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1장. 알아서 잘 처신하세요
“내려가서 탐사해 본 사람은 없어. 이 부근의 무인들은 다들 곤룡골을 꺼리더라고.”
추억몽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 점도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들 곤룡골 아래에 위험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 사기가 충천할 때, 다들 치명적인 위협을 느꼈었다. 지금은 얌전해진 듯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모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넌 그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알아?”
추억몽이 갑자기 경계 어린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몰라.”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추억몽은 입을 삐죽거렸다.
‘날 아직 별로 믿지 않나 보군. 숨기는 게 많은 걸 보니.’
“그래, 이 얘기는 그만하고 너희 종문을 재건하는 얘기를 해보자. 난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어. 이미 중도에 서신을 보냈지만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해. 그러지 않으면 집에서 또 사람을 보내 날 찾을 거야.”
추억몽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중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서 네 동문들이 직접 재건 작업을 하게 하고, 난 손을 뗄 생각이야. 모든 것을 해홍진에게 맡길 건데 네 생각은 어때?”
“네가 알아서 해. 난 널 믿어!”
양준은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대범하게도 말하는구나.”
추억몽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다고 나 찾아오지나 마. 네 동문은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너와 비교하면 한참 멀었어. 다 고만고만하니까 그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놈으로 뽑아 관리하게 한 거야.”
낙소만은 옆에서 진지한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양준에게 호감이 없었고 심지어 무서워한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동년배 남자들 사이에서 양준이 뛰어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음가짐이나 의지력, 실력 등 각 방면에서 양준은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네 동문이니 결국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야. 네가 생각하기에 영 아니다 싶으면 갈아치워.”
추억몽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종문을 재건하는 것이 큰일도 아니고, 그더러 총괄하라고 해.”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문밖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마침 왔네!”
추억몽은 깜짝 놀랐다가 곧바로 밖에서 전해오는 해홍진의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왜 날 막는 것이냐? 난 추 소저를 뵈러 왔다.”
“추 소저는 저희 공자님과 중요한 얘기를 하고 계시니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도봉이 입구를 막고 차가운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
해홍진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한참 동안 도봉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너희 공자님? 하하… 무슨 공자님 같은 소리를……. 양준을 말하는 건 아니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는 능소각이야. 능소각에서 내가 못 갈 곳은 없어.”
그는 말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도봉은 여전히 꿋꿋한 자세로 문밖을 막아섰다.
해홍진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양준이 데려온 사람이니 체면을 봐줄게. 좋게 말할 때 얼른 비켜! 안 그러면 내가 체면을 봐주지 않는다고 탓하지 마.”
당우선은 바로 어여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아주 의미심장했다.
도봉은 여전히 싸늘하게 해홍진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서 추억몽은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양준의 얼굴에서 뭔가를 알아내려고 했다.
“들어오라고 해.”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해홍진은 그래도 능소각의 제자인 데다 예전에는 종문에서 훌륭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멍청하고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자 양준도 얼굴이 뜨거워졌다.
도봉은 양준의 명령을 듣고 몸을 비켰다.
해홍진은 콧방귀를 뀌더니 옷을 툭툭 털고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의 상황을 살펴본 그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양준이 추억몽과 낙소만과 함께 책상에 둘러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두 소녀에게 한 번도 이런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었다. 추억몽을 만나러 올 때마다 그는 항상 입구에 공손하게 서 있었고, 몇 마디 나눠 보지 못한 채, 추억몽에게 쫓겨났었다.
‘양준은 왜 이곳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거지?’
해홍진은 마음속에 의아함이 피어올랐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렸다.
“추 소저, 낙 소저를 뵙습니다.”
“네.”
추억몽은 덤덤하게 대답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마침 잘 오셨어요. 지금 당신의 사제와 능소각 재건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양준이 당신과 할 얘기가 있다네요.”
“네?”
해홍진은 가볍게 웃으며 실눈을 뜨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사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지?”
그의 말투는 거만하기도 하고, 도발의 기운을 담고 있기도 했다.
추억몽은 자세를 고치며 흥미진진한 구경을 할 준비를 했다.
