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39화 (339/853)

제 339장. 일등 명문 세가의 위엄

“전투를 시작할 때부터 너희들은 보이지도 않았어. 창운사지 놈들을 추격했다는 건 순 거짓말이야! 너희들이 양준을 노리고 곧장 이곳으로 쳐들어온 걸 모를 것 같아!”

“아닙니다. 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못 믿겠으면 저희가 다녀간 서쪽 구역을 조사해 봐도 좋습니다.”

향초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긴 당연히 조사할 거다. 설령 너희들이 적을 추격했다고 해도, 집합지로 돌아오지 않은 책임이 있어. 그 부분은 중징계를 내릴 예정인데 이의 있나?”

“아니요, 없습니다.”

사영과 여부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호씨 자매는 분을 이기지 못해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향초는 일을 합리하게 처리하는 듯하지만 이처럼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결국 뇌광과 비홍원을 감싸는 것이었다.

“계속 말해.”

향초가 눈짓했다.

“우리는 각자의 장로들을 따라 이곳에 돌아온 뒤, 원래는 향 공자가 돌아온 다음 보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웬 살기가 하늘로 솟구치니까 놀라서 나와 봤지요.”

“살기가 하늘로 솟구쳤다고?”

향초는 미간을 찌푸렸다.

“네.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사악한 기운이었습니다. 우리 두 종문의 장로들은 막강한 마두가 나타난 줄 알고 우리를 이끌고 살기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알고 보니… 그 마두가 글쎄…….”

“마두가 뭐?”

“마두가 글쎄 그자가 아니겠습니까.”

“누구?”

향초가 캐물었다.

“호씨 자매가 며칠 전에 데리고 온 그 녀석이었습니다.”

사영은 이를 악물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향초는 고개를 들어 양준을 쳐다보았다. 양준은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양준의 웃는 모습이 무덤덤하고 태연해, 도리어 향초가 깜짝 놀랐다.

“그런 다음에는?”

향초는 곧 시선을 돌리고 물었다.

“그런 다음에… 저 녀석이 우리를 미친 듯이 공격했습니다. 장로들께서는 최선을 다해 막으려 했으나 많은 제자들이 죽었고, 나중에 두 장로께서 목숨으로 저지해서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사영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가슴까지 치면서 통곡하더니 애원했다.

“향 공자께서는 우리 두 종문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죽은 동문들을 위해 복수해 주십시오.”

여부도 때맞춰 눈물을 흘리더니 눈가를 훔치면서 목이 메어 말했다.

“향 공자께서는 꼭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세요. 이 복수를 못 하면 저희들은 사람도 아닙니다.”

두 사람의 말에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이를 갈며 분통해했다.

향초는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말했다.

“우선 일어나.”

“공자께서 저 마두를 죽여서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전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사영과 여부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말했다.

향초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직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지 않았어. 너희들의 말만 믿고 녀석을 처단할 순 없지. 계속 그러고 있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봐. 난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니까 편견 없이 들어줄게.”

호씨 자매는 긴장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난 할 말 없어.”

“양준!”

호교아는 금세 안색이 변하더니 그의 팔을 덥석 움켜잡았다.

향초도 의외라는 듯이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변명도 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향초는 양준의 태연한 표정을 보면서 왠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양준이 변명도 하지 않고, 긴장한 기색도 보이지 않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체 뭘 믿고 기고만장하고 있는 거지?’

“무슨 말이라도 해. 저들이 널 모함하잖아. 어째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호미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양준은 빙그레 웃었다.

“모함하기로 작정한 자들을 상대로 무슨 반박을 해?”

호씨 자매는 어리벙벙해졌다. 그제야 양준이 변명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의 현재 상태는 이곳에 있는 이들이 그를 마두라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모두들 창운사지와 전쟁을 하고 있는데 이곳에 마두가 나타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설령 뇌광과 비홍원 사람들이 먼저 공격했다고 해도 양준에게는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양준은 얼굴빛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웃었다.

“내가 인간인지 마두인지는 그 누구도 판단할 자격이 못 돼.”

향초는 참지 못하고 눈에 힘을 준 채 양준을 노려보았다. 그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지금 나도 판단할 자격이 못 된다는 말인가?”

