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40화 (340/853)

제 340장. 자매가 향초와 혼인하시오

남생이 말하는 것을 무의식중에 듣지 못했다면 그들은 아마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창운사지의 무인들이 결전이 끝난 지 이틀이나 지난 지금, 이쪽 숙영지를 급습할 리가 있겠는가. 어떤 통솔자가 그렇게 실없는 짓을 하겠는가. 그런데 바로 이때, 양준한테 문제가 생겼다. 여기에는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문제라고? 저 녀석 때문이야?”

남생은 미간을 찌푸리고 양준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향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재미있는 녀석이군. 살기가 아주 짙어. 특수한 공법을 수련 중인가 본데?”

남생은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마치 물건을 훑어보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대단해.”

향초는 안색을 바로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생도 살짝 놀랐다. 그는 향초의 표정이 이리 엄숙한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어떻게?”

“신유 경지 2단계 고수 두 명이 죽었어.”

“뭐라고?”

남생도 순간 안색이 변했다. 뒤따라온 신유 경지 고수 두 명도 똑같이 놀란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봐 동생, 농담이지? 저 녀석이 신유 경지 고수 두 명을 죽였다고?”

남생은 한참 당황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캐물었다.

“시체들이 저기 있잖아. 내가 왜 농담을 하겠어. 저기 죽은 자들은 다 저 녀석의 짓이야.”

향초는 연신 쓴웃음을 지었다.

남생의 뒤에 있던 한 신유 경지 고수가 앞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해 주었다.

“도련님, 저 자를 얕보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기혈이 남달리 왕성합니다. 게다가 그의 곁에 있는 검은 교룡도 괴이쩍습니다.”

가문의 신유 경지 고수마저 신중한 태도를 보이자, 남생은 얼른 냉소적인 태도를 거두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내가 저 자와 겨룬다면 승산이 어느 정도로 보여?”

그 고수는 살짝 입을 오므리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주저했다.

“사실대로 말해.”

“전혀 승산이 없습니다.”

고수는 눈을 딱 감고 대답했다.

남생은 한껏 숨을 들이쉬며 다시 양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중도 8대 가문의 젊은 세대들과 겨룬다 해도 그가 승산이 없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남생은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리 위험한 자는 죽여서 후환을 없애야지.”

향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뭘 고민해?”

남생이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향초가 쓴웃음을 지었다.

남생은 그의 안색을 살피고서 다시 고개를 돌려 둘러보았다.

“저 사람들이 저지하는 거야?”

“휴, 통솔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래.”

향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 저지하면 모두 죽여 버려!”

남생이 콧방귀를 뀌었다.

“감히 이 시기에 마두와 한편에 서겠다고? 다 죽여도 뭐라 하는 사람 없을 거야.”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일제히 얼굴빛이 변하며 경계 어린 눈빛으로 남생을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향초의 옆에 있는 신유 경지 고수 두 명만으로도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지금 남생이 또 고수 두 명을 더 데리고 온 이상, 정말로 싸우게 될 경우 이쪽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이렇게 무르게 굴어?”

남생은 고개를 갸웃하고서 향초를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냉소를 머금고 있었다.

향초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죽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그는 말하는 한편, 뜨거운 눈빛으로 호씨 자매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눈에서 철철 흘러넘치는 연정을 전혀 숨기려 하지 않았다. 향씨 가문과 남씨 가문은 몇 대를 내려오며 인척 관계가 있고 향초와 남생도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서 친형제와 다름없었다. 남생은 향초의 눈빛을 보고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 또한 향초의 개성과 수단도 잘 알고 있었다. 곧 무슨 상황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집에 마누라가 몇인데 아직도 만족을 못하지! 보자, 이 쌍둥이 자매는 좀 남다르군. 녀석이 마음이 동할 만하네.’

이렇게 생각하자, 남생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호씨 자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낭자들 죽고 싶으시오, 아니면 살고 싶으시오?”

호교아가 냉소하며 말했다.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 두 분은 이리로 오시오. 향초는 저 녀석만 죽이면 되니까.”

남생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결정을 내렸다.

호씨 자매는 함께 고개를 저으며 꿋꿋하게 양준의 곁에 서 있었다.

남생은 깜짝 놀라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향초 이 자식, 지금 사랑하는 이가 있는 여인들을 좋아하는 거였어? 어쩐지 소란스럽더라니, 결국 이런 거였군.’

