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7장. 취옹의 뜻
“가주께서 다치셨다고?”
양준은 깜짝 놀랐다.
양씨 가문의 현재 가주는 양준의 큰아버지 양응호(楊應豪)였다.
‘부상을 크게 당하신 게 분명해. 그렇지 않으면 계승 싸움을 벌이려고 이렇게 급히 양씨 가문 직계 자제들을 불러들이실 리 없어.’
“알겠어!”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에 있는 사람들과 가문의 일에 대해 양준은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큰아버지와 삼촌들은 몇 번 본 적도 없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양준은 양씨 가문의 사람들에 대한 정이 깊지 않았다. 다른 양씨 가문의 자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세대의 직계 공자들은 밖에서 십 년이나 수련을 거친 다음 가문으로 돌아갔다. 그래서인지 계승 싸움에서 형제들에게 더욱 매정하게 굴었다. 양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정이 다른 가문처럼 깊지 않고 아주 얄팍했다.
양준의 표정이 덤덤한 것을 보고도 도봉과 당우선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양씨 가문에 오래 있었으니 양씨 가문 사람들의 성미를 잘 알고 있었다.
“공자님.”
도봉은 양준의 표정을 살피며 질문했다.
“만약 다른 일이 없으시다면 우선 양씨 가문으로 돌아가시지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가문에 언제까지 돌아가야 한다는 규정이 있나?”
“그러한 규정은 따로 없습니다.”
도봉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 생각엔 공자님께서는 처음 발견된 공자이실 겁니다. 이틀 전에 금우응을 풀었고, 저와 우선이 쫓아오다가 운 좋게 공자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금우응을 따라가며 다른 공자님들을 찾고 있을 겁니다.”
“그럼 됐어.”
양준이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께서 아직 마치지 못한 일이 있나요?”
“음, 먼저 종문으로 한 번 가 봐야겠어!”
양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봉과 당우선은 눈빛을 교환하며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뻐꾸기 양씨 가문의 직계 자제들은 다른 종문에서 신분을 숨긴 채, 수련하다가 십 년의 기한이 되면 종문의 어르신들과 사형, 사제들에게 들킬까 봐 몰래 종문을 떠났다. 종문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면 아무리 감정이 없던 사람도 정이 들기 마련이다. 그동안 종문을 속인 것이니 마음속으로 죄책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양준은 달랐다. 몰래 떠나기는커녕 일부러 돌아가려고 했다.
‘참 재미있는 공자군. 종문의 장로들을 뵐 때 어떻게 해명하려고 하는 거지?’
당우선은 궁금한 마음에 양준에게 물었다.
“공자님의 종문은 어딘가요?”
양준은 하하 웃고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가 미소를 머금은 채, 기대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양준은 그녀가 뭔가를 캐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모르는 게 좋을 거야!”
당우선은 멍해졌다. 그녀는 양준의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혈시로서 그녀도 더 캐묻기 어려웠다. 그저 속으로 이 어린 공자가 만만치 않다고만 생각했다.
“가자!”
멍해 있는 순간, 양준은 이미 몸을 날려 답운구에 올라타고는 그녀와 도봉에게 외쳤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답운구에 올라탔다. 그들은 신유 경지의 고수라 날아다녀도 빨랐지만, 기운과 진원을 아끼기 위해 답운구를 마다하지 않았다.
답운구 세 필은 나는 듯한 속도로 달렸다. 그들의 머리 위로 은혈금우응도 수시로 맑은 울음소리를 내며 따라가고 있었다.
이곳은 능소각과 최소한 만 리는 떨어져 있었다. 답운구를 타더라도 사흘은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양준은 전속으로 달리지 않고 시종 느긋한 속도를 유지했다. 도봉과 당우선이 알고 있는 양씨 가문의 명시되지 않은 규정을 양준이 어찌 모르겠는가? 가문까지 돌아가는 길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이 두 혈시의 선택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계승 싸움은 양씨 공자들의 무력 경쟁이 다가 아니었다. 심지어 무력은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계승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공자가 얼마나 많은 조력을 얻는지, 얼마나 많은 세력들을 굴복시키는지였다. 조력자를 많이 모을수록, 세력을 많이 굴복시킬수록 공자의 인맥과 수단을 보여줄 수 있었다.
양씨 가문은 8대 가문 중 하나로서 인맥과 수단이 필요했다. 양준은 지금 가난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를 데리러 온 두 혈시를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돌아가는 길에서 그들을 복속시킬 수 있다면 한꺼번에 신유 경지인 두 조력자를 얻는 셈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빠르게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너무 빨리 가다 보면 양준은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을 것이고, 너무 늦게 간다면 게을러 보일 것이다.
