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23화 (323/853)

제 323장. 막다른 길

촤라락-

사살샘물에 빠진 노인의 하반신은 기름 가마에 빠진 듯한 소리를 냈다. 사살샘물에 녹아든 각종 사악한 기운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노인의 피부를 빠르게 부식시켰다. 노인은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진원을 움직여 필사적으로 몸속으로 침입하는 사기를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악한 기운은 급속도로 그의 몸속으로 퍼져 나갔다.

노인은 온몸이 찢어질 듯한 느낌을 받으며 전력을 다해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사살샘물 안에서 커다란 흡인력이 작용하며 무수히 많은 손들이 그의 몸을 잡고 안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늪지대에 빠진 것처럼 몸부림을 칠수록 점점 더 빨리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양준은 그 틈을 타서 노인의 머리 위로 날아가 두 손바닥에 힘을 싣고 용맹하게 날렸다. 염양삼첩폭과 신혼기가 동시에 사용되자 만천장인(漫天掌印)이 생성되었다. 만천장인 중에는 자색의 빛도 서려 있었다.

이는 노인을 죽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노인은 신유 경지 5단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위급한 상황이라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는 양준에 의해 다시 한번 사살샘물에 빠졌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며 시커먼 샘물 밑에서 반항하는 노인이 보였다. 노인은 몸부림을 쳤지만 결국 샘물의 사악한 기운과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이 가라앉더니 결국 종적을 감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의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양준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그도 이 사살샘물의 위력이 이토록 강할 줄 몰랐던 것이다. 신유 경지의 고수도 빠지면 벗어날 수 없다니. 금신의 사악한 기운을 움직인다면 샘물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 빠진다면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축대 위에 있는 진양원기로 만들어진 방어막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슬쩍 훑어본 양준은 몸을 날려 제자리로 돌아왔다. 신식의 힘을 여러 번 사용한 그는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양준이 축대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보았다. 신유 경지 5단계의 고수가 그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듯한 눈치였다. 다들 그것이 양준의 능력이 아니라 대부분은 사살샘물의 사악함에 의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흠… 이곳에는 우리밖에 안 남은 것 같군.”

심혁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러게. 다 죽어 버렸어.”

냉산은 맞은편의 텅 빈 축대를 바라보며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귀왕곡은 이번에 소요종의 미움을 샀다. 그녀는 돌아간 뒤, 사부님에게 벌을 받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경 일행이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줄이야. 오히려 그녀가 바라던 결말이었다. 소요종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또 올라온다!”

도양이 낮은 소리로 말하면서 어두운 눈빛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바깥의 사살샘물은 또 한 번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서 금방이라도 축대를 삼킬 것 같았다. 샘물은 빠르게 차올랐다. 어느새 흉살사동 전체는 사살샘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니 축대 위 말고 사방은 이미 샘물로 포위되어 있었다. 먹처럼 검은 샘물은 모든 빛을 삼켜 버렸다. 사람들은 마치 바다 깊은 곳에서 물방울 안에 숨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어막 밖으로 가끔씩 사령들이 샘물 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방금 전 무모하게 축대를 떠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아니면 그들은 안전지대를 벗어나자마자 이 샘물에 잠식되었을 것이다.

치지직-

샘물이 진양원기 방어막에 닿자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서로 상극인 기운이 마주치자 신속하게 상대방의 기운을 소모시켰다.

이 현상에 사람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방어막의 기척을 살폈다. 이런 상황에서 방어막이 깨진다면 양준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두근-

사령 샘구멍에서 전해지는 소리는 점점 더 강렬해지고 점점 더 빈번해졌다. 이 소리를 들은 축대 위의 사람들도 심장 박동이 점차 더 빨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마음을 졸이며 그쪽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주시했다.

팍-

이때, 뭔가 찢어진 듯한 소리가 들렸다.

조용이 아연실색하며 소리쳤다.

“방어막이 한 층 무너진 것 같은데!”

“정말?”

정영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얼마나 지났다고 방어막이 한 층 무너졌다는 말인가. 이 속도로 봤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축대는 위험해질 것이다.

“정말이야. 내가 봤어.”

조용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초조해하며 공포로 얼룩진 그 고통은 사람을 두려움으로 밀어 넣었다.

“이러다 방어막이 다 무너지면 어떡하지?”

정영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재수 없는 소리!”

냉산이 호되게 꾸짖었다.

곧이어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고 물끄러미 양준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가 또다시 기적을 일으키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양준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이런 방어막은 또 만들어낼 수 있어!”

사람들은 일제히 기쁜 표정을 지었다. 심혁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양 형에게 계획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하하, 걱정하지 마.”

방어막 안에 있으면 매우 안전했다. 조금 겁을 먹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도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의미심장하게 양준을 바라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양 형, 몇 층 정도 더 겹칠 수 있어?”

양준은 단전 안의 양액을 살펴본 뒤, 덤덤하게 말했다.

“오십 층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

도양은 숨을 들이쉬더니 괴물을 보듯 양준을 바라보았다.

‘방어막 한 층에 담긴 진원도 이미 엄청난데 오십 층이라면…….’

도양은 양준의 체내에 어떻게 그리도 많은 진원이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또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이 샘물이 언제쯤 사라지냐는 거야. 양 형이 전력을 다 해도 반 시진밖에 버티지 못하잖아. 만약 반 시진 뒤에도 이 샘물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양준도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걱정하는 바였다. 그는 안전하겠지만 호씨 자매도 이곳에 있지 않는가. 그는 그녀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 쌍둥이 자매는 양준이 아무것도 아닐 때부터 그를 잘 대해 주던 이들이었다.

오십 층은 그가 장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숫자였다. 정말 그때가 되면 그는 모든 진원을 쏟아내서라도 진원으로 호씨 자매들을 감싼 채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가 아직도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기 위해서였다. 흉살사동에 온 뒤 귀왕곡과 보기종 사람들과도 즐겁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기적이라고 해도,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친한 사람밖에 챙겨 줄 수 없었다.

순간, 축대 위의 사람들은 수심에 잠겨 우울한 얼굴을 했다. 양준을 몰래 훔쳐본 호미아는 양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을 보고 그에게 다가가 기댔다.

호교아는 동생의 행동을 발견했지만 쓴웃음을 짓고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참, 너 혹시 우리 사부님에 대해서 들은 얘기 없어?”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양준은 아예 눈앞의 위기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호미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나지막하게 종문의 소식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네 사부님?”

호미아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가까운 것을 발견하고 또 바로 시선을 돌렸다.

“능태허 말이야.”

“아.”

호미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모르지. 어느 날 밤에 갑자기 능소각에서 전투가 일어났다는 것만 알아. 아마도 중도의 추씨 가문에서 사람을 데리고 와 트집을 잡은 것 같아. 전투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했어. 아버지는 능 장문인께서 신유 경지 이상에 도달한 것 같다고 하셨어.”

“전투의 결과는 어떻게 됐는데?”

양준이 다급히 물었다.

“비겼을 거야. 능 장문인의 실력이 대단하시고, 또 네 장로들도 협조하셨으니까. 중도의 추씨 가문에서 온 고수들은 전부 철수했다고 해. 하지만 그날 이후로 능 장문인과 장로들은 실종되셨대.”

“그럼 다행이야.”

양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님에게 아무 일도 없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오랫동안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니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너희 능소각 때문에 우리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도 난처해졌어.”

호미아는 양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투는 핀잔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짝 꾸짖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탓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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