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44화 (344/853)

제 344장. 인과응보

“양씨 가문 혈시(血侍)군!”

방 장로가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양씨 가문 혈시는 대대로 양씨 가문을 섬기며 양씨 가문에 충성을 다했다. 혈시들은 모두 자질이 뛰어나 어려서부터 양씨 가문에서 대량의 인력, 물자, 재력을 들여 양성했다. 혈시는 출신이 명문 세가의 공자, 낭자처럼 존귀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이룬 업적은 결코 명문 세가의 공자, 낭자들에 뒤지지 않았다.

현재 양씨 가문에 있는 신유 경지 이상의 실력을 지닌 태상장로(太上長老) 한 명도 혈시 신분이었다. 지금 양씨 가문에서는 오히려 그를 귀빈으로 모시며 직계 자제들이 그를 만나면 큰절을 올려야 했다. 양씨 가문 혈시는 곧 강한 전투력을 의미했다. 혈시는 모두 경지를 넘어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같은 경지에서 그들은 거의 무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장 값진 것은 그들의 충성심이었다. 양씨 가문을 위해 그들은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다. 그들을 양성하기 위해 많은 대가를 지불한 양씨 가문에서는 어려서부터 그들에게 양씨 가문 지상주의를 주입시켰다.

만약 좀 전에 사람들이 은혈금우응의 진위에 의구심이 있었다면, 양씨 가문 혈시 두 명이 눈앞에 나타난 지금은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독수리는 확실히 양씨 가문에만 있는 은혈금우응이었고, 양준은 정말 양씨 가문의 직계 공자였다.

"공자는 어디 계시오?"

중년 사내는 매의 눈빛으로 인파를 한 바퀴 훑었다. 그는 향씨, 남씨 가문의 사람들이 있어도 전혀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남자가 물었을 때, 여인 역시 아름다운 눈망울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인파 속에서 양씨 가문 공자를 찾으려 했다. 거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양준의 몸에 고정되었다.

다음 순간, 두 혈시의 눈길이 양준에게 닿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나이와 무공을 판단한 다음 그들의 얼굴빛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

혈시로서 그들은 당연히 양씨 가문의 직계 공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자주 접촉하지는 않았더라도 일면식은 있었다. 두 혈시는 오기 전에 은혈금우응을 이용하면 양씨 공자가 있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직접 보면 금방 양씨 공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양준을 보았을 때 그들은 모두 낯선 느낌이 들었다.

‘양씨 가문 공자가 저리 어리다고? 더구나 본 적 없는 얼굴이야.’

두 혈시가 의아해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양준이 집을 떠날 때는 겨우 열두세 살밖에 안 되었고, 그때 당시는 수련할 수 없는 일반인이었다. 다섯 해 남짓 지난 지금, 양준은 크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여자 쪽 혈시가 좀 더 섬세하게 훑어보더니 한참 뒤에야 놀라서 외쳤다.

"혹시 작은 공자님 되십니까?"

중년 남자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는 저도 모르게 큰 파문이 일었다.

‘작은 공자라? 그때 당시 밖으로 내보낼 때, 가장 어린 공자는 넷째 나리의 공자였지. 하지만 그 집 공자는 선천적으로 수련을 할 수 없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양씨 가문을 떠날 때, 혈시들은 모여서 의논했었다. 작은 공자는 아마 일반일일 가능성이 크므로 누구든 만약 작은 공자를 만나게 되면 배로 경계를 높여 호위해야 한다고 했었다. 양씨 가문은 척을 진 사람이 많으므로, 혹시라도 누군가 이번 기회를 틈타 밖에 흩어져 있는 직계 공자들을 암살하려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이는 분명 일반인이 아니고 진원 경지 6단계 무인이었다. 이 경지는 특별히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절대 약한 실력도 아니었다.

중년 남자와 여인은 서로 마주 보더니 신형을 번개같이 움직여 양준의 일 장 앞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그들은 무형의 힘으로 양준 주위의 모든 이들을 십여 장 밖으로 밀어냈다.

양씨 가문의 압도적인 기세가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가 있었다.

호씨 자매는 뒤로 물러서며 저도 모르게 화가 나서 입을 삐죽거렸다.

“다 내 친구들이니까 살살 다뤄.”

양준은 두 혈시를 덤덤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중년 남자와 여자는 그를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듯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양준의 진정한 신분을 확인하기 전까지, 혈시는 누구에게도 좋은 낯빛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작은 공자가 확실하십니까?"

중년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고 양준을 훑어보더니,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끝을 한 번 튕겨 상처를 내고 손가락을 올렸다. 손가락에서 피 몇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여인은 재빠르게 옥패 하나를 꺼내,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들고 피를 받았다. 선혈은 옥패에 떨어지자마자 사라졌다. 그리고 원래 평범하던 옥패는 피를 흡수하자마자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오직 양씨 가문 직계 혈통만 옥패의 신비한 빛을 활성화할 수 있었다.

