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7장. 넌 반드시 나와 싸워야 해!
“도망가려고?”
낙욱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마른 하늘에 번개가 치는 것처럼 거리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양준의 앞으로 날아와 그의 앞을 막았다. 그는 사나운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는 도망가려고? 그렇게 쉽게 보내줄 수는 없지.”
“그럼 어쩌려고요?”
양준은 싸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와 싸우고 가!”
낙욱은 목을 꺾으며 우드득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날 이기고 가도 늦지 않잖아!”
“낙욱, 선을 넘지 마세요!”
벽락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이미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 당신이 무슨 수로 나와 겨루겠다는 건가요?”
양준은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낙욱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식을 키워 주는 단약을 찾는다고 했지? 약방 안에 신령단(神靈丹) 한 알이 있는데 현급 하품의 단약이네! 어떤가?”
“관심 없습니다.”
현급 하품은 등급이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한 알밖에 없다고 하니 양준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단약의 질도 중요했지만, 양준에게는 그만큼 양도 중요했다.
“현급 단약도 눈에 안 든다는 건가?”
낙욱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일반적인 단약이 아니라 신식의 힘을 복구하는 단약이었다. 이런 단약 한 알의 가치는 다른 현급 단약 한 병보다 컸다. 적어도 몇십만 냥에 달했다.
현급 단약은 손쉽게 제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한 전체에서 현급 단약을 제련할 수 있는 연단사는 서른 명이 넘지 않았다.
‘그런데도 관심이 없다니. 이 녀석은 눈이 얼마나 높은 거야?’
낙욱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지며, 그의 진원이 맹렬하게 폭발했다.
“난 네가 관심이 있든 말든 상관없어. 내가 오늘 널 찍었으니 넌 반드시 나와 싸워야 해!”
말하는 사이, 그가 서 있던 곳의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자주색의 사악한 빛이 낙욱의 몸에서 나타나더니 무형의 기운으로 변해 양준을 덮쳤다.
“낙욱, 이 사람을 건드리기만 해!”
벽락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비명을 질렀다.
비록 양준이 방금 전 순식간에 진원 경지의 무인들을 이기며 강한 실력을 드러냈지만, 낙욱은 달랐다. 그는 창운사지 전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존재였다. 비록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전투력이 강해 젊은 일대에서 그와 겨룰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그리고 낙욱은 죽이는 것을 좋아하여 그와 겨룬 사람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양준이 그의 상대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벽락이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양준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선경라에게 할 말이 없었다.
벽락이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사이, 양준의 진원도 폭발했다.
각자의 진원으로 결집된 실질적인 공격이 한데 부딪히자 서로 간에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낙욱의 보이지 않는 공격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양준은 갑자기 낙욱의 입가에 피어오른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았다. 그는 안색이 변하면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촥-
땅속에서 갑자기 사악한 빛이 나오더니 하마터면 양준의 발아래를 가를 뻔했다.
“어라?”
낙욱의 눈에는 섬뜩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양준이 돌발적인 공격을 피할 줄 몰랐던 것이다.
고공으로 솟아올랐던 양준은 불덩이처럼 진양원기를 극한까지 움직여 아래를 향해 공격했다.
머리 위에서 뜨거운 압력이 느껴지자 낙욱은 두 손바닥으로 막았다.
진원은 파도처럼 서로 맞부딪혔다. 한 번씩 충돌할 때마다 빛을 뿜으며 물보라처럼 밖으로 퍼져 나갔다. 이러한 충격이 반복되자 낙욱의 무쇠 같던 몸도 점차 땅으로 꺼져 들어갔다. 그의 실력이 양준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땅이 이런 충격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양준의 시선에 담긴 차가운 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는 마음껏 진원을 움직이며 낙욱을 땅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
그의 계획을 알아차린 낙욱은 포효하며 미친 야수처럼 온몸의 근육을 팽창시켰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맹렬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마치 표향성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변의 가게들도 이 주먹 한 방에 산산조각 났다. 안에 있던 하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다급히 멀리 피했다. 심지어 낙천 약방도 이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양준은 무거운 표정으로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염양삼첩폭!
세 줄기의 폭발적인 기운이 양준의 손끝에서 하나로 뭉쳐졌다.
쿵-
낙욱의 키가 작아지더니 그의 몸 절반이 땅 속으로 파묻혔다.
양준은 그 옆으로 착지했다. 그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이번 일격으로 낙욱은 다치지 않았으나 양준이 다쳤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땅에 박힌 낙욱은 체면을 잃고 말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사람들이 다시 양준을 보았을 때는 온통 눈에 놀라움과 경악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들은 양준이 낙욱을 이렇게 공격할 줄 몰랐던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꽤 많은 그림자들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전부 성안에 있는 신유 경지의 고수들이었다.
