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32화 (332/853)

제 332장. 지금 말로 하자고 했어?

“다들 그냥 앉아 있거라.”

관지락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젊은 제자들은 이를 갈며 주먹을 불끈 쥐면서도 화를 참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분했지만 상대방과 정말 충돌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결국 해를 입는 건 자신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선 싸워서 이길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설령 이긴다 해도 사후에 향씨 가문의 추궁을 받게 될 게 뻔했다. 그때가 되면 두 종문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었다.

방자기는 맨 나중에 자리에 앉았다. 그는 화를 참느라 얼굴이 굳어지고,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마음속에 불만이 아무리 쌓였다 해도, 반드시 참아내야만 했다.

양준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고기 위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는, 평온한 얼굴로 찾아온 이들을 바라보았다.

진원 경지는 몇 없었고, 대다수가 이합 경지 무인으로 실력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양준은 신식 몇 갈래가 이곳을 뒤덮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중 두 갈래의 신식은 경계심과 적의를 담고 있는 것이 아마 사영과 여부 종문의 장로인 듯했다. 그들은 이쪽의 움직임을 감시하면서 관지락이 나설 경우를 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 외에도 좀 더 강한 신식 두 갈래가 있었는데, 이는 향초의 곁을 지키는 두 고수의 신식이었다.

양준은 이 사실을 감지하고는, 소리 없이 웃었다.

이전에는 풍우루와 혈전방 사람들이 참으면, 사영 일행은 더는 도발하지 않고 떠나 갔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이쯤에서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이 모두 도로 자리에 앉은 뒤에도 사영과 여부는 떠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앞으로 두 걸음 더 다가왔다.

여부가 웃는 얼굴로 입을 가린 채 호씨 자매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생들은 무사하네. 창운사지에서 돌아왔다며? 궁금한 게 있어. 창운사지에는 사마가 곳곳에 널려 있는데 너희같이 눈에 띄는 경국지색들이 어떻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거지?”

호교아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불쾌한 표정으로 여부를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여부는 깔깔 웃고서는 애교 띤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난 너희들이 대체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궁금해서 묻는 거야. 말해 줄 수 있다면 말 좀 해 봐. 오는 내내 어떤 사람을 만났고, 무슨 일이 있었고, 도대체 미색을 몇 번 팔아야 사마들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말이야…….”

호교아와 호미아는 그녀의 말에 안색이 흐려졌다.

“미안, 내가 좀 오해를 사게 말했나?”

여부는 가볍게 웃었다. 입으로는 사과했으나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그녀 뒤의 남자들도 그 순간 호씨 자매를 보는 눈빛이 이상해졌다. 두 사람을 보는 눈빛에는 혐오와 경멸이 담겨 있는 동시에, 숨길 수 없는 탐욕과 욕망도 섞여 있었다.

“나도 궁금한데. 여기 있는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어. 둘이 도대체 어떤 수단으로 살아서 돌아왔는지 말이야.”

사영이 음험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교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가슴을 들썩이더니 활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돌아왔는지가 너희랑 무슨 상관인데?”

“당연히 상관있지.”

여부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미색을 팔아 그곳에서 도망친 게 아니라면 그곳 사마들과 결탁했을 가능성밖에 더 있어? 어쩌면 너희들이 창운사지에서 우리에게 보낸 첩자일 수도 있잖아. 만약 너희들이 창운사지의 첩자라면 곁에는 감시자도 붙였을 거고.”

“그래, 일리 있는 말이야. 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서 왔지?”

사영의 낯빛이 차가워지더니 양준에게 시선을 돌린 채,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양준은 음식을 먹고 있다가 그의 말에 저도 모르게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제야 문득 상대방이 자신을 겨냥하고 온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좀 전의 도발은 모두 밑밥을 깐 것이었다.

“말하기 곤란한데.”

양준이 고개를 저으며 냉담하게 말했다.

“말하기 곤란한 거야, 아니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거야?”

여부가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사영은 어두운 얼굴로 호씨 자매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이랑 같이 온 녀석이니, 어디 출신인지는 너희들이 알겠군?”

“몰라. 길에서 만났어.”

호교아는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양준의 출신을 섣불리 말할 수는 없었다. 풍우루와 혈전방은 능소각과 이웃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큰 화를 당했다. 만약 양준이 능소각 출신이라고 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들통날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종문을 지어낼 수도 없었다.

“역시 문제가 있군. 잡아들여.”

