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03화 (303/853)

제 303장. 흉살사동

선경라가 아연실색해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낙욱과 싸운 날, 그의 무공이 흉살사동에서 각성한 거라고 들었거든."

선경라는 고개만 끄덕일 뿐 양준과 낙욱 사이 은원에 대해서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녀의 영리함으로 그 싸움에 시작이 벽락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흉살사동은 특이하게 살기가 가득한 곳이야. 낙욱의 자기사신(紫氣邪身)도 괜찮은 무공이거든. 걔가 제대로 시전하지 못해서 위력이 많이 떨어졌을 거야. 왜, 가 보고 싶어?"

"궁금하긴 하네."

양준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날 자색 사령의 사악한 기운을 해소하면서 금신이 은연 중에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흉살사동의 사악한 기운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왠지, 그곳에서 금신의 비밀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경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너는 사공도 수련하니,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수확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곳은 음명귀왕의 영토라서 표향성보다 위험해. 이렇게 하자. 내일 벽락더러 널 그곳까지 데려다 주라고 할게. 걔가 길을 알거든."

"좋아!"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벽락이 찾아왔다.

그날 이후, 벽락은 더는 양준 앞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지금 다시 양준을 만나게 되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양준을 노려보며 입이 뾰로통해서 말했다.

"대인의 명령이라 따라나서기는 하지만, 왜 하필 가도 그런 곳에 가는 거죠? 죽여 달라고 하면 내가 그냥 해결해 줄 수도 있는데, 왜 사람 귀찮게 해요?"

양준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합니다."

"됐어요. 챙길 거는 없나요? 없으면 지금 떠나요. 표향성에서 멀거든요. 한번 갔다 오는 데 며칠은 걸린단 말이에요."

"없어요. 바로, 갑시다."

두 사람이 행궁에서 나가니, 마침 선경라와 추억몽, 낙소만도 밖에 있었다. 아마 양준이 나오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추억몽과 낙소만은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양준이 그녀들을 위해 몇 마디라도 말을 보태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못 본 척했다.

선경라가 그녀들의 목숨을 노리지 않는 이상, 다른 계획이 있을 텐데 그가 말해도 소용없었다.

"내가 우선 반나절 동안 함께 가 줄게. 그럼 너희들도 고생 적게 하고."

선경라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부드러운 기경(氣勁)이 모든 이를 감싸더니 곧장 표향성을 떠났다.

선경라의 간단한 손짓 하나에 양준은 눈썹을 꿈틀했다. 추억몽과 낙소만도 순간 절망했다. 요미여왕의 손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결국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일행의 속도는 매우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몇백 장을 날았다.

선경라는 어공비행(御空飛行)을 하는 한편, 나지막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흉살사동은 음명귀왕의 영토에 있지만, 요미여왕의 사왕령(邪王令)이 있으니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는 못할 거야. 대신 너도 말썽 피우지 마. 거긴 표향성처럼 안전한 곳이 아니야. 벽락은 너를 그곳에 데려다 주고 돌아올 거야."

"알았어."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흉살사동에는 사령(邪靈)이 많아. 해마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이익을 얻는 이도 많지만, 죽는 이도 수두룩해. 너무 깊게는 들어가지 마. 깊게 들어갈수록 사령의 실력도 막강해서 상대하기 벅찰 거야."

"사령이 뭐야?"

양준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사악한 기운과 살기가 하나로 뭉쳐서 생긴 반실체(半實體)에 가까운 물체라 할 수 있지. 생각은 없지만, 공격성이 강하고 살아 있는 건 무조건 공격하는 습성이 있어."

"그곳에서 무공을 각성하는 것 외에 더 얻을 만한 게 있어?"

선경라가 흉살사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하자, 양준은 연신 캐물으며 사전에 좀 더 많은 정보를 알아보려 했다.

"무공을 얻는 걸 제외하면 실력을 키울 수 있겠지. 사령이 싸움에서 패배하면 그들의 본원(本源)이 하나의 기운으로 남아. 무인들이 그걸 흡수하면 실력이 향상돼. 그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그런 방식으로 더 강해지기 위해 수시로 수련하고 있어. 그 안에는 창운성지의 무인뿐만 아니라 밖에 사람들도 변장하고 잠입해서 들어가. 그러니까 별난 사람들이 다 있을 거야."

"그렇군!"

양준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 본원에는 별의별 무공이 다 내재되어 있어. 낙욱의 자기사신은 바로 거기에서 각성한 거야. 그런 무공들은 사악한 편이지. 그리고 또 신식의 힘을 키워 주는 본원도 있어. 일찍이 누군가 그런 걸 얻어 신식의 힘이 대폭 향상되었다 하더군."

"그런 것도 있어?"

그 말에 양준은 눈이 번쩍 뜨이는 것만 같았다. 요 며칠 그는 신식의 힘을 키우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네가 실력이 되어 얻으려고 한다면 좋은 물건은 많아. "

선경라가 방그레 웃었다.

"괜찮네. 과연 세상은 신기해. 이런 곳도 있고 말이야."

양준은 신기하다며 연신 혀를 내둘렀다. 지난번 유명산에서 수련하던 곳도 그렇고, 다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는데, 흉살사동은 다른 곳과 연결돼 있다고 했어……."

