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00화 (300/853)

제 300장. 내가 잘못 봤어요

욕조에서 양준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진양결을 운행시켰다.

자색의 사악한 기운이 경맥을 따라 흐르면서 순수한 진양원기에 정화되어 그와 맞지 않은 기운은 몸 밖에 배출되고, 일부분은 금신에 흡수되었다.

이런 기운은 사악하기 그지없었고, 본질적으로 금신의 기운과 같은 뿌리였지만 여전히 다른 점이 존재했다. 이는 낙욱이 수련해 낸 기운으로, 그중에는 무도에 대한 낙욱의 이해와 각성 그리고 그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낙욱의 무도에 대한 각성은 양준의 기운과 전혀 달라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낙욱이 흉살사동에서 흡수하고 담금질한 자색 사령의 사악한 기운으로 다시 한번 담금질한 뒤에 금신에 흡수되었다.

사악한 기운은 흡수하기 힘들었다. 양준은 족히 사나흘이나 걸려서야 경맥 속의 자색 기운을 모두 해소하고 담금질할 수 있었다. 자색 사령의 사악한 기운이 금신의 입맛에 맞았는지, 금신의 꿈틀거림이 전해졌다. 이에 양준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낙욱과의 대결은 승부를 가르지 못했지만, 그 싸움으로 그의 진원 5단계 경지가 다져졌다. 또한 양준은 동년배들 가운데 절정의 고수는 어떤 수준인지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만난 적수들 중 상대하기 어려웠던 이들로는 구성검파의 무승의, 추씨 가문의 추억몽 그리고 낙욱 정도였다. 하나같이 출신이 비범했다. 그들의 강함을 알게 됨에 따라 양준은 더는 누구도 감히 얕볼 수 없었다. 세상이 넓고 넓은데, 그들과 같은 천재 고수가 얼마나 많은지 누가 알겠는가.

양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심신이 상쾌하고 뒤틀렸던 오장 육부도 모두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욕조의 물은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로 온통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물기를 없앤 다음,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운려와 약우, 약청은 그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공자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운려가 서둘러 다가와 물었다.

“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운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약우, 약청에게 말했다.

“공자께서 이제 괜찮으시니, 걱정하지 말라고 벽락에게 전해.”

“네.”

약우, 약청이 대답하고 뒤돌아 나갔다.

운려는 의미심장하게 양준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자님께서 모르시겠지만 벽락이 날마다 몇 번씩은 병문안 왔었어요. 요 며칠 벽락도 아마 마음 편히 못 잔 탓에 무척이나 피곤할 거예요.”

“그녀가 자초한 일이에요.”

양준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벽락이 이토록 그에게 관심두는 것은 정말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선경라가 이 사실을 알고 죄를 물을까 두려운 것이었다. 양준은 이 점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운려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벽락은 나이도 어리고 아직 철이 덜 들었어요. 행궁에서는 대인의 총애까지 받다 보니 응석 부리는 것도 있고요. 공자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벽락이 하는 걸 봐서요.”

운려가 이렇게까지 벽락을 위해 말해 주자, 양준도 더는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그는 원래부터 이전의 일을 더 들먹일 생각이 없었다. 그가 화난 것은 벽락 때문에 괜히 번거로운 일에 휘말렸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을 겪은 뒤, 아마 벽락도 더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운려가 또 말했다.

“공자님께서 전에 사신 단약은 모두 침실에 놓아두었습니다. 계산은 이미 다 했어요.”

양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뒷배가 튼튼하니 좋긴 좋네. 신식을 회복하는 단약을 그리 많이 사도 스스로 돈 낼 필요도 없고. 이래서 큰 세력의 공자와 아가씨들의 수련 속도가 일반인들보다 훨씬 빠른 건가 보군.’

큰 세력의 공자, 아가씨들에게는 수많은 자원이 지원되었다. 동일한 자질을 가진 상황에서 그들이 남들보다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것은 당연했다. 세상은 언제나 이처럼 불공평한 것이다.

“참, 그리고 낙씨 가문에서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운려는 방글방글 웃으며 계속 보고했다.

“낙씨 가문에서요?”

양준은 의외라는 듯이 눈썹 끝을 꿈틀했다.

“네. 현급 단약 한 병을 보냈는데, 신식을 회복하는 약이에요. 낙씨 가문에서 밤사이 백 리 밖에서 가져온 거라고 하네요. 공자님께서 꼭 좀 받아 주시기를 부탁한다고 했어요. 공자님께서 치료 중이시라 제가 대신 받았습니다. 안 내키시면 거절할까요?”

운려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요. 남의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되죠.”

그가 이렇게 말할 줄 짐작했었는지, 운려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긴, 만약 돌려보내면 낙씨 가문의 체면을 깎는 게 되겠군요. 이렇게 받아 두면 큰 일이 작은 일로, 작은 일은 없던 것이 되죠. 역시 공자님은 마음이 넓으시네요.”

‘참, 부끄럽게…….’

양준은 괜히 진땀이 흘렀다.

양준은 낙씨 가문에서 이렇게 귀한 물건을 보내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지난번 싸움으로 인한 여파를 무마하려는 것이었다. 낙씨 가문도 나름 큰 세력인데, 이 정도로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의외였다.

