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3장. 사령 샘구멍
노인 한 명이 젊은이 네 명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노인은 신유 경지 고수였다.
노인의 실력을 감지하자, 모두들 꺼리는 눈치였다. 일반적으로 신유 경지의 무인들은 흉살사동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색 사령이 있는 구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노인은 독수리처럼 네 명의 젊은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는 손에 빛이 반짝이는 비보를 들고서 앞쪽에서 길을 막는 사령들을 물리쳤다. 노인이 공중에서 주위를 훑어보더니 시선을 소요종 일행이 있는 축대에 고정하고 입을 열었다.
"잠깐 자리 좀 비키거라."
여경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감히 반발하지 못하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한쪽으로 물러섰다.
노인은 젊은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축대에 올라서며 여경을 슬쩍 흘겨보았다.
"소요종인가? 괜찮지?"
여경이 아부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이곳도 뭐 넓습니다."
"그래!"
노인은 여경의 태도에 만족한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들과 함께 온 네 명의 젊은이들은 착지한 뒤, 흥미진진한 얼굴로 소요종의 제자들 옆에 있는 요염한 미노들을 훑어보았다. 미노들은 하나같이 야릇한 시선으로 추파를 던졌다. 마치 지금의 위급한 상황이나 옆에 있는 남자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너희들, 경지를 모조리 빼앗기고 싶지 않으면 여인들에게서 신경을 끄거라!”
노인이 덤덤하게 일깨워 주었다.
네 명의 젊은이들은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져서 시선을 돌렸다.
소요종의 미노들은 남자들의 경지 중 일부분을 흡수했다가 소요종 남제자와 운우지정을 나눌 때, 그들에게 흡수한 힘을 전해 주었다. 이렇게 소요종 남제자들의 실력을 키워 주는 것이었다. 소요종의 남제자들도 미노들을 단속하지 않고, 그들이 다른 남자를 꼬셔 힘을 뺏어오도록 지지했다. 그것 말고도 미노들에게는 각종 역할이 있었다. 소요종의 남제자들에게 미노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였다.
노인은 이런 소요종의 수단을 잘 알고 있었기에 후배들이 당할까 걱정되어 일깨워 준 것이었다. 말을 마친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아래쪽을 훑어보았다. 혼탁해 보이는 두 눈은 반짝반짝 빛을 뿜으며 사령 샘구멍이 있는 위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노인이 심혁에게 말했다.
“귀왕곡의 제자, 자네는 사령 샘구멍에 대해 뭔가 아는 눈치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주게.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죽어서도 왜 죽었는지 모를 것이네.”
“네!”
심혁도 양준에게 설명을 해주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사양하지 않았다.
“사령 샘구멍은 샘이 맞아. 두 낭자가 잘못 보지 않았어. 샘에서 나오는 것은 사살샘물인데 이것들은 우리에겐 해롭지만, 사령에겐 아주 좋은 거야. 그들이 이 사살샘물을 흡수하면 더더욱 강해지고 단단해져. 그래서 이것은 그들에겐 아주 큰 유혹인 셈이지. 또 그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이유이기도 하고.”
심혁은 어두운 얼굴로 천천히 설명했다.
“사령 샘구멍이 나타나거나 사살샘물이 솟아 나오면 흉살사동 안의 사령들은 모두 폭주하게 돼. 너희들도 보다시피 그들은 아래쪽의 샘물을 빼앗으려고 서로 죽고 죽이잖아. 당분간은 우리 쪽에 아무런 위험이 없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거나… 일단 이 사령들이 폭주라도 한다면 공격을 받게 될 거야. 운이 나쁘게도 몇 년에 한 번씩 나타날까 말까 한 사령 샘구멍이 하필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다니.”
“뭐? 그럼 어떡해?”
보기종의 조용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어디로 도망칠 건데?”
심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도망칠 데가 없어. 이곳에 서 있는다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겠지만,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더욱 빨리 죽을 거야.”
“흐흐, 녀석, 말 한 번 잘하네.”
노인은 음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같은 고수도 피하지 못하고 이곳으로 왔는데 너희들 같은 새내기가 도망치려고 하다니. 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말을 마친 노인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떤가? 차라리 나와 손을 잡고 힘을 합쳐 길을 트는 건 어떻겠나?”
심혁은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선배님께선 묘책이 있으십니까?”
“묘책 같은 건 없네. 사령을 죽이는 수밖에!”
노인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은 실력이 높지 않지만 인원이 많으니 높은 곳을 지키면 될 거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살아남을 기회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흉살사동에 온 이상, 자네들도 사령을 억제할 수 있는 비보들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겠지?”
“네, 그럼요.”
심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양준과 달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흉살사동에 온 것이었다. 지금까지 비보를 꺼내지 않은 것은 비보를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되네. 이따가 싸우게 된다면 평생 배운 필살기를 마음껏 펼치게. 후훗, 기회가 된다면 나도 반드시 자네들을 도와주겠네.”
