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5장. 이번에도 안 죽나 보자
그 뒤로 열흘 간은 평온했다.
창운사지와의 대치는 계속되었지만, 지금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모두 최종 결전에 신경을 쓰다 보니 누구도 싸우려 하지 않았다.
뇌광과 비홍원 사람들도 그날 밤에 된통 당하고는 더 이상 도발하지 않았다. 덩달아 다른 세력들도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을 보면 피해 다녔다.
양준은 줄곧 폐관 수련했다. 어렵사리 조용한 수련 환경이 주어지자 그는 해이해지지 않고 열심히 수련했다. 보름 간의 수련을 거쳐 진원 경지 6단계 실력이 다져졌고, 진원 경지 7단계로 올라가는 일도 그리 멀지 않게 되었다.
보름 뒤.
호교아와 호미아가 활기차게 양준이 폐관 수련하는 곳으로 찾아왔다.
“무슨 일이야?”
양준이 자매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잠깐 나갔다 와야 해. 향초 말로는 마지막 임무라고 하네. 이번 임무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대.”
두 자매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갈게.”
양준이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호교아는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급히 말렸다.
“넌 안 돼.”
“왜?”
호미아가 대답했다.
“넌 신분이 불분명하잖아. 우리랑 같이 가 봤자 의심만 살 거야.”
호교아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영 때문에 다들 너를 창운사지의 첩자로 보고 있어.”
양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사람이 총 몇 명이야?”
“다 가고 몇몇만 여기 남아 있을 거야. 너도 이곳에 남아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짧으면 반나절이나 하루고, 길면 2~3일 걸릴 거야.”
호교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누나가 널 데리고 집에 가줄게.”
*태방산 어느 산등성이.
백여 명의 무인들이 사방에 흩어져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매복하고 있었다.
향초의 말로는 태방산 다른 한쪽의 첩자가 정확한 정보를 보내왔는데, 오늘 창운사지의 무인들이 마지막 기습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이곳에 매복한 채 상대방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이 소식에 대해 미심쩍어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양쪽 모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는데 왜 마지막 순간에 기습할 생각을 한 걸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쪽에서 무인들이 잠입해 들어오자 그들의 의혹은 곧 풀렸다.
잠입해 온 자들은 많지 않았다. 대략 6~70명 정도로 신유 경지 무인의 수는 극히 적었다. 향초의 적절한 배치와 지휘 하에 창운사지에서 침범해 온 자들은 곧 패배했고, 사상자를 가득 내고서 황급히 도망쳤다. 싸움은 길지 않아, 대략 반나절 동안 진행되었다.
전투가 끝나고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이 다시 모였을 때, 그들은 인파 속에서 많은 무인들이 사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라진 이들은 모두 뇌광과 비홍원 사람들이었다. 순간, 그들은 무언가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향초, 사영과 여부 일행은 어디로 갔지?!”
호교아는 곧바로 향초를 찾아가 어두운 얼굴빛으로 질문했다.
향초는 살짝 당황하다가 의혹에 찬 말투로 되물었다.
“너희와 함께 적을 치러 가지 않았나?”
“아니! 전투를 시작한 뒤로 본 사람이 없어.”
호교아는 얼굴빛이 금세 차가워졌다.
“뭐? 설마… 제길.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해.”
향초 역시 얼굴빛이 바뀌더니, 눈썹을 찡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놀란 눈빛으로 호교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말하는 한편,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급히 움직였다.
호교아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이를 악물었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뇌광과 비홍원 사람들이 사라졌다면, 그들의 목적은 하나밖에 없었다.
사실 전부터 호교아는 이 두 종문이 양준을 찾아갈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이번 임무는 다 같이 움직이는 만큼, 눈앞에서 그들을 감시할 수 있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그들이 사라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가 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오늘의 임무도 아마 사전에 계획한 함정인 것이 분명했다.
호교아와 호미아는 애가 탄 나머지 동기연지신공을 펼쳤고, 그녀들의 속도는 순식간에 몇 배로 빨라져 아름다운 두 그림자는 향초를 지나쳐 별똥별처럼 사라져 버렸다.
향초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의외라는 듯이 호씨 자매를 지켜보았다. 그녀들의 실력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미처 몰랐던 듯했다.
*숙영지에서 양준은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진양결을 돌리며 묵묵히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호씨 자매가 떠난 뒤, 불과 하루가 채 안 되어 양준의 신식은 이상한 움직임을 감지했다.
양준이 눈을 번쩍 뜨자,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그는 입가에 차디찬 미소를 머금고 중얼거렸다.
“드디어 온 건가?”
호교아 일행이 임무 때문에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양준은 누군가 자신을 습격하러 올 것이라는 걸 짐작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 가운데서 향씨 가문의 두 고수를 제외하고, 양준은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향씨 가문의 두 고수는 반드시 어떠한 상황이라도 향초의 곁에서 그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에 나설 가능성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양준은 이런 상황을 짐작했음에도 굳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솨악- 솨악- 솨악-
주위에서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찾아온 이들은 숨길 뜻이 전혀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양준이 있는 곳을 겹겹이 둘러쌌다.
