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95화 (295/853)

제 295장. 낙천 약방

“다… 사시게요?”

주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심지어 벽락도 의아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신유 경지도 아니면서 이렇게 많이 사서 뭐 하게요?”

“상관하지 말아요.”

양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벽락 낭자, 이건…….”

주인이 고개를 돌리며 벽락을 바라보았다.

“못 들었어요? 이 손님이 다 달라잖아요! 그럼 포장해서 대인의 행궁으로 가져가면 될 것을. 돈을 안 주는 것도 아니고.”

벽락은 양준에게 당한 화를 전부 주인에게 쏟아부었다.

“네네네!”

주인이 굽신거리며 대답했다.

비록 벽락은 성질이 좋지 못했지만 거래할 때 신분을 믿고 사람을 괴롭힌 적이 없었다. 지불해야 할 돈을 다 지불했기에 주인도 그녀가 돈을 내지 않을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

‘이 소년은 누구지? 벽락 낭자가 엄청 싫어하는 것 같은데?’

주인은 속으로 머리를 굴리면서도 감히 소홀히 대하지 못하고 양준이 주문한 단약을 모조리 포장했다. 그리고 심부름꾼을 시켜 행궁으로 가져가게 했다.

심부름꾼은 벽락 앞을 지날 때, 줄곧 고개를 푹 숙이고서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감히 벽락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약방에서 나온 양준은 대수롭지 않은 눈빛으로 벽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에서 당신을 무서워하는 남자가 많네요!”

“흥!”

벽락은 의기양양해졌다. 어여쁜 얼굴에 도도함과 우쭐거림이 나타났다. 그녀는 가슴을 쑥 내밀고 말했다.

“감히 날 쳐다본다면 그들의 눈알을 파버릴 거니까요!”

“그건 좀 너무하네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예쁘게 생겼으니 남이 좀 보면 어때요?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다면 아무리 예쁘게 생긴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모르는 소리!”

벽락은 그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당신네 사내놈들은 머릿속에 온갖 더러운 생각만 가득하죠. 미인을 보면 나쁜 짓만 하고 싶고요. 전 그런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요!”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양준은 억울한 마음이 들어 변명했다.

벽락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맞아요. 당신은 아니에요. 적어도 절 볼 때 음흉한 눈빛을 보내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당신은 다른 남자들보다 훌륭해요.”

“칭찬 고마워요!”

양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또 어디를 둘러보고 싶나요?”

벽락은 살짝 짜증이 난 얼굴로 말했다.

“보고 싶은 곳이 없다면 전 행궁으로 돌아가 수련할게요.”

“당연히 둘러봐야죠. 표향성에 약방이 이곳만 있는 건 아니죠?”

“네다섯 곳 더 있어요. 또 약방에 가려고요?”

벽락은 놀란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또 신식을 키워 주는 단약을 살 건가요?”

“그럼요.”

“그렇게 많이 사서 뭐 하게요? 다 쓸 수나 있겠어요?”

벽락은 불만을 말하고 나서 또 입을 삐죽거렸다.

“네네네, 상관하지 말아야 할 일은 상관하지 않을게요.”

그녀는 눈알을 굴리더니 갑자기 생긋 웃고는 다급히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짐짓 기침하는 척하더니 앞에서 걸어갔다.

표향성은 작지 않았지만 약 장사를 하는 집은 몇 곳 되지 않았다. 마음껏 단약을 판매하려면 반드시 강한 가문이 뒷배를 서 주어야 하기에 재력과 인력, 물력이 동원되었다. 그래서 세력이 작은 가문에서는 약방을 열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성안에는 약방이 다섯 곳밖에 없었다.

벽락은 투덜거리며 앞에서 길을 안내했다. 한참 걸려서야 네 곳을 다 둘러보고 신식을 키워 주는 단약을 싹쓸이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양준을 데리고 다섯 번째 약방으로 호기롭게 걸어갔다.

낙천 약방 안에서 경장 차림을 한 청년 남자가 다급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방 앞에 도착해서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내가 중요한 일이 아니면 방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들 머리를 비틀어서 따버릴 테다!”

“도련님, 벽락 낭자에 관한 일입니다.”

경장 차림을 한 청년은 온갖 욕을 듣고도 전혀 불만이 없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바로 안에서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일어나서 쿵쾅거리며 뛰어오고 있는 듯했다.

약방 1층에서 일하고 있던 하인들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모두 조마조마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며 도련님이 천장을 깨부술까 걱정하는 듯했다.

방문이 열리더니 허리가 두툼하고 몸집이 곰처럼 커다란 남자가 나타났다.

이 남자는 나이가 많지 않았는데 기껏해야 스무 살이 좀 넘어 보였다. 하지만 사납게 생긴 데다가 얼굴 가득 수염이 나 있어 매우 거칠어 보였다. 유독 눈만이 가늘고 긴 것이 그의 몸집과 어울리게 사악해 보였다.

그는 낙천 약방 뒤에 있는 가문의 도련님 낙욱(樂煜)이었다.

낙씨 가문은 표향성에서 큰 세력에 속했다. 가주는 표향성의 장로였는데 선경라 혈통을 위해 일을 한지도 어언 이백 년이 넘었다. 공로가 아주 크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낙씨 가문의 저택은 표향성이 아니라 성에서 백 리 떨어진 산장에 있었다. 낙욱이 표향성의 약방 안에 머무르는 이유는 벽락 때문이었다. 그가 일 년 전에 무심결에 벽락을 본 순간부터 낙욱은 세상 사람들이 놀랄 만한 말을 했다. 반드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벽락은 출신이 비천했다. 그녀는 작은 가문의 아가씨도 아니었고, 대갓집의 규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경라의 신임을 받고 있으니 낙씨 가문에서도 지지하며 낙욱이 성안에 남도록 허락하였다.