표향성은 선경라의 통치를 받고 있어 이런 길거리 싸움 같은 일이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오늘 싸움의 기척이 너무나도 커서 신유 경지의 고수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상황을 살피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낙욱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낙욱이 열세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땅에 묻혀 있었는데 그와 전투를 벌인 사람은… 소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낙욱이 누구와 싸운 거지?”
그들은 옆까지 날아와 낙천 약방 안에 있는 신유 경지의 노인들에게 물어보았다.
“누구길래 낙욱과 정면으로 붙는 거지?”
낙씨 가문의 신유 경지 고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도 저 녀석이 누군지 몰라. 벽락 낭자의 말로는 여왕 대인께서 데리고 오신 귀한 분이라고 하셨네!”
“여왕 대인이 데리고 오신 귀한 분이라고요? 우리는 왜 들은 게 없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어떡하면 좋지?”
“큰일 났네. 도련님께서 이런 수모를 당하셨으니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하하…….”
낙욱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들고 음산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담긴 한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는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날 이리 대한 놈은 네가 처음이다. 간도 크군!”
말하면서 그의 몸은 또다시 자색 사기를 뿜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사기들이 마치 문신처럼 낙욱의 몸에 자리를 잡았다.
“자색 사기야!”
구경하던 신유 경지의 고수들이 소리쳤다.
“낙욱이 그 수를 쓰려는 걸까?”
“도련님은 아직 살기를 억누를 줄 모르신다. 어서 막거라!”
“늦었어! 저 녀석은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도련님이 이 수단을 쓰는 거야?”
사람들은 조급해져서 땀을 뻘뻘 흘렸다. 하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낙욱이 빨리 양준을 해치우고 자색 사기를 없애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색 사기는 흉살사동(兇煞邪洞)에서 나타난 무공이었다. 무인은 그곳에 들어가면 오랫동안 침전된 흉살지기(兇煞之氣)를 흡수하고 연화했다. 만약 운이 좋고 자질이 충분하다면 그 속에서 무공을 터득하는 것이다.
해마다 많은 무인들이 흉살사동에 들어가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들어가는 사람이 많을수록 죽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끔씩 생존자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낙욱은 깨달음을 얻는 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해마다 그는 시간을 내 흉살사동으로 가서 흉살지기를 흡수했다. 그렇게 그는 이 초식의 위력을 키웠다. 이렇게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이 무공은 작지 않은 작용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자색 사기를 움직이자 낙욱의 실력이 크게 증폭되었다. 그의 두 눈에는 광기가 꿈틀거렸다. 그는 바로 땅에서 뛰어오른 뒤 웃으면서 양준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는 사이, 그의 손에는 어느새 랑아방(狼牙棒)이 쥐어져 있었는데 뾰족뾰족 돋은 가시가 날카롭기 그지없었고, 위에는 새빨간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진한 피 같았다. 이 랑아방으로 사람을 많이 죽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 장면을 본 모든 사람들이 그가 대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색 사기와 비보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를 살려 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양준, 조심해요! 그는 지금 이성을 잃었어요.”
벽락이 창백한 얼굴로 양준에게 소리쳤다.
양준은 싸늘하게 그녀를 흘깃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다가오는 사악한 기운을 감지하며 양준은 느긋하게 진양원기를 단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곧이어 금신의 기운을 폭발시켰다.
마치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는 것처럼 검은 기운이 움직이면서 순식간에 모든 빛을 삼켰다. 사람들은 눈앞이 캄캄해지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붉은 핏빛의 눈이 반짝이더니 낙욱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미치광이처럼 웃으며 잔인한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살기야!”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양준이 돌변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들은 모두 멍해졌다.
이곳에 모인 신유 경지 고수들은 하나같이 신식이 매우 민감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어찌 양준이 내뿜는 살기가 낙욱보다 범위가 더 크다는 것을 모를 리 있겠는가?
“이것도 흉살사동에서 얻은 무공인가? 왜 낙욱의 것과 비슷해 보이지?”
두 사람은 몸에서 내뿜는 색깔만 다를 뿐, 다른 것은 별 차이가 없었다.
“아니, 아니야!”
실력이 좋은 신유 경지의 고수가 감탄하며 말했다.
“봐, 눈빛이 비슷한 것 같지만 낙욱은 이미 이성을 잃었어. 아마도 몸속의 사악한 기운에 마음이 잠식되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걸 거야. 하지만 저 소년은… 눈빛에 흔들림이 없어.”
“그렇다면 몸속의 사악한 기운을 억제할 수 있다는 건가?”
“그런 것 같네!”
“그런 괴물 같은!”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오직 낙천 약방의 몇몇 신유 경지의 고수들만 수심에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