사영이 일갈하며 다짜고짜 손을 흔들었다.

“어딜 감히!”

방자기가 분노해서 소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의 온몸에 진원이 솟구쳤다.

방자기의 움직임에 다른 이들도 즉시 따라 일어났다. 하나같이 모두 경계심을 가지고 뇌광과 비홍원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뇌광과 비홍원 사람들도 물러서지 않고 무기를 꺼내들며 몰래 진원을 가동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흐흐, 감히 창운사지의 사람을 두둔하다니. 너희들도 끝이야.”

사영은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곧 다시 웃음기를 거두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잡아들여!”

그의 말이 떨어지자, 이곳을 뒤덮고 있던 신식들이 예리한 공격 수단으로 바뀌어 살의를 띤 채 곧장 양준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관지락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굴빛이 크게 변하며 소리쳤다.

“조심해!”

소리 없는 두 갈래의 공격이 양준의 머릿속을 파고들었지만, 미처 깊이 들어가기도 전에 미혼지궁에 빠져 방향을 잃었다. 양준은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눈빛도 차가워졌다. 그는 원래 이들이 단지 시비를 걸어 문제를 일으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공격해 온 신식의 방향에 따라 자색의 은은한 빛이 밤하늘에서 번쩍하고 사라졌다.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퍼지는 듯하더니 곧이어 감쪽같이 사라지자, 주변에 있던 이들은 모두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고 여겼다.

곧이어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뇌광과 비홍원의 신유 경지 고수들은 얼굴빛이 하얗게 질린 채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그들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 푹 꼬꾸라질 뻔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신혼기의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괴이쩍은 이 신혼기는 사악한 기운과 한기가 뒤섞여 있어 식해가 봉인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행히 그들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즉시 방어하면서 반격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을 것이다.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서로를 마주본 두 사람은, 서로의 눈에서 놀라움과 공포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이때, 양준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신혼기로 신유 경지 고수 둘에게 반격한 뒤,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사영의 앞으로 다가갔다.

사영의 얼굴에 떠올랐던 득의양양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그의 목을 조였다. 뜨거운 진양원기가 밀어닥치자 사영은 목이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가 비명을 지르자마자 양준은 정면에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순간 사영은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아악…….”

여부는 얼굴빛이 급변했다. 그녀는 양준이 신유 경지 두 고수의 공격에도 살아남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양준은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가늘고 긴 목을 움켜잡았다.

두 손에 동시에 힘을 실어 가운데로 모으자, 사영과 여부가 서로 부딪쳤다. 거대한 힘과 속도에 두 사람은 반쪽 몸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서둘러 가동했던 진원도 충격으로 흩어졌다.

둘 다 각자 종문의 최우수 제자였지만, 양준의 손에서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전혀 반항할 힘이 없었다.

퍽- 퍽-

양준이 그대로 두 사람을 바닥에 집어 던지자, 그들은 마치 운석처럼 바닥에 쳐박혔고 지면에는 사람 모양의 구덩이 두 개가 생겼다.

뼈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정신을 차렸다.

뇌광과 비홍원의 제자들은 조심스레 양준을 경계하면서 제각기 초식을 펼치려 했다.

“어디 움직여봐!”

양준은 진원으로 비수를 만들어 사영의 가슴을 겨냥한 채, 한쪽 발로 여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밟고 서 있었다. 그 탓에 여부의 얼굴 반쪽이 완전히 진흙 속에 파묻혔다.

양준의 난폭하고 야만적인 행동을 본 이들은 눈꺼풀이 마구 떨렸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양준의 얼굴은 춤추는 모닥불에 비춰 더없이 음침하고 무시무시했다.

풍우루와 혈전방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간 채로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또 덤빌 거야?”

방자기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분노하며 소리쳤다.

수많은 시선들이 양준에게 집중되었다.

이때, 뇌광 제자들 쪽에서 한 청년이 걸어 나왔다. 그는 안 좋은 얼굴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람은 풀어주고 말로 하자.”

비홍원 쪽에서도 이에 호응해 누군가 소리쳤다.

“그래! 먼저 여부 사저를 풀어줘.”

종문의 기린아이자, 수많은 사형과 사제들이 우러러보고 흠모하던 인물이 지금 누군가의 발에 예쁜 얼굴을 짓밟히고 있었다. 비홍원의 젊은이들은 이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그들 종문에 대한 모독이자 치욕이었다.

양준은 실눈을 뜨고 한기를 내뿜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지금 말로 하자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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