“그럼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

양준은 냉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무엄하다. 향씨 가문은 일등 명문 세가에, 향 공자께서는 이 구역의 통솔자이시다. 네까짓 놈이 감히 공자님께 자격을 논하는 것이야?”

“일등 명문 세가라? 거 참 대단하군!”

“그래, 오늘 내가 일등 명문 세가의 위엄을 보여주마. 방 장로, 서 장로! 놈을 잡으세요.”

향초가 드디어 화를 내며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예.”

두 장로는 대답과 함께 몸을 날렸다.

“그만둬.”

호씨 자매는 곧 양준의 앞쪽을 막아섰다.

향초는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눈에는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했다.

“너희들도 다치기 싫으면 어서 비켜. 계속 저 녀석 편을 들면 마두와 결탁한 죄목으로 처벌할 거야.”

“그것 참 대단한 죄목이로군! 향 공자, 이것이 향씨 가문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입니까?”

관지락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냉소하며 말했다.

향초는 음침한 낯빛으로 말했다.

“이는 저만의 일 처리 방식입니다. 마두를 죽이지 않으면 모두가 혼란에 빠질 겁니다.”

향초의 말은 힘이 있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뇌광과 비홍원 사람들은 원래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향초의 말에 금세 기운을 차렸다. 사영과 여부는 의기양양함과 증오가 뒤섞인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옳소.”

큰 웃음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모두들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백 장 밖에서 답운구(踏雲駒) 몇 마리가 발을 땅에 대지 않고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람처럼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답운구는 3급 요수로 실력은 강하지 않지만 지구력과 속도가 뛰어났다. 게다가 성격이 온순해 탈것으로도 제격이었다. 일반 답운구는 평균 하루에 몇천 리를 달릴 수 있었고, 그중 좋은 것은 하루에 몇만 리도 달릴 수 있었다. 이 같은 속도는 일부 신유 경지 무인의 속도보다 더 빠르며 진원도 소모하지 않았다. 때문에 명문 세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답운구를 길들여 탈것으로 썼다. 그러나 이런 요수는 양이 많지 않아 한 필에 몇십만 냥이 나갔으며 일등 세력을 제외하고는 기를 수가 없었다. 즉, 답운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실력과 신분을 나타냈다.

달려오고 있는 답운구는 총 세 마리였다. 앞장선 이는 향초와 비슷한 나이로 풍채가 늠름하고 다부져 보였다. 그의 뒤에는 신유 경지 7, 8단계 고수 두 명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백 장의 거리도 삽시간에 도착했다.

“몇 개월 사이에 동생은 성질이 좀 사나워졌네.”

앞장선 청년이 하하 웃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 와서도 답운구에서 내리지 않고 사람들을 굽어보았다. 양준을 훑어볼 때는 표정이 살짝 굳어지고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그를 뒤따르던 두 신유 경지 고수도 역시 양준을 곁눈질하면서 몰래 진원을 돌리며 경계했다.

“저 녀석은 남생(南笙)이라고 해. 역시 일등 명문 세가 중 하나인 남씨 가문 출신이지. 지위는 향초와 같아. 남씨 가문과 향씨 가문은 몇 대를 내려오며 혼약을 맺어서 사이가 돈독해. 저 녀석은 향초보다 훨씬 독단적이고 피곤한 인물이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방자기는 양준이 세상 소식을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얼른 다가와서 설명해 주었다.

“알았어.”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향초가 겉과 속이 다른 음험한 인물이라면, 남생은 시원시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향초의 시퍼렇던 얼굴빛이 남생을 보자 조금은 풀어졌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공수 인사했다.

“형이 여긴 무슨 일이야? 몇백 리 밖 전선에 있는 게 아니었어?”

향씨 가문은 태방산 쪽의 싸움터를 관리하고, 남씨 가문은 몇백 리 밖의 다른 싸움터를 관리하고 있었다.

남생은 빙그레 웃으며 몸을 날려 답운구에서 내려오더니 말했다.

“교전이 끝난 지 이틀이나 지났잖아. 중도 8대 가문이 이제는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어. 근처를 지나다 느낌이 이상해서 와 봤어. 너희들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야?”

그는 말하는 한편, 위아래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향초는 약간 난감한 기색을 띠고 말했다.

“오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와서 그 소식을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만 문제가 생겨서 미처 말하지 못했어.”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결전이 끝난 지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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