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56화 (356/853)

제 356장.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아

여씨 가문 사람들은 양준이 이곳에 온 것이 계승 싸움에 여씨 가문을 포섭하기 위함인 줄 알았다. 그래서 다들 술자리에서 양준의 눈치를 살폈던 것이다. 심지어 여량은 양준이 만약 직접적으로 본론을 얘기하면 기분과 체면이 상하지 않게 거절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지금 그는 양준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무모하게 양준의 조력자가 되겠노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즐기기만 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가주님!”

여씨 가문의 장로 한 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양 공자가 정말 지나가다가 들르기만 한 건 아닐까요?”

“그건 아닐 거요.”

여량은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분명 우리를 포섭할 생각을 가지고 있소. 태도는 담담해 보였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소.”

“그런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사람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설마 자신이 없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없는 게 아니라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겠는가? 적어도 자신의 실력과 저력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정말 그런 것이라면 여씨 가문은 그한테 희망을 품으면 안 됩니다. 나중에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양준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여량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오히려 그가 자신 없어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여씨 가문을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오.”

“뭐라고요?”

여량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가 우리 여씨 가문을 시험한다고요? 무슨 자격으로 말입니까?”

그가 아무리 계승 싸움에 참여할 수 있는 양씨 가문의 직계 공자라고 해도 그저 공자일 뿐이었다. 무슨 자격으로 여씨 가문을 시험한다는 말인가?

여량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잊은 것이오? 계승 싸움은 우리가 양씨 가문의 공자를 선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도 조력자를 선택해야 하오. 정말 우리가 일등 세가란 이름에 걸맞게 훌륭하다고 보시오? 양씨 가문의 공자들이 앞다투어 우리를 포섭할 만큼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시오?”

이때, 장로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가주님께서 참 말씀을 섭섭하게 하시네. 저희도 그런 의도로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가주님 말씀대로라면 저 자는 콧대가 높아도 너무 높은 것이 아닙니까?”

여씨 가문은 그래도 일등 세가인지라 어느 정도 조력자의 역할을 해낼 능력이 있었다. 일손이나 물자 등 각 방면에서 뛰어나진 않으나 모자라지도 않았다. 도와준다고 하면 감지덕지할 일이지 무엇을 시험한다는 말인가?

여량은 굳은 얼굴로 숙연하게 말했다.

“만약 이 추측이 정확하다면 이 양 공자는… 쉽게 볼 인물이 아니오.”

사람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각자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일등 세가의 조력을 받으려 하면서도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을 보면 그가 가진 인맥이 매우 넓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어쩌면 양준의 눈에 여씨 가문은 조력을 받지 않아도 그만인 존재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덤덤한 태도일 리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오자마자 절박하게 여씨 가문을 포섭하려고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여량은 자신의 추측이 정확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지시했다.

“양 공자가 우리 여씨 가문에서 며칠을 머무르시든, 다시 그와 마주쳤을 때 계승 싸움에 관한 얘기를 하지 마시오. 또 아무것도 드러내지 마시고.”

그는 또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추 소저한테 가서 좀 알아보고 오겠소.”

‘그녀가 데려온 사람이니 양 공자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량은 모인 사람들 중에서 실력이 가장 높지는 않았지만 덕망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그가 가주가 된 뒤로 여씨 가문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의 수단과 사람을 보는 안목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여씨 가문의 후원,

양준은 뒷짐을 지고 생각에 잠긴 채,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정신을 놓고 있는데 당우선이 입을 열었다.

“공자님, 아까 왜 그렇게 관심 없는 얼굴로 일관하셨나요? 그런 태도를 취하시면 그들이 오해할 거예요. 그들을 포섭하여 힘을 키울 생각이 아니셨나요?”

양준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겠어?”

당우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정말 그럴 생각이 없었다면 양준은 추억몽을 따라 이곳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추억몽과 낙소만은 이곳에서 답운구 두 필을 빌리려고 온 것이었다. 양준은 그녀들과 상관없이 바로 중도로 돌아가도 되었다. 하지만 굳이 그녀들을 따라왔다는 것은 다른 생각이 있다는 뜻이었다.

