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2장. 신혼기의 위엄
저쪽의 노인도 당황한 눈빛을 보냈다. 비록 그는 사령 샘구멍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눈앞의 이 상황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사살샘물이 곧 사방팔방으로 덮쳐오는 것을 보고, 노인은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엄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죽기 싫으면 날 따르거라!”
노인은 말하면서 강렬한 초식을 사용해 사령들로 둘러싸인 주변에 뚫고 나갈 통로를 만들었다. 그는 진원을 내뿜으며 네 명의 후배들을 데리고 양준 쪽으로 날아갔다. 소요종 사람들도 다급히 그들을 뒤따랐다.
양준은 차가운 얼굴로 실눈을 뜨고 신속하게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한기를 내뿜었다. 노인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잠시 뒤, 이곳 전체가 사살샘물로 가득 찰 것이고, 그때가 되면 양준 무리가 있는 축대 위는 유일한 피난처가 될 것이다. 이십 층의 진양원기로 겹쳐져 만들어진 방어막은 사살샘물의 잠식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노인은 모험을 해보려 했다.
근처까지 날아온 노인은 다급히 움직이지 않고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젊은이, 우리 사이에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이 많았지만, 이 상황에서 나도 자네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겠네. 친구들더러 자리를 좀 내어 달라고 하면 어떻겠나?”
양준은 비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만석입니다.”
노인은 어두운 얼굴로 급히 말했다.
“그래서 자리를 내어 달라지 않나! 사살샘물이 이렇게 이상하게 움직이는데 이따가 어떤 변고가 생길지 어떻게 아나? 나 같은 신유 경지의 고수가 없다면 자네도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나? 자네의 친구들은 실력이 들쭉날쭉한데 실력이 모자란 몇 사람을 버리면 되지 않겠나?”
“선배님…….”
여경은 조급해졌다. 노인의 말을 들으니 그는 소요종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 말을 듣고 화난 얼굴로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의 말은 몇 사람더러 그들 대신 죽으라는 소리였다.
양준은 냉소하며 계속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전 지금도 충분히 편합니다. 그래서 굳이 다른 사람과 편하게 지낼 생각이 없습니다.”
“자네 스스로 자초한 거네.”
노인은 얼굴에 살기를 드러내더니 분노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살샘물의 높이는 점점 높아졌다. 노인은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건 너희들도 가질 생각을 말 거라. 소요종, 나와 함께 저 자들을 내쫓고 이 축대를 차지하자.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노인이 소리쳤다.
“네!”
여경은 기뻐하며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축대 위의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노친네가 궁지에 몰리니 미쳤구먼.’
신유 경지 5단계와 진원 경지 7~8명이 동시에 공격해 온다면 그들도 막아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오직 양준만이 대수롭지 않게 웃고 있었다. 노인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경멸 어린 조소가 담겨 있었다.
쿵-
이때, 용이 축대 위에서부터 노인을 향해 날아갔다. 누군가 먼저 공격을 날린 것이다.
지금은 진양원기로 만들어진 방어막의 보호를 받고 있는 축대가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였다. 누구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데 노인이 안하무인으로 협박하자 그들도 당연히 잠자코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 쪽이 먼저 공격을 날리자, 곧이어 각종 무공과 비보들이 위엄을 부렸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접전으로 축대 위의 사람들은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쪽에서 내보낸 공격은 신유 경지의 고수인 노인에 의해 전부 막혔던 것이다. 사람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신유 경지의 고수가 앞을 막고 있자 그들은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펼치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짧은 순간에 사살샘물은 또 가득 차올랐다. 곧 노인 무리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노인 옆에 있는 네 명의 젊은이와 소요종 사람들도 남은 힘을 모두 짜내어 필사적으로 진원을 운행하며 맹공격을 펼쳤다. 노인은 독수리처럼 양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직감이 이 기괴한 젊은이가 심상치 않다고 말해 주었다. 분명 숨겨진 수단이 있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떠보았겠지만 위기의 순간인 지금, 그럴 여유는 없었다.
노인은 손을 들어 양준에게 일격을 날렸다. 단 일격으로 양준의 목숨을 노리는 듯했다.
양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손가락으로 앞을 찍었다. 그러자 새빨간 방패가 그의 앞을 가렸다.
쿵-
노인의 일격이 양액으로 만들어진 방패에 부딪히자 방패는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방패는 노인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노인이 다시 공격하기 전에 양준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기운은 괴이하고 조용했는데, 노인의 보호를 뚫고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흘러갔다.
