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96화 (296/853)

제 296장. 두 가지 선택지를 주지!

일이 이렇게 발전되자 양준도 뭔가를 알아차렸다. 이 약방의 도련님이라는 남자는 벽락에게 마음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와 벽락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리고 벽락도 이럴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를 데리고 온 것이 낙욱의 손을 빌려 자신을 혼내 주려는 심산이었던 듯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막상 일이 닥치자 바로 후회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양준은 힐끗 벽락을 흘겨보았다.

그의 시선에 담긴 싸늘한 감정을 읽은 벽락은 흠칫 놀랐다.

“공자께서 단약을 구매하시려고 하신다니 그럼 안으로 드시지요. 우리 낙천 약방은 표향성에서 가장 큰 약방이니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하하!”

경장 차림의 청년은 가짜 미소를 지으며 양준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떠난다고 하면 비웃음이나 살 것이다. 더구나 상대방은 반드시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려는 뜻이 다분하여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이따가 다시 얘기하죠!”

양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낙천 약방으로 들어갔다.

벽락은 우울한 얼굴로 다급히 따라갔다. 어여쁜 얼굴에는 온통 후회뿐이었다.

일행이 낙천 약방에 들어서자마자 양준은 날카롭고 적의로 가득한 눈빛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린 양준은 그만 깜짝 놀랐다.

그는 이렇게 몸집이 큰 남자를 처음 보았다. 보통 사람보다도 머리 두 개는 더 큰 이 사내는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몸집이 두툼하고 덩치가 있어 마치 산처럼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그는 가뜩이나 작은 눈을 찌푸려서 조금의 틈만 남기고 섬뜩한 빛을 발하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강적이군.’

비록 그와 겨룬 적은 없지만 양준은 이 사내에게서 옅은 압박감을 느꼈다. 이 남자의 전투력은 추억몽보다 못한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더 뛰어날 수도 있었다.

“낙욱,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벽락은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싸늘하게 물었다.

“이 분은 대인께서 초대하신 귀한 손님이에요. 방자하게 굴지 말아요.”

“대인의 귀한 손님?”

낙욱은 잠깐 멍해졌다가 곧이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 자가 뭐라고? 어떻게 대인의 귀한 손님이 될 수 있겠어?”

그는 벽락이 자신에게 겁주려고 한 말이라고 여기고 믿지 않았다.

“사실이에요.”

벽락은 다급히 말했다.

“이 사람이 만약 잘못된다면 당신은 끝장나는 거예요. 대인께서 화나시면 아무리 낙씨 가문이라고 해도 당신을 보호하지 못할 거예요.”

“그만해요!”

낙욱이 짜증 난 얼굴로 말했다. 벽락이 이토록 양준을 감싸는 것을 보자 그는 기분이 급속도로 언짢아졌다.

“대인의 손님이면 뭐요? 죽이지만 않으면 되잖아요. 더구나 몸집도 비실비실한 것이 손볼 필요도 없겠네요.”

벽락은 그 말을 듣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는 좀 있네요!”

낙욱이 싸우는 게 아니라면 목숨이 위태로울 일은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말할 때, 양준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둘 사이에 원한이 있다면 당사자들끼리 푸십시오. 말했잖아요. 전 그저 단약을 사러 온 것뿐입니다.”

“단약을 사러 왔다고?”

낙욱이 웃으며 말했다.

“단약이야 많다네. 다른 사람이 사러 왔다면 가격과 가치가 대등하나 자네가 산다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네.”

“낙욱, 꼭 이렇게 해야겠어요?”

벽락의 표정도 싸늘해졌다.

“낙천 약방을 연 것도 장사하기 위해서잖아요. 왜 이렇게 이 사람을 괴롭히는 건가요?”

“정 마음에 걸리면… 히히, 벽락, 당신이 나에게 시집오든가! 나에게 시집만 온다면 이 녀석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겠소.”

낙욱은 고개를 돌리더니 히죽거리며 벽락을 바라보았다.

“꿈 깨요!”

벽락은 이를 악물며 거절했다.

“개에게 시집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과 혼인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낙욱도 화를 내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벽락이 아무리 못된 말을 해도 그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본 낙욱은 웃음기를 거두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녀석, 운이 나쁘군. 벽락 낭자가 시집오려고 하지 않으니 자네에겐 큰일일세. 무슨 단약을 사려는 거지?”

벽락은 그가 생각을 고쳐먹은 줄 알고 기뻐하며 다급히 말했다.

“신식을 회복하고 키워 주는 단약이요.”

“오, 그렇다면 약방에 꽤 물건이 많이 있을 텐데!”

낙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저었다.

“그 단약들을 모조리 가져오너라!”

얼마 지나지 않아 약방 직원이 단약 열몇 병을 안고 나왔다.

