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16화 (316/853)

제 316장. 미노를 헌제하다

양준 일행은 축대에서 싸늘한 시선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도 더는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 없었다. 이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지 못하는 만큼, 막다른 길에 놓인 듯한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노인 쪽 축대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끊임없이 사령들은 죽임을 당했고, 주변에는 많은 사령의 본원들이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거두어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러자 이 사령의 본원들은 천천히 가라앉아 사살샘물에 스며들었다.

이때, 갑자기 노인의 안색이 변하더니 여경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소요종, 어서 자네들의 미노를 헌제(獻祭)하게!”

그 말투는 매우 급박하여 반박할 수 없었다.

“앗…….”

여경은 멍한 얼굴로 놀란 듯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왜 갑자기 노인의 상황이 급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죽기 싫으면 빨리 시키는 대로 해!”

재촉하는 노인의 얼굴에는 살기가 드러났다.

“하지만…….”

여경은 그가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미노를 헌제하기 좋은 시기도 아니었다. 사람이 점점 적어지고 있는데 미노까지 헌제해 버린다면, 소요종 사람들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때문에 그는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일 분의 시간을 주지. 지금 당장 헌제하지 않으면 네놈들부터 죽일 것이다!”

노인은 어두운 얼굴로 최후통첩을 날렸다.

“사형, 어떡하죠?”

소요종의 남제자들은 물끄러미 여경을 바라보며 조급한 표정을 지었다.

“흡수해!”

여경은 화난 표정이었지만, 감히 지체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 노인이 보호해 주어서 목숨과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약 노인이 그들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선다면 그들은 당장 죽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이렇게 미노들을 헌제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경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여경이 명을 내리자 소요종의 남제자들은 빠르게 손을 뻗어 눈앞의 사령을 물리치고, 각자 옆에 있는 미노들을 끌어안았다.

냉산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돌리고 몰래 조용과 호씨 자매를 붙잡고 말했다.

“보지 마!”

“왜?”

조용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냉산은 미노가 헌제당한 뒤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기에 미리 일러 준 것이었다.

심혁도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비분에 찬 표정이 떠올랐다. 다른 귀왕곡 제자들도 고개를 숙이고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들은 소요종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미노들과도 접전했지만, 최후의 순간에 직면한 이 미노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미노들은 몸과 마음을 바쳤지만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하고 도구에 불과한 최후를 맞이하기 때문이었다.

미노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소요종의 남자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키워냈을 뿐이었다.

여인들은 호기심이 동해 냉산의 당부를 무시하고 몰래 상대편을 바라보았다. 세 여인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미노들의 몸에 물보라 같은 것이 일더니 점점 그들의 미모가 빠른 속도로 늙어가면서 아름답던 몸매도 메말라 갔다. 마치 몇십 년의 세월이 한순간에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듯했다. 미노들은 입으로 온몸의 진원과 혈기를 기운으로 전환하여 끊임없이 소요종의 남자들에게 넘겨줬다.

창백하고 기혈이 딸려 보이던 소요종의 남제자들은 다들 수혈이라도 받은 것처럼 순식간에 얼굴에 홍조가 돌고 생기가 넘쳤으며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또 그들의 실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이것이 바로 헌제였다! 이는 소요종의 불전비보였다. 이 초식은 사악하다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소요종의 남제자들은 기운이 넘치는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들의 품 안에 있는 미노들은 생기를 잃은 듯이 축 늘어져 있었다. 생기 넘치던 육신이 순식간에 고목으로 변했다.

조용과 호씨 자매는 저도 모르게 진원을 내뿜으며 노기 어린 시선으로 소요종의 남제자들을 노려보았다. 그녀들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여인인지라 미노들의 죽음에 깊은 동정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헌제가 끝나자 여경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메마른 시신을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러자 시신이 땅에서 구르다가 축대에서 떨어져, 사살샘물 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실력이 크게 증가한 소요종의 남제자들은 진원을 내뿜으며 초식을 펼쳤다. 그들은 방금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하지만 노인을 바라보는 여경의 눈에는 여전히 희미한 분노와 원망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 순간에 미노들을 헌제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가장 위급한 상황에 닥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이를 알아채지 못한 듯, 헤실헤실 웃더니 말했다.

