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5장. 살려주십시오!
“이게…….”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사가 갈리는 위기의 순간에서 갑자기 안전한 보호막이 생긴 것이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사람들은 순간 적응하기 힘들었다.
주변의 사령들은 축대를 맴돌면서 아예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가끔 몇 마리가 공격을 시도하다가 빛의 장막에 부딪히자, 바로 뒤로 물러났다. 한참 침묵을 지킨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놀라면서도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호씨 가문의 자매는 눈으로 빛을 뿜었다. 그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진짜 먹히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대단해…….”
심혁은 존경하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움과 감동이 지나가자 사람들은 그제야 이런 견고하고 단단한 방어막을 만들어 내는 데 양준이 얼마나 많은 진원을 소모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왜 양준은 심장이 빨리 뛰거나 숨이 가빠 보이지 않고 가뿐해 보이지?’
“괴물!”
냉산이 입을 삐죽거렸다.
사람들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장막 한 층 한 층이 양준의 온몸에 내포하고 있는 진원의 결정체였다. 스무 층의 장막은 양준이 경맥을 스무 번이나 비워서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렇게 겹쳐진 방어막이 어찌 단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양준의 진원은 등급이 아주 높고 순수했다. 굳이 계산해 보자면 이 장막은 열 명의 신유 경지 고수가 전력으로 수비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이런 방어력으로 눈앞의 상황을 수비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젊은이, 날 좀 도와주겠나?”
노인은 양준이 이렇게 대단한 수를 펼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씁쓸해졌다. 그는 신유 경지였지만 양준처럼 방어막을 만들 수 없었다.
양준이 있는 축대는 금을 씌운 것처럼 물 샐 틈 없이 견고하여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구경만 해도 아무런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노인이 있는 쪽은 사령이 끊임없이 늘어나면서 점점 버거워졌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노인은 체면을 내려놓고 양준에게 또 한 번 외쳤다. 그 말을 들은 귀왕곡 사람들은 냉소를 지으며 조롱 어린 시선으로 노인을 힐끗 훑어보았다.
보기종의 조용은 안색이 더욱 어두워진 채, 중얼거렸다.
“양심 없는 노친네, 방금 전까지 우리를 해치려고 했으면서 사정을 하다니. 참 뻔뻔스러워!”
방금 전 노인이 호씨 자매에게 사령을 밀어 버렸을 때, 귀왕곡과 보기종 사람들도 그 상황을 보고 분노했지만, 노인의 실력이 강하여 감히 화를 내지 못했었다.
노인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젊은이, 상황이 언제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데 이따가 자네가 나한테 사정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먼저 내 상황을 봐주는 것이 어떠한가? 날 좀 도와주게. 자네가 하는 것을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번뜩이는 눈빛에서 위협의 의미가 다분했다. 도와주지 않는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양준은 냉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은 도와드리기 힘들 것 같네요. 진원을 다 써서 회복하고 난 뒤에야 다시 할 수 있어요!”
그는 말하면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귀왕곡과 보기종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다급히 몸에 지니고 있던 진원을 보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단약을 꺼내 양준에게 건네주었다. 그들이 쉽게 속은 것이 아니라 양준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리고 양준이 이 장막을 만들 때 진원을 많이 쓴 것도 사실이었다.
호교아와 호미아는 서로 마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양준에게 진원을 보충할 수 있는 신기한 액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양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양준 쪽 축대 위를 주시하고 있던 노인도 양준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먼저 회복하고 있게나.”
말을 마친 그는 전력을 다해 전투에 임했다.
축대 위에서 귀왕곡과 보기종 사람들은 흥미진진하게 다른 축대 위의 싸움을 감상하며 낮은 소리로 평가를 했다. 그 때문에 여경 일행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노인은 신유 경지의 고수답게 진원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초식은 평범해 보였으나 사실은 더없이 강렬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 사령 네 마리와 겨루었는데 전혀 열세에 처하지 않았다. 그는 싸우면서도 최대한 후배 네 명을 보호했다. 소요종 사람들은 찬밥 신세처럼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진원은 빠른 속도로 소모되었다.
