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9장. 또 주화입마를 보다
“저런 뻔뻔한 늙은이를 봤나!”
심혁은 화가 나 소리쳤다.
“양 형, 조심해!”
양준은 어지러워 쓰러질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비록 온신련의 도움이 있었지만, 여러 번 신식 공격을 받은 탓에 몸에도 적지 않게 타격이 갔다. 혼사령을 죽인 뒤, 그는 사령의 본원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검은 책 공간에서 만약영액 한 방울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양준은 본능적으로 온몸의 진원을 돌려 눈앞에 있는 사령의 본원을 쥐었다. 그리고 바로 손바닥으로 흡수했다.
“죽고 싶어?”
노인은 이미 거리낄 것이 없었다. 양준과 틀어질 대로 틀어졌으니 그도 더 이상 배려있는 척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곧바로 양준을 향해 공격을 펼쳤다.
신유 경지 5단계의 고수가 분노하며 내지른 일격은, 전력으로 막는다 해도 양준이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는 겨우 양액 한 방울을 짜내어 방패로 삼을 시간밖에 없었다.
퍽-
양준은 노인의 공격을 맞고 운석처럼 떨어져, 그대로 사살샘물에 빠졌다. 그리고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노인은 허공에서 얼이 빠진 얼굴로 욕설을 퍼붓고는 한숨을 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결국 특수한 사령의 본원을 손에 넣지 못했다.
“양준!”
호미아가 창백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넋이 나간 듯한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축대를 뛰어나와 양준이 떨어진 방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내려가자마자 다른 사람에게 붙잡혔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의 언니가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거 놔…….”
호미아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언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호교아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지만, 두 눈은 서서히 빨개졌다. 동기연지신공을 수련한 뒤로 자매는 점점 마음이 동화되었다. 호교아라고 어찌 동생의 비통한 마음을 느낄 수 없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동생이 죽으려고 뛰어내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축대 위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귀왕곡과 보기종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가 있었다. 그들은 노인이 이토록 비열하고 뻔뻔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잠시 뒤, 냉산이 갑자기 날카롭게 소리쳤다.
“공격해!”
아름다운 그녀의 눈에는 분노와 광기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더니 귀왕인을 내보냈다.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는 귀왕인은 용맹하게 다른 축대를 공격했다.
그녀가 공격하자 귀왕곡의 다른 제자들도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보기종 사람들도 다급히 각자의 비보를 꺼내 들고 일제히 노인과 소요종을 향해 공격을 펼쳤다.
최대한 진양원기의 방어막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의 울분을 표출했다. 상대 축대에는 원래도 사면초가인 상황이었는데 귀왕곡과 보기종 사람들이 맹공격을 펼치자 상황이 더욱 위급해졌다.
여경은 낯빛이 크게 변하더니 당황하여 소리쳤다.
“냉산, 우리 소요종 사람들도 공격할 거야? 소요종과 귀왕곡은 이웃이잖아. 게다가 우리는 그 녀석한테 아무 짓도 안 했단 말이야.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지 마!”
냉산은 싸늘한 표정을 짓더니 여경을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진원을 움직였다.
“무엄하다!”
노인은 버럭 화를 냈다. 그는 자신이 이 젊은이들을 얕잡아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노한 그들이 날리는 초식은 하나같이 날카롭고 강력했다. 한두 개는 그도 상대할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공격하는 데다가 주변에 사령들로 둘러싸이자 노인은 순간 허둥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특히 몇몇 비보의 위력은 아주 강했던 지라 그는 더더욱 낯빛이 어두워졌다.
“너희들, 그만하지 않으면 내가 온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들의 방어막을 망가뜨릴 것이다!”
노인은 성내며 소리쳤다. 신유 경지 5단계의 고수가 벼랑 끝에 몰리지 않은 이상 절대 이런 비굴한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속으로 은근히 후회했다. 방금 전에 특수한 본원을 빼앗지 못한 것은 그렇다 쳐도, 양준을 사지로 내몰지 말았어야 했다.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인데 하물며 이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잠깐, 다들 그만해!”
도양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기쁜 얼굴로 말했다.
“양 형이 죽지 않았어!”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몸에서 솟구치던 진원도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도양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사살샘물에서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있는 흐릿한 사람 형체가 보였다.
