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4장. 여씨 가문
길을 가면서 보니 천하에서 이미 양씨 가문이 직계 자제들을 소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계승 싸움에 관한 소식도 점차 소문으로 퍼지고 있었다. 앞서 한동안은 정파와 사파가 대전을 일으키더니, 또 지금은 양씨 가문에서 계승 싸움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 년 내내 대한은 조용할 날이 없는 것 같았다.
계승 싸움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은 어떻게 보면 그저 명문 세가에서 다음 가주를 뽑는 것에 불과했지만, 매번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대한에 있는 큰 세력들은 거의 다 참여한다고 보면 되었다. 이 세력들이 양씨 가문 계승 싸움에 참여하는 것은 가문의 후계자들의 식견을 넓히기 위함이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이 기회에 중도 8대 세가와 친분을 맺어 두기 위함이었다. 만약 안목이 정확하여 양씨 가문의 차기 가주를 따르게 된다면 앞으로 많은 이득을 보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큰 세력들 말고도 혼자의 몸으로 참여하는 무인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중도로 와서 이름을 날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이들이었다. 누군가는 이 기회로 성공하여 이름을 날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잘못된 선택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다.
이익과 폐단이 공존하는 이 계승 싸움은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목숨과 미래를 건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전부 양씨 가문의 젊은 공자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이었다.
*닷새 뒤.
양준 일행은 이미 능소각에서 만 리 정도 멀어졌지만, 중도와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답운구 세 마리는 멈춰서 휴식을 취했다. 추억몽은 한참 동안 먼 곳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저쪽은 아마도 여(呂)씨 가문의 구역일 거야. 내가 가서 답운구 두 마리를 빌려 올게.”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들도 쉬다 갈래?”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거절하려고 했다.
이때, 당우선이 말을 꺼냈다.
“온 김에 한 번 들르시죠. 시간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요.”
양준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는 그녀가 왜 갑자기 나서는지 알 수 없었다.
당우선이 웃으며 말했다.
“여씨 가문은 추씨 가문과 친분이 좀 있나 봐요?”
추억몽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응. 사촌이지. 중도 8대 가문에서 바깥 세력과 아무런 연줄도 없는 가문이 어디 있겠어? 여씨 가문은 추씨 가문과 꽤 친한 편이야. 요 몇 년간 꾸준히 왕래가 있었으니까.”
당우선이 말했다.
“여씨 가문도 일등 세가에 속하지요. 공자님께서 한번 방문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양준은 그녀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당우선은 이 기회에 양준에게 여씨 가문을 포섭하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계승 싸움에 조력자 역할을 해줄 수도 있었다. 포섭하지 못한다 해도 미리 얼굴을 익혀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의 양준은 양씨 가문 공자라는 신분 말고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 저력도 없는 양씨 가문의 공자는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그녀의 계획을 눈치챈 양준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곳은 그래도 그분들의 구역인데 인사도 안 드리고 가면 실례지.”
추억몽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여씨 가문은 원래 일등 세가에 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십 년 동안 추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면서 추씨 가문의 관심과 가르침을 받은 뒤로 가문의 세력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다. 또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가 한 명 나오면서부터 일등 세가로 진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모두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굳이 따진다면 여씨 가문은 일등 세가 중에서도 대단하지 않은 편에 속했다. 여씨 가문이 일등 세가로 진급된 뒤, 이 근처의 이등, 삼등 세력들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아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씨 가문이 당연하게 이 구역을 장악하게 된 것이었다.
여량(呂梁)은 여씨 가문의 가주였다. 실력은 신유 경지 7단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주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었다. 그의 사교술과 일을 진두지휘하는 능력은 여씨 가문이 승승장구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동안 그가 수시로 추씨 가문에 찾아가고 연락한 덕분에 추씨 가문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양준 일행이 여씨 가문에 당도했을 때, 몇몇 문지기들은 그들의 신분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보고 재빨리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들은 여씨 가문의 대문을 지키고 있다 보니 당연히 어느 정도 눈치가 있었다. 답운구 같은 요수는 일등 세력만 키울 수 있는 것이니 양준 일행의 존귀한 신분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추억몽이 신분과 이름을 알리자 문지기는 재빨리 그녀를 맞이했다. 다른 사람은 부랴부랴 안으로 뛰어갔는데 아마도 여씨 가문의 높은 사람에게 알리러 간 듯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누각이 가득 들어선 정원이 보였다. 작은 다리 아래로 냇물이 흐르고 정자와 건물 밖에는 각종 꽃과 풀이 가득하여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누각은 높지 않았지만 매우 정교하여 그림 같은 화폭을 연출했다.