양준이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도봉과 당우선은 전혀 불만 없이 뒤따랐다. 그들은 여유롭게 하루 이천 리 길을 달렸다.
밤이 되자, 세 사람은 멈춰 휴식을 취했다. 도봉은 사냥을 나갔고 당우선은 근처에서 장작을 찾아 불을 피웠다. 모닥불이 피워지자 도봉도 두 손 가득 사냥감을 들고 돌아왔다. 두 사람은 함께 근처의 냇가에서 사냥감을 씻고 돌아와 불에 구웠다.
두 사람이 분주히 보낼 때, 양준은 몇십 장 밖에서 휘파람을 불며 나무 위에서 쉬고 있는 은혈금우응에게 장난을 치곤 했다. 며칠 동안 길을 가다가 쉴 때마다 양준은 이렇게 금우응을 건드렸다.
사흘 동안 수확은 크지 않았다. 금우응은 아직도 화가 난 듯했다. 그날, 양준이 남생과 향초를 음해하려고 깃털 두 개를 뽑은 탓에 아직까지도 금우응은 양준을 원수로 보고 있었다. 양준이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면 놈은 울부짖으며 날개짓을 하는 등, 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양준이 아무리 양씨 가문의 혈통을 가진 직계 자제라 해도 소용없었다.
당우선은 손에 든 야생동물을 구우면서 한편으로 시선을 돌려 양준 쪽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전혀 발전이 없는 것을 보고 그녀는 입을 가리고 생긋 웃었다.
“쌤통이야!”
당우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은혈금우응은 비록 5급 요수이긴 하나 지능이 매우 높은 요수잖아. 깃털을 두 개나 뽑았으니 이번 생에 친해지는 건 물 건너갔겠네.”
도봉도 고개를 끄덕이며 당우선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공자님께서도 아실 텐데 왜 이런 힘들고 성과도 없는 일을 하실까?”
당우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도봉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취옹(醉翁)의 뜻은 술에 있지 않다고 했으니, 다른 속셈이 있으신 거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당우선이 깜짝 놀랐다.
도봉은 입을 다시 열더니 말했다.
“공자님은 우리가 그를 다시 보게 하려는 걸 거야. 이것도 눈치를 못 챈 거야? 며칠 동안 우리의 이동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잖아? 공자님은 시간을 끌고 있는 거야.”
당우선은 깜짝 놀랐다. 잠깐 생각을 해본 그녀는 도봉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도봉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넌 생긴 거와 다르게 속내는 섬세하군.”
도봉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속내가 섬세한 게 아니라 공자님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거야. 바보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을… 내가 말을 잘못한 것 같군.”
“뭐라고?”
당우선이 눈을 치켜뜨며 그를 쳐다보자 도봉은 순간 난감해졌다. 당우선은 도봉에게 따지지 않고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만약 공자님께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실망하게 되시겠군.”
“응, 신경 쓰지 말자. 우리는 그분의 안전만 책임지면 돼.”
도봉은 싱글벙글 웃으며 양준을 향해 외쳤다.
“공자님, 드셔도 됩니다.”
*음식을 먹을 때, 당우선은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공자님, 진전은 좀 있으십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도봉은 다급히 그녀에게 양준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는 눈짓을 보냈다. 원래도 별 진전이 없는데 이렇게 묻기까지 한다면 양준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당우선도 노파심에 양준더러 쓸데없는 일에 애쓰지 말라고 일깨워 주려던 것이었다.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도 큰 법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녀의 말에 양준은 덤덤하게 웃어 보이더니 고기를 먹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거의 다 됐어. 내일쯤이면 더 이상 내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을 거야.”
당우선과 도봉은 순간 멍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거의 다 되었다고? 분명 아직 한참 멀었는데? 그리고 무슨 근거로 내일이면 금우응의 적의가 사라질 거라 장담하는 거지? 그 요수는 천성적으로 원한을 마음에 새기는 성격이라, 털 두 개를 뽑힌 이상 평생 보는 척도 안 할 텐데.’
“왜?”
양준은 그들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든 채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도봉이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의 성공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그는 마음에 없는 말을 했지만, 양준은 눈치채지 못한 듯 덤덤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응.”
당우선은 입을 삐죽거렸다. 그녀는 머리가 아픈 느낌이 들었다.
‘공자님이 이토록 단호하게 호언장담하는데 내일이 되어도 금우응이 그를 본체만체하면 창피해 죽겠지? 공자님이 창피해서 화라도 낸다면…….’
그 순간, 당우선은 금우응을 죽이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오늘밤에 금우응이 죽는다면 내일 양준이 난감해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도봉과 시선을 마주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준은 그들을 살피면서 고기를 먹다가 몰래 한쪽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그는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