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02화 (302/853)

제 302장. 포섭

“추 언니……!”

낙소만이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녀는 추억몽이 양준을 포섭하기 위해 이런 후한 조건을 내걸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추씨 가문은 중도 8대 가문 중의 하나로서 거대한 자본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갖은 수를 다 써서 추씨 가문에 입문하려고 해도, 추씨 가문의 문턱이 높아 오직 외부의 정예 인사 또는 고수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설령 신유 경지의 무인을 몇 명 포섭한다 해도 이 정도로 후하게 조건을 내걸지는 않을 텐데? 지금 이 녀석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낙소만은 비록 추억몽처럼 영리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했기에 추억몽의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언니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양준이 정말 포섭해야만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이렇게 생각하자 낙소만은 더는 양준을 얕볼 수가 없었다. 덩달아 그를 바라보는 얼굴빛도 진지해졌다.

“어때? 나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추억몽은 여전히 진중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질과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결단력도 있네. 그동안 보여준 능력만 봐도, 앞으로 크게 될 인물이군.’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만약 네가 우리 추씨 가문 방계 여자에게 장가들 생각이 있다면 사촌 여동생을 소개해 줄게. 꽤 예쁘게 생겼으니까 처로 들이든, 첩으로 들이든 네 마음대로 해.”

“여자로는 날 유혹할 수 없어.”

양준은 거리낌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서 올 거야, 말 거야?”

추억몽은 양준이 어떤 틈도 주지 않자, 점점 더 상대하기 버거워져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가 이런 조건을 내걸었을 때 진작 엎드려 절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양준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심지어 마음이 동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놈은 도대체 욕심이 얼마나 큰 거야?’

“됐어. 난 지금도 충분히 좋아.”

양준은 그녀와 더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추억몽은 순간 당황하다가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미소를 지었다.

“고민해 보고 결정되면 불러. 추씨 가문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

그녀는 양준 같은 남자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선택권을 주어야지, 아니면 일이 틀어질 수도 있었다. 그녀는 방금 전에 자신이 너무 조급하게 군 것이 아닌지 고민되었다.

“그리고 우리 대신 요미여왕에게 말을 전해줄 수 있어?”

“여왕을 만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볼게.”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너도 봤잖아. 나도 감금된 거나 마찬가지야. 대우가 너희들보다 좋을 뿐이지.”

“하긴, 부탁할게. 대신 가문으로 돌아가면 너희 능소각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울게.”

추억몽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양준은 눈을 반짝 빛내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참 지나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추억몽은 마지막 한마디로 결국 양준의 호감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다.

“너희 편한 대로 해.”

양준은 그렇게 말한 뒤, 바로 정신을 집중해 수련을 이어 갔다.

추억몽은 양준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가 정말 자신과 낙소만 앞에서 수련하는 것을 보고,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이제 그만 나가라는 뜻이라는 걸 깨달은 그녀는 더는 머물지 않고 낙소만을 끌어당겼다.

“가자.”

“그리고 목욕하고 싶으면 운려, 약우, 약청에게 따뜻한 물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해. 욕조는 일층에 있어. 난 당분간 이 방에 있을 거야.”

그녀들이 문을 나서기 전에, 양준이 큰소리로 말했다.

추억몽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들이 올라오면서 한 대화를 양준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마워. 앞으로 서로 적으로 만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일층에 내려오자 낙소만은 참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정말 저 자식이 그렇게 잘될 거 같아?”

추억몽은 진지한 표정으로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상대해 본 사람들 가운데서는 가장 강해. 게다가 보름 사이에 실력도 엄청 늘었어. 비록 나보다는 아직 경지가 낮지만, 걔 앞에 서면 압박감이 느껴져.”

“그건 아마 우리가 진원이 봉인당해서일 거야. 실력이 회복되면 그런 느낌은 안 들걸?”

“아니.”

추억몽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 직감을 믿어. 류(柳)씨 가문 류경요(柳輕搖)도 양준에게 밀릴 거야!”

“그 정도야? 8대 가문의 공자인 류 공자도 양준에게 밀릴 정도라고?”

낙소만의 눈에는 놀란 빛이 역력했다.

“7대 가문이지. 양씨 가문 공자들은 다 밖에 있잖아.”

추억몽은 쓴웃음을 지었다. 양씨 가문에서 직계 자제를 양성하는 방식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얼굴에는 경멸의 빛이 어렸다.

‘양준도 양씨잖아. 설마…….’

