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04화 (304/853)

제 304장. 정령병

양준이 뒤에 나타났지만, 그들은 눈앞의 싸움에만 열중하다 보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양준은 다른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일부러 소리를 냈다.

네 사람은 모두 깜짝 놀라 황급히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한 명이 조용히 전장에서 뛰쳐나와 경계심을 가지고 양준을 마주 보았다.

양준은 털끝만 한 적의도 보이지 않고, 무표정하게 그곳에 서서 싸움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양준을 살펴보던 사람도 잠시 지켜보다가 양준의 이러한 태도를 보고 계면쩍게 웃어 보였다. 양준은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조용히 주변 환경을 살폈다.

동굴 아래쪽은 꼭 다른 세상 같았다. 지하 전체는 속이 텅 비어 있었고, 드문드문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돌기둥이 우뚝 솟아 있었다.

흉살사동은 황량한 데다 생기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 무거운 느낌을 주었다. 지금 있는 곳은 지하 깊은 곳이었지만,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여기저기에 반짝이는 빛이 있었는데, 반딧불 같기도 하고, 도깨비불 같기도 했다. 이런 빛은 지하 전체를 수라지옥처럼 비췄고, 더하여 그 속에 있는 사람마저 험상궂고 공포스럽게 했다.

양준은 한참을 살피고서 문득 지마가 생각났다.

'지마가 있었으면 좋아했을 텐데. 녹색 사령들이 그에게는 보양식이잖아. 지금쯤 지마는 곤룡골에서 사악한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겠지.'

눈앞의 무인들은 한 명이 빠져 양준을 경계하는 바람에 전투력이 감소되었다. 나머지 세 사람은 하는 수 없이 전력으로 각종 사나운 무공들을 펼쳤고, 얼마 안 되어 녹색 사령 몇 개를 죽였다.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녹색 사령의 몸뚱이가 산산이 흩어지면서 공기 속에 사라졌다. 이내 매우 맑으면서도 사나운 기운이 내재된 물체 몇 덩이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사령의 본원이군.'

순간 양준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흉살사동에 오는 모든 무인은 사령 본원을 흡수해 그 가운데서 각종 이득을 취했다.

녹색 사령의 본원은 기운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이를 알아챈 양준은 곧 시선을 거두었다.

몇 사람은 양준을 힐끗 보고는 그의 얌전한 모습에 안심하는 듯했다. 그중 듬직해 보이는 남자가 옆에 있는 소녀에게 말했다.

"사매, 물건을 넣어 둬."

"응!"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리춤의 주머니 속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병을 녹색 사령 본원에 대고 진원을 살짝 돌렸다.

슉- 슉- 슉-

그리 크지 않은 병에 사령 본원 몇 덩어리가 모두 들어갔다. 소녀는 방긋 웃으며 병을 흔들었다. 그녀는 병을 들여다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소녀에게 말했던 남자가 이를 눈치챘는지 쾌활하게 웃더니 양준에게 공수 인사했다.

"난 도양(陶陽)이라고 해. 넌?"

"양준이라고 한다."

"양 형은 보아하니 이곳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야."

도양이 사람 좋게 웃더니 직언했다.

"맞아."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경라는 그에게 흉살사동의 위험과 기연에 대해서만 알려주고, 사령 본원을 거두는 병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때문에 양준은 소녀가 사령의 본원을 거둔 병이 무엇인지 신경 쓰였다.

"처음 온 거야?"

"맞아. 처음이야."

"그랬군."

도양은 붙임성이 좋고, 적어도 악의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인원수가 많다고 으스대지도 않았다.

양준은 창운사지의 무인들을 다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창운사지에 너무 큰 편견을 가지고 있어, 이곳에서 생활하는 모든 이가 다 나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어느 곳이든지 모두 공존했다.

양준과 도양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도양 옆의 다른 세 명도 양준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혼자 흉살사동에 뛰어 들어온 양준을 가소롭게 여기는 듯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군!'

"저 병은 뭐야?"

양준은 소녀의 손에 든 병을 가리키며 물었다. 도양이 악의가 없는 걸 알았으니, 그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이건 정령병(淨靈甁)이야. 이곳에서 수련하는 무인들을 위해 만든 비보지."

도양은 소녀의 손에서 병을 건네받아 양준의 눈앞에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병 속에서 녹색 빛이 물처럼 출렁거렸다.

"무슨 효력이 있지?"

양준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자, 도양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마를 문지르더니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양 형, 사령이 죽으면 본원이 남는 건 알지?"

"알아."