그 순간, 노인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신식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그의 등 뒤에서 갑자기 자색의 빛이 폭발했다.
폭발한 빛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 지더니 노인의 후배들과 소요종 사람들을 모두 감쌌다. 소리 소문 없는 공격에 진원 경지 고수들은 갑자기 넋이 나가더니 이내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곧이어 또 한 번 빛이 폭발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으악…….”
여경은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머리를 파고드는 고통에 그는 진원의 운행을 유지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그의 몸은 사살샘물로 떨어졌다. 그러자 ‘파지직’ 소리가 들리더니 여경의 옷과 피부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부식되었다. 결국에는 새하얀 뼈밖에 남지 않았다.
여경 외에도 소요종의 다른 제자들과 노인의 후배들도 똑같은 고통을 받았다. 몇몇은 여경을 뒤따라 떨어졌고, 남은 사람들은 뒤쫓아온 사령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눈 깜짝할 새에 노인의 무리에서 노인밖에 남지 않았다. 그의 모습을 보니 적지 않게 타격을 받은 듯했다.
노인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는 두려움에 찬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혼기!”
양준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이럴 수가!”
노인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겨우 진원 경지 6단계의 무인일 뿐이잖아? 어떻게 신혼기를 펼칠 줄 아는 거지?’
게다가 이 신혼기는 눈에 익었다. 분명 아까 혼사령이 사용한 것이었다. 다만, 공격의 범위를 살짝 조절했을 뿐이었다.
“신혼기가 맞습니다!”
양준이 도발적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본원에서 얻은 무공입니다. 늙은이, 당신 오늘 죽었어!”
“그럴 리 없어!”
노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방금 전의 세 갈래 빛은 그에게 중상을 입히지 못했지만, 신식을 다치게 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는 통증을 느끼며 말했다.
“본원에서 신혼기를 터득했다고 해도 신식을 수련하지 못한 네가 공격할 수 있을 리 없어!”
말을 하던 그는 또 놀란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얻은 본원으로 신식이라도 수련했다는 거야?”:
“그런 셈 치죠.”
양준은 웃음을 터뜨리며 더는 해명하지 않았다.
그는 예전부터 신식을 수련했다. 게다가 양준이 지금 가지고 있는 신식의 힘도 약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손쉽게 신혼기를 세 번이나 펼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유 경지라고 해도 연속 세 번 신혼기를 펼치는 것은 부담이 갔다.
축대 위에서 사람들은 모두 뿌듯하면서도 경악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렇게 위태로운 순간에 양준이 또 한 번 활약을 펼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비록 양준과 알고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양준은 이미 연속으로 놀라운 수단을 보여주었고, 그때마다 기적을 일으켰다.
모든 사람들은 이번 흉살사동에서 양준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진작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명의 은혜를 차치하더라도 양준의 괴이함과 강함을 떠올린 사람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양준과 사이좋게 지낼 것을 결심했다. 또한 절대 양준과 그 어떤 충돌도 생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노인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사살샘물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아끼던 네 명의 후배들은 방금 전, 모두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양준을 더없이 증오했다. 얼굴색이 변한 그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돌리고 떠났다.
“젊은이, 언젠간 네놈의 가죽을 벗기고 말 테니 그때까지 잘 살아 있게!”
양준이 신혼기를 펼칠 수 있다고 해도 노인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인은 아래쪽에서 급속도로 올라오는 사살샘물이 더 두려웠다. 양준이 있는 축대를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한 노인은 밖으로 냅다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도망치려고요? 그럴 수 있을까요?”
양준은 냉소를 지으며 바로 축대 위에서 날아올라 빠른 속도로 노인을 뒤쫓아갔다. 그의 머릿속에 또 새로운 신식의 힘이 생겨났다. 이 힘은 방금 전의 것과 좀 달랐다. 한데 뭉쳐지자 자색의 빛으로 변해 신속하게 노인의 머릿속으로 날아갔다.
똑같이 혼사령의 본원에서 얻은 신혼기였지만 방금 전의 것은 큰 범위에서 펼칠 수 있는 공격이었고, 이번 공격은 집중적으로 대상을 정해 공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노인은 양준에게 이런 수단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방비 상태로 자색의 빛에 적중 당한 그는 몸이 휘청거리더니 비틀거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곧이어 노인의 몸 반쪽이 사살샘물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