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8장. 사실 그대로 말해 봐
만약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방 장로와 서 장로는 손쉽게 자매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매는 향초가 좋아하는 사람이므로 두 장로는 함부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손발이 묶이다 보니 초식을 제대로 펼치지도, 힘을 실을 수도 없었다.
반면 양준은 호씨 자매의 도움으로 열세에 처해 있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자는 마두네.”
방 장로가 엄숙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외쳤다.
호교아가 대꾸했다.
“양준은 제 친구예요.”
“그대들은 어서 돌아가게. 지금 누가 적인지 헷갈려서는 안 될 것이야.”
서 장로가 좋은 말로 충고했다.
“양준을 죽이려면 저희를 먼저 죽이세요.”
호미아는 언니보다 나약한 편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단호하고 힘 있게 말했다.
“그는 비홍원과 뇌광의 사람들을 죽였네. 이미 사마의 길에 빠져 그대들이 알던 이가 아닐세. 이성을 잃은 지금 그대들을 알아보지도 못할 테니, 어서 그의 곁에서 떨어지게.”
방 장로가 초조해하며 말했다.
양준은 그에게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용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검은 교룡이 방 장로에게 달려들었다.
“주제넘기는.”
방 장로는 낮은 목소리로 일갈하며 현광을 날려 교룡의 머리를 명중했다. 거대한 교룡은 살짝 물러섰을 뿐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이에 방 장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놀란 눈빛으로 교룡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모두 그만두시오.”
잔뜩 화가 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 방 장로와 서 장로는 잠깐 망설이다가 양준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호교아와 호미아도 빠르게 양준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앞쪽을 바라보았다.
뇌광과 비홍원의 많은 제자들을 죽였기에 그의 목적은 이미 이룬 상태였다. 지금 교룡이 지키고 있으므로, 신유 경지 고수 두 명이 있다 해도 양준은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정말로 믿는 데가 있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향초가 어두운 표정으로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눈앞의 형국에도 그는 여전히 고개를 쳐들고 성큼성큼 다가오며 명문 세가 공자로서의 교양과 침착함을 고수하고 있었다. 곳곳에 널려 있는 혈흔과 시체 조각들을 바라보는 향초의 눈동자에는 가슴을 에는 듯한 아픔이 그대로 드러났다.
슉- 슉- 슉-
한 무리의 사람들이 향초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연실색해 주위를 살피면서 급히 양준 쪽으로 다가왔다.
관지락은 실눈을 뜨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뇌광과 비홍원의 두 고수의 시체를 보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떨렸다.
장내, 양쪽의 선이 확실하게 그어졌다.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만 양준의 곁에 서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향초 쪽으로 갔다. 방 장로와 서 장로는 온몸의 진원을 몰래 돌리며 양준을 경계하고 있었다.
향초는 양준을 담담하게 힐끗 보더니,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뜻밖이라는 듯이 저도 몰래 눈썹을 치켜세웠다. 다시 공중에 떠 있는 검은 교룡을 보고는 얼굴빛이 바뀌었다. 그는 교룡의 강한 전투력을 감지하고 탐욕과 소유욕이 일었다. 그러나 교룡이 순수한 진원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는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고서 비통함을 드러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방 장로가 얼른 답했다.
“도련님, 저와 서 씨가 도착했을 때, 저 녀석이 주화입마에 빠져서 비홍원의 정명(程銘)에게 마수를 뻗쳤습니다. 저희가 무능해서 결국 정명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정명이 죽었다고?”
향초는 그제야 정말로 의외라는 눈빛을 보였다.
“네.”
방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체를 가리켰다.
“뇌광의 신유 경지 고수는?”
향초가 급히 물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이미 죽었습니다.”
향초는 드디어 얼굴빛이 변했다. 그는 최대한 양준의 전투력을 높이 짐작한다고 했으나, 여전히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신유 경지 2단계 두 명을 죽였다고? 도대체 실력이 어느 정도로 강한 거지?’
“저 젊은이는 이미 주화입마에 빠져서 사람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저희들이 저 자를 죽여 망자들의 원한을 갚게 해주십시오.”
방 장로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향초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저하는 듯했다.
이때, 호교아가 황급히 막아섰다.
“노친네, 누가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거야?”
호교아는 여동생보다 강한 편이지만 그래도 평소에 방 장로를 존중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양준을 죽이려 하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말이 거칠게 나갔다.