"본원에는 각종 기묘함이 내재돼 있어, 그것을 흡수하면 이득을 얻을 수 있거든. 하지만 본원도 내키는 대로 흡수해서는 안 돼. 그중에 사악한 기운이 적지 않는데, 무인은 그것을 정제한 다음 흡수해야 해. 게다가 사령이 강할수록 본원의 사악한 기운이 더 짙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사령 본원에 숨겨진 사악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악한 기운이기 때문에 많이 흡수하게 되면 미칠 수도 있었다.

"본원을 흡수하는 데는 시간이 걸려. 흉살사동에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잖아. 만약 매번 본원을 얻을 때마다 흡수하면 얼마나 위험하겠어. 그럴 때 정령병이 필요한 거야. 정령병에 사령 본원을 담아 두었다가 적절한 때에 안전한 곳에서 흡수하면 되거든."

도양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양준은 그제야 병의 쓰임새를 알게 되었다. 이곳에 들어오면 뭔가 사전에 알아야 할 것이 많은 듯했다.

'내가 너무 경솔하게 혼자 왔군. 보아하니 더 조심해야겠어.'

"게다가 정령병은 사악한 기운을 정화하는 효력도 있어. 안에 오래 담아 놓을수록 우리가 본원을 흡수하기 더 쉬워지거든. 하지만 너무 오래 두면 정령병에 손상이 가. 그러니까 적당히 넣어 두었다가 곧바로 흡수하는 게 좋아. 실력도 향상되고 말이야."

"고맙다. 한 수 배웠네."

양준이 정중하게 공수하며 말했다.

"별말씀을."

도양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소녀에게 말했다.

"사매, 병 하나만 줄래?"

소녀는 병 하나를 꺼내 도양에게 넘겨주었다.

도양은 곧바로 양준에게 병을 건네더니 웃으며 말했다.

"양 형도 하나 챙겨. 안 그럼 혼자서 오래 못 버텨."

"사형!"

도양이 대범하게 정령병을 낯선 이에게 주자, 다른 세 명이 저도 모르게 그를 불렀다.

“정령병이 특별히 등급이 높은 비보는 아니지만, 우리도 세 개밖에 안 가져왔단 말이야.”

“이렇게 남에게 그냥 줘도 돼?”

"다 이곳에 와서 수련하려는 거잖아. 서로 도울 줄 알아야지."

도양이 세 사람에게 입을 다물라는 듯 눈짓했다.

양준은 정령병을 받으며 저도 모르게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이유 없이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어디까지나 오다가다 만난 인연일 뿐이었다.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한 건가?! 하지만, 나를 아는 것도 아니고 도움을 청할 리가 없는데?'

양준은 병을 돌려주려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누군가 선물한 것을 곧바로 돌려주는 것은 별로 좋은 처사가 아니었다. 상대에게 괜히 호의가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고, 혹시라도 척을 질 수도 있었다.

'무엇과 바꿔주면 좋을까?'

양준은 신식을 펼쳐 검은 책 공간을 훑어보았다. 그 속에는 만약영액, 영유, 영고 외에 음양요삼 하나가 있었다. 그 외에 해외 각 대종문의 진문 비보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체내에는 수라검과 천예혈해당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선물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 외에 단약이 조금 있었다. 이는 능태허가 그를 위해 준비해 준 것으로 유명산에서 미처 다 복용하지 못해 남은 것이었다. 그리고 선경라의 보물 창고에서 가져온 천급 단약 두 병이 있었다.

양준은 저장 창고를 둘러보고 나서 문득 자신이 아주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천급 단약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천급 단약 한 병이면 꽤 값이 나갔다. 게다가 선경라의 보물 창고에서 가져온 데다, 무려 천급 상품으로 한 병에 적어도 2~30만 냥은 될 것이다. 정령병 하나의 값으로는 충분할 듯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신식으로 검은 책 공간을 훑어본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남들의 눈에는 그가 멍하니 서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머지 세 사람은 원래부터 도양이 양준에게 정령병을 주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도양이 사형이기에 참은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도양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설령 친분을 쌓고 싶다고 해도 정령병까지 줄 필요는 없잖아?'

더군다나 지금 양준이 무관심한 표정까지 짓자, 더욱 화가 났다. 소녀는 솔직한 성격인 듯, 곧바로 콧방귀를 뀌더니 한마디 했다.

"물건을 받았으면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벙어리도 아니잖아."

다른 두 명도 마치 큰 손해라도 본 것처럼 차가운 얼굴로 양준을 지켜보았다.

양준은 잠깐 당황하다가 곧 고개를 들고 그들을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미안. 잠깐 생각 좀 하느라."

"생각은 다 했어?"

소녀는 기어코 양준에게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아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그래."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양에게 단약 한 병을 던져 주고는 공수 인사했다.

"기회 되면 또 보자."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신형이 움찔하더니 번개같이 떠나갔다.

"야… 사람이……."

소녀는 몇 걸음 쫓다가 양준의 종적이 사라지자 화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