“행궁으로 가져가면 돼요. 나중에 계산하러 올게요.”

벽락은 가볍게 웃으며 낙욱을 바라보았다.

“곰처럼 생겨 가지고 말은 통하네요.”

“하하!”

낙욱은 헤벌쭉 웃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말이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는 이 친구가 체면을 세워주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죠!”

“체면은 스스로 차리는 거지 남이 세워주는 게 아닙니다.”

양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유 없이 번거로운 일에 휘말리게 되자 그는 기분이 아주 언짢았다.

“말 잘했네!”

낙욱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말이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이 말 때문에 내가 자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지! 첫째, 단약을 들고 표향성을 떠나 멀리멀리 꺼지는 거지. 평생 내 눈에 띄지 않게!”

“두 번째를 선택할게요!”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잘랐다.

낙욱은 멍해졌다가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하하, 이런 놈은 오랜만이군.”

그는 말하면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경장을 입은 청년들에게 말했다.

“좀 놀아 드리거라. 승부를 막론하고 단약은 모두 드리거라.”

벽락은 표정이 굳더니 비명을 질렀다.

“낙욱, 그들은 모두 진원 경지인데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여럿이서 한 사람을 괴롭혀서야 되겠어요!”

“여럿이서 한 사람을 괴롭히는 게 뭐가 어때서요?”

낙욱의 얼굴에는 불만이 잔뜩 서렸다.

“이곳에서는 재산이나 가문으로 나와 겨루어야 하오. 만약 그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면 힘으로 겨룰 수밖에 없을 거요. 난 가진 게 없이 나대는 사람이 제일 싫으니까.”

경장 차림을 한 청년들은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들은 천천히 다가와 양준을 중간에 두고 에워쌌다. 그들은 적어도 진원 경지 3, 4단계의 무인들이었다. 진원 경지 6단계에 도달한 사람도 한 명 있었다.

낙천 약방에 있는 몇몇 노인들은 실눈을 뜨고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평온한 안색으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신유 경지의 고수였으나 젊은이들의 싸움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낙욱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뿐더러 양준이 벽락과 함께 온 것을 보면 둘 사이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잘못 건드렸다가 성안의 다른 신유 경지의 고수들이나 선경라를 화나게 한다면 일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젊은이들이 아무리 싸워도 홧김에 그런 것이라고 둘러대면 일이 커질 걱정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상황을 보고도 그저 못 본 척했다. 그들의 도련님이 사람을 괴롭힌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사람을 때려 죽이는 일도 종종 일어나서 별로 큰일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네. 내가 다시 한번 선택할 기회를 주지!”

낙욱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끝나기 전에 양준은 이미 몸을 움직였다.

진원 경지 3단계의 청년은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갑자기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는 가슴팍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다가 결국 그대로 쓰러졌다.

퍽- 퍽- 퍽-

연이어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 서너 명이 날아갔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눈 깜짝할 새에 경장 차림의 청년들은 자리에 쓰러졌다. 결국 진원 경지 6단계의 무인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동료들이 날아간 것을 발견했다. 곧이어 한 인영이 바람처럼 그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 다급히 방어하려고 했지만, 방어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는 초식을 바꾸기도 전에 이미 패배했다.

뿌드득-

그는 진원을 써보지도 못하고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양준은 또 발을 날려 그의 어깨를 걷어찼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루처럼 십몇 리 밖으로 날아가더니 땅에 털썩, 떨어졌다. 그러고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순간, 낙욱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그는 양준이 공격한 순간부터 이미 양준의 강함을 느꼈던 것이다. 갑자기 폭발하는 진원의 강도와 순도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도중에 그의 수하들은 이미 전멸했다.

“어…….”

벽락은 큰 눈을 깜빡이며 놀란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양준과 몇 번 접촉했지만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에 대한 인식은 그저 실력이 그다지 높지 않다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이 처음으로 그가 싸우는 것을 목격한 것이었다.

‘진원 경지 5단계의 무인이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지?’

벽락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대인이 왜 그를 중시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낙천 약방 안에 있던 몇몇 노인들도 똑같이 실눈을 뜨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양준의 초식은 과감하고 매우 강했다. 진원 경지의 청년들은 온몸 곳곳의 뼈가 열몇 곳이나 부러져 있었다. 진원 경지 6단계의 무인은 더욱 처참했는데, 반년 안에는 일어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양준은 싸늘한 얼굴로 서서 낙욱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벽락 낭자!”

“네?”

벽락이 깜짝 놀라며 다급히 대답했다.

“단약 챙기고 이만 가죠.”

“네!”

벽락은 다급히 뛰어가더니 직원의 손에 있던 단약 열몇 병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수심에 잠긴 얼굴로 양준을 향해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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