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07화 (307/853)

제 307장. 수련하러 온 게 아니야

흉살사동 안.

은밀하고 안전한 곳에 귀왕곡 제자들이 자리잡고 둘러앉아 있었다. 한바탕 싸운 뒤라, 그들도 회복이 필요했다.

이곳처럼 사악한 기운이 넘쳐나는 곳에서는 줄곧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만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좌선하고 쉬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혹여 붉은색 사령들이 나타날까 봐 주위를 경계했다.

양준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냉산을 훑어보았다. 일 년간 못 본 사이, 그녀도 많이 성장한 듯했다.

냉산은 일행 가운데서 실력이 가장 강한 것도, 나이가 가장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녀의 말에 따랐다. 그녀의 지휘 하에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일을 처리했다. 귀왕곡에서 그녀의 신분이 높은 원인은 아마도 유명산에서의 수련 경험 덕분인 듯했다.

심혁은 미소를 띤 채 한쪽에 앉아서 온화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양준이 귀왕곡의 최우수 제자를 두 명이나 죽이고, 냉산과도 은원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너는 어쩌다 이곳에 온 거야?"

양준이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그는 이곳에 와서 아는 이를 만나게 될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유명산에서 양준은 냉산보다 자맥과 가까운 편이었으나, 냉산의 머릿속에도 양준의 신식 낙인이 있는 만큼 둘 사이에도 연결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일방적인 것으로 양준만 냉산을 감지할 수 있을 뿐, 냉산은 양준을 감지할 수 없었다.

"난 당연히 이곳에 있어야지. 너 설마 여기가 어디인 줄도 모르고 온 거야?"

냉산의 차가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흉살사동이잖아. 음명귀왕의 영토… 이제 보니 귀왕곡이 창운사지에 있었구나?"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렇지."

냉산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불현듯 놀라며 물었다.

"귀왕곡과 음명귀왕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거야?"

"둘 다 귀왕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큰 연관은 없어. 그냥 우리 귀왕곡도 그의 관할 범위 중 하나일 뿐이야. 아직 창운사지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심혁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맞아."

양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심혁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사매의 은인이면 우리 귀왕곡의 친구고, 물론 나 심혁의 친구이기도 하지. 그런데 양 형은 어디 출신이야?"

"사형!"

냉산이 다급하게 심혁을 불렀다. 그녀는 양준의 종문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종문이 알려져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전에 능소각은 그리 유명하지 않았으나 사주가 세상에 나타나면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사주의 출신 때문에 능소각 출신들은 어디에 가도 환영받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바깥뿐만 아니라 창운사지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주가 나타나면서 곧바로 창운사지에 전쟁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이는 바깥 사람이든 창운사지 무인이든 어느 쪽도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냉산이 주의를 주자, 심혁은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미안,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어디 출신인데, 말도 못 하게 하는 거지?'

양준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넌 여기 왜 왔어?"

냉산이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능소각은 이곳과 멀리 떨어져 있어, 이곳에 오려면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다.

"이곳에 재미난 게 있다고 해서 놀러 왔어."

심혁과 냉산은 동시에 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간이 어지간히 크군. 겁도 없이 혼자 오다니……."

냉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녀는 양준이 강하고 괴이쩍은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어쩌면 놀러 올 자격이 있을지도 모르지.'

"참, 너희들이 상대한 사령은 왜 다 붉은색이야? 난 오면서 녹색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양준이 의문을 제기했다.

"하하하!"

심혁이 참지 못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제야 놀러 왔다는 양준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아니면 흉살사동의 기본적인 상황에 대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냉산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살짝 오므렸다. 귀왕곡의 다른 제자들도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냉산이 가볍게 기침을 하자, 심혁은 그제야 표정을 가다듬고 양준에게 물었다.

"양 형은 녹색 사령과 붉은색 사령의 다른 점을 못 느꼈어?"

"음, 붉은색이 조금 더 강한 거 같아."

"맞아. 흉살사동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사령이 더 강해져. 녹색 사령은 가장 바깥쪽에서만 만날 수 있고, 상대하기도 쉬워. 붉은색은 녹색보다 조금 강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이야.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자색, 검은색 사령이 있는데 점점 더 강해지고 몸뚱이도 점점 더 단단해지지. 검은색 사령은 거의 실체에 가까운 몸뚱이를 가지고 있어. 그건 신유 경지 고수도 피할 정도야. 우리 같은 수준은 기껏해야 자색 사령까지만 싸울 수있지. 만약 검은색 사령을 만나면 그냥 도망쳐야 해.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거든."

양준은 이 말에 무언가 떠올랐다.

'자색 사령이라, 아마 낙욱의 자기사신과 자색 사화도 모두 자색 사령의 본원에서 얻은 것인가 보군.'