중년 남자와 여자는 서로 한 번 마주 보고는 재빨리 땅에 반쯤 무릎을 꿇고 말했다.

"혈시 도봉(屠峰)입니다."

“혈시 당우선(唐雨仙)입니다. 공자님을 가문으로 모시러 왔습니다."

"일어나."

도봉과 당우선은 재빨리 일어났다. 그들이 양준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더는 무덤덤함이 아닌, 존경과 근엄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만약 다른 공자였다면, 진원 경지 6단계 실력에 그들이 이 같은 태도 변화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양준은 달랐다.

양응봉은 그때 당시 부상을 입은 뒤, 완쾌되지 않아 양준도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부족했다. 양씨 가문에 있는 십여 년 동안, 양준은 줄곧 힘없는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진원 6단계 경지에 이르렀다. 통틀어 겨우 오 년밖에 안 되는 시간에 진원 경지 6단계까지 수련한 셈이었다. 이 같은 속도는 도봉과 당우선도 감탄할 따름인데 어찌 그를 얕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양준이 지금 있는 곳은 매우 위험한 창운사지 전선이었다. 양씨 가문 공자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온 배짱과 패기는 일반인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봉과 당우선은 원래 이번에 재미없는 일을 맡은 줄 알았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자마자 양준이 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과연 양씨 가문 직계들은 특출한 인물로서 평범한 눈으로 볼 수가 없었다.

삽시간에 두 혈시는 감탄하기 시작했다. 도봉은 잠깐 양준을 바라보다가 눈길을 거두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굽니까?”

향초가 울며 겨자 먹기로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공수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향씨 가문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향씨 가문이라… 교전은 이틀 전에 끝난 것으로 아는데 이제 더는 볼일이 없지 않습니까? 괜찮다면 양 공자님을 가문으로 모셔 갈까 합니다. 만약 지시할 일이 있다면 저희가 공자님 대신 남아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여기 일은 마무리되어서 저희도 떠나려던 참입니다. 그쪽도 편하게 돌아가십시오.”

향초는 지금 양씨 가문 사람들을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음."

도봉은 향초에게 만족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양준을 데리고 떠나려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눈빛이 착 가라앉더니 온몸으로 살기를 내뿜었다. 당우선도 얼굴빛이 차가워지더니 음침하고 냉랭한 시선으로 땅 위를 바라보았다.

향씨, 남씨 가문 사람들은 무슨 변고가 생겼는지 몰라 모두 넋이 나간 채 벌벌 떨었다.

“흐흐……!”

도봉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더니 얼굴에 난 흉터가 더욱 험상궂어졌다. 그는 냉혹한 말투로 말했다.

“오늘 따라 저 녀석이 왜 놀라서는 내려오지 않고 계속 하늘에만 있나 했더니, 이렇게 된 거였군.”

두 가문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향초는 고개를 들고 경악에 찬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야 그는 양준이 방금 전에 왜 은혈금우응의 깃털 두 개를 뽑아 땅에 던졌는지 알게 되었다. 이는 분명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것이었다.

“우리 가문의 독수리를 다치게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스스로 나오시죠.”

당우선은 얼굴빛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그녀는 눈으로 살기를 뿜어내며 남씨, 향씨 가문 사람들을 매섭게 둘러보고는 냉랭하게 말했다.

도봉 역시 연신 냉소를 흘렸다.

“양씨 가문의 은혈금우응은 하나같이 비할 데 없이 귀중합니다. 오랫동안 세상에 나오지를 않았더니 이제는 감히 잡으려는 사람까지 나오다니. 참 재미있군요.”

“선배님, 저희가 양씨 가문의 독수리인 줄 모르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다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향초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눈은 뒀다가 뭐 합니까? 은혈금우응을 못 알아보다니요.”

도봉이 콧방귀를 뀌었다. 당우선도 서슬이 퍼런 눈빛으로 다그쳤다.

“다치게 한 적이 없다면서 이 깃털은 뭐지요?”

“이건…….”

향초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 양준이 깃털을 뽑아 던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상대방이 믿을지도 문제지만, 그들이 먼저 은혈금우응을 공격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 그 광경을 본 사람이 한둘 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양씨 가문 사람들은 오만방자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들의 독수리를 다치게 했는데 그리 쉽게 넘어갈 수 있겠는가.

향씨, 남씨 가문 사람들이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린 채 분해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을 보자,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속이 후련하기 그지없었다.

‘인과응보라고 언젠가는 되갚음을 당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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