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30화 (330/853)

제 330장. 저 분은 누구신지?

호교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여동생과 양준을 데리고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저 분은 누구신지?”

“우리 친구야.”

“낭자들의 친구라면 괜찮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더는 묻지 않고 그들을 들여보내 주었다.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자, 우두머리로 보이던 남자가 진중한 표정으로 지시했다.

“어서 가서 공자님께 호씨 자매가 돌아왔다고 보고드려.”

“네.”

명령을 받은 이는 빠르게 뛰어나갔다.

*양준은 호씨 자매의 뒤를 따라 이동하다가 얼마 안 되어 깊숙한 곳에 들어섰다.

“저기야!”

호미아가 기뻐서 소리치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락 아저씨!”

호교아도 미소를 지으며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그쪽에 있던 이들은 누가 오는 것을 알아채고 모두 이쪽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오육십 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 눈시울을 붉히더니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는 기쁨이 가득 찬 눈빛으로 호씨 자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관지락(管遲樂)은 신유 경지 4단계 고수로 혈전방의 강자였다. 그때 당시 혈전방이 몽무애와 대전을 치를 때, 그도 참여했었다. 하지만 용재천과 달리, 관지락은 혈전방과 호씨 가문에 충성하는 이였다. 더욱이 그는 호씨 자매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터라 자매와도 관계가 두터웠다.

“아가씨들 맞습니까?”

관지락이 주저하며 물었다.

“저희 맞아요.”

호교아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무사하셨군요.”

관지락은 순간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의 주위 사람들도 모두 놀라움과 기쁨이 담긴 눈빛으로 호씨 자매를 바라보았다. 자매는 두세 달 동안 사라졌었다. 그녀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모습은 태방산에서 사람들에게 쫓기는 모습이었다. 모두들 자매들이 이미 마수에 걸려들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두 달 만에 털끝 하나 상한 데 없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친밀한 사이로 호씨 자매가 돌아온 것을 보자 모두 기뻐했다.

그들은 열댓 명밖에 안 되었다. 양준이 한 번 훑어보니 모두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혈전방과 풍우루의 제자들이었다. 그중에는 방자기도 있었다. 남존여비 사상이 극심한 방자기도 이곳에 끌려와 싸우게 된 모양이었다.

두 종문의 제자들은 모두 같은 곳에 와, 강요에 의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서로 가까이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됐습니다. 돌아왔으면 됐어요. 이제 방주께서도 두 발 뻗고 주무시겠네요.”

관지락은 곧 얼굴빛을 바로 하고 흐뭇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양준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 젊은이는 어디서 봤지?”

호씨 자매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이곳에 모인 이들만 양준의 신분을 알면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근처에는 다른 세력의 무인들도 있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양준이 능소각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일을 수습하기가 힘들었다.

방자기는 의미심장하게 양준을 힐끗 보더니 앞으로 다가서며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야릇한 미소를 띠고서 공수하며 말했다.

“풍우루 방자기라고 한다. 내가 알던 옛 친구와 많이 닮아서 그러는데, 이름을 물어도 될까?”

“양준이야.”

양준은 그의 행동이 우스웠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양 형이군. 만나서 반가워. 내 친구랑 얼굴도 닮았는데, 이름도 비슷하구나. 하하! 신기하다, 그치!”

방자기는 옆에 있는 한 사제의 어깨를 탁 쳤다.

“어, 그래…….”

그 사제는 무기력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감출 필요가 있나?’

다른 이들도 빠르게 방자기의 뜻을 알아차리고, 모두 얼굴빛이 이상해졌다. 관지락은 나이가 있는 만큼 양준의 이름을 듣고 곧 상황을 눈치챘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만 그 녀석이었군!’

그들은 서로 알면서도 드러내지 않았다.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이야기를 하던 중, 방자기가 표정이 냉랭해지면서 눈빛을 반짝이더니,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며 말했다.

“향초(向楚)가 왔군.”

방자기는 말하는 한편, 형형한 눈빛으로 호씨 자매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금세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관지락도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양준이 뒤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풍채가 늠름하고 잘 차려 입은 부잣집 공자가 신유 경지 고수와 함께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옷차림이 단정하고 얼굴에는 만면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해 품위 있고 멋있으며 소탈해 보였다. 나이는 스무예닐곱 정도 돼 보였다.

