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5장. 뜻밖의 발견
"어휴, 이 녀석들아……."
도양은 아직도 갈 길이 먼 동문들을 보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했다. 그들을 따로 꾸짖지는 않았지만,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형, 저 자와 꼭 친분을 쌓아야 해?"
살짝 마른 몸매의 사제가 의문에 찬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차림새도 평범하고 뭐 특별히 대단한 인물도 아닌 거 같은데. 왜 정령병을 줘? 게다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리는 것 봐. 정말 싫어."
소녀는 커다란 눈에 의혹을 가득 담고서 가볍게 중얼거렸다.
"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하는데. 고맙다는 인사 대신 이걸 주고 갔잖아. 이걸 봐."
도양은 그들을 노려보다가 양준이 던지고 간 병을 소녀에게 건네며 담담하게 말했다.
"뭐야? 그냥 단약이잖아. 정령병에 비해 가치가 너무 떨어지는 거 아냐?"
소녀는 불만을 품은 채 병을 받으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녀는 불만을 말하는 한편, 대수롭지 않게 병마개를 열고 살짝 냄새만 맡아 보았다.
순간, 그녀의 얼굴빛이 확 변하면서 경악에 찬 눈빛으로 도양을 바라보았다.
도양의 눈에는 무기력함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소녀는 놀란 표정으로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떨리는 손으로 단약 하나를 꺼내 손바닥에 놓고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다른 두 명도 다가왔다. 윤기가 나고 옹골진 단약이 짙은 단향까지 내뿜자, 셋은 동시에 놀라 소리쳤다.
"천급 단약?"
"좀 더 살펴봐."
도양의 안목은 다른 세 명보다 훨씬 높았다. 그는 한눈에 단약의 품급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설마… 천급 상품?!"
그제야 세 사람은 불만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오히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천급 상품 진원단이야. 이래도 정령병 하나가 아까워?"
도양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소녀는 얼굴이 붉어지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들 역시 흉살사동에 깊이 들어가 수련하는 만큼, 진원을 보충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그들이 가져온 단약은 등급이 가장 높아봐야 천급 하품 진원단이었다. 양준이 아무렇게나 던져준 단약보다 작은 등급 두 개가 차이 났다. 물론, 가치도 크게 차이 났다. 게다가 품질이 좋은 단약은 결정적인 순간에 목숨을 구할 수도 있으니, 금전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근데 그 녀석은 정체가 뭐길래 이렇게 손이 크지."
깡마른 사제가 놀란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베풀면 다 돌아오게 되어 있어. 그가 어디 출신이든 좀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너희들이 다 망쳤어."
도양은 입을 쩝쩝 다시며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셋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괜히 가슴이 찔려 연신 잘못을 인정했다.
소녀가 호기심이 일어 물었다.
"사형은 어떻게 그 사람이 괜찮다는 걸 알았어? 이곳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오잖아. 만에 하나 그가 간악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도양이 웃으며 대답했다.
"간악한 사람이면 방금 전 내려올 때, 고의로 소리를 내서 우리가 알아차리게 하지 않았을 거야."
세 사람은 그제야 양준이 내려오면서 자신들에게 일깨워 주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낸 것임을 알게 되었다. 혹은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소리를 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말과 행동에서 그가 이곳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런데도 혼자서 이곳에 왔다는 건 반드시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이야. 틀림없이 실력이 뛰어났을 거야."
"그건 아니지 않을까? 우리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던데."
소녀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이가 모든 걸 말해 주지는 못해. 너희들, 걔 혼자서 우리 넷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거 못 봤어? 그건 우리를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얘기야. 이게 뭘 뜻하는 걸까? 걔는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를 죽일 실력도 가지고 있다는 거지. 이게 바로 내가 걔하고 잘 지내려고 한 이유야."
"어떻게 그럴 수가… 믿을 수가 없어."
세 사람은 놀라서 연신 고개를 저었다.
도양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 이렇게 안목이 좁아서 어쩔 거야? 세상에는 귀재들이 계속 배출되고, 실력이 강한 자도 세상 천지에 널려 있어. 안목 좀 키우고 멀리 내다보란 말이다."
소녀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사형이 그렇게 말해도 난 믿을 수가 없어. 천재는 있지. 하지만 양준 같은 나이에 우리 넷을 죽일 수 있으면 그건 천재가 아니라 변태야."
다른 두 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말이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어휴……."
도양은 괜히 입 아프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무리 말해도 동문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지라 탄식하며 말했다.
