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9장. 너 양씨 가문의 공자였어?
‘이 사람… 참 흥미롭네. 감히 양씨 가문의 직계 공자더러 폐허를 재건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다니. 또 대대적으로 활약할 수 있다는 말이나 하고.’
양준이 대대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곳은 중도이자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지, 여기가 아니었다.
“두 분은 네 친구냐?”
해홍진은 시선을 도봉과 당우선에게 돌리며 덤덤하게 물었다.
“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봉과 당우선은 안색이 살짝 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양씨 가문의 혈시로서 신분은 양씨 가문의 공자보다 낮았다. 그래서 양준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양준은 깔끔하게 그들을 친구로 인정했다.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약간 감동했다.
해홍진은 웃더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양 사제의 친구라니 우리 능소각의 친구기도 하지. 두 분께서 괜찮으시다면 좀 도와주게. 사례는 톡톡히 할 것이네.”
두 혈시는 미간을 찌푸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 마주 본 두 혈시는 서로의 눈에서 참을 수 없는 웃음기를 보았다. 그들은 양씨 가문의 혈시로서 신분이 양씨 가문의 공자보다 낮았지만, 그건 양씨 가문 내에서만 유효했다. 만약 양씨 가문을 떠난다면 일등 세력의 장로들도 그들을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뭔가를 시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 청년은 그들더러 능소각을 재건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며 사례까지 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지?’
해홍진은 이미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디서 날아온 독수리야? 시끄럽게도 구는군.”
양준은 저도 모르게 코를 만지작거렸다. 도봉과 당우선의 표정도 점점 더 이상해졌다. 금우응은 양준을 따라 이곳까지 날아온 것이었다. 금우응이 내는 울음소리는 자연스럽게 해홍진의 주의를 끌었다.
해홍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마음에 드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꽤 영특하게 생긴 독수리군.”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옆을 향해 소리쳤다.
“종(鐘) 사숙.”
사오십이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다급히 다가왔다. 그도 능소각에 있던 사람이었다. 지난 세대의 제자인 그는 지금 신유 경지 1단계의 수준으로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사질(師侄), 무슨 일인가?”
해홍진은 하늘을 나는 금우응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사숙의 솜씨로 저 독수리를 맞춰 주실 수 있나요? 두 아가씨가 시끄러워하지 않게요."
사숙이라 불린 그는 고개를 돌려 해홍진을 바라보더니 잠시 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무 높아. 게다가 저 독수리는 보통 실력이 아니라서 맞추기 어려울 듯하군.”
해홍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언짢은 표정을 짓더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럼 됐습니다. 가서 일 보세요.”
“그래.”
그가 떠나자 해홍진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 양 사제, 잠깐 기다리고 있어. 금방 저 독수리를 해결하고 다시 얘기하자고.”
“네.”
양준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해홍진은 하늘을 날고 있는 금우응을 향해 날아올랐다.
도봉과 당우선도 굳이 막아서지 않았다. 그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긴 듯한 얼굴로 해홍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양씨 가문의 금우응이 이토록 쉽게 잡히거나 맞춰서 떨어진다면 양씨 가문이 키워낸 요수가 아니었다.
“저 자가 혹시 공자님과 원한이 있습니까?”
당우선은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해홍진이 양준을 대한 태도에서 그녀는 뭔가를 눈치챘던 것이다. 지금 또 양준의 앞에서 뭔가를 하려고 드는 모습이 꼭 마치 둘 사이에 무슨 껄끄러운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지난 일이야!”
양준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해홍진과의 싸움은 종문 안에서의 다툼이었다. 지금 종문도 없어졌으니 양준은 옛일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어디서 온 독수리야?”
해홍진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두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났다.
앞장선 여인은 스무 살쯤 되어 보였는데 몸매가 늘씬하고 눈매가 명랑하며 피부가 백옥 같았다. 가녀린 허리를 가진 그녀는 자색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이는 그녀의 고귀한 기질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였다.
그녀의 옆에는 나이가 좀 더 어려 보이는 귀여운 소녀가 있었다. 그녀들은 아름다운 두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채, 하늘 위의 금우응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표정이 마치 독수리가 아닌 거대한 괴물을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두 여인이 걸어 나오자 옆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능소각의 제자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하던 일을 멈추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추 소저와 낙 소저를 뵙습니다!”
추억몽과 낙소만은 인사를 못 들은 척, 하늘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언니, 정말 그 독수리 맞아?”
낙소만은 여전히 천진난만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 맞을걸.”
추억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나도 소문으로만 들었어. 직접 본 적은 없어.”
“해홍진이 날아갔는데?”