"그렇구나."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흉살사동에는 네 가지 색상의 일반 사령 외에도 특별한 사령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

심혁은 양준에 대한 인상이 바뀌자 그와 잘 지내기 위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어? 그건 무슨 사령이야?"

양준은 놀란 눈빛으로 심혁을 바라보았다.

"혼사령(魂邪靈)이라고 있어. 다른 일반 사령들과 생긴 게 거의 비슷해서 분간하기가 쉽지 않아. 만약 마주치면 무조건 도망가야 해."

심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에게 경고하듯이 말했다.

"왜?"

"녀석이 신혼기를 쓰기 때문이야. 진원 경지인 우리는 혼사령을 당해 낼 재주가 없지. 혹시 신혼 방어 비보라도 있어?"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없으면 힘들겠군. 이곳에 오는 이들은 보통 신혼 방어 비보를 지니고 있거든. 간혹 능력이 좋은 이들은 사령을 억제할 수 있는 공격 비보도 가지고 다녀. 그래도 양 형은 수련하는 공법과 진원 속성이 모두 사령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니 괜찮을 거야."

심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 운이 아주 나쁘지 않은 이상, 혼사령과 마주칠 일은 없겠지."

양준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에게는 신혼 방어 비보가 없지만 머릿속에 신혼기가 있었고, 미혼지궁의 방어력도 나쁘지 않았다. 때문에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긴. 혼사령을 만날 가능성도 많지 않을 거야."

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간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누자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다.

한창 말하고 있는데,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날카롭고 귀청을 때리는 것이 피리 같기도 하고, 귀신이 우는 것 같기도 했다.

귀왕곡의 제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 일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가 들렸어."

심혁이 정색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가 보자."

냉산도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캐묻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빛을 보니 그렇게 큰일은 아닌 듯싶었다.

"가자."

심혁은 사람들을 불러 길을 떠나면서 양준에게 말했다.

"아니면 양 형도 같이 가는 건 어때?"

"그래, 좋아!"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그의 부주의로 그들의 사령 본원을 흡수해 버렸고, 이에 대해 보상하겠다고 말한 이상, 그들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유 없이 남에게서 이득을 챙기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앞에서 걷고, 냉산만 일부러 맨 뒤에 떨어져 양준과 나란히 걸었다.

"너한테 아무 짓도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양준은 냉산이 이 점을 걱정하는 줄 알고 얼른 말을 꺼냈다.

"너하고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냉산이 고개를 저었다.

"아, 그래. 그럼 뭘 말하려고?"

냉산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수련 때문이 아니야."

"그럼 뭘 하러 왔는데?"

양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는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

"사람을 찾는다고?"

"그래. 밖에서 온 사람들이 소요종(逍遙宗)의 제자를 죽이고 이곳으로 도망쳤다고 해. 귀왕곡과 소요종이 가까운 사이라, 돕는 차원에서 따라온 거지."

양준은 무심코 냉산을 힐끔거리다가 그녀가 소요종을 말할 때, 얼굴에 살짝 노기를 띠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소요종이 너희 귀왕곡을 자주 괴롭히는 거 아니야? 이번에도 실은 억지로 끌려온 거고?"

"눈치도 빨라."

냉산이 그에게 눈을 흘겼다. 그의 짐작이 정확한 듯했다.

냉산은 다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너도 창운사지 사람이 아니니 사전에 말해 주는 거야. 소요종에서 쫓는 사람도 바깥 세력의 무인이야. 혹시라도 만나면 같은 정파 출신이라서 네가 곤란할까 봐 그래."

"같은 정파는 무슨… 종문도 망한 마당에."

양준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냉산은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한마디 했다.

"능소각의 일은 나도 들었어. …유감이다."

양준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선경라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능소각의 변고 때문인지, 양준은 이제 더는 정도나 사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의 형세와 상관없이 사람이나 일을 대함에 있어 개인적인 기호에 따르기로 했다.

"소요종이 쫓는다는 이는 어떤 사람이야?"

양준은 어쩐지 호기심이 생겼다.

"여자야. 소요종 놈들이 하는 짓이야 뻔하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너도 알 텐데."

냉산이 비웃으며 말했다.

"어… 알지."

양준은 왠지 부끄러워 진땀을 뺐다. 그는 차가운 냉산이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듣기로는 쌍둥이라고 하더라. 예쁜 데다가 실력도 아주 높대. 둘이 협공하면 그리 대단한가 봐."

냉산의 눈에는 은은하게 쾌감이 내비쳤다.

"둘이서 소요종 제자 열몇 명을 죽였대.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이곳으로 도망쳤다고 하네."

"너 소요종을 되게 싫어하는구나. 혹시 누가 너한테 집적거렸어?"

양준이 싱긋 웃으며 그녀를 훑어보았다.

"흥!"

냉산은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만약 너희들이 먼저 쌍둥이를 잡으면 어떻게 할 거야?"

양준이 가볍게 웃다가 정색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