역시 양준이었다. 그는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용히 사살샘물에 서 있기까지 했다. 주변에 떨어진 사령의 본원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힘에 흡수당하는 것처럼 양준의 몸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양 형…….”
도양이 절박하게 그를 불렀다.
“흐흐…….”
들끓는 샘물 속에서 양준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의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높아지더니 우렛소리처럼 변했다.
“양 형이… 왜 저러지?
도양은 놀란 얼굴로 긴장한 듯이 아래쪽을 살펴보았다.
양준의 몸속으로 먹처럼 시커먼 빛이 용솟음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검은 구멍처럼 나타날 때마다 모든 빛을 집어삼켰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아래쪽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하나 서 있었다. 오직 시뻘건 두 눈동자만이 사람을 집어삼킬 것 같은 음산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주화입마다!”
노인은 괴성을 질렀다. 그는 양준이 방금 전에 사령의 본원을 많이 삼킨 탓에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사악한 기운에 이성을 빼앗긴 줄 알았다.
이러한 해석도 일리가 있었다. 많은 사령의 본원을 한꺼번에 흡수한다면 신유 경지의 노인이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양준이 수련한 공법과 진원의 속성이 사령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해도 위기를 모면하기는 역부족일 터였다.
그의 말을 듣자, 축대 위에서 안도했던 사람들은 바로 안색이 창백해졌다.
냉산은 눈빛을 빛내며 아래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서 오직 그녀만이 양준이 진양원기와 다른 사악한 기운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에 외지에 있을 때, 그녀와 자맥도 양준이 주화입마한 줄 알았었는데 결국 망신만 당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양준의 몸은 모두 시커먼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다만 이번이 더욱 심각할 뿐이었다.
‘주화입마한 것 맞아?’
냉산은 스스로 물어보았지만 대답을 알 수 없었다.
“미아, 올라가. 난 괜찮아!”
양준의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침착했다. 그 소리를 들은 냉산은 저도 모르게 기쁜 표정을 지었다. 양준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호미아도 멍해졌다. 하지만 호교아에게 이끌려 바로 위로 올라갔다. 자매는 재빨리 방어막 뒤에 숨어 놀란 눈으로 아래쪽을 살폈다. 축대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면을 덮고 있는 사살샘물은 이미 높게 올라와 있었다.
이 샘물은 진짜 액체가 아니었지만, 보기에는 액체와 똑같았다. 끈적한 샘물에는 온갖 사악한 기운이 담겨 있었고, 사령들은 이 샘물에 달려들어 끊임없이 그 속의 기운을 삼켰다. 하지만 무인이 그곳에 빠진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검은 기운에 휩싸인 양준은 사살샘물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는 물속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떨어진 모든 사령의 본원들이 그에게 흡수당했다. 가끔씩 사령 한두 마리와 마주쳤지만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사령들은 그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갔다.
이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축대 위에서 노인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 상태가 이상한데, 내뿜는 기운도 방금 전과 전혀 다르고. 사악하고 잔혹한 기운으로 가득 찼어.’
그는 마치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대마두처럼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며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노인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양준이 아직도 아래에서 사령의 본원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흐흐흐흐…….”
양준은 즐겁게 사살샘물에서 본원을 거두면서도 끊임없이 음산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의기양양함과 흥분이 담겨 있었다.
그는 몸과 마음이 흥분에 잠겼다. 심지어 온몸의 피도 들끓기 시작했다. 방금 전, 몸속으로 흡수한 사령의 본원들은 금신도 즐겁게 만들었다. 양준이 미친 듯이 삼킨 사살샘물의 사악한 기운들은 마침 금신의 입맛에 꼭 맞았던 것이다.
양준의 몸은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해 주변의 사악한 것을 모조리 집어 삼켰다. 양준은 괴롭기는커녕 오히려 즐기는 표정이었다. 그도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금신이 이런 기운을 좋아하니 그도 따지지 않고 마음껏 흡수했다.
한참 흡수하고 난 뒤, 양준은 배부른 느낌을 받았다.
금신이 배가 부른 것이 아니었다. 금신은 밑 빠진 독과 같아 아무리 많은 기운을 흡수해도 포화될 리 없었다. 다만 양준의 지금 경지에서 한계에 이른 것이었다. 이 한계를 돌파하지 못한다면 금신도 더 이상 흡수할 수 없었다. 계속 흡수한다면 양준에게 부담이 갈 것이다. 이 점을 느낀 양준은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