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55화 (355/853)

제 355장. 여량의 시험

여량은 추억몽과 낙소만의 취향도 고려하여, 그녀들에게는 여씨 가문에서 특별히 제조한 과일주를 대접했다. 상큼한 향이 일품인 과일주는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양준은 신분이 특별하여 누구도 감히 그에게 술을 마시라고 권하지 못했다. 여씨 가문의 사람들이 술을 권하러 올 때도 자신들이 먼저 다 마신 다음, 양준에게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당우선도 추억몽과 낙소만처럼 과일주를 마셨다. 오직 도봉만이 호기롭게 술을 마셨다. 그는 양씨 가문의 혈시인지라 여씨 가문의 사람들 앞에서도 지위가 낮지 않았다.

여씨 가문의 사람들은 흥분된 얼굴로 계속해서 도봉에게 술을 권했다.

도봉은 양준의 하석에 앉아서 꼼짝하지 않다가 술을 권하는 사람이 오면 술을 건네받아 쭉 들이켰다.

분위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여씨 가문의 사람들은 사방 천 리 안에서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양씨 가문의 혈시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알아서 태도와 자세를 낮추었다. 그들은 혈시에 대해 말로만 들었을 뿐 실제로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한 번에 두 명이나 만나게 되자 당연히 쉽사리 놔주려고 하지 않았다.

여량의 사교술도 헛소문이 아니었다. 그의 입담은 매우 뛰어났는데 말 사이에 각종 칭찬들이 섞여 있었고, 일부러 아첨하는 티도 나지 않아 듣는 사람의 기분을 편하게 해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여씨 가문 사람들은 양준이 별로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부러 트집을 잡거나 으스대지 않고 모든 사람을 친근하게 대했다. 여씨 가문의 사람들은 양준의 그런 모습에 깜짝 놀랐다.

추억몽이 양씨 가문의 공자라고 소개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두 혈시가 아니었더라면 여량은 눈앞에 젊은이가 양씨 가문의 공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숙부님, 오는 길이 고되어 저와 소만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희는 신경 쓰지 말고 즐기시지요.”

한참 먹고 마시며 즐긴 추억몽은 일어서서 여량에게 말을 건넸다.

“여봐라!”

여량은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자 두 시녀가 천천히 걸어왔다.

“두 아가씨께서 쉬실 수 있도록 곁채로 모셔라!”

“네!”

두 시녀는 추억몽과 낙소만을 데리고 떠났다.

그녀들이 떠나고 나서도 술자리는 계속되었다.

그때, 여씨 가문의 장로 한 명이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웃기 시작했다.

“가주님, 술만 마시자니 재미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불러서 흥을 좀 돋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여량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무심했구나.”

그는 말하면서 손뼉을 쳤다. 그러자 아리따운 여인들이 사뿐사뿐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면서 추억몽과 낙소만이 떠나기를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들어오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주변에서는 그녀들이 들어오자 북을 두드리며 악기를 연주했다.

이 묘령의 여인들은 먼저 주변을 둘러보며 예를 취하고 악기 소리를 따라 미소를 머금은 채, 춤을 췄다.

당우선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여량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여량은 몰래 양준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도봉은 정신이 팔려서 대놓고 구경했다. 얼굴의 흉터는 전보다 더욱 일그러진 것 같았다.

오히려 양준은 덤덤한 얼굴이었다. 그는 감상하는 눈빛으로 움직이는 여인들을 바라보았으나 전혀 음탕한 시선을 하고 있지 않았다. 감상하는 눈빛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여인이 그의 앞까지 다가와 일부러 요염한 자세를 취해도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속으로 깜짝 놀랐다. 젊은 남자가 미인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량도 특별히 이번 기회에 양준이 여색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려고 준비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담대한 유혹 앞에서도 양준은 무덤덤한 얼굴로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 양 공자는… 뭔가 다르구나!’

유혹 앞에서 본심을 유지할 수 있는 젊은이는 놀라운 의지력을 가진 것이다.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는 이는 후에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재목이었다.

순간, 여량은 마음속으로 뭔가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우선도 눈을 반짝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중도에서 살다 보니 부유한 공자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소녀는 물론, 그녀를 보더라도 공자들은 강렬한 흥미를 보이면서 다가왔다.