“선경라의 위세가 대단하군.”

양준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낙씨 가문이 선경라의 체면을 봐서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낙씨 가문은 그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그에게 밉보이지 않겠다는 생각에 저자세를 취한 것이었다. 만약 조용히 양준을 해치울 수 있다면 낙씨 가문에서는 결코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양준과 낙욱이 표향성 안에서 싸웠고, 그 싸움을 본 사람이 많았다. 잠시 동안 양준의 원한을 사서는 안 되니, 울분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현급 단약 한 병이 귀중하다 하나, 낙씨 가문에서 그 정도 약값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운려는 양준의 말에 샐쭉 웃으며 계속해 말했다.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성안에 공자님을 뵙고 싶어 하는 큰 세력 자제들이 많습니다. 아마 공자님과 잘 지내고자…….”

양준의 정체는 너무나 신비해 남의 이목을 끌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며칠 사이 표향성의 큰 세력들에서 양준의 정체를 조사했으나 결과적으로 정체는커녕 이름마저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양준을 저택에 초청해 정보를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만약 그의 출신이 대단하다면 물론 잘 사귀어야 하지만, 혹여 별 볼일 없는 출신이라 해도 이처럼 잠재력이 있는 젊은이는 어떤 세력에서라도 기회를 주려 할 것이다.

“됐습니다. 별로 할 말도 없는데요.”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운려는 잠깐 당황하다가 곧이어 방그레 웃었다.

“네, 알겠습니다.”

“전 수련하러 갈게요.”

양준은 그녀에게 한마디 하고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운려는 사라지는 양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양준처럼 수련에 미쳐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강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양준은 줄곧 연단진결의 비밀을 알아내려 했으나 진척이 너무 느렸다. 어느 세월에 이르러서야 연단진결을 모두 깨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양준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연단진결을 깨치는 것으로 신식의 힘을 키우려는 것이었다. 연단진결의 지식을 얻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신식의 힘을 회복하는 단약을 끊임없이 흡수하자 신식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신식이 강해지는 동시에, 신식이 미칠 수 있는 범위도 전보다 훨씬 커졌다.

양준이 사온 단약의 질이 그리 높지 않다 보니 효력이 떨어졌고, 신식을 재빨리 회복하려면 단약을 대량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낙씨 가문에서 보내온 현급 단약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래도 이틀이 채 안 되어 모두 소진됐다.

지금까지 누구도 감히 양준처럼 신식의 힘을 수련하지 못했다. 거리낌 없이 신식의 힘을 소진한 다음, 단약을 가득 먹고 보충하는 경우, 남들은 진작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정신 착란이 오지 않으면 백치가 되었을 터였다. 그러나 온신련이 있는 양준은 이런 것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열흘 뒤.

단약이 모두 소모되었다. 양준은 나름 신식이 많이 향상된 것 같아 선경라가 그의 체내에 남긴 추혼인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안타깝게도 추혼인은 제거할 수 없었다. 오히려 선경라가 추혼인 속에 남긴 영혼을 건드리는 바람에 온몸의 피가 들끓었다.

양준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그녀에게 꼭 복수하리라 다짐했다.

이때,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양준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외쳤다.

문이 열리고 벽락이 빨간 옷을 입고 생글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그녀가 특별히 단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경라의 분위기를 그대로 흉내 낸 듯했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무슨 일로 왔죠?”

그날 행궁에 돌아온 뒤부터 벽락은 줄곧 양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운려는 수시로 벽락을 위해 몇 마디 해주면서, 양준이 더는 전의 일을 추궁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벽락이 먼저 찾아온 것이다.

벽락은 더는 이전과 같은 도도함과 기세등등함을 내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양준을 마주할 때, 저도 모르게 긴장감과 압박감을 느꼈다.

“그쪽 보러 왔죠.”

벽락은 달콤한 목소리로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보기 드물게 부드러웠고 소심하게 양준을 훑어보았다.

양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날 일로 당신을 괴롭힐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이제 화 풀린 거예요?”

벽락은 기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더는 날 해코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요.”

“네, 네, 다신 안 그럴게요. 그날도 실수였어요.”

벽락은 애교스럽게 웃으며 양준의 앞에 다가와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인께서 그날 일에 대해 물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낙욱과 대련했다고 하죠.”

양준은 바로 벽락의 뜻을 알아챘고, 어떻게 대답할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벽락은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희고 가느다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서 마음속 큰 짐을 벗어 던지고 진심으로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 생각보다 훨씬 괜찮네요. 내가 잘못 봤어요.”

벽락은 냉큼 침대로 뛰어올라오더니 양준의 등 뒤로 가서 반쯤 무릎을 꿇은 채 양손으로 양준의 머리에 손을 대고 가볍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양준이 의아해서 물었다.

“매일 이 시간에 운려 언니가 안마해 줬다죠? 오늘은 제가 해드릴게요. 원래는 당신에게 사과하려 했는데 당신이 이렇게 쉽게 넘어갈 줄 몰랐어요. 내가 당신을 모시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기만 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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