추억몽은 맨 앞에서 길을 걸었고, 낙소만은 그녀와 나란히 걸었다. 양준은 그 뒤를 따랐고 맨 뒤에는 두 혈시가 따라갔다.
길을 가면서 주변을 둘러본 양준은 이 정원에 흥미가 생겼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뛰어왔다. 맨 앞에 선 사람이 바로 여씨 가문의 가주 여량이었다. 여량은 청색 장삼을 입고 있었는데 수염을 기른 모습이 고상하고 지혜로워 보였다.
그는 안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오더니 크게 미소를 지으며 추억몽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추 소저께서 왕림해 주시다니 여씨 가문의 큰 영광입니다!”
여량은 일가의 가주였지만 여씨 가문은 추씨 가문에 의탁하여 성장한 것이었고, 추억몽은 추씨 가문에서 신분이 높았기에 그녀를 대하는 데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항상 그가 중도로 가서 추씨 가문을 방문하기만 했지, 추씨 가문의 직계가 그의 집으로 온 것은 처음이었다.
여량은 기쁘고 흥분된 마음에 더욱 깍듯하게 대했다.
추억몽은 대범하게 웃으며 말했다.
“숙부님, 별말씀을요. 지나가던 길에 잠시 쉬어 가려고 들렀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겠죠?”
여량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조카님께서 오신 것 자체가 우리 여씨 가문의 영광인데 열정적으로 맞이하는 게 당연하죠. 어찌 방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추억몽이 친근하게 ‘숙부님’이라고 부르자 여량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속으로 이 몇 년 동안 중도로 부지런히 찾아간 것이 헛된 수고가 아니라고, 드디어 추씨 가문과의 관계가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두어 마디 나누는 사이에 두 사람의 관계는 훨씬 가까워졌고, 여량 뒤에 서 있던 여씨 가문의 장로들도 웃는 얼굴로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나눈 뒤, 여량은 진지한 얼굴로 두 혈시와 양준을 바라보더니 엄숙하게 물었다.
“조카님, 이 공자님은…….”
여량은 눈치가 빨라 양준의 신분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 신유 경지의 고수가 둘씩이나 따라다닐 리가 없었다.
추억몽은 생긋 웃으며 바로 대답하지 않고,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바로 그때, 독수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씨 가문의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순간, 여량은 양준의 신분을 알아채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양씨 가문의 공자님이셨군요!”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공수하며 인사를 올렸다.
여씨 가문의 장로들도 깜짝 놀라 몰래 양준을 살펴보았다.
양씨 가문에서 사방에 흩어져 있는 직계 공자들을 대대적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탓에 은혈금우응의 울음소리가 대한 전체를 뒤흔들었으며 혈시당의 고수들도 빈번하게 출동했다. 이렇게 큰일을 여씨 가문에서 모를 리 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뜻하지 않게 양씨 가문의 공자를 보게 될 줄이야!
자세히 살펴보니 눈앞의 이 젊은이는 표정이 강인하고 의연한 모습이었다.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명문가 공자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여량은 속으로 흠칫 놀랐다. 그는 양씨 가문의 사람 중에서 대하기 쉬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량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몸을 비키며 안으로 안내했다.
“조카님, 양 공자, 안으로 드시지요!”
그는 양준 일행을 맞이하며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가장 좋은 술상을 봐오너라. 오늘 귀하신 손님 두 분이 오셨으니 우리 여씨 가문의 영광이다. 한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예!”
추억몽은 미소를 지으며 낙소만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양준도 느긋하게 뒤를 따라갔다.
여씨 가문의 대전 안에는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아름다운 시녀들이 과일과 산해진미에 술까지 연이어 들고 들어왔다.
대전 안의 열기는 뜨거웠고,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