방 장로는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호교아의 신분 때문에 그 자리에서 화풀이할 수도 없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지금 저 모습이 주화입마에 빠진 게 아니면 뭔가?”
호교아는 차갑게 웃었다.
“양준이 주화입마에 빠졌다면 우리가 안전하게 그의 곁에 서 있을 수가 있나요? 장님이신가요?”
방 장로와 서 장로는 동시에 당황했다. 한참을 생각했지만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양준의 지금 상태는 그들의 이해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 이렇게 하늘에 치달을 정도로 살기가 짙은데 이성이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양준의 눈동자는 차분하고 침착한 것이 주화입마에 빠진 뒤에 지을 법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리고 양준이 정명을 죽이는 것만 보았지, 정명이 양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아시나요?”
호교아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방 장로는 입을 한참이나 실룩거리다가 겨우 말했다.
“난 내가 본 것만 믿네.”
호교아는 연신 냉소하며 말했다.
“보름 전에 뇌광과 비홍원의 제자들이 양준에게 된통 당했습니다. 오늘 그들이 왜 전선에서 이탈한 뒤, 이곳에 돌아왔는지 당신들도 알 겁니다. 양준이 정말로 그들을 죽였다 해도 그건 자기 보호 차원이에요. 죽은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자초한 거고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나요?”
관지락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뇌광과 비홍원의 제자들은 명령에 따르지 않고 멋대로 이탈한 것도 모자라, 아군을 죽이려 했습니다. 공자께서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 주시지요.”
“향 공자께서 해결해 주십시오.”
방자기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목소리를 높여 한마디 했다.
향초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뇌광과 비홍원의 제자들을 엄벌에 처해 일벌백계해야지요.”
그러더니 잠깐 숨을 고르고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건 모두 당신들의 추측일 뿐이죠. 저는 지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함께 돌아온 당신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니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좋아! 난 이의 없어.”
양준은 허허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이의가 없다니 잘됐군.”
향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지시했다.
“살아남은 이들을 데리고 오세요.”
“예.”
두 고수는 뛰쳐나가더니 얼마 안 있어 살아남은 자들을 모두 데리고 돌아왔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중상을 입고 땅에 쓰러져 있었다. 사영과 여부는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둘은 몰래 양준을 흘끔 보고서는 당황해서 시선을 거두었다. 다른 젊은 제자들은 감히 양준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방금 전의 대결로 그들은 이미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들의 고수들도 양준의 손에서 한 초식에 죽었다. 젊은 제자들이 어디 반항할 능력이 있겠는가?
“사영, 여부!”
향초가 가볍게 불렀다.
“네…….”
“네.”
사영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겨우 대답했고, 여부는 가볍게 답했다.
향초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말했다.
“너희 둘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 있겠지?”
“네… 네.”
“그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를 말해. 만약 조금의 거짓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향초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사영과 여부는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호교아가 냉소하며 말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모양이네.”
향초는 이마를 문지르며 쓴웃음을 지었다.
“교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이상,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호교아는 콧방귀를 뀌었다.
“향 공자, 이번이 마지막 경고야. 다시는 이름 부르지 마.”
“미안, 미안, 실수야.”
향초는 호교아에게 가볍게 공수 인사하며 대꾸한 뒤, 이내 사영과 여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 진술도 하지 않으면 너희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너희를 죽일 것이다.”
사영과 여부는 저도 모르게 흠칫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향초를 바라보았다.
향초가 또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억울한 게 있으면 내가 너희들 대신 풀어줄 수도 있어.”
이 말을 듣는 순간, 풍우루와 혈전방 사람들은 저도 몰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향초의 말은 별문제가 없는 듯했으나, 자세히 헤아려 보면 속뜻이 담겨 있었다. 과연 사영과 여부는 서로 마주 보더니 뒷배를 찾은 듯, 당황하던 심정도 점차 안정되었다.
여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영, 당신이 말해.”
사영은 침을 삼키더니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감히 양준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비통하게 말했다.
“우린 오늘 태방산에서 교전을 벌였죠. 창운사지 놈들을 끝까지 추격해서 전멸시켰어요. 그러고는 주둔지까지 거리가 가까워서 향 공자 쪽으로 집합하지 않고 이곳으로 곧장 돌아왔습니다.”
“거짓말!”
호교아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