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9장. 다 한 집 식구잖아
두 종문의 제자들은 한데 모여 간단하게 의논한 뒤, 계속해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심혁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맨 앞에 섰다. 그의 곁에는 소요종 제자 남녀 한 명씩 서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뒤에 분산되어 부채꼴 모양을 이루며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얼마 걷지 않아, 자색 사령 두 마리가 앞쪽에서 날아왔다. 두 사령은 살기가 짙고 붉은색보다 훨씬 더 흉악했으며 몸뚱이도 매우 단단하고, 오관도 뚜렷했다. 심지어 그것들은 촉수 같은 것이 두 개나 달려 있어, 보기만 해도 오싹했다.
"온다!"
심혁이 소리치며 온몸의 진원을 돌렸다.
"너희 하나, 우리 하나."
여경이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 귀왕곡과 소요종의 제자들은 모두 정신을 바싹 차리고 양쪽으로 나뉘어 각자 사령과 대적했다.
양쪽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귀왕곡 제자들은 여러 가지 음침한 무공을 펼쳐 서로 협조하면서 사령과 싸웠다. 소요종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펼치는 무공은 귀왕곡의 무공보다는 평범해 보였다.
양준은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공격을 펼치는 시늉만 할 뿐, 나서지 않았다. 그는 자색 사령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잠시 전투 상황을 지켜본 양준은, 곧 자색 사령의 실력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자색 사령은 붉은색 사령보다 확실히 대처하기 힘들었다. 귀왕곡 제자들은 비록 아직까지 우세를 점하고 있었지만, 천천히 사령의 힘을 야금야금 소모시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색 사령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면, 아마 귀왕곡 제자들만으로는 대처하기 힘들 듯했다.
한참 동안 격전을 벌여, 양쪽은 각자 맡은 사령을 죽이고 짙은 사령의 본원을 남겼다. 두 종문은 각각 한 명씩 나와 기쁜 표정으로 정령병에 본원을 거두어들였다. 처음 협력한 결과는 귀왕곡이나 소요종 모두 나름 만족하였다.
"계속해!"
여경은 미소를 머금고 심혁에게 고개를 까닥해 보였다.
심혁도 더는 불평 없이 소요종의 두 제자와 함께 앞장섰다.
반나절이 지나 두 종문은 각각 본원 대여섯 개를 얻게 되었다. 게다가 사령들은 모두 둘씩 쌍을 지어 다녔기에 양쪽 다 허탕치는 일은 없었다. 서로 간에 화기애애하고 호흡이 잘 맞는 듯했다. 그러나 양준은 냉산이 줄곧 소요종 쪽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설령 전투 중에도 그녀는 절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또 한 번 성공적으로 사령 두 마리를 죽였다. 그리고 귀왕곡 제자가 앞에 나가 본원을 거두려는 순간, 소요종 쪽에서 여인 하나가 날아오더니 깔깔 웃으며 손을 내밀어 귀왕곡 쪽의 본원 사령을 체내에 흡수해 버렸다.
여인은 가볍게 다시 소요종 쪽으로 돌아가서는 의기양양하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소요종 남제자가 그녀를 칭찬했다.
"녀석, 담도 크군."
"호호, 난 그냥 당신이 더 강해지길 바라."
여인이 애교 띤 말투로 말했다.
"여경! 지금 뭐 하는 거야?"
심혁이 이 광경을 보자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여경은 허허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가?"
"우리가 죽인 사령의 본원을 왜 너희들이 대놓고 빼앗아 가는 거지?"
심혁의 얼굴빛이 음침하고 차갑게 변했다. 귀왕곡의 다른 제자들도 모두 화난 표정이었다.
"심혁, 다 같은 식구끼리 뭘 그리 따져. 소요종이나 귀왕곡이나 다 한 집 식구잖아. 협력하면서 당연히 서로 도와야지. 우리가 흡수하든, 너희들이 흡수하든 다 똑같은 거지."
여경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얼렁뚱땅 넘기려 했다.
"그럼 너희들이 죽인 사령을 우리가 흡수해도 된다는 얘기냐?"
심혁이 차갑게 여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보시든지. 본원 하나 가지고 뭘 그리 화내는데. 너희들 지금 사령보다 황천지가 더 급하지 않아? 걱정하지 마.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황천지를 한 달간 개방해 줄 테니까. 난 한다면 하는 놈이야."
여경이 씩 웃으며 말했다.
황천지라는 말에 심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한참 동안 뚱해 있다가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말한 대로 하길 바랄게!"
심혁도 더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 귀왕곡 제자에게 있어 황천지는 너무나 중요했다. 만약 소요종의 실력이 그들보다 강하지 않았다면, 진작 그들과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두 종문은 계속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방금 전의 일 때문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이미 깨져 버렸다.