아쉽게도 일 년 동안 낙욱은 벽락을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게다가 매번 벽락은 그에게 쫓겨 부랴부랴 도망쳤다. 선경라의 행궁은 낙욱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쳐들어가지 못했다. 벽락이 행궁으로 도망칠 때마다 낙욱은 한숨을 쉬며 바라볼 뿐이었다.

표향성 전체에서 벽락이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낙욱밖에 없었다. 그녀보다 몸집이 네 배나 큰 남자는 벽락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다.

방문을 나서자 낙욱은 말을 전하러 온 청년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 청년도 강하게 생겼지만 지금은 마치 병아리처럼 낙욱에게 들려서 두 발이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벽락이 어찌했다고?”

낙욱이 다급히 물었다.

그 청년은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급히 말했다.

“도련님께서 벽락 낭자가 행궁을 떠나기만 하시면 보고하라고 하셨잖습니까. 오늘 그녀가 나왔습니다!”

“나왔다고?”

낙욱은 깜짝 놀라며 청년을 땅에 밀친 뒤, 쿵쾅거리며 세 걸음 나가다가 고개를 돌린 뒤, 물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 있느냐?”

그 청년은 이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벽락 낭자께서 지금 낙천 약방으로 오고 계십니다!”

“음?”

낙욱의 표정이 멍해지더니 싸늘하게 물었다.

“잘못 본 게 아니고?”

“그럼요. 정말로 낙천 약방으로 오시는 길입니다.”

“그럴 리가?”

낙욱은 비록 미련하게 생겼지만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마음은 매우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는 진작부터 벽락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서 여왕 대인의 행궁으로 도망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왜 갑자기 제 발로 찾아오겠는가?

“혼자 오는 중이냐?”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낙욱의 표정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가늘고 작은 두 눈이 찌푸려지자 음산한 빛을 발했다.

“아니요…….”

소식을 전하러 온 청년은 덜덜 떨면서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그게… 젊은 남자와 함께 온 듯했습니다.”

“흥!”

낙욱의 진원이 갑자기 폭발하며 2층 방문이 찢어졌다. 그는 일그러진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젊은 남자라… 누가 감히 내 여인을 넘보는지 보아야겠다!”

길에서 양준은 의아한 눈빛으로 벽락을 훑어보았다. 비록 그녀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소녀는 걱정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고민에 잠긴 듯했다.

벽락은 좀 걱정되었다. 낙욱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정말 낙천 약방에 도착한다면 분명 난리가 날 것이다.

‘이 녀석이 낙욱에게 맞아 죽으면 어떡하지?’

그는 대인의 귀한 손님으로서 만약 정말 무슨 사고라도 난다면 대인에게 보고하기 난감했다. 하지만 이내 벽락은 한시름을 놓았다.

‘정 안 되면 대인의 이름을 꺼내야지. 낙욱이 아무리 방자해도 대인의 체면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 녀석에게 겁만 좀 주면 돼. 나를 만만히 보지 못하게 말이야.’

양준이 전에 자신을 대하던 태도를 떠올리자 벽락은 화가 나 이가 근질거렸다.

“아직 멀었어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벽락은 생각에 잠긴 탓에 매우 느리게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다 왔어요!”

벽락은 가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저기가 바로 표향성에서 가장 큰 약방이자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곳이에요. 아니면… 들어가지 말까요?”

잠깐 머뭇거리던 벽락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막상 눈앞에 닥치자 그녀는 마음을 모질게 먹을 수 없었다.

“왜요?”

양준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실 안에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안될 것 같은데요.”

양준이 가볍게 웃었다.

“이미 모시러 온 사람들이 있네요.”

“네?”

벽락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낙천 약방에서 경장 차림을 한 몇몇 남자들이 뛰쳐나오더니 곧장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실력은 모두 나쁘지 않았다. 죄다 진원 경지의 고수였다.

어느새 두 사람 앞까지 다가온 그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공수 인사했다.

“벽락 낭자, 저희 도련님께서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약방 안으로 드시지요.”

“당신네 도련님이랑 할 얘기 없어요!”

벽락은 혐오로 가득한 얼굴로 양준을 이끌며 말했다.

“우리 가요!”

그들은 재빨리 앞길을 막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벽락 낭자, 들어가지 않으신다면 저희는 가죽이 벗겨질 겁니다. 벽락 낭자께서 제발 우리를 불쌍하게 봐서라도 도련님의 화를 돋우지 말아 주세요.”

“댁들이 죽든 말든 내가 왜 신경 써야 하나요!”

벽락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은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도련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벽락 낭자께서 굳이 가시겠다면 이 공자라도 데리고 오라고요!”

“감히!”

벽락의 목소리는 점점 더 싸늘해졌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는 분노도 있었지만, 후회의 감정도 섞여 있었다. 그녀는 이 진흙탕에 양준을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분명 여기에 온다면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데리고 왔으니 다 내 탓이야.’

“감히 그럴 수 있는지는 벽락 낭자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공자, 가시지요!”

몇 명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난 단약을 사러 왔습니다. 당신들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든, 저와는 엮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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