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7장. 평범한 권법술
“이 늙은이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다니. 역시 아가씨는 지혜로우십니다.”
여량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들 여씨 가문은 추씨 가문의 도움으로 오늘날까지 온 것이었다. 추씨 가문은 여씨 가문에 막대한 은혜를 베푼 셈이었다.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추억몽이 양준을 데리고 여씨 가문에 방문했으니 여량은 당연히 생각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추억몽이 양준을 높이 사서 이 참에 여씨 가문을 발탁하려는 것인지, 여씨 가문에게 이 기회에 양준이라는 배에 올라타 순조롭게 위로 가라는 것인지, 이건 손해를 볼 수 없는 장사라는 것인지, 추억몽이 양준의 상황과 인맥을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하는 것인지…….
이 모든 추측들은 짧은 반나절 동안 여량의 머릿속에서 수천 번 맴돌았다.
추억몽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만. 전 숙부님이 현명하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번에 그를 데려온 것은 별다른 의도가 없었어요.”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고요?”
여량은 깜작 놀랐다.
“네!”
추억몽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여씨 가문에 들른 것은 답운구 두 마리를 빌리러 온 것뿐이에요.”
“아…….”
여량은 깜짝 놀랐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했는데, 사실 추억몽은 그저 답운구를 빌리러 여씨 가문에 온 것이라니.
여량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답운구를 빌려드리는 거야 간단하지요. 내일 사람을 시켜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네.”
추억몽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량은 입을 벙긋거리며 하려던 말을 삼켰다. 추억몽은 그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 절대 그를 얕보지 않을 거예요. 그는 종종 뜻밖의 일들을 해내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든요.”
여량은 저도 모르게 표정이 변했다. 추억몽의 이 평가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양준의 힘과 인맥을 차치하더라도 추씨 가문 큰아가씨의 이 말에서 양준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던 추억몽은 또 이를 악물고 분노에 차서 말했다.
“게다가 그놈은 아주 사소한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아요!”
여량은 추억몽의 말투에 담긴 음산함을 느끼고는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그는 양준이 어디서 그녀를 골탕 먹였는지 알지 못했지만, 추억몽을 보니 양준에게 꽤나 당한 것 같았다.
“그는 일을 행할 때, 제멋대로 합니다. 인간 됨됨이는 정의롭기도 하고 사악하기도 하고 아주 끈질겨요! 만약 그와 친구가 되지 않겠다면 한 가지 조언을 드리지요.”
추억몽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 말씀하시지요!”
여량은 진지하게 들었다.
“절대 양준을 적으로 만들지 마세요!”
여량은 멍해졌다가 숙연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에요.”
추억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추억몽이 자신을 내보내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여량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천천히 물러났다. 그가 문을 나서기도 전에 추억몽이 말을 덧붙였다.
“아 참, 만약 이번 계승 싸움에서 한 몫 단단히 잡고 싶다면 지금 기회를 잡으세요. 공자를 일찍 선택할수록 나중에 얻게 되는 이득도 클 테니까요!”
여량은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가씨께서는 어느 쪽에 서실 겁니까?”
계승 싸움에 중도의 다른 7대 가문도 다 참여할 것이니 추씨 가문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추억몽은 추씨 가문에서 영향력이 크니 어쩌면 이번에 그녀가 추씨 가문을 주도할 수도 있었다.
“제 결정은 신경 쓰지 마세요. 여씨 가문의 미래와 운명은 숙부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어느 공자의 줄에 서든지 숙부님께서 내리실 결정이고, 앞으로의 성공과 실패도 다 홀로 감당하셔야 할 것입니다.”
추억몽은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
여량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는 추억몽이 이 말을 한 이유가 지금 말한 조언에 대해 앞으로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허리를 숙인 채, 물러났다.
*이튿날, 날이 밝아오자 도봉과 당우선은 방에서 걸어 나오면서 양준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권법을 연마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동작은 매우 느렸는데 표정에는 빈틈이 없었다. 또 초식도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공자님은 일찍도 일어나셨네.”
당우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젊은 사람이 활력도 넘치고, 좋은 일이지.”
도봉도 웃으며 말했다.