양준의 냉혹함과 무정함 그리고 세도를 부리는 면은 양씨 가문 사람들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곧 아닐 거라고 부정했다. 그녀는 비록 양씨 가문의 공자들을 본 적이 없지만, 그들 중에 양준의 나이대는 없었다. 양씨 가문의 가장 어린 공자가 양준과 나이가 비슷했지만, 선천적으로 수련에 적합하지 않은 체질이라고 전해 들었었다.

“양준이 그나마 배경이 없으니 다행이지. 만약 막강한 가문이 뒤를 봐주고 있었다면…….”

추억몽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중도에 있을 때, 그녀는 도도한 나머지 명문가 공자들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이번에 우연히 양준 같은 인물을 만나게 된 건 정말 대단한 우연이었다.

둘은 말하는 한편, 밖으로 나와 운려에게 따뜻한 물을 준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고는 경계하면서 1층 욕조에서 목욕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양준은 줄곧 2층에서 수련하느라 나타나지 않았다.

*양준은 비록 신식의 힘을 보충해 주는 단약은 없었지만, 연단진결을 깨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 깨치면 신식의 힘이 소진되었고, 몇 시진을 조용히 기다리면 신식이 천천히 회복되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진양결을 돌리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수련했다.

사흘 뒤.

선경라가 표향성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가장 먼저 봉환루를 찾아갔다.

한동안 보지 못했더니 선경라는 점점 더 요염해졌다. 그녀의 몸에서는 은은하게 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가녀린 몸매는 버들가지처럼 연약한 듯 보이지만, 실제는 강한 힘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세상에 몇 안 되는 고수 중의 한 명으로서 누구도 감히 얕보지 못했다.

선경라는 함초롬한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요 며칠 조용하던데?”

양준은 거짓 웃음을 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주제 파악 하나는 잘하지.”

“됐어. 화내지 마.”

선경라가 아양을 떨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대신 내가 애들 남겨서 시중들게 했잖아. 운려가 말하기로는 애들 안 건드렸다며? 보기보다 점잖네.”

그녀는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당연하지.”

선경라는 깔깔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날 이곳에 잡아 두는 이유가 뭐야?”

“아무 이유도 없어. 왜, 답답해?”

선경라가 몸을 홱 돌리자 아름다운 빛이 일었다. 그녀는 가볍게 침대에 앉아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네 생각에는 어떨 것 같은데?”

양준이 냉랭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가서 돌아다니지 그랬어.”

“어디로 갈 수 있는데?”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 너를 막는 사람은 없으니까.”

양준은 그녀를 노려보다가 번쩍 정신을 차리고 의혹에 찬 눈길을 보냈다.

“그러니까 떠나도 된다는 말이야?”

“그럼. 내가 언제 여기서 나가면 안 된다고 했어?”

“너 정말…….”

“됐어. 화내지 마.”

선경라가 정색하고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

“이번에 돌아와서 너한테 떠나도 된다고 말해주려 했어. 사람을 원한다고 해서 가둬 두면 안 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래. 그러면 내 몸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마음을 얻을 수는 없겠지.”

양준이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그럼 추혼인은…….”

“일단 남겨둘 거야. 아니면 내가 널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잖아.”

선경라가 붉은 입술을 오므렸다. 그 모습이 왠지 애잔해 보였다.

“좋아.”

양준도 그녀를 강요하지 않았다.

선경라가 그에게 떠나도 된다고 말했지만, 양준은 생각했던 것만큼 기쁘지 않았다. 선경라가 그에게 악의를 품고 가둔 것도 아니었고, 양준도 선경라 덕분에 적지 않은 이득을 챙겼기 때문이었다.

“참, 추억몽과 낙소만은 어쩌려고? 낙소만은 그나마 괜찮아. 자미곡 세력이 너보다는 못하거든. 그런데 추억몽은 추씨 가문 사람이야.”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도 이해관계를 알고 있어. 그래도 지금은 쟤들을 보내 줄 수 없어. 내일 데려갈 데가 있거든.”

선경라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데려갈 데가 있다고?”

“큰 세력들이 창운사지를 포위 공격한지 오래되었어.”

선경라가 미소를 지은 채 양준을 바라보았다.

“걔들을 거기 데리고 가서 뭐 하려고?”

“물론 따로 목적이 있지. 너도 같이 갈래?”

“아니, 어렵게 자유를 찾았는데 내가 왜 너하고 같이 다니며 네 말을 듣겠어.”

양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무정하네. 내가 이렇게 진심으로 대하는데.”

선경라가 원망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만하지!”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뭔가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뭐 좀 물어볼 게 있어. 흉살사동은 뭐 하는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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