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46화 (346/853)

제 346장. 작은 공자님을 따를 생각이야?

“중도에서 기다릴 테니, 석 달 안에 너희들의 성의를 보여봐. 안 그럼 너희 일등 명문 세가의 위엄을 모조리 짓밟아 주마.”

양준이 차갑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서 씩 웃었다.

“너희들 목숨은 잠시 남겨 두지.”

향초는 낯빛이 금세 어두워지며, 씁쓸함이 입안 가득 번졌다. 남생은 화가 나서 손의 상처를 감싸 쥔 채, 뚫어지게 양준을 노려보았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향초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맙네. 그럼 이만 가보지요.”

그러고는 큰 소리로 호령해 사람들을 이끌고 떠났다.

“답운구 세 마리는 내게 넘겨.”

양준은 남씨 가문에서 타고 온 요수 세 마리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남생은 이미 말에 올라탔다가 양준의 말에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옆에 있던 장로 두 명이 그를 부축해 서둘러 떠나갔다.

당우선은 입을 오므리고 재미있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양준이 어린애처럼 조금 득세하자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입을 벌려 말하려는데 도봉이 그녀에게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공자님, 저희는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도봉은 생김새가 거칠지만 마음은 섬세하여 양준이 친구들과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당우선과 함께 먼저 자리를 떴다.

“그래.”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장내에는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그제야 양준은 그들이 모두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지 않은 이들의 눈빛 속에는 경외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나마 호씨 자매와 방자기는 그런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지 않았기에 양준은 안도할 수 있었다. 심지어 호교아의 눈빛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나한테 묻고 싶은 거 없어?”

양준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호씨 자매를 바라보았다.

호미아는 입술을 실룩이며 무언가 물으려다 끝내 말하지 않았다. 호교아는 뚱한 표정을 짓더니, 차갑게 말했다.

“없거든.”

“아, 정말로 없어?”

양준은 놀라서 캐물었다.

“글쎄 없다니까. 알 거 다 알았는데, 뭘 물어보라는 거야? 우리도 가자.”

호교아는 그를 한번 사납게 흘겨보더니 여동생의 손을 잡고 가 버렸다.

"어……!"

호미아는 양준에게 미안한 듯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재빨리 언니를 따라갔다. 관지락은 양준에게 공수하더니 역시 헛웃음을 지으며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떠나갔다.

방자기는 오히려 남아서 궁금한 듯이 물었다.

“양 형, 계승 싸움은 재미있어?”

“나도 모르지. 아직 참여해 본 적이 없으니까.”

“참여할 생각은 있고?”

방자기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으면 필수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그렇구나. 그럼 언제 중도에 한 번 갈게.”

방자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양준도 빙그레 웃었다.

양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혈전방과 풍우루 제자들이 천천히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 가운데서 두 여인은 서로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수시로 뒤돌아보았다.

도봉과 당우선이 소리 없이 양준의 곁에 나타나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폐관 수련을 해야겠어. 잠시 기다리도록 해.”

양준은 담담하게 지시하고는 숙영지에 가서 그런 대로 넓은 집을 찾아 들어갔다.

“네.”

당우선이 당황해서 대답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녀는 미간을 약간 찡그리더니 말했다.

“폐관 수련? 공자님께서 경지를 돌파하려는 건가?”

“그런 거 같아. 진원이 불안정해 보이는 것으로 볼 때, 경지를 한 단계 뛰어넘을 조짐이 보여.”

도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우선의 짐작을 긍정했다.

“보아하니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공자님께서 전력을 다할 정도로 큰 싸움을 겪으신 모양이야.”

그런 원인이 없었다면, 아무 조짐도 없이 경지를 돌파할 리가 없었다. 도봉은 희미하게 웃으며 하늘의 금우응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가 보기에 공자님께서 너무 여리신 것 같지?”

당우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봉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리시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도봉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양씨 가문의 사람들은 어린아이라도 함부로 깔봐선 안 돼. 너는 몇 년을 있었는데 아직도 그리 순진한 거야. 공자님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인물이 아니야.”

“왜 그렇게 얘기하는데?”

당우선은 흥미를 느꼈다.

“너도 봐서 알겠지만, 공자님은 향씨, 남씨 두 가문과 원수지간이 되었어.”

당우선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장님도 아니고 당연히 봤지. 게다가 원한이 그리 가벼워 보이지 않던데.”

“넌 거기서 공자님이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

“당연히 죽였어야지. 아니면 동맹을 맺던가. 계승 싸움에서는 이런 아군들이 필요하잖아. 그런데 공자님은 상대방에게 해를 입힌 것으로도 모자라, 살려서 돌려보내기까지 했어. 괜히 두 가문과 척만 진 셈이지.”

