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3장. 둘 중에 한 명 골라
추억몽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번지르르하게 말을 잘해도 두 신유 경지 고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누구를 따를지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의 판단이었다. 지금 열심히 말을 한다 해도 일으킬 수 있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양준이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더 기대하게 할 뿐이었다.
*곤룡골 바닥.
양준은 마두가 있었던 곳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역시 지마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지마는 진작 이곳을 떠난 게 분명해. 그렇지 않으면 하늘을 찌르던 살기가 이렇게 잠잠해졌을 리가 없어. 그가 깨끗하게 삼킨 게 틀림없어.’
그때 지마는 이곳의 일을 마치면 양준을 찾아가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두 사람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추씨 가문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난동을 부리러 왔고, 소안과 다른 능소각 제자들은 허공 통로를 통해 멀리 이동되었다. 또 양준은 중간에 문제가 생겨 홀로 창운사지로 떨어져 버렸다. 그도, 지마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마가 날 찾으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을 거야.’
만약 이런 원인이라면 지마가 지금까지 연락을 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지마가 다른 마음을 품지는 않았을까?’
양준은 확신할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양준은 천천히 신식을 펼치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잠시 뒤, 양준의 안색이 변하더니 다급히 고개를 돌려 한쪽 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벽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양준은 신식으로 그곳에 특별한 흔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사기가 남아 있었다!
양준은 그곳을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한 뒤,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물보라가 일면서 평범하던 벽에 글자가 나타났다. 글자는 아마도 새겨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힐끗 훑어본 양준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지마는 나의 통제를 벗어날 생각이 없었군. 이런 특별한 수단으로 말도 남기고 말이야.’
‘나는 이곳에 사기를 모두 흡수하는 데 성공했네. 이제 주인을 찾으러 떠날 예정이라네. 만약 우리가 만나지 못한다면 석 달 뒤에 이곳으로 돌아오겠네. 이 글을 보면 답신을 남겨 주게!’
이는 분명 지마가 양준에게 쓴 글이었다. 지마는 석 달 동안 밖에 나가 양준의 소식을 알아보고, 석 달 뒤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마는 양준이 살아 있다면 무슨 일이 있든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남겨진 글자로 지마의 충성심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양준은 기쁜 얼굴로 지마가 쓴 글 아래에 글자를 남겼다.
‘중도 양씨 가문!’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아마 지마가 이곳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알아챌 것이다.
양준은 몸을 날려 신속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시 동굴로 돌아오니 도봉과 당우선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양준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예전과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보다 훨씬 정중해진 듯했다.
“다 해결했어?”
추억몽은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응.”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양준은 히죽 웃으며 호기롭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중도로 가서 계승 싸움에 참여해야지!”
추억몽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말했다.
“잘됐네. 나도 마침 돌아가려는 길이거든. 괜찮다면 같이 가는 게 어때?”
양준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마음대로 해!”
추억몽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네 덕 좀 보자.”
양준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덕?”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추억몽이 가볍게 웃으며 양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반나절만 기다려 줘. 이곳에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내일 아침에 떠나자.”
“그래!”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억몽이 처리할 일이라는 건 능소각에 관한 일일 것이 뻔했다.
*이튿날, 사람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능소각에서는 배웅을 나온 사람이 없었다. 해홍진은 의식적으로 양준의 앞에 얼굴을 내밀지 않고 묵묵히 종문에 남아 재건 사업에 힘쓰고 있었다.
지금이 되어서야 양준은 어제 추억몽이 그의 덕을 보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도봉과 당우선은 각각 답운구에 올라탄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들 일행에게는 답운구가 세 필밖에 없었다. 두 혈시가 이미 한 필씩 타고 있었고, 남은 한 필은 양준이 탈 답운구였다. 그렇게 되면 추억몽과 낙소만이 탈 것이 없었다. 필시 누군가와 답운구를 같이 타야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와 소만 둘 중에 한 명 골라.”
추억몽은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낙소만도 어떤 상황인지 눈치챈 듯 얼굴을 붉혔다.
양준은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한 명은 우선이랑 타고, 한 명은 도봉이랑 타. 난 혼자 탈 거야.”
추억몽은 빠른 속도로 얼굴의 미소를 거두고 당황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양준이 미인과 가까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두 혈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봉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저는 괜찮은데 두 소저께서 싫지 않으시겠어요?”
추억몽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도봉은 웃음을 거두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추억몽이 눈을 굴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뭔데?”
“너와 도봉이 같은 말을 타. 그럼 나와 소만이 너의 말을 탈게.”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양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추억몽은 양준이 이렇게 대답할 것을 눈치챈 듯, 또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그럼 당 언니와 함께 타!”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당우선은 갑자기 끌어들여지자 당황했다. 그녀는 양씨 가문의 혈시로서 양준이 정말 자신과 같은 답운구를 타겠다고 한다면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양준이 승낙할까 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것도 안 돼!”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갑자기 일이 복잡해진 것을 느꼈다.
“이래도 안 된다, 저래도 안 된다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추억몽은 어렴풋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어제 이미 이 문제를 생각해 둔 것이 분명했다.
양준은 한참 동안 생각했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봐, 빨리 정하라고! 우리 계속 이곳에 있을 거야?”
추억몽이 그를 재촉했다.
양준은 이를 악물고 답운구에 올라탄 뒤, 한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추억몽은 기쁜 얼굴로 그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양준이 입을 열었다.
“낙소만, 타!”
추억몽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어색하고 난감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양준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오히려 낙소만은 겁먹은 토끼처럼 연신 뒷걸음질 치며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시, 시, 싫은데!”
그녀는 왠지 모르게 양준이 무서웠다.
“가자!”
양준은 귀찮은 얼굴로 손을 거두며 도봉과 당우선에게 말했다. 그리고 말을 채찍질하며 떠날 준비를 했다.
“잠깐……!”
추억몽은 다급히 그의 다리를 붙잡고 화를 냈다.
“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매정해?”
“중도로 가는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급히 가고 싶으면 마차라도 구해서 가면 되잖아.”
양준은 더 이상 그녀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추억몽은 매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양준이 전혀 장난하는 눈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소만, 이리 와.”
“나… 나… 난 무섭단 말이야!”
낙소만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가 무서워. 쟤가 널 잡아먹을 것도 아니고.”
추억몽은 바로 낙소만의 한쪽 팔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낙소만의 비명소리도 무시한 채, 낙소만을 양준에게로 던져놓고는 몸을 돌려 사뿐히 당우선의 답운구에 올라탔다.
“꽉 잡아!”
양준은 당부하고 나서 답운구를 채찍질하며 빠른 속도로 달렸다.
낙소만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양준의 옷을 꽉 잡았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가는 내내 그들은 말이 없었다. 추억몽은 단단히 화가 난 듯, 길에서 쉴 때도 양준에게 다가가 말을 걸지 않았다. 낙소만은 하루 종일 겁에 질려 있다가 천천히 마음을 내려놓은 듯했다.
도봉과 당우선은 일행의 괴이한 분위기를 발견하고는 더더욱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가는 길 내내 그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오직 매서운 바람소리만 귓전을 때릴 뿐, 사람의 말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