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7장. 혼사령
“신혼기잖아!”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혼사령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혼사령은 사령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겉보기엔 다른 사령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들은 신혼기에 능하여 신유 경지 이하의 무인들이 그들과 마주친다면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도망치거나 죽거나!
지금의 상황으로는 도망칠 방도가 없으니 혼사령과 싸운다고 해도 죽음 뿐이었다.
흉살사동에서 혼사령은 희소한 존재였다. 지금의 상황에서 파악할 수 있다시피 이곳에 모여 있는 몇백 마리의 사령들과 바깥의 더욱 많은 사령들 중에서도 혼사령은 지금 양준 일행을 공격하고 있는 한 마리뿐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도 혼사령을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도 사령 샘구멍이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순간, 사람들의 마음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노인이 사령을 이곳으로 이끌고 온 것은 방금 전, 양준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거절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본 양준의 눈에는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혼사령이 두렵지 않았지만, 축대 위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방금 전 광범위하게 펼쳐진 신혼기에 그들은 이미 크게 영향을 받았다. 만약 그런 공격이 몇 번 더 펼쳐진다면 양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모두 신식이 파괴되어 참혹하게 죽거나 바보가 될 것이다.
방어막 밖의 혼사령이 또 시커먼 입을 쩍 벌리는 것을 보고 심혁이 다급히 소리쳤다.
“신혼 비보 가지고 있는 사람 없어?”
모든 사람들이 도양을 바라보았다.
귀왕곡은 이번에 충분한 준비를 마치고 흉살사동으로 왔지만, 신혼 비보는 신혼기처럼 희소했다. 그리고 신혼 비보는 신혼기를 방어할 수 있어 등급이 높아야만 했다. 귀왕곡 제자들은 아직 그런 비보를 가질 자격이 되지 않았다.
도양은 보기종의 핵심 제자였다. 만약 그마저도 신혼 비보가 없다면 그들에게는 빠져나갈 돌파구가 없었다.
양준은 이 혼사령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도 결국 자신만 지킬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축대에서 광범위한 신식 공격이 펼쳐진다면 그도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도양에게는 정말 신혼 비보가 있었다. 다급한 와중에 그는 원환을 꺼내더니 진원을 주입하고 손가락으로 튕겼다.
윙- 윙- 윙-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혼사령도 신혼기를 다시 펼쳤다. 방금과 같은 자색 빛이 터지면서 사람들을 감쌌다. 하지만 동시에 도양의 손에 있는 원환도 날아가면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파문을 퍼뜨렸다.
모든 사람들이 긴장한 채 숨을 가다듬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원환이 퍼뜨린 파문과 자색 빛이 서로 부딪히자 파문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자색 빛의 색깔도 옅어졌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도양이 꺼낸 신혼 비보는 혼사령의 공격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은 한순간 절망한 표정을 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신혼 비보의 작용 덕분에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고통은 전보다 견딜 만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 지속될 해결책은 아니었다. 신식이 여러 번 손상을 받게 된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미안, 나한테는 신혼 비보가 하나밖에 없어!”
도양은 창백한 얼굴로 혼사령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도 형, 미안하다니. 도 형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번 공격도 견디지 못했을 거야.”
심혁은 진심 어린 표정으로 도양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래.”
정영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고!”
도양의 신혼 비보가 작용을 일으킨 덕분에 사람들은 반 시진 정도 버틸 수 있었다.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싸늘하게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이쪽의 상황이 위태로워진 것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방자하기 그지없었는데 아주 통쾌해 보였다.
웃음소리가 전해지자 모든 사람들은 격분했다. 노인이 심술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양준이 만들어낸 방어막 속에 있는 그들은 매우 안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혼사령을 상대하려니 그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저 망할 노친네가!”
솔직한 성격의 조용은 화를 내며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젊은이!”
노인은 음험하게 웃으면서 축대 위의 사령을 상대하는 한편, 양준에게 말을 건넸다.
“보게나. 지금 자네들 쪽도 위태로운 것 같은데 우리 쪽도 마찬가지라네. 지금이라도 나와 힘을 합치는 게 어떻겠나?”
“어떻게 힘을 합치는데요?”
양준이 덤덤하게 물었다.
“쉽네. 자네가 우리 쪽에 똑같은 방어막을 쳐준다면, 나는 저 혼사령을 없애 주지. 자네들이 저것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신유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네. 하지만 나는 다르지. 나는 신유 경지일 뿐만 아니라 무려 신유 경지 5단계라네.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저 혼사령을 충분히 죽일 수 있지. 어떤가? 이런 협력은 양측 모두에게 좋지 않겠나!”