여경의 창백하던 얼굴은 점점 더 새하얗게 변했다. 몇몇 미노들도 하나같이 땀을 뻘뻘 흘리며 대응했다.
양준 쪽 축대에서는 진양원기의 방어막 밖에서 사령들이 맴돌며 끊임없이 약점을 찾으려고 했지만, 어디에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령들은 그쪽을 포기하고 노인이 있는 축대로 날아갔다.
이에 노인은 포효하며 온몸의 진원을 모두 폭발시켰다. 이어서 각종 비보와 무공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소요종 사람들은 한 무리의 사령들이 몰려오자 괴성을 지르며 피했지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선배님, 선배님!”
여경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살려주십시오!”
소요종은 수적으로 귀왕곡보다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진원이 번잡하여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대응하기 힘들었다. 방어가 뚫리려는 것을 보고 여경은 다급히 노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허허!”
노인은 음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널 구해달라는 것이냐.”
여경은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이 노인이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께서 저희들을 지켜 주신다면 우리 소요종은 반드시 은혜를 갚을 겁니다!”
“들어나 보지!”
노인의 눈빛이 번득거렸다.
“저희가 살아서 나간다면 한 사람마다 선배님께 미노를 한 명씩 넘기겠습니다! 선배님께서도 우리 소요종의 수단에 대해 아실 테니 분명 미노의 역할에 대해서도 아실 겁니다!”
위기의 순간, 여경도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바로 두둑한 조건을 내걸었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눈빛을 빛내더니 입을 벌리고 웃었다.
“당연히 알지. 너희 소요종의 미노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의 진원을 모두 남자에게 바친다지!”
“그렇습니다!”
노인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너희가 네 명이니 내가 미노 네 명의 진원을 흡수한다면 실력이 분명 많이 오르겠군.”
“선배님께서도 아시는군요.”
여경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 노친네는 쓸데없는 말만 하네.’
하지만 그는 감히 드러낼 수 없어 그저 맞장구를 치며 웃을 뿐이었다.
“선배님께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은 냉소를 하며 말했다.
“내가 듣기론 소요종의 남자들은 한 사람당 여러 명의 미노를 둔다고 하던데, 자네 신분도 낮아 보이지 않으니 적어도 4~5명의 미노를 가지고 있겠지?”
여경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제야 그는 이 노인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깨달았다.
노인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세. 난 자네들을 도와줄 수 있네. 대신 미노 여덟 명을 가져야겠네! 자네들이 인당 미노 두 명씩 주면 되네. 이래야 내가 움직일 가치가 있지 않겠나! 어쩌겠나? 허락할지 말지는 자네가 알아서 하게. 하지만… 허허, 목숨을 잃는다면 미노가 많아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지막 말은 사정없이 여경의 아픈 곳을 찔렀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머뭇거리지도 않고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죠!”
“결단이 빨라서 좋구먼. 장차 큰일을 해낼 인물이야!”
노인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초식을 더욱 맹렬하게 펼쳤다. 그러자 소요종 사람들을 공격하던 사령들도 노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고, 그제서야 여경 일행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럴 가치가 있었어.’
여경은 스스로 위로했다. 그러자 쓰렸던 마음이 좀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소요종의 남제자들에게는 미노가 한 명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미노를 양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한꺼번에 두 명씩 미노를 잃은 것은 그들에게도 커다란 손해였다.
여경이 노인과 조건을 얘기하고 있을 때, 소요종의 미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이 일이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약속 지키게. 만약 약속을 어긴다면… 내 손으로 소요종을 없앨 것이네!”
여경은 마음속으로 흠칫 놀랐다.
‘이 노인네는 어디 출신이길래 이렇게 자신하는 거지?’
그는 다급히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사내는 한 번 뱉은 말을 지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래 입을 삐죽거렸다. 여경이 사내라면 세상에 사내가 아닐 사람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