“좋아, 내가 자네는 결단력이 있어서 나중에 큰일을 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자네 사제들이랑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게나. 금방 다녀올 테니!”

“네!”

여경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노인이 뭘 할 생각인지도 묻지 않았다.

노인은 소리를 지르더니 몸을 날려 바로 축대 위로 날아갔다. 그가 날아오를 때, 자색의 사령도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바짝 뒤쫓고 있었다.

“뭘 할 생각인 거지?”

심혁이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노인이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띤 채, 사령을 데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인은 양준 일행이 있는 축대 쪽으로 날아오면서,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그 사령을 공격하여 시선을 집중시키며 조금씩 축대로 이끌고 있었다.

“저 노친네 미친 거 아니야?”

정영이 경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머리를 굴린 결과가 겨우 사령 한 마리를 데리고 오는 거야? 저 사령이 우리를 다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하!”

보기종의 남제자도 웃음을 터뜨렸다.

“노친네가 뭘 잘못 먹었나? 양 형이 만든 이 방어막이 사령들을 대적한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몇 사람은 노인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노인은 그 말을 듣고도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냉소를 머금은 채, 사령을 이끌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냉산의 눈에 한기가 서리더니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말했다.

“다들 조심해. 분명 우리가 모르는 다른 수가 있을 수 있어.”

도양도 고개를 끄덕이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과 사령은 축대 옆까지 다가왔다. 사람들은 점점 경계하며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를 했다.

“너희들에게 선물을 준비했지!”

노인은 대충 거리를 가늠하고는 크게 웃더니 장풍으로 사령을 그들 쪽으로 떠밀었다. 그리고 몸을 날려 허공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이미 소요종 쪽으로 돌아간 뒤였다.

“선배님, 미노를 헌제하라던 이유가 선배님께 이 잠깐의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함이었습니까?”

여경은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다. 그의 말투에도 따지는 듯한 어조가 담겨 있었다.

“맞네!”

노인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 동안… 겨우 사령 한 마리를 보냈단 말입니까?”

여경은 마음속의 울화를 참기 힘들었다. 그는 노인이 왜 그토록 조급하게 그들더러 미노를 헌제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알고 보니 그 이유가 너무도 터무니없이 하찮았다.

“불만인가?”

노인은 차갑게 여경을 힐끗 훑어보았다.

“아닙니다!”

여경은 흠칫 놀라 다급히 분노를 거두었다. 비록 헌제한 뒤, 소요종 남제자들의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지만 신유 경지의 고수 앞에서는 함부로 까불 수 없었다.

“두고 보게. 흥, 이따가 저들이 나한테 도와달라고 빌지 않는다면 내가 성을 갈겠네!”

노인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경은 깜짝 놀랐다. 그는 노인이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이때, 노인이 유인했던 사령이 양준 일행이 있는 축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령은 한 번, 또 한 번 축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계속 장막에 막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뜨거운 진양원기가 조금씩 사령의 사악한 기운을 정화했지만, 그 사령은 다른 사령들과 다르게 물러나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해 본 사령은 더 이상 막무가내로 공격을 펼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오관을 가진 자색 사령은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더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비명소리와 함께 자색의 빛이 갑자기 퍼지면서 축대 위의 모든 사람들을 감쌌다.

덤덤한 얼굴로 사령의 멍청한 모습을 감상하고 있던 그들은, 사령이 이런 수를 쓰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빛이 사람들의 몸을 지나가자 사람들은 신음을 흘렸다. 실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들은 고꾸라지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도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마치 머릿속에서 개미가 물어뜯고 있는 것처럼 참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호씨 자매들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녀들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유독 양준만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이미 신식을 수련하여 신식의 공격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미혼지궁 같은 방어 신혼기가 있어 사령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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