그는 향씨 가문의 공자 향초였다. 향씨 가문은 일등 명문 세가로 향초의 신분과 지위는 물론 낮지 않았다. 백운풍, 동경한 같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 중에서 걸출한 인재였다.

한 달 동안, 양준은 호씨 자매가 얘기하는 가운데 몇 번인가 향초의 이름을 들었다. 그러나 매번 향초를 언급하면서도 두 사람은 깊게 말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 직접 사람을 보고, 다시 그의 눈빛을 보니, 양준은 호씨 자매가 왜 그를 말하기 싫어했는지 알 수 있었다.

호씨 자매뿐만 아니라, 혈전방, 풍우루의 모든 이들이 향초에게 좋은 낯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향초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다가왔다.

향초는 가까이 다가와 멈춰 서더니, 눈에 안도의 빛을 띠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교아, 미아, 멀리서 오느라 수고했어.”

관지락이 눈을 가늘게 뜨자, 향초 뒤에 서 있던 두 신유 경지 무인도 그를 지켜보았다.

호교아는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이, 향 공자. 함부로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지?”

향초는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뭔가 생각난 듯 헛웃음을 지으며 공수했다.

“미안. 너무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실수했어.”

“앞으로 조심해.”

호교아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물론, 다음부터는 절대 안 그럴게. 그나저나 저번 일은 정말 미안해.”

향초는 거듭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호교아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향초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너희가 곤경에 처했을 때 말이야. 내가 직접 구하러 갔지만, 실력이 적들에게 밀려 결국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어. 두 달 동안 죄책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잤지.”

그러더니 곧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도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다고,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그의 진심 어린 미소는 그야말로 구름을 뚫고 나온 밝은 달을 보듯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호씨 자매는 그 미소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향초는 개의치 않고 공수하며 말했다.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얘기는 나중에 하자. 이제 그만 쉬어.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고.”

그는 말을 마치자 미소를 짓고는 멋스럽게 떠나갔다.

양준은 향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 이곳의 사람들이 향초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 양준은 그가 무슨 부잣집 도련님 행세를 하는 줄 알았다.

향씨 가문은 일등 명문 세가로, 이런 큰 세력 출신의 공자가 오만방자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본 향초의 모습은 품위 있고 온화하며 점잖고 소탈하기까지 해 양준이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향초는 호씨 자매에 대한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호교아가 냉담하게 대해도 화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끈덕지게 달라붙지도 않았다. 진정 남자다운 남자라고 할 수 있었다.

양준은 호씨 자매와 이곳 사람들이 왜 그를 좋아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양준도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향초에게 겉보기와는 다른 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향초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방자기가 양준에게 다가가 가볍게 허허 웃으며 말했다.

“양준, 속지 마. 저 자식이 겉보기는 선해 보여도 사실은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어. 이해타산에 밝고 꿍꿍이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지 않으면 이곳을 지휘하지도 못했겠지.”

“알아.”

양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향초를 얕잡아보려는 생각이 없었다.

백운풍처럼 제멋대로 날뛰면서 모든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이 속셈 같은 것은 없어 오히려 아무 위험도 없었다. 향초처럼 겉으로 생글거리는 사람은 좀 더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을 향초가 지휘한다고? 향씨 가문 장로가 계시는데 향초가 왜 이곳을 지휘하는 거야?”

호교아는 이상한 점을 알아채고 의아해하며 방자기에게 물었다.

방자기는 당황해서 헛웃음을 두어 번 짓더니 관지락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은 우선 쉬시죠. 저녁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관지락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알겠어요.”

호교아도 더 캐묻지 않았다. 그걸 알아내는 것보다 더 급한 게 있었다. 그들 자매는 확실히 좀 깨끗이 씻어야 했다. 한 달 동안 양준과 함께 숨어 다니느라 미처 씻을 새가 없어 더 이상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

“양준, 넌 날 따라와.”

방자기가 다정하게 양준을 불렀다.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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