이 나타나는 거예요?”
양준은 어이가 없었다.
“낭자가 너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거 아닌가요?”
벽락은 얼굴을 붉히더니 다급히 귀에 건 귀걸이를 빼고서 제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아쉬운 눈빛을 거두며 말했다.
“다 골랐나요?”
“네.”
“뭘 골랐어요?”
양준은 손에 든 단약을 두 병 흔들어 보이며 가볍게 웃었다.
“보기보다 눈치가 있네요. 전 또 당신이 분명…….”
말을 하던 벽락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분명 뭐요?”
“아니에요. 다 골랐으면 가자고요. 그런데 정말 단약 두 병만 가져갈 거예요? 대인께서는 몸과 실력을 키울 물건을 찾으라고 하셨거든요.”
벽락은 대인에게 지시받은 만큼 그에게 재차 물었다.
“이래서야 몸을 키울 수 있겠어요?”
“충분해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런 걸로 하죠. 하지만 확실히 말해 둘게요. 제가 고르지 말라고 한 적은 없어요. 당신이 두 병만 고른 거예요. 대인께서 물으신다면 제가 어찌했다고 하지 마세요.”
양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보물 창고를 나온 벽락은 대문을 다시 닫고 돌아섰다. 그녀가 돌아서자 얼굴 앞으로 함 하나가 날아왔다.
벽락은 깜짝 놀라며 함을 받아 들고서 양준을 경계 어린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자신이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그녀는 경악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마음에 들죠?”
“당연하죠!”
벽락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함을 열자 안에는 그녀가 방금 전까지 해보던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벽락이 의아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표정 보면 바로 알죠.”
양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바보가 아니니까요.”
“호호…….”
벽락은 마음속의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다급히 귀걸이를 꺼내서 홀딱 반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비록 지급 하품의 비보밖에 안 되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마음에 든다면서 왜 대인에게 달라고 해보지 않았어요? 당신을 많이 아끼는 것 같던데요.”
양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음… 이건 전 대인께서 남기신 유품이라 대인께서 보시면 속상하실 것 같아서요…….”
벽락은 한숨을 내쉬더니 함을 보물처럼 품에 껴안았다.
“정말 주시는 거예요?”
“그럼요. 그게 아니면 왜 꺼내 왔겠어요? 당신네 대인이 묻는다면 제가 고른 걸로 해요.”
“고마워요!”
벽락은 복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더니 또 경계하기 시작했다.
“왜… 왜 이렇게 저한테 잘해 주는 건데요?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것 아니에요? 혹시 절 좋아해요?”
양준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거든요.”
“미리 말하지만 난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요.”
벽락은 경계 어린 표정으로 양준을 노려보더니 그의 말이 사실인지 파악하려는 듯이 또 덧붙였다.
“그래서 저한테 아무리 잘해 주어도 전 당신한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거예요! 제 마음속에서는 대인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반려니까요!”
양준은 입이 떡 벌어지며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경악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선경라를 좋아한다는 건가요?”
“맞아요!”
벽락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동경의 표정이 떠올랐다.
“언젠간 전 그분의 아내가 될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마치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 듯했다. 다만, 그 상대가… 좀 남다른 것 같았다.
양준은 숨을 들이쉬더니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벽락 낭자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랄게요!”
벽락은 소리를 내어 웃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양준을 훑어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에야 발견한 건데 당신…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네요!”
양준이 준 선물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그녀는 적어도 전처럼 그를 차갑게 대하지 않았다.
“허허…….”
양준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벽락이 또 말을 이었다.
“아 참, 보물 창고도 다 돌았겠다, 대인께서는 만약 당신이 답답하다고 하면 저한테 성안에 데려가 구경시키라고 하셨는데 나갈래요?”
“아니요. 돌아가서 수련이나 할게요.”
양준이 말했다.
“흐음…….”
벽락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긴 봉환루에는 운려 언니와 약우, 약청도 있는데 나가 노는 게 뭐 재미있겠어. 그리고 당신이 만약 정말… 흠흠… 그 뭔가를 하려고 한다면 먼저 운려 언니부터 건드리세요. 그녀는 시집가서 한 달 만에 남편이 죽은 뒤로 십 년간 한 번도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 욕구불만인 상태예요. 몸을 잘 사리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운려 언니는 귀를 건드리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벽락은 상기된 얼굴로 양준에게 열심히 조잘거렸다.
양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천진하게 봤는데 왜 이런 음란한 말을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