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31화 (331/853)

제 331장. 도발

밤이 되자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밖에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았다. 양준과 방자기는 들짐승을 들고 불길이 일렁이는 모닥불에 굽고 있었다. 기름이 불에 떨어져 파닥파닥 소리를 내는 것 외에, 전체적으로 적막이 흘렀다.

한참 뒤에야 호교아가 물었다.

“아저씨,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여기 있던 고수들이 많이 적어졌네요. 혈전방과 풍우루의 고위층은 다 어디 있어요?”

그녀들이 두세 달 전에 이곳을 떠날 당시에는 신유 경지 고수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와 보니 고수들이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향초의 곁을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이 실력이 좀 높은 것 외에, 다른 신유 경지 무인들은 경지가 그리 높지 않았다. 이곳이 전체 전선에서 그리 중요한 곳은 아니지만, 이렇게 고수의 수가 적은 것은 너무나 위험한 짓이었다. 만약 지금 상대편에서 공격이라도 해온다면, 이곳 사람들은 전멸될 것이다.

관지락이 탄식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한 달 전에 중도 8대 가문이 소환령을 내렸습니다. 창운사지 토벌에 참여한 모든 고수는 중심으로 집결하라고 말입니다. 아마 8대 가문에서 사주와 결전을 치르려는 모양입니다.”

“결전요?”

호교아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관지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양쪽 모두 전문적인 전투 부대가 아니니까 예상보다 싸움이 길어지니 다들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밖에 없겠지요. 아마 양쪽에서 합의를 달성한 듯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대부분의 고수들은 모두 불려갔고, 방주님께서도 지원 나가셨습니다.”

“아버지도 가셨어요?”

호만은 비록 신유 경지 8단계 실력으로 한 종문의 방주였지만, 전체 대한국을 놓고 봤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번 결전에 끌려 나갔다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호씨 자매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풍우루도 마찬가지야. 사부님과 장로들 모두 전장에 나갔어. 산 맞은편에도 아마 고수들은 거의 다 떠났을걸.”

방자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사부는 풍우루의 방주 소약한이었다.

“방주님이 사정해서 부탁하지 않았다면 저도 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관지락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방주께서는 아가씨들께서 언젠가 꼭 돌아와 찾을 거라면서 저를 남겨 두었습니다. 젊은이를 지켜 줄 어른이 필요하고, 아가씨들도 기다려야 한다면서요. 지금 생각해 보면 방주의 판단이 정말 현명했습니다.”

이 말에 방자기가 불만이 폭주해서 이를 갈며 말했다.

“관 선배님이 아니었으면 지금 남아 있는 혈전방과 풍우루의 제자들도 아마 벌써 다 죽었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의 말을 듣고 호교아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렇지 뭐.”

방자기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우리 두 종문이 능소각과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의 모든 이들이 우리를 싫어해. 너희들이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어. 향초가 너희들에게 잘 보여서 점수를 따야 하니까. 그런데 너희들이 실종되자 향초는 더는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대체로 위험한 일은 모두 우리 두 종문의 제자들이 나가야 했어.”

방자기는 차갑고 음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백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열몇 명밖에 안 남았어.”

많은 사제, 사매들의 죽음을 직접 지켜보았던 방자기로서는 마음속 고통이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방자기는 말을 하다 문득 생각났는지 난감한 표정으로 양준을 보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 난 다른 뜻은 없어.”

“알아.”

양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능소각 때문에 혈전방과 풍우루도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능소각이 그들 두 종문을 연루시킨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는 밖의 세력들이 없는 일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사주 출신이 능소각이라 해서, 능소각에 불을 질렀을 뿐만 아니라 덩달아 혈전방과 풍우루마저 화를 당했다. 전혀 이치를 따지지 않는 막무가내 행위였다.

호교아는 관지락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잠겨 물었다.

“그럼 결국 이쪽의 전투가 그리 중요하지 않겠네요?”

관지락이 고개를 슬며시 끄덕였다.

“그렇지요. 빠르면 삼일 내지, 늦어도 보름 사이에 결전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든, 산 맞은편이든 모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어, 아마 더는 싸우지도 않을 겁니다. 저희는 결과만 기다리면 됩니다.”

“그렇군요.”

호교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향씨 가문이 향초에게 이 지역의 지휘권을 맡긴 이유는 향후 그가 가주가 될 것을 대비해 미리 훈련시키는 것인가 봐.”

