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2장. 최악의 상황
"그런 거 아니야."
양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가까이 오지 말고 거기서 말해. 내가 못 본 줄 알아? 방금 전에는 왜 그 불량배하고 같이 왔어? 그리고 소요종 애들이 너희들더러 우리 자매를 잡아오라고 했잖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
호교아는 동생을 막고 서서 연신 냉소를 지었다.
"언니… 양준은 그런 애가 아니야."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거야. 양준, 너 제대로 말해."
호교아가 동생을 따끔하게 일렀다.
"알았다. 알았어. 다 설명할게."
양준은 하는 수없이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이번에 흉살사동에 와서 일어난 일들을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진짜야?"
호교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양준을 노려보았다. 그의 표정 변화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너희들을 속여서 뭐 하겠어? 난 그냥 이곳에 대해 알아낼 게 있을까 해서 찾아온 거야. 그리고 너희 둘인지도 몰랐어. 아니면 너희 둘, 나와 함께 가서 합류하자. 같이 사령도 막고 말이야."
양준이 진지하게 말했다.
"가 보자. 언니!"
호미아는 양준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호교아는 한참 동안 주저했다. 건너가서 소요종 남자들의 추악한 몰골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매 둘이서 계속 이곳에 머무는 것도 좋은 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양준이 같이 가자고 하는 것도 그녀들을 위해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가도 상관없지만, 지금 진원이 많이 소모돼서 회복한 다음에 넘어가야 해."
그녀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귀왕곡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두 자매는 요 며칠 창운사지에서 숨어 다니느라 전혀 쉬지 못했다. 게다가 소요종에 쫓기면서 연이어 전투를 치렀다. 동기연지신공이 진원을 회복시키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면 둘은 진작 잡혔을 것이다. 흉살사동에 들어온 뒤에는 사령까지 대처하느라, 둘은 피로에 찌들었고 온몸의 진원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너희들이 진원을 회복하려면 적어도 반나절은 걸릴 텐데."
양준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 회복하기 전까지는 안 갈 거니까 그런 줄 알아."
호교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나한테 방법이 있어."
양준이 웃으며 검은 책 공간에서 만약영액 한 방울을 손가락에 묻히고는 호교아에게 건넸다.
"자, 입 벌려 봐."
호교아는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앵두 같은 작은 입을 벌렸다. 그녀의 이런 행동으로 볼 때, 그녀가 사실은 양준을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준이 손가락을 입에 넣자, 호교아는 깜짝 놀랐다. 이내,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에 홍조와 함께 노기가 피어올랐다.
이때, 양준이 다급하게 말했다.
"먼저 그걸 삼켜."
호교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곧이어, 그녀는 달콤한 맛이 혀끝에서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맛이 퍼짐에 따라 따뜻하고 세찬 기운이 뱃속으로 스며들며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짧은 순간, 거의 고갈되었던 온몸의 진원이 빠르게 차올랐다.
그녀는 얼굴빛이 살짝 변하면서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양준은 가볍게 웃고는 다시 만약영액 한 방울을 묻혀 호미아에게 건넸다.
"네 차례야."
호미아는 고개를 저으며 수줍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 그냥… 안 먹을래."
"미아야. 이건 진원을 보충해 주는 약이야."
호교아는 이미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자매 사이에 마음이 통하기 때문에 그녀는 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고 서둘러 설명했다.
"효과가 대단해. 어서 먹어."
호교아가 다시 한번 그녀를 재촉했다.
"너희들은 약을 흡수하고 있어. 내가 호법할게."
양준은 가볍게 기침하고서 그녀들 옆에 서 있었다.
"응."
자매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동기연지신공을 펼쳤다.
*다른 한쪽 축대에서 심혁과 도양 일행은 사령을 경계하는 한편, 자매가 있는 쪽을 눈이 빠지게 바라보았다.
"양 형이 간 지 한참이나 됐는데, 왜 아직 돌아오지 않는 거지?"
심혁이 미간을 찌푸리고 미심쩍어하며 말했다.
도양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얘기가 잘 된 모양인데? 저렇게 가까이 있는 걸 보아서는 양 형을 경계하지 않는 눈치야."
그들이 있는 쪽에서 바라볼 때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형체는 볼 수 있었다. 양준과 자매는 석 자 정도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자매가 양준을 경계한다면 이리 가깝게 서 있을 리가 없었다.
"대단해. 양 형은 여인을 대하는 수법도 제법이군."
심혁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흥!"
냉산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애당초 유명산에서 그녀는 자맥과 함께 별의별 수를 다 써서 양준을 괴롭히려 했지만, 결국 나중에는 둘 다 양준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오히려 양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재주가 없으면, 어떻게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리로 오고 있어."
심혁이 소리쳤다. 모두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보니, 양준과 두 여인이 함께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대단하다."