“다만 공자님께서 연습하시는 권법은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는군. 일반인들이 몸을 튼튼히 하기에는 좋아 보여. 특히 노인들에게 말이야.”
당우선은 참지 못하고 입을 막은 채, 웃음을 터뜨렸다.
도봉은 그녀를 흘겨보며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눈치를 주었다. 그도 양준이 지금 연습하고 있는 권법술이 평범하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양씨 가문의 공자였다. 혈시로서 어떻게 공자의 뒷담화를 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좋아한다면 어차피 위험도 없을 테니 권법을 연마하게 내버려 두는 게 나았다.
이때, 도봉의 안색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이상해!”
“왜 그래?”
당우선이 다급히 물었다.
“자세히 봐봐.”
도봉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당우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양준의 동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곧이어 당우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양준의 근육이 한계치로 팽팽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발 아래는 흠뻑 젖어 있었는데 땀이 흘러내려 땅을 적신 것이었다.
떠오르는 햇살을 받자 당우선은 양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마와 드러난 피부에는 맑은 땀방울이 비 오듯 떨어지고 있었다. 권법은 동작이 매우 무거워 보였는데 한 걸음씩 이동할 때마다 지면이 조금씩 흔들렸다.
‘이것은… 분명 커다란 압력을 느낄 때에나 나타나는 현상인데?’
하지만 양준이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은 더없이 평범한 권법술이었다. 심지어 당우선은 방금 전까지 노인이 신체를 단련하는 데 좋다고 평가하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런 위력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
다시 자세히 살펴본 두 혈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지금 아주 강한 압력을 견디고 있는 듯했다. 팽팽하게 불어난 피부에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어디에서 이런 압력이 발생하는 거지?’
도봉과 당우선은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양준의 권법에 깜짝 놀라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신식을 펼쳤다. 그들은 신식을 양준의 몸에 고정시킨 뒤, 눈을 꼭 감고 깊이 느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양준의 동작에 따라 천천히 그 속에 담긴 오묘함을 관찰하고 함께 느꼈다.
쿵-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마치 하늘 전체가 그의 몸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내 격렬한 움직임이 전해지더니 두 혈시가 서 있던 곳이 갑자기 푹 꺼져 들어갔다. 바닥에는 거미줄처럼 갈라진 흔적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도봉과 당우선은 동시에 눈을 떴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눈은 겁에 질려 있었다. 몸의 진원이 저도 모르게 움직이며 몸에 드리운 천지 위엄을 막아내려고 했다.
방금 전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던 무시무시한 압력은 두 사람이 눈을 뜨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빠르게 들끓던 진원은 내보낼 곳이 없이 몸속에서 폭발했다.
두 번의 폭발음과 함께, 도봉과 당우선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뒷걸음질 쳤다.
왈칵-
두 사람은 동시에 피를 토했다. 그제야 좀 괜찮아지는 듯싶었다.
고개를 돌린 양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양준은 방금 전 권법술을 수련할 때 두 혈시가 바로 뒤에 있는 것을 느꼈고, 또 그들이 신식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누구도 그가 권법술을 수련할 때 본 적이 없었고, 또 누구도 그렇게 자세히 수련하고 있는 그를 살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양준이 순간적으로 반응을 하지 못한 탓에 두 혈시는 부상을 입었다.
다급히 권법술을 멈춘 양준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두 사람에게 물었다.
“괜찮아?”
도봉과 당우선은 떨리는 눈으로 괴물을 보듯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에 느낀 압력은 절대 허상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느꼈는데 어떻게 거짓일 수 있겠는가?
다만 그런 위압감 앞에서, 또 인력으로 막아낼 수 없는 공포 앞에서 이 공자는 어떻게 이토록 멀쩡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의 실력으로, 그의 신체적 자질로 진작 몸이 으스러져야 마땅했다. 하지만 지금 양준은 멀쩡한데 오히려 신유 경지의 고수인 자신들이 내상을 입지 않았는가? 만약 이것이 소문이라도 난다면 다른 혈시들이 얼마나 비웃겠는가?
한순간, 도봉과 당우선은 놀랍고도 민망했다.
두 사람은 지금 궁금한 점이 하나밖에 없었다.
‘공자님은 어떻게 그런 압력을 견뎌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