남생은 드디어 모든 정황을 파악했다. 결국 문제의 실마리는 여기에 있었다. 그가 얼굴빛을 가다듬고 말했다.

“저 녀석을 살리고 싶은가 보군?”

호씨 자매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쉽네. 저놈의 목숨을 보장해 주는 대신 둘 다 향초와 혼인하시오.”

남생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남생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향초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형! 그러면 안 돼. 내가 두 낭자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마두를 죽이는 일과 엮일 수는 없지.”

남생이 정색하며 말했다.

“왜 안 돼? 여기 일은 네가 결정하고, 내가 또 네 일을 대신 결정할 수 있잖아. 그냥 그렇게 해.”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호씨 자매에게 말했다.

“당연히 두 낭자도 동의하지 않소?”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시원시원한 호교아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남생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눈빛에는 거만함과 경멸을 띤 채 말했다.

“그대들은 이등 종문의 제자들인 듯한데 향초처럼 잘생기고 소탈한 권력가가 좋아한다고 하면, 복인 줄 알아야지. 대체 뭐가 불만이오? 고고한 척은… 조만간 시집갈 처지에 일등 명문 세가 공자한테 시집 안 가면 어디로 갈 건데?”

남생이 듣기 거북한 말을 하자 호씨 자매는 화가 치밀었다.

“결정하시오. 저놈이 죽든지, 아니면 그대들이 향초와 혼인하든지. 십 분의 시간을 주겠소. 제한 시간을 넘기면 기회는 없을 것이오. 이 일을 방해하는 자도 같이 죽일 것이니 참고하시고.”

남생은 유세부리며 호씨 자매에게 전혀 여유를 주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말을 마치고 한쪽에 서서 냉담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시종일관 향초는 한마디만 했을 뿐 조용히 가만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호씨 자매가 아무리 미련하다 해도 곧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애초부터 양준을 잡아들일 생각이었고, 그를 미끼로 우리를 협박할 계획이었군. 맞아?”

호교아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향초를 바라보았다.

향초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교아, 그건 오해야.”

남생은 저도 모르게 눈을 흘겼다.

‘향초 놈은 아직도 신사인 척 연기하는군. 나 같으면 그냥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할 텐데, 물러 터지기는.’

“정말 오해인지, 아닌지는 네가 잘 알겠지.”

호교아가 연신 냉소했다.

혈전방과 풍우루는 지난 몇 달 동안 함께 고난을 같이하면서 원래 백여 명에서 지금은 고작 십여 명만 남게 되었다. 남은 십여 명은 이제 거의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있었다. 남생과 향초가 호씨 자매를 이토록 강요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분이 치밀어 올랐다.

방자기가 냉소하더니 남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 공자, 향 공자. 일등 명문 세가에서는 우리 이등 종문 제자들의 자유와 생사를 멋대로 정합니까?”

“그렇다면 이의라도 있나?”

남생은 비웃음을 흘리며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듯 방자기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더 할 말이 없군요.”

“그럼 입 다무시지.”

남생은 옷소매의 먼지를 가볍게 털어내며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탓하려면 너희들 출신이 안 좋은 것을 탓해. 세상이 왜 종문에 등급을 매기는지 알아? 너희 같은 놈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기 위해서야. 만약 너희들도 일등 세력 출신이면 내가 괴롭히지 못했겠지. 아니야?”

남생은 말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는 자신의 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귀한 출신 때문에 우월감이 저절로 생겨났다. 그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만약 너희들이 일류 세력이었다면 내가 오히려 너희에게 아부했을 거야. 약육강식은 원래부터 이런 이치야. 언젠가 너희들이 날 누를 수 있는 실력과 지위를 얻게 되는 날에는 나도 군말 없이 승복하지.”

“그런 날이 올 겁니다.”

방자기는 음침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남생은 하찮다는 듯이 입을 삐쭉거렸다.

양준은 줄곧 차가운 눈빛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쌍방이 실랑이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마치 이곳의 일이 그와는 하등 상관없다는 듯이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남씨, 향씨 가문의 네 고수는 매 시각마다 그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었다. 모든 젊은이 중에서 오직 양준만이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비록 진원 경지 6단계밖에 안 되지만 혈기가 왕성하고 진원이 괴이해 직접 겨루지 않으면 그의 실력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양준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잘 지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며, 또 겉과 속이 같은 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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