잠시 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해졌지만, 살기와 적의가 사방으로 번져 갔다.
“왔으면 숨지 말고 덤벼!”
양준은 우렁차게 외치고는 벌떡 일어나 사방에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의 그림자가 하늘을 가득 메우더니, 그가 있던 집이 와르르 무너졌다.
순간, 먼지바람이 일며 사방이 자욱해졌다.
곧이어 먼지가 가라앉자 주위의 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뇌광의 사영, 비홍원의 여부가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밤, 둘은 양준에게 된통 당했다. 사영은 지금도 남들에게 이가 다 빠져 버린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어지간해서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두 종문의 사람들은 족히 3~40명은 되었다. 그날 밤 봤던 신유 경지 무인 두 명 외에는 모두 젊은 제자들이었다.
사영은 의기양양해서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안 죽나 두고 보자.”
여부도 연신 냉소하며 말했다.
“이제껏 날 그렇게 대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줄 테다.”
두 사람은 원래 부상 정도가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각자 종문의 고수가 보살피고 향초가 준 단약으로 치료하자 보름만에 거의 다 회복되었다. 이번에 아무 뒷걱정을 할 필요 없이 양준을 혼쭐 낼 수 있다는 말에 두 사람은 두말없이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너희들은 그럴 깜냥이 안 돼. 너무 약하거든.”
양준은 비웃음을 흘렸다. 눈빛에는 짙은 경멸의 기색이 역력했다.
사영과 여부는 동시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저도 모르게 그날 밤, 양준에게 무기력하게 당했던 광경이 떠오르자 자신감이 확 꺾였다.
“어린 놈이 건방지군! 우리 둘이 있는데 오늘 네가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아?”
뇌광의 고수가 콧방귀를 뀌며 앞으로 나서더니 냉랭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가볍게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이것도 향초가 지시한 일인가요? 그날 밤 일도 그렇고.”
두 신유 경지 고수는 냉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양준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한 바가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놈에게 무슨 보상을 받았길래 이렇게 죽기 살기로 날 건드리려 하는 거지?”
뇌광의 고수가 냉소하며 말했다.
“네 놈 따위가 뭐라고? 오늘이 지나면 어차피 죽게 될 놈인데.”
양준은 눈 속의 한기를 감추면서 흉악하게 웃었다.
“날 건드린 대가는 당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양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 자색 빛이 그의 머리에서 튀어나왔다.
신혼기였다.
“흩어져.”
비홍원의 고수가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신식을 펼쳐 양준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그날 밤 그는 이미 한 차례 당한 적이 있었기에 이 초식의 괴이함을 알고서 전력을 다해 방어했다.
뜻밖에도 이번 신혼기는 지난번 것과 달랐다. 자색 빛은 한쪽으로 날아가 폭발하더니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잔물결이 일면서 주위를 한 바퀴 휩쓸었다. 잔물결에 휩쓸린 젊은 제자들은 모두 고통스럽게 머리를 감싸 쥐고 처참하게 비명을 질렀다.
신유 경지 고수 두 명은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들은 양준의 신혼기가 이렇게 변화할 줄 몰랐기에 미처 방어할 수가 없었다. 잠깐 넋을 놓는 순간, 은은한 자색 빛이 연이어 튕겨 나왔다. 고요한 호수에 돌멩이를 연이어 떨어뜨린 듯이 잔물결이 끊임없이 퍼져 나갔다.
잔물결에 휩쓸린 젊은 제자들은 더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나같이 눈에 실핏줄이 터진 채 귓구멍, 콧구멍으로 시뻘건 피를 쏟으며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순식간에 7~8명이 동시에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본인의 실력이 높지 않은 데다가 방어용 신혼 비보도 없었기 때문에 양준의 신혼기를 막아 낼 수가 없었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뇌광과 비홍원의 두 고수는 대노해 동시에 몸을 날리더니 좌우 양쪽에서 양준을 공격했다.
양준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신혼기를 펼쳐 둘을 동시에 공격했다. 그와 동시에 양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면서 백호인과 신우인을 동시에 펼쳤다. 그리고 빠르게 뇌광과 비홍원 제자들 사이로 날아들어 연신 염양삼첩폭을 내찔렀다.
호랑이가 양 무리 속에 뛰어든 것처럼 젊은 제자들은 양준의 맹공격을 대처할 수가 없었다. 실력이 낮은 자는 한 방에 가슴팍이 함몰되어 목숨을 잃었고, 실력이 강한 자라도 초식의 위력을 당해 내지 못하고 중상을 입은 채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오직 사영과 여부만이 협력해 양준의 공격을 막아 냈으나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