당우선은 양준이 보여 준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눈앞에 여인들은 아름다웠으나 양준이 그동안 보아온 미인들에 비했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안, 하응상, 선경라, 호씨 자매 등은 하나같이 절세미인이었고, 경국지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합환공을 수련한 덕에 양준은 이런 미색의 유혹쯤은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선경라가 직접 양준을 유혹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양준을 유혹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양준이 스스로 원하지 않는 이상. 춤을 추는 풋풋한 소녀들은 양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춤이 끝나자 여량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어 그녀들이 물러가게 했다.

그녀들은 물러가면서 그윽한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들도 이 젊은이의 신분이 존귀하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그의 환심을 사면 하룻밤 사이에 신분이 상승되어 더 이상 여씨 가문에서 춤을 추며 웃음을 팔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량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 여인들은 모두 근처의 가난한 집 여식들인데 우리 여씨 가문에서 거둬들여 지금까지 키웠습니다. 모두 미모에 손색이 없고 평소에도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만 불러서 춤을 추게 합니다. 양 공자께서 한두 명을 거둬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미인이 곁에 있다면 계승 싸움도 순조롭게 흘러갈 텐데요.”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량은 눈을 반짝거렸다. 그제야 그는 양준이 일부러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여인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마음이 있었더라면 여량이 제안할 때 잠깐이라도 망설였을 것이다.

여씨 가문의 장로인 여장목(呂長木)이 적절하게 말을 받았다.

“계승 싸움 얘기가 나오니 이십 년 전의 계승 싸움이 생각납니다. 그때 얼마나 많은 명문가가 무너지고 또 얼마나 많은 세가들이 사라졌습니까! 그때 저희 여씨 가문은 실력이 부족하여 참가하지 못했지요.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은 곧 시작될 것이고, 공자들도 대대적으로 조력자를 포섭하며 동맹을 맺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계승 싸움에서 승리를 얻으려고 할 것이다.

추억몽은 이번에 양준을 여씨 가문으로 데리고 와서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여량은 그중에 담긴 속뜻을 알아챘다.

‘어쩌면 이번이 기회일지도 몰라.’

이십 년 전에 여씨 가문은 세력이 작아 적은 토지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계승 싸움에 참가할 생각도 없었고, 여건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여씨 가문은 성장하여 일등 세가가 되어 있었다.

사람은 계속 높은 곳을 좇기 마련이다. 여씨 가문이라고 왜 더 올라가고 싶지 않겠는가? 이미 추씨 가문이라는 뒷배를 꽉 잡은 그들이 양씨 가문과 사이를 좋게 유지한다면 여씨 가문의 앞길은 창창할 것이다.

다만… 양씨 가문을 포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씨 가문은 평범한 명문 세가가 아닌, 대권을 장악한 세력가였다.

여량은 이번 계승 싸움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양준이 차기 가주가 될 자격과 실력을 갖추었는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쉽사리 여씨 가문과 양준을 한데 묶었다가는 계승 싸움에서 양준이 패배했을 때, 여씨 가문의 몇십 년 동안 이어진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여량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씨 가문의 장로들도 판단을 잘해야 했다. 줄을 잘못 선다면 결말은 무시무시했다. 이는 한 세가의 미래와 밀접하게 관련된 일이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자 화제는 점차 계승 싸움으로 이어졌다. 다들 이십 년 전의 큰 사건을 기억하며 몰래 양준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양준은 이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는 평온한 얼굴로 과일을 먹으면서 잠자코 듣고 있기만 했다. 관심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티를 내지도 않았다.

여씨 가문 사람들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천천히 화제는 눈앞의 상황으로 옮겨졌다.

현재 양씨 가문의 공자들은 모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천하의 사람들도 돌아올 양씨 가문의 공자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진정한 양씨 가문의 공자가 있으니 여량도 양준의 인맥과 저력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여량은 모르는 척, 양준에게 질문하려고 했다. 하지만 양준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여량은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서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버릴 수밖에 없었다.

“공자님, 피곤하시지요?”

당우선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양준은 대충 대답했다.

“괜찮아!”

여량은 눈을 반짝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양 공자께서 고된 여정에 지치셨을 텐데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여봐라, 양 공자가 쉴 수 있도록 모셔가거라!”

양준도 사양하지 않고 천천히 일어나 사람들에게 공수 인사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양 공자, 오늘은 푹 쉬시지요.”

여량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양준과 두 혈시도 떠나가자, 여씨 가문 사람들의 표정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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