노인의 말에 다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온갖 심혈을 기울여 혼사령을 이쪽으로 이끌고 온 것은 양준더러 도와달라는 것이 목적이었다. 만약 양준이 정말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그도 지금처럼 힘들게 주변을 방어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들도 방금 전의 양준 일행처럼 축대 위에 앉아서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사살샘물이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끌기만 한다면, 위기를 모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만약 노인이 양준 일행의 실력을 걱정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그들이 있는 축대를 빼앗았을 것이다. 이렇게 번거롭게 수를 쓸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의 계획은 정말 교묘했다.
여경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님, 참 대단하십니다. 저는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방금 전 노인이 자신만만하게 했던 행동에 여경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는데, 지금 보니 노인은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허허, 위급한 상황을 모면할 수단이 없다면 어찌 감히 나다닐 수 있겠나? 다들 잘 배워 두게.”
노인은 음험하게 웃었다. 그의 옆에 있는 네 젊은이들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노인의 행동을 매우 존경하는 듯했다.
귀왕곡과 보기종 사람들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매우 화가 났지만, 당장 어찌할 수단이 없었다.
“젊은이, 생각 좀 해보았나?”
우세를 차지하자 노인은 오히려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양준 쪽 일행들이 죽고 싶지 않은 이상 곧 그에게 고개를 숙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식을 수련하지 않고, 신혼 비보 하나만으로는 혼사령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코웃음을 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때, 여경이 낮은 목소리로 노인에게 말했다.
“선배님, 이따가 저들이 견디지 못하고 선배님께 도움을 청할 때, 조건을 하나 추가해 보시죠?”
노인은 눈썹을 치켜 뜨며 물었다.
“음? 무슨 조건?”
여경은 몰래 호씨 자매가 있는 쪽을 쓱 훑어보더니 음탕한 눈빛을 하며 입술을 할짝거렸다.
“저들에게 저 쌍둥이를 넘기라고 하십시오!”
노인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여경을 슬쩍 훑어보았다. 그는 미노를 길들이는 소요종의 수단에 대해 알고 있었다. 미노들도 등급이 나뉘었는데, 만약 저 쌍둥이를 길들여 미노로 만든다면 소요종의 남제자들에게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호씨 자매들은 원래도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여경은 이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소요종이 이번에 모험을 무릅쓰고 흉살사동에 들어온 것은 호씨 자매를 탐내서기도 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양준 일행을 휘어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양준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다. 만약 과한 요구를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 될 수도 있었다.
“제가 선배님께 미노를 네 명 더 드리겠습니다. 어떤가요?”
여경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생각해 볼 만하지…….”
노인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지. 내가 이쪽의 일을 다 마무리하면 저쪽의 여인들을 모두 데려오겠네! 그럼 나한테 여덟 명의 미노를 더 넘기게. 어떤가?”
“여덟 명은 너무 많습니다. 저 쌍둥이라면 미노 네 명 정도의 가치를 하지만, 다른 두 여인은……. 미노 여섯 명으로 하죠. 더는 무리입니다.”
여경은 크게 손해를 본 것처럼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럼 여섯 명으로 하지. 잊지 말게. 자네는 나한테 미노 열네 명을 빚졌네!”
노인은 껄껄 웃으며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이죠.”
여경도 이번 협상 결과에 만족하는 듯했다. 그는 슬쩍 아부하며 말을 건넸다.
“선배님도 역시 대단하십니다. 보아하니 여색에 현혹되지도 않으시는군요.”
쌍둥이는 말할 것도 없이 경국지색이었고, 귀왕곡의 냉산도 자태가 비범했다. 옆에 있는 씩씩한 소녀도 세 여인보다는 못했지만 다른 매력이 있었다.
노인은 경멸조로 웃더니 오만하게 말했다.
“여색이 다 뭔가? 내가 여인을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여자든 얻지 못하겠는가?”
“맞습니다. 선배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여경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잠깐 새에 그는 노인이 많이 달라 보였다. 또 호씨 자매를 바라보니 의기양양한 미소마저 피어올랐다. 노인과 여경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협상하고 있을 때, 노인의 옆에 있던 네 젊은이들도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노인이 미노 열네 명을 얻은 뒤, 반드시 그들에게 한 사람씩 하사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노가 생긴다면 그들은 더 이상 외롭고 적적하지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