양준이 냉산의 옆에 다가서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방금 저 여인도 정련 과정 없이 본원을 그대로 흡수하네? 딱히 사령을 억제하는 공법을 수련한 거 같지는 않아 보이던데."
정령병으로 본원을 흡수하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여인이 직접 체내에 흡수했기에 귀왕곡의 제자는 미처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쟤들은 미노(媚奴)라고… 소요종 남제자들 대신 각종 위험을 받아 내거든. 미노는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
"그렇게 대단해?"
양준은 깜짝 놀라며 소요종이 꽤 수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미노가 직접 본원을 흡수하면 당연히 본인 몸에 피해가 가겠지. 그런데 쟤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소요종의 남자들도 무관심하고. 쌍방이 서로 원하는 거야. 게다가 소요종의 남자들은 인당 미노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야. 그래서 미노 하나가 죽어도 별로 마음에 담아 두지 않을 거야."
"완전 짐승이 따로 없군."
양준이 비웃으며 말했다.
"아니지. 저것들은 짐승만도 못해."
냉산이 냉소했다.
반 시진이 지나 귀왕곡 제자들이 사령 한 마리를 죽이자, 소요종 쪽에서 또 여자 한 명이 뛰쳐나와 지난번과 같은 수단으로 직접 본원을 빼앗으려 했다.
양준은 미간을 찡그리더니 바람처럼 앞으로 뛰쳐나가 여자가 다가오기 전에 본원을 손바닥에 흡수했다.
"엥?"
여경은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냉소만 흘렸다.
소요종의 미노들은 피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녀들은 그 자리에서 본원을 흡수하고 황급히 정화해 위험을 자신이 감수하고 이득을 남자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양준이 이렇게 하면 위험을 피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여경은 귀왕곡 쪽에서 욱한 김에 하는 행동이라 생각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기만 했다.
"너희한테 본원 두 덩어리나 빚졌네."
양준이 몸을 날려 돌아오면서 싱긋 웃었다.
"괜찮아. 쓰레기들을 줄 바에야 양 형이 흡수하는 게 낫지."
심혁은 유쾌하게 웃으며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그는 양준이 양성 공법을 수련하는 만큼, 그 자리에서 바로 본원을 흡수하고 정화해도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냉산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심혁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두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귀왕곡의 다른 제자들도 군소리하지 않았다. 점점 더 증오에 찬 눈길로 소요종 제자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후 반나절 동안, 귀왕곡 쪽에서 죽인 사령 본원은 모두 양준 혼자서 흡수했다. 양준은 원래 소요종 쪽의 본원도 흡수하려다가 혹시라도 냉산 일행이 난처해질까 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양준이 계속 이 같은 행동을 보이자, 여경은 줄곧 차갑게 그를 지켜보다가 냉소를 지었다.
"자식, 언제까지 버티는가 보자. 정화하지도 않고 흡수하면 조만간 주화입마에 빠질 거야."
양준이 미소로 답했다.
"그런 걱정은 넣어 두시지."
"어디 두고 보자."
여경의 눈에는 서슬 퍼런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이때, 별안간 앞쪽이 고요해졌다. 한참이나 걸었는데도 사령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두 종문의 제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 마주 볼 뿐이었다.
모두 한창 걷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짙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살기가 매우 짙어, 마치 사마가 세상에 나타난 듯했다. 모두들 저도 몰래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잠시 뒤, 살기가 자취를 감추고 또다시 평온해졌다.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상대방의 눈빛에서 희열을 보았다.
위험한 곳일수록 얻을 것이 많았다. 귀왕곡과 소요종의 제자들은 마치 생선 비린내를 맡은 고양이처럼 기연을 얻을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사악한 기운을 떠올리자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가서 볼 거야, 말 거야?"
여경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심혁도 망설이면서 냉산에게 시선을 보냈다.
냉산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녀가 미처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소요종의 여제자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사령이다!"
"어디 있어?"
여경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바로 뒤에."
모두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들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고 발바닥에 경련이 일 것만 같았다.
뒤쪽 반 리 남짓한 곳에서 자색 사령들이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적어도 열몇 마리는 되어 보였다.
귀왕곡이나 소요종의 지금 인원으로는 자색 사령 열몇 마리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많아?"
심혁이 괴성을 지르며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어서 뛰어!"
정영이 다급히 소리쳤다.
사람들은 머뭇거릴 사이도 없이, 서둘러 신법을 펼쳐 죽기 살기로 앞쪽으로 도망쳤다.
"양쪽에 다 있어."
달리는 와중에, 여경이 놀라서 소리쳤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양쪽 모두 사령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자색의 그림자는 보기만 해도 오싹했고,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과도 완전 일치했다. 아마 방금 전 소란에 사방 몇십 리 이내의 사령들이 모두 모여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