선경라는 이 말을 마치고 가볍게 웃었다. 말을 하면서도 그 말을 크게 믿지 않는 듯했다.

"어디하고 연결되어 있는데?"

"마계(魔界)라고 했어."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다들 처음 듣는 말인 모양이었다.

"혹시 진짜일지도 모르지. 안 그럼 죽여도, 죽여도 사령이 그곳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걸 설명하기 어렵잖아."

"설마!"

양준은 코웃음을 쳤다.

"하하… 어머니도 외할머니한테서 들었다고 했어……."

선경라가 애교 띤 미소를 지었다.

"양준, 너 흉살사동에 가서 수련하려고?"

추억몽이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될까? 나도 가고 싶어."

추억몽이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선경라는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힐끗 보았다.

추억몽이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양준을 도와줄 수도 있어요. 한 사람이라도 많으면 힘이 되잖아요. 게다가 제 실력도 낮지 않아요."

"걱정하지 마. 너희 둘을 어쩌려는 게 아니야. 너희들을 데려가는 건, 창운성지를 공격하는 이들이 이쪽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너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야."

선경라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추억몽은 곧 선경라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살짝 놀랐다.

"사실 정도나 사도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거든. 이 세상은 흑백 두 가지 색상만 있는 게 아니야."

항상 산뜻하기만 하던 선경라의 목소리가 이 순간만큼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반나절이 지나 그들은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선경라는 추억몽과 낙소만을 거느리고 멀리 날아갔다. 양준과 벽락은 계속해 음명귀왕의 영토로 날아갔다.

음명귀왕은 악귀의 모습을 하고 있고, 6대 사왕 가운데 서열도 앞쪽에 있으며,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였다. 귀왕은 일찍이 윗대 요미여왕의 미색에 반해 악랄한 수단까지 동원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때문에 그는 선경라 일족과 관계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따라서 두 영토 사이에도 알력이 있었다.

벽락은 요미여왕의 사왕령이 있다 해도, 귀왕 쪽 무인들의 이목을 끌까 두려워 섣불리 내보이지 못했다. 두 사람은 흉살사동으로 가는 내내 조심스럽게 행동한 덕분에 큰 문제에 부딪히지 않았다. 간혹 무인들을 만나더라도 서로 경계하며 지켜볼 뿐 무턱대고 싸우지는 않았다.

사흘 뒤, 두 사람은 흉살사동에서 삼 리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벽락은 걸음을 멈추더니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예요."

"알겠어요."

양준은 고개를 들어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곳은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사악한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한 광경은 없었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벽락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흘끔 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내 걱정해 주는 거예요? 설마 날 좋아하는 건가요?"

"뭔 헛소리를 하는 거에요.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고요? 제가 바보를 좋아하게 되더라도 당신을 좋아할 일은 없어요!"

벽락이 신랄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벽락은 양준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그제야 콧방귀를 뀌며 뒤돌아갔다.

*삼 리 밖, 양준은 지면에 어두컴컴하고 깊은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옆에 서자, 음산한 찬바람이 아래쪽에서 불어왔다. 몸이 오싹해질 뿐만 아니라 마치 신식도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살기가 가득한 곳답게 수상한 곳이 있었다.

양준은 바로 의념을 발동했다. 진양결이 조금씩 운행되며 냉기를 쫓았다. 곧이어 양준은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바람소리가 윙윙 들리는 가운데, 그는 신속하게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동굴은 생각보다 깊었다. 양준이 한참이나 아래로 떨어졌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아래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깜빡깜빡 빛줄기가 그의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무공을 펼치는 모양이었다.

양준은 더욱더 경계심을 높였다.

선경라의 말처럼 흉살사동은 위험천만한 곳이지만, 이곳에서 수련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양준은 도착하자마자 사람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위험한 곳일수록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흉살사동의 각종 기묘함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전쟁 상황이라, 많은 이들이 밖에서 싸우고 있을 터였다.

조금 지나자, 싸움 소리가 더욱 분명해졌다.

양준은 귀를 기울여 들었다. 상대는 네 명으로 실력이 모두 진원 경지인 무인들이었다.

그는 아래쪽으로 떨어지면서 조용히 신식을 펼쳐 감지해 보았다. 사악한 기운이 곳곳에 있었는데, 강하거나 약하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사령인 듯했다. 일부 무인들의 움직임도 감지되었지만, 모두 흩어져 있고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큰 위험은 없어 보이자 양준은 신식을 바로 거두어들였다.

신식을 펼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신식이 공격을 받게 되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신유 경지 고수들도 내내 신식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간혹 신식을 펼쳐 주위 환경을 살펴볼 뿐이었다.

십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양준은 마침내 동굴 바닥에 이르렀다. 앞쪽 멀지 않은 곳에서 무인 네 명이 한창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상대는 녹색 빛을 뿜는 물체였다. 그 물체는 인간 같아 보였는데, 오관이 흐릿하고 험상궂었으며, 몸뚱이는 비현실적으로 일렁거렸으나 실체를 띠고 있었다.

'저것이 사령인가 보군. 역시 요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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