"얘들아, 이 말 한마디는 꼭 기억하렴. 세상을 살아가려면 실력은 없어도 안목은 있어야 해. 누구에게 밉보여서는 안 되는지, 누구와 친구로 지낼 건지 판단할 줄 알면 백 살까지는 문제없이 살 수 있을 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사형, 아쉬운 소리 그만하고 빨리 들어가자. 그 사람이 우리보다 한 발 앞섰어. 우리가 빨리 가면 혹시나 안에서 또 마주칠지도 모르잖아. 그때되면 그 사람이 진짜 실력이 있는지 알 거 아니야. 지금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
소녀가 도양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
도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 역시도 양준이 무엇을 믿고 혼자 이곳에 들어왔는지 궁금했다.
*몇 리 밖.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앞쪽 멀지 않은 곳에서 귀신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녹색 사령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자세히 살펴보니, 사령은 반실체로 손발이 없고 흐릿한 오관만 있었다. 이 모습이 매우 오싹하고 흉악해 보였다. 양준은 잠시 살펴본 뒤, 그쪽으로 걸어갔다.
사령은 생각이 없지만 생명의 기운에 민감해, 살아 있는 물체가 일정한 범위 내에 나타나면 곧바로 공격했다. 그리고 사령을 없애지 못하면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양준이 십몇 장을 가까이 다가가자 곧 사령에게 감지되었다.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사령이 양준에게 날아왔다. 순간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양준은 곧바로 사령에게 공격을 날렸고, 뜨거운 장풍이 사령을 적중했다.
사령은 양준의 공격에 맞고 한동안 흩어지더니 진양원기가 침입한 자리에서 불길이 훨훨 타올랐다. 진양원기는 곧 사령의 사악한 기운에 의해 사라졌지만, 이 일격에 사령의 몸체가 많이 어두워졌다.
사령은 앞으로 달려들다가 순간 멈칫하더니 울부짖는 소리도 뚝 그쳤다. 곧이어 홱 방향을 바꾸어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양준은 순간 당황했다. 곧 어렴풋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사령을 뒤쫓아 갔다.
사령이 도망치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양준은 한참이나 추격해서야 겨우 사령을 따라잡은 뒤, 바로 공격을 퍼부어 놈을 죽이고 사령의 본원을 얻을 수 있었다. 전에 도양 일행이 사령과 힘들게 싸우는 것을 보고, 양준은 본인도 그럴 것이라 짐작했었지만, 사령을 죽이는 것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쉬웠다.
양준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줄곧 어딘가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사령은 살아 있는 생명체는 무조건 공격하고 끝장을 보지 않으면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내 공격을 맞고 바로 도망간 거지? 게다가 몇 번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바로 죽었어. 진양원기가 사령의 힘을 억제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오직 진양원기만이 의문점을 설명할 수가 있었다. 강한 진양원기는 줄곧 사악한 기운의 천적이었다. 양준도 진양원기로 금신의 사악한 기운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표정이 환해지며 이내 흥분되었다. 흉살사동 안에서 그는 남보다 큰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점을 이용하지 못하면 그건 곧 낭비나 다름없었다.
양준은 정령병을 꺼내 소녀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했다. 진원을 살짝 돌려 비보에 주입하자 순식간에 정령병에서 흡입력이 생기더니 사령 본원을 빨아들였다.
'재미있네.'
양준은 싱긋 웃었다.
그는 곧 정령병을 거두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근처에는 무인들이 많지 않았다. 양준은 길을 가는 내내 하나의 사령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맨 처음 사령을 뒤쫓는 고생을 한 뒤부터는 과감하게 움직였다. 사령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고 일격으로 사령들을 죽여 버렸다.
반나절도 안 되어 정령병에는 사령 본원 스무 덩어리가 들어갔다. 하지만 사령 본원에 내재된 기운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생각건대 흡수해도 별반 실력이 향상될 것 같지 않았다.
*양준의 뒤쪽으로 십몇 리 떨어진 곳에서 도양 일행은 줄곧 조심조심 길을 걸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걸어도 사령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여긴 왜 이렇게 조용하지?"
소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도양은 의아함과 놀라움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앞사람이 사령을 모조리 죽이고 갔나 봐."
"이렇게 바깥쪽에 있는 사령을 누가 힘들여서 죽인다고. 설마 아까 그 사람이……."
소녀는 가볍게 웃어넘기다가 문득 뇌리에 뭔가 스쳐 지나가자, 고개를 돌려 도양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