도양도 마음속으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리 짧은 시간에 두 여인이 달갑게 따라오게 만들다니. 도양은 자신에게 그런 재주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상대가 경계심과 적의를 내려놓게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멀지 않은 축대에서 여경도 동공이 수축되었다. 그는 눈도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자매의 모습을 뒤쫓았다. 눈동자에는 음탕한 기운이 반짝였고,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셋이 반쯤이나 날아왔을까, 아래쪽에서 갑자기 변고가 일어났다.
무수히 많은 사령들이 서로 싸우는 가운데, 갑자기 사악한 기운이 교룡처럼 아래쪽에서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모든 공간을 막아 버렸다. 양준과 자매는 피할 곳이 없었다.
"조심해!"
심혁이 놀라서 외쳤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이 쏟아져 나왔다. 진양원기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며, 양준은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순수한 진양원기는 곧바로 타원 형태의 빛의 장막을 이루었고, 양준 주위의 사방 일 장을 모두 뒤덮었다. 따뜻한 느낌이 전해지자 호교아와 호미아는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곧 모든 한기가 걷혔고, 그녀들은 펼치려던 초식을 거두어들였다.
따다닥-
곧이어 사악한 기운들이 빛의 장막에 부딪혔다. 끓는 기름에 소금을 뿌린 듯이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귀청을 때렸다. 그러나 소리만 클 뿐, 빛의 장막을 뚫지는 못하고 모두 차단되었다.
"와… 개쩐다."
정영은 또 참지 못하고 상스럽게 말했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멍청하게 앞쪽만 바라보았다.
"사악한 기운을 제압하는 양성 원기는 역시 대단하구나. 그런데 진원이 너무 순수한데? 도대체 몇 등급이나 되는 거야?"
도양도 흥분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사악한 기운을 건드리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시도해 보지 못했지만, 무척 괴로울 것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양준의 진양원기가 이 같은 사악한 기운을 막아 낼 수 있다니,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자 그 위력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렇다면 양준은 사령의 공격만 조심하면 아래쪽에서 자유로이 다닐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사악한 기운의 공격을 막아 낸 다음, 호교아와 호미아가 먼저 양준 쪽으로 다가섰다. 양준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곧장 한쪽에 하나씩 자매를 안고서 진양원기를 돌리며 신속하게 도양 일행이 있는 축대로 돌아왔다.
축대에 올라서자, 호교아는 서둘러 그의 품에서 벗어나며 매섭게 그를 흘겨보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네 죄를 따질 거야."
"허허……!"
양준은 헛웃음을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자매가 오자 이쪽은 사기가 크게 진작되었다. 특히 둘은 모두 경국지색인 데다 똑같은 모습을 하고서 나란히 서 있으니 그야말로 눈앞이 환해지는 것만 같았다.
냉산은 몰래 자신과 두 사람을 비교해 보고서는 저도 모르게 탄식하고 말았다. 두 자매는 외모나 기질 면에서 모두 그녀보다 한 수 위인 절세미인이었다.
"반가워."
심혁이 공수하며 인사했다.
"흥!"
호교아는 심혁이 싫었다. 이들과 마주친 적은 없지만, 자매는 소요종 외에 또 다른 무리가 그녀들을 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귀왕곡이었다. 지금 그들을 만나게 되자, 당연히 좋은 낯빛으로 대할 수가 없었다.
호교아가 냉담하게 대하자, 심혁은 난감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교아, 너희들이 우리보다 먼저 왔잖아. 여기 무슨 이상한 낌새 같은 거 없었어? 이곳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지금은 서로 갈등을 빚으면 안 되는 때라, 양준이 급히 호교아에게 물었다.
호교아는 차가운 얼굴로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사령 한 마리와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땅에서 물줄기 같은 사악한 기운이 용솟음쳐 나오는 거야. 그리고 사악한 기운이 나타난 다음부터 사령이 이상해졌어. 우린 무언가 잘못되었다 싶어 도망치려 했지. 그런데 사방에서 사령들이 떼로 몰려오면서 우리를 이곳에 가두었어."
"땅에서 사악한 기운이 솟아올라 왔다고? 어디서?"
심혁이 안색을 바뀌더니 급히 물었다.
호교아도 더는 그를 적대시하지 않고,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쪽. 사나운 기운이 용솟음치는 게 보여? 그곳은 꼭 샘구멍 같아."
사람들은 호교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과연 그곳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래쪽에 퍼져 있는 사악한 기운은 모두 그곳에서 솟아 나오는 것 같았다. 또한 사악한 기운이 많아짐에 따라 아래쪽에 퍼져 있는 기운의 수위도 점점 더 높아졌다.
"아니, 그 정도로 운이 나쁘진 않겠지?"
심혁은 얼굴이 하얗게 바래 있었다.
"저게 뭔지 알아?"
양준은 심혁이 상황을 좀 알고 있는 것 같아 얼른 물었다.
"저건 사령 샘구멍이야!"
멀리서 나이 든 목소리가 들려왔고, 심혁을 대신해 질문에 대답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멀리서 한 무리의 무인들이 허둥지둥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바로 뒤에는 수많은 자색 사령들이 뒤쫓아오고 있었다. 또 한 무리가 사령에게 쫓겨서 날아오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