‘재미있네. 저 바보는 양준의 진짜 신분을 모르는가 보군. 두 혈시 앞에서도 으스댈 뿐만 아니라 양씨 가문의 직계 공자를 대적하려고 들다니. 아무리 멍청해도 이 정도로 멍청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의견은 없습니다. 요구 사항은 하나 있지만요.”
해홍진이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요구?”
“네.”
추억몽과 낙소만이 있으니 해홍진도 화를 내기 무엇하여 일부러 너그러운 척,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 번 말해 봐.”
“종문의 모든 것들은 기존의 규격과 배치에 따라 재건해야 하고, 조금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형께서는 종문 내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셨을 테니 이곳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겠죠? 감독 관리를 잘 하셔서 반드시 그렇게 재건하세요.”
해홍진은 얼굴이 미세하게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양준의 말투는 상의하는 말투가 아니라 명령하는 어조였다. 그는 금세 기분이 언짢아졌다.
‘감히 나에게 명령조로 얘기하다니!’
해홍진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양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만약 일손이 부족하다면 근처의 풍우루와 혈전방에 도움을 청하세요. 추씨 가문 큰아가씨의 명의로요. 나중에 그들에게 보상을 해주면 되니까요.”
추억몽은 눈을 흘겼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해홍진은 그만 멍해졌다. 그는 추억몽이 왜 양준의 말에 반박하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만약 재물과 물자 쪽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중도에 서신을 보내시면 됩니다. 그러면 추 소저가 조달해드릴 거예요. 추씨 가문은 재력이 넘쳐서 이 정도는 신경도 안 쓸 테니까요. 그렇지?”
양준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추억몽을 바라보았다.
“뻔뻔스러워!”
추억몽은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해홍진은 드디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안색이 변했다. 지금도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는 바보나 마찬가지였다.
‘양 사제가 추억몽과 사이가 각별해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면 양준이 이런 말을 했는데도 추억몽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리가 없어…….’
이등 종문을 재건하는 것은 추씨 가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해도, 재력과 물자는 필요했다. 그런데 양준의 두어 마디 말로 결정이 되다니? 만약 양준이 추억몽과 전혀 관계가 없다면 추억몽이 어찌 허락하겠는가?
해홍진은 갑자기 크나큰 놀라움에 잠겼다. 그제서야 그는 이 사제가 예전에 알던 양준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양준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다가 한참 뒤에야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천하에 소집령을 내려서 멀리 흩어져 있는 우리 능소각 제자들에게… 돌아오라고 하세요!”
양준은 마지막 말을 아주 단호하고 강력하게 말했다.
방 안은 정적에 잠겼다. 추억몽의 안색도 숙연해졌다.
“사형께서 덧붙이실 게 있으신가요?”
양준은 고개를 들고 해홍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해홍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없어.”
그는 그동안 추억몽과 낙소만에게 잘 보일 생각만 했지, 종문을 재건하는 일에 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할 말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는 것으로 하죠.”
양준은 결론을 내렸다.
한참 멍하니 서 있던 해홍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추억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추 소저, 이게…….”
추억몽은 언짢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못 알아들으셨나요?”
“제대로 알아들었습니다만, 사제가 결정할 자격이 됩니까?”
해홍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추억몽은 생긋 웃더니 말했다.
“그가 결정 지을 자격이 없다면 세상에 결정을 지을 사람이 없겠네요.”
해홍진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서 떨리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이미 일어서서 문밖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해홍진의 곁을 지날 때, 그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형, 만약 한 번만 더 종문에 미안한 일을 하신다면, 그땐 살아 계신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해홍진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추억몽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양준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낙소만이 나가려고 할 때, 해홍진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뭐 하시는 거죠?”
낙소만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순간 이 바보 같은 남자가 매우 불쌍하게 느껴졌다.
“낙 소저, 제 사제는… 어떻게 된 건가요?”
해홍진은 메마른 입술을 핥으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낙소만은 입술을 깨물고 몰래 바깥을 훔쳐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중도 양씨 가문의 직계 공자입니다. 알아서 잘 처신하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다급히 쫓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