“사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아.”

양준은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당우선은 아연한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며 그의 속마음을 파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태연한 양준의 표정에서 거짓말을 한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도봉도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는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쳐다보았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포섭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중에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양준이 여씨 가문을 설득할 수 있는 수단과 실력을 보여 준다면 여씨 가문은 반드시 그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니… 도봉은 도저히 양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여씨 가문은 친분이 전혀 없어. 만약 그들이 나를 돕겠다면 그저 이득만 따지는 관계일 뿐이야. 난 이런 관계를 좋아하지 않아.”

양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는 같이 묶여 있다고 해도 진짜 위험이 닥치면 그들은 내 등에 칼을 꽂을 수도 있어. 난 얼마나 강한 압박을 받든, 또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든 꿋꿋하게 내 옆을 지킬 동료가 필요해!”

두 혈시는 멍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갑자기 이 공자가 무척 천진난만하다고 느껴졌다. 세상 사람들 전부가 이해 관계로 움직이고 있는데 이득이 없는 관계라면 누가 기꺼이 그를 따르겠는가?

“너희들은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

양준은 두 사람을 향해 웃어 보였다.

도봉과 당우선은 저도 모르게 목을 가다듬으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런 동료는 반드시 있을 거야. 두고 봐.”

당우선은 그만 멍해졌다. 양준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조금 감동하여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도봉도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오늘 공자님께서는 옳은 행동을 하신 겁니다. 만약 포섭할 의도를 내비쳤다면 여씨 가문은 자세를 낮추기만 할 뿐, 의중을 드러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럴 바에는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응.”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씨 가문은 내 진짜 속내를 알고 싶어 할 거야. 나도 그건 눈치챘어. 하지만 지금 그들이 아무리 화려하게 언변을 자랑해도 그저 떠보는 것에 불과할 뿐, 모든 상황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절대 진정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거야.”

지금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양씨 가문에 어떤 공자들이 있는지, 몇 명이나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이 얘기는 그만하자. 난 여씨 가문에 별로 관심이 없거든. 하지만 그들이 가진 물건 하나는 좀 흥미가 동하더군. 하하!”

양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무엇입니까?”

도봉과 당우선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물었다.

“몰라.”

말을 마친 양준은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두 혈시는 그만 아연해졌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분명 관심이 간다고 해놓고 무엇인지 모른다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관심이 간다는 말인가?

양준이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고 도봉과 당우선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점점 더 이 공자를 파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준과 두 혈시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방에서 목욕을 마친 추억몽과 낙소만은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 바로 이때, 여씨 가문의 시녀가 다가와 보고했다.

“추 소저, 가주님께서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겠는지 여쭈어 보십니다.”

추억몽은 젖은 머리를 털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녀는 여량이 찾아온 의도를 바로 파악하고 미간을 찌푸리고는 대답했다.

“안으로 모셔라.”

“예!”

시녀는 공손하게 물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량이 들어왔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여씨 가문은 추씨 가문에 비할 곳이 못 되지요. 누추한 부분이 있다면 양해해 주십시오.”

사적으로 만나는 자리지만 여량은 감히 ‘조카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런 호칭은 한두 번 부를 때는 괜찮았지만, 자꾸 부른다면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쁠 수도 있었다. 여량은 조심스럽고 교활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 이런 잘못을 범하겠는가?

추억몽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숙부님께서 이렇게 급히 찾아오신 것은 양준에 관해 물어보시려는 거지요?”

그녀가 바로 본론을 얘기하는 것을 보고 여량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웃음기를 거두고 엄숙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지금 난세가 닥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니 여씨 가문이 어떻게 이 속에서 자리를 잡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가씨께서 길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추억몽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탁자 옆에 앉아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제가 왜 그를 여씨 가문에 데리고 온 것인지,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궁금하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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