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43화 (343/853)

제 343장. 무슨 꿍꿍이지?

그렇게 생각하자, 누구든 마음이 차분해질 수가 없었다. 중도 양씨 가문의 공자면 얼마나 존귀한 신분인가?

이른바 일등 명문 세가라 불리는 가문들도 중도 8대 가문 앞에서는 이름도 내밀 수 없었다. 하물며 그중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양씨 가문은 지위가 더더욱 높았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양 공자가 양씨 가문의 차기 가주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금 그의 실력이 미미할 때 교분을 쌓아 두면 앞으로 많은 이익이 생길 수 있는데, 누가 밉보이고 싶겠는가?

향초와 남생은 저도 모르게 방자한 태도를 바르게 하고 무거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짧은 시간에 그들의 기세는 한 풀 꺾여 있었다.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놀라움과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양준의 이름을 알고 있기에 당연히 바로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 없어 하나같이 양준의 표정에서 단서를 찾으려고 했다.

양준은 얼굴빛이 담담하고 표정이 태연자약하여 평소와 다른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양준의 이러한 모습에 그들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향초는 쓴웃음을 짓고서 한 바퀴 둘러보더니 공수하며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럼 누가 양 공자입니까?”

그가 이렇게 대놓고 물어본 것은 양준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양준과 양 공자를 연결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향초는 신분을 숨긴 양 공자가 본인 세력에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양준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음산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많은 눈초리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줄곧 그의 머리 위를 맴돌던 칠흑 같은 교룡이 그를 향해 내려왔다. 몸의 길이가 이삼십 장 정도 되는 교룡은 눈 깜짝할 사이, 양준의 체내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이와 동시에, 하늘을 찌르던 살기도 모두 사라지고, 사람들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는 그저 평범한 진원 경지 6단계 무인이었다.

향씨, 남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빛이 흐려졌다.

양준이 지금 이 순간에 마지막 수단을 거두어들이자, 그들은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혈금우응은 여전히 하늘에서 맴돌며 다급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양준은 손가락을 입에 넣고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상공을 선회하던 독수리는 마치 무슨 명령을 받은 듯 날개를 활짝 펴고 몇백 장 높이의 상공에서 급강하했다.

독수리는 단숨에 사람들의 머리 위까지 내려온 뒤 남씨 가문 세 사람을 경계하며 적대시하는 한편, 천천히 양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은혈금우응은 날개를 접고 남씨 가문 세 사람에게 시위하듯 울부짖었다.

남씨, 향씨 가문 사람들은 삽시간에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향초는 얼굴을 살짝 실룩거리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씨 가문에만 있는 은혈금우응이 양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이 사실만으로 이미 양준의 신분은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호씨 자매는 양준을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뇌광의 사영과 비홍원의 여부는 기운이 빠져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 두 종문은 갖은 수를 써서 향초에게 아부하려고 그를 도와 양준을 모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예상 밖으로 그 모든 짓은 다 소탐대실이 되었고, 향초조차 미움을 살까 두려워하는 이와 척을 지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눈이 삐고, 한 치 앞을 못 본 격이었다.

두 종문은 사상자가 많이 생겼고 각각 고수 한 명씩이 죽었다. 원래는 향초가 그들을 대신해 복수해 주고, 내친 김에 향씨 가문에 줄을 대려 했었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은 헛수고가 되었다. 복수는커녕 양씨 가문 공자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괴롭혔으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래서 본인을 건드리면 대가를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한 거였군.’

“양 공자?”

향초는 난감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은 진작 땀에 푹 젖어 있었지만, 눈을 딱 감고 그를 불렀다.

남생은 입을 벌름거렸다. 그의 가슴은 후회와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

그는 그야말로 뜻밖의 화를 당한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이곳을 지나다가 무심코 끼어들었는데 이리 큰 화를 불러일으킬 줄이야.

향초의 물음에 양준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고는, 정신을 집중해 어깨에 내려앉은 은혈금우응의 깃털을 쓰다듬었다.

이 5급 비행 요수는 아주 독특하게 생겼다. 온몸의 깃털은 마치 황금으로 빚은 듯이 금빛 찬란했고, 양씨 가문에서 사육하는 동안 잘 가꾸어 준 덕분에 깃털마다 칼처럼 예리해 단단함과 날카로움이 지급 중품 비보에 못지않았다. 거기에 갈고리 같은 부리와 예리한 발톱까지 더하면, 일반 진원 경지 무인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진원 경지 6, 7단계 이상의 무인은 되어야 금우응을 이길 수 있었다.