낙소만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멍청이는 뭘 하려는 거야?”
추억몽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녀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독수리를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그 독수리는 아무나 쉽게 죽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치게만 해도 커다란 화를 가져올 것이다. 추억몽은 해홍진이 나서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가 더없이 멍청하다고 느껴졌다. 조금만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저 독수리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추 소저?”
당우선은 놀란 눈빛으로 추억몽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불렀다.
추억몽과 낙소만이 손을 잡고 왔을 때부터 양준과 두 혈시는 깜짝 놀란 상태였다. 누구도 이곳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 줄 몰랐던 것이다.
양준은 그녀들이 선경라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봉과 당우선은 알지 못했다. 추억몽은 지난번에 능소각에서 실종된 뒤로 더 이상 소식이 없었다. 추억몽을 찬찬히 훑어본 당우선은 그제야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실종된 지 몇 개월 지난 추씨 가문의 큰아가씨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추억몽도 양준을 보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낙소만은 더더욱 놀라서 안색이 파래졌다. 그녀는 다급히 추억몽의 뒤로 숨어서 양준을 노려보았다.
“음?”
도봉도 순간 의아함에 표정이 기괴해졌다. 그는 눈앞의 이 추씨 가문의 큰아가씨가 공자님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 뒤에야 추억몽은 양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시선을 돌려 도봉과 당우선을 훑어보았다.
당우선은 그녀를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당우선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두 혈시의 허리춤에 있는 옥패를 본 순간, 안색이 변하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양씨 가문의 혈시?”
“추 소저를 뵙습니다.”
도봉과 당우선은 다급히 예를 올렸다.
지위로 따지면 추억몽은 양준과 같은 급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추억몽이 양준보다 지위가 더 높다고 말할 수 있었다. 추억몽은 추씨 가문의 드문 천재인 데다 중도의 젊은 일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재였다. 하지만 양준은 그저 아직 가문으로 돌아가지 못한 직계 자제일 뿐이었다. 이런 인물을 마주쳤으니 도봉과 당우선도 감히 예의 없게 굴지 못했다.
추억몽의 표정은 다시 침착해졌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한참 뒤에 양준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양씨 가문의 혈시도 이곳에 있고, 또 양씨 가문에만 있는 은혈금우응도 있는 것을 보니 네가 바로 양씨 가문의 직계 공자였구나?”
이 상황들을 보고도 양준의 진정한 신분을 눈치채지 못할 추억몽이 아니었다.
“응.”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내가 줄곧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추억몽은 못내 후회스러웠다. 비록 양준이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이유가 양씨 가문의 규정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마음이 씁쓸했다. 그녀는 전에 선경라의 행궁에서 두둑한 보수를 내걸며 양준을 추씨 가문으로 영입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양준은 원래 양씨 가문의 직계 공자인데 어찌 영입할 수 있겠는가?
‘어쩐지 그때 전혀 흔들리는 눈치가 아니었어.’
추억몽은 그가 눈이 높고 성질이 도도하여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양준은 아예 처음부터 다른 가문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고,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추억몽은 이를 악문 채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망신을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너 양씨 가문의 공자였어?”
낙소만도 멍해진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맞아!”
추억몽이 냉소를 지으며 대신 대답했다.
순간, 낙소만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전에 추억몽과 양준에 대해 평가하던 말이 떠올랐다.
‘양준에게 강한 배경이 없어 다행이야. 만약 그에게 강한 배경이 있다면 천하가 모두 그 녀석 때문에 발칵 뒤집히겠는데?’
하지만 지금 보니 그의 배경은 강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조차 없이 뿌리도 깊었다.
“두 분께서는 저희 공자님을 아십니까?”
당우선은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추억몽과 낙소만을 바라보았다.
같은 여인으로서 그녀는 세 사람의 대화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던 것이다. 공자와 이 두 소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알지. 잘 알고 말고!”
추억몽은 옅게 웃으며 이를 악물었다.
도봉은 갑자기 온몸에 한기가 감돌았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날 노려볼 건 없잖아? 내가 너희한테 뭐 빚진 것도 아니고.”
양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추억몽을 바라보았다.
“빚진 게 없다고?”
추억몽은 냉소를 지었다.
“빚진 게 아주 많지.”
이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도봉과 당우선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일일이 말해 줘?”
추억몽은 양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양준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어디 말해 봐.”
“좋아.”
추억몽은 활짝 웃어 보이더니 눈에 교활한 표정을 가득 담고 입을 열었다.
“그럼 먼저 선…….”
“잠깐…….”
양준은 안색이 변하더니 다급히 뛰어가 추억몽의 입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