당우선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래서 네가 순진하다는 거야. 그 두 젊은이는 죽여서는 안 되는 인물이야. 향씨, 남씨 가문 차기 가주로 내정된 자들이니까. 만약 죽였다면 공자님도 골치 아파지지. 공자님께는 아직 그렇게 큰일을 덮어줄 권세가 없어. 게다가 신유 경지 고수 넷 앞에서 그들의 공자를 죽일 실력도 아직 안 되고.”

도봉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포섭해야지.”

당우선은 입을 삐쭉거렸다.

“척을 졌으면 졌지, 포섭은 무슨? 설령 포섭했다고 해도 두 가문에서 딴마음을 품었을 우려도 있는 거지. 그러니 기왕 척진 이상, 챙길 이득은 다 챙겨야 하는 거고. 그리고 한번 콱 꺾어 놔서 딴마음 품을 생각을 못 하게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야.”

도봉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 공자님은 그러실 능력도, 실력도 없으시잖아.”

“음. 확실히 공자님은 어리시니까 그런 방법은 안 되겠지. 그런데 향씨, 남씨 가문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기로 한 것 같아. 아니면 그렇게 강압적으로 나오지 않았을 거야. 나는 계승 싸움에서 공자님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궁금해졌다.”

당우선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공자님한테 왜 이리 관심을 갖는 건데?”

도봉이 허허 웃으면서 손을 내밀자 땅 위의 금빛 찬란한 깃털 두 개가 손에 잡혔다. 그중 하나를 당우선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 깃털을 봐. 공격받아서 떨어진 게 아니야.”

당우선은 집중해서 보다가 저도 모르게 경악을 금치 못했다.

“뽑힌 거잖아? 대체 누가?”

“누구겠어?”

당우선은 놀라서 양준이 폐관 수련하는 곳을 힐끗 보더니 외쳤다.

“이렇게 음험하다고? 우리를 이용했다는 말이잖아.”

그녀는 말을 마친 뒤 황당하다는 듯이 도봉을 보며 말했다.

“일찌감치 속셈을 파악했으면서 왜 순순히 공자님의 의도대로 따른 거야?”

“어찌 되었든 양씨 가문의 공자님이잖아. 그래서 내가 그 자리에서 그분의 속셈을 파헤치기라도 해야 했다는 거냐?”

도봉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망할 놈, 음흉하기 짝이 없네.”

당우선은 몰래 이를 악물었다.

얼떨결에 남에게 이용당하다니, 당우선은 납득되지 않았다. 신유 경지 고수로서 이런 얄팍한 수단조차 간파하지 못했으니 정말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도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번 계승 싸움에서 혈시들의 참여 여부가 확실치는 않지만, 만약 참여하게 된다면 우리는 실력 있고 믿을 만한 공자님을 섬겨야 한다. 줄을 잘못 서면 심각한 결과가 따를 테니까.”

“작은 공자님을 따를 생각이야?”

당우선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직 거기까지 생각 안 했어. 이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럭저럭이야. 공자님들을 모시고 돌아가는 길에 그분들도 우리를 복속시켜야 하지만, 우리도 그분들을 섬길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예의 주시해야 해. 작은 공자님도 마찬가지로 가는 길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잘 봐야겠지. 이 또한 양씨 가문의 암묵적인 규칙이니까.”

“알겠어. 그럼 두 번 이용당할 일 없게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네.”

당우선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그레 웃더니 입술을 가볍게 오므리며 말했다.

*반나절 뒤, 양준이 기운 넘치는 얼굴로 나왔다.

도봉과 당우선은 다급히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자세히 훑어보니 양준은 이미 경지를 돌파하여 진원 경지 7단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두 혈시는 몰래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큰 전투 후에 경지를 신속하게 돌파한 것을 보니 공자의 자질은 꽤 괜찮은 것 같았다. 다만 이상한 것은 양씨 가문에 십몇 년 있을 동안에는 일반인에 불과하던 그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떻게 지금과 같은 성과를 이룩했는지였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도봉과 당우선은 양준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뭔가를 기다리는 듯 침묵을 지켰다.

“양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겼나? 이번엔 왜 이렇게 우리를 빨리 소집하지?”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도봉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주님께서 다치셨습니다. 창운사지의 고수들과 결전을 벌이시다가 가주님께서 선두에서 지휘하던 도중 음영귀왕과 멸절독왕의 합동 공격으로 독기(毒氣)와 귀기(鬼氣)가 동시에 몸에 침입하였습니다. 제때에 치료를 받으셔서 목숨은 건지셨지만, 가문의 장로들께서는 상황이 좋지 않으니 최대한 차기 가주 후보를 빨리 확정 지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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