양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향초는 불만이 가득해도 감히 내색하지 못했다. 그는 조심스러운 얼굴빛을 하고서, 공수한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생은 얼굴을 붉히며 넉살 좋게 말했다.

“양 공자, 아까는 내가 눈이 삐어서 실례했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오.”

호교아는 저도 모르게 경멸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에 남생이 얼마나 제멋대로 날뛰었는가. 그는 이등 종문의 제자들을 상대로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생사를 멋대로 좌지우지했다. 그러나 지금, 일류 세력의 공자 앞에서는 비굴하기 그지없었다. 앞뒤 태도의 변화가 얼마나 큰지, 마치 사람이 바뀐 듯했다.

호교아의 웃음소리에 남생은 더욱 심기가 언짢아졌다. 그는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낭자께도 실례했소. 사과할게.”

“흥!”

남씨, 향씨 가문의 신유 경지 고수 네 사람도 체면을 구기고 일제히 공수하며 사과했다.

“양 공자께서 넓은 아량으로 방금 전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양준은 가볍게 숨을 내쉬더니 냉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힐끗 보고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요.”

그의 말을 듣고, 향씨, 남씨 가문 사람들의 낯빛이 밝아졌다.

오늘의 일은 양준이 추궁하지 않으면 만사형통이었다. 게다가 양씨 가문 계승 싸움이 시작되면 양준도 양씨 가문 직계 공자로서 당연히 여러 세력을 포섭하고 힘을 키워야만 차기 가주 자리를 노릴 수 있었다. 향씨 가문과 남씨 가문은 모두 일등 명문 세가였다. 양준이 계승 싸움에서 이기려면 이런 막강한 세력은 반드시 포섭해야만 했다. 큰일을 도모하는 자는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실 오늘 일어난 일은 양준도 크게 손해를 보지 않았으니 도량이 넓게 넘어갈 수 있었다.

‘잘하면 오늘 양씨 가문 공자와 교분을 쌓아 싸움 끝에 정이 들었다는 미담을 만들 수도 있겠군.’

머릿속으로 온갖 궁리를 다 끝낸 향초와 남생의 얼굴에는 기쁨과 기대가 서려 있었다. 그들이 한창 기뻐하고 있는데, 양준의 어깨에 앉아 있던 독수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은 듯 처참한 비명소리를 내더니 날개를 퍼덕이며 고공으로 날아올랐다.

“무슨 일이지?”

향초가 급히 물었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양준은 손에 금빛 깃털 두 개를 쥐고 있었다. 금빛을 반짝이는 깃털은 마치 섬세하게 연마한 칼날처럼 길이가 같고 선이 유려한 것이 은혈금우응의 몸에서 뽑아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독수리가 놀라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양준은 깃털을 뽑아, 보지도 않고 곧장 땅에 던져 버렸다.

“양 공자,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오?”

남생은 오리무중에 빠진 채, 미간을 찌푸리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은혈금우응은 멋지고 풍채가 좋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요수였다. 또한 양준을 찾아낸 공신인데, 양준이 독수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괴롭힐 필요는 없지 않는가.

‘무슨 꿍꿍이지?’

남생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향초는 남생보다 영리했다. 그는 양준이 버린 금빛 깃털을 바라보며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인영 두 개가 이쪽으로 빠르게 접근해 왔다.

두 사람은 속도가 매우 빠르고 몸에는 빛이 감돌고 있어 한눈에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몇백 장 밖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으로 다가왔다.

날아온 이는 각각 남녀 한 명이었다. 남자는 체구가 우람하고 표정이 냉혹했다. 얼굴에는 긴 흉터가 마치 지렁이처럼 가로로 험상궂게 콧마루를 지나고 있었다. 온몸의 기세는 칼같이 날카롭고 살기등등한 것이 전투 경험이 많은 듯했다.

여자는 한창 나이로 몸매가 굴곡지고 얼굴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고, 갸름한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으며 표정은 냉담했다. 남녀 모두 신유 경지 고수로, 향씨, 남씨 가문의 고수들보다 훨씬 강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모두들 두 사람을 향씨, 남씨 가문의 네 고수와 비교해 보고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일 대 일로 싸우면 네 사람은 누구도 남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은혈금우응마다 모두 양씨 가문의 고수가 따라다니며, 양씨 가문의 직계 공자를 찾아내면 그를 보필하여 집으로 데려갔다. 눈앞의 두 사람은 은혈금우응을 따라 이곳에 온 것이 틀림없었다.

둘 다 허리춤에 핏빛으로 ‘양(楊)’자를 새긴 옥패를 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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