노인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매우 자애로워 보였다.
심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공수했다.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는 노인이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사령의 수가 너무 많아 이쪽 사람들이 빨리 죽는다면 노인 쪽도 부담스러워질 테니 양측의 관계는 밀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노인도 관심 어린 당부를 한 것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자네들을 도와줄 수 있네만 조건이 있네!”
노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조건인가요?”
심혁이 물었다.
노인은 뜨거운 시선으로 사령 샘구멍의 위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만약 이번에 살아나갈 수 있다면 난 저 샘구멍에 있는 물건을 가져갈 것이네! 하지만 나와 저걸 두고 다투려 한다면 죽일 것이네!”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것입니다!”
심혁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는 게 좋을 거네!”
노인은 냉소하더니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샘구멍에 뭐가 있는데?”
호기심이 동한 양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노인을 보니 샘구멍에 있는 물건을 매우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분명 좋은 물건일 거야.’
“사령의 본원이지!”
심혁도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특별한 사령의 본원이야. 아주 어마어마한 기운이 담겨 있어.”
“아주 특별한 사령의 본원이라고?”
양준은 마음이 두근거렸다. 일부 사령의 본원에는 신식의 힘을 증가시킬 수 있는 기운과 각종 무공이 있다고 선경라가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상황에 양준은 욕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양측의 축대 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래쪽의 사령샘물은 점점 더 수위가 높아졌고, 먹 같은 샘물에서 반짝이는 사령 본원 몇십 덩어리들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탐욕의 빛이 이글거렸다.
내려가기만 한다면 본원 몇십 덩어리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는 흉살사동에서 여러 날 동안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것과 견줄 만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령이 백 마리나 넘게 죽었다. 하지만 많은 본원들은 이미 사령 샘물에 녹아들어 샘물의 기운으로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매우 욕심이 생겼지만 누구도 축대를 떠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아쉬움을 느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아래쪽에서 많은 사령들이 비명을 질렀다. 자색 몸에서는 빛이 나는 것이 불안정해 보였다. 이내 사방 백 장의 범위는 차가운 기운으로 뒤덮였다. 마치 지옥에 온 것처럼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다들 열심히 살아남아 보게나, 젊은이들. 하하하하!”
노인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끝나자 아래쪽에서 갑자기 사령 열몇 마리가 날아왔다. 그들은 무인들의 기혈에 이끌려 양쪽으로 갈라서 날아왔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면서 양준 일행이 있는 축대로 한꺼번에 6~7마리의 사령들이 날아와 축대를 감쌌다. 사람들은 진작부터 이 순간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준비해 두었던 무공을 펼치며 전투에 나섰다.
자색 사령의 실력은 이미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축대 위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어 움직임은 조금 불편했지만, 수비가 완벽했다.
사령은 덮치자마자 사람들에게 얻어맞고 다시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사령의 색깔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그들이 다시 덮치기 전에 귀왕곡과 보기종, 두 종문의 제자들은 몸에 지니고 다니던 비보를 꺼냈다.
귀왕곡 사람들은 사령을 억제할 수 있는 비보를 두 가지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불 속성을 띤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기 속성을 띤 것이었다.
불길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두 마리의 사령은 그 불길에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곧이어 전류가 흐르자 그들은 더 이상 꼼짝하지 않았다. 두 비보는 모두 지급 상품의 물건이었다. 비록 양준의 진양원기보다 못하지만 상당히 효과가 좋았다. 적어도 사령을 상대할 때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보기종의 도양은 더욱 좋은 비보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바로 천급 비보를 꺼내서 불을 붙인 뒤, 두 마리의 사령을 불길에 감싸고 원기를 운행했다. 사령들은 비명을 지르며 벗어나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불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두 종문의 제자들은 비보를 이용하여 함께 네 마리의 사령을 상대했는데, 공격이 상당히 비범했다.
호씨 가문의 자매는 함께 손을 맞댔다. 그들에게는 사령을 억제할 수 있는 비보가 없었지만, 동기연지신공을 펼치자 두 사람의 실력도 크게 강해졌다. 둘이서 사령 하나를 상대하기에 전혀 버겁지 않았다.
양준은 홀로 한 마리를 상대했다. 그는 진양원기를 폭발시키며 사령을 감싼 뒤, 양액으로 검을 만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사령의 색깔이 급속도로 옅어졌다. 한 번씩 공격할 때마다 사령의 몸은 산산조각 났다.
비록 수라검이라는 비보가 있었지만, 양준은 서로의 속성이 상극인 만큼 양액으로 만든 무기가 사령을 상대하는 데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시도해 보니 정말 그러했다.
전투는 뜨거운 분위기 속에 지속되었다. 쳐들어왔던 사령 여섯 마리는 단 한 마리도 수비선을 돌파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