방자기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런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곳에는 적어도 대여섯 개의 세력이 모여 있었다. 여러 세력이 모여 있다 보면 이런저런 분쟁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향초가 만약 이곳의 일을 잘 처리한다면 앞으로 향씨 가문의 일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향씨 가문은 그를 미래의 후계자로서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자, 호씨 자매는 잠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단지 호만의 안전을 걱정할 뿐이었다.

들짐승이 구워지자 고기 향이 물씬 풍겨 왔다. 양준은 거리낌 없이 한 입 가득 고기를 뜯었고, 호씨 자매 역시 참지 못하고 얌전하게 고기를 베어 먹었다.

그들은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즐거웠다. 특히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곧 종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기뻐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앞장선 이들은 두 남녀로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잘생기고, 여자는 미모가 빼어났다. 둘 다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뒤에는 많은 이들이 따르고 있었다.

이쪽과 약 십 장 정도 떨어졌을 때, 갑자기 남자가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모래가 한가득 날아와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의 머리를 덮쳤다.

“아이고…….”

남자는 과장되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곧 서둘러 몸을 가누었다.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기쁘게 먹고 마시다가 날벼락을 맞은 터였다. 낌새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관지락이 빠르게 장풍을 날렸으나 모든 모래와 흙을 막아 내지는 못했다. 모래와 흙 속에는 뜻밖에도 약간의 진원이 숨겨져 있었다.

정면으로 모래가 덮치는 바람에, 적지 않은 이들은 얼굴과 몸이 화끈거릴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모닥불에 굽고 있던 고기도 모두 더러워졌다.

혈전방과 풍우루 제자들은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화난 얼굴로 찾아온 이들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짐짓 허리를 꼬며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넘어질 뻔했네.”

여자는 깔깔대며 말했다.

“사영(謝榮) 사형, 조심 좀 하지?”

사영이라 불린 남자가 대답했다.

“여부(黎芙) 사매는 모르는구나. 나 지금 원숭이들 보는 데 정신이 팔렸지 뭐야.”

여부라 불린 여인은 입을 가리고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순진무구한 얼굴로 교태를 머금고 말했다.

“사형은 무슨 그런 농담을 해. 이런 늦은 밤에 원숭이가 어디 있어? 왜 난 안 보이지?”

사영이 히히 웃으며 말했다.

“사매가 눈이 안 좋은 모양이군. 이놈들이 사람처럼 고기도 먹고 물도 마시더라고. 참 이상도 하지.”

여부는 깜짝 놀란 척하며 말했다.

“정말? 그런 영리한 원숭이가 있어? 어디 있는데? 나도 좀 보자.”

그녀는 말하는 한편, 모닥불 쪽을 바라보면서 얼굴에 경멸에 찬 미소를 띠었다.

둘이 빗대어 욕하는데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순간 모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그동안 힘들게 지내고 있었다. 창운사지와의 싸움에서 매번 가장 위험한 곳에 배치되었고, 숙영지에서도 수시로 누군가 찾아와 비웃곤 했다. 이곳에는 대여섯 세력이 모여 있었는데, 일등 명문 세가 향씨 가문을 제외하고 모두 이등, 삼등 종문이었다.

이런 세력들은 전투력으로나, 인원으로나 모두 혈전방, 풍우루와 엇비슷했다. 어떤 종문은 그들보다도 못했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이 기분이 좋을 때는 두어 마디 비웃고, 기분이 나쁠 때는 대놓고 호통치고 욕지거리를 했다. 마치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이 그들에게 크게 빚이라도 진 것처럼 굴었다.

호만과 소약한이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고수들이 모두 떠나가고 젊은 세대들만 남게 되자 이런 상황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중에서 뇌광(雷光)과 비홍원(飛虹院) 사람들이 가장 악랄했다.

요 며칠 풍우루와 혈전방 사람들은 한두 번 그들에게 욕을 먹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상자가 너무 많고, 겨우 열몇 명밖에 남지 않은 탓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방자기 일행은 원래 논란의 중심에 있는지라 되도록 번거로운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연이은 인내와 양보로, 뇌광과 비홍원 사람들은 그들을 더없이 만만하게 보았다.

오늘 그들이 바깥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를 먹으며 즐겁게 보내고 있으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아무튼 이곳은 이미 전쟁도 없고, 따로 재미를 찾지 않으면 긴 밤을 어떻게 보내겠는가.

풍우루와 혈전방 제자들의 노기에 찬 눈빛은 사영과 여부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둘은 여전히 담담하고 경멸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들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눈빛도 아주 의미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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