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1장. 양정옥상
방 안에 있는 두 사람의 대화는 한 글자도 빠짐없이 그들의 귀에 들어갔지만 그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어리둥절해졌다.
‘왜 양 공자가 우리 가문의 보물을 노린다는 말 같지?’
‘진짜 노리고 온 건가? 아니면 오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든 건가?’
‘혹할 만한 가치? 거래를 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빼앗겠다는 건가?’
여씨 가문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방 안에서 여사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부질없는 노력은 관두게, 양 공자. 자네를 부른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니네.”
“장로님께서는 당연히 이에 대해 얘기하실 생각이 아니셨겠지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저는 그 보물이 마음에 들었으니 꼭 가져야겠습니다!”
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밖에서 이 말을 들은 여량은 안색이 돌변하며 화난 어조로 끼어들었다.
“양 공자, 사 장로님이 앉아 계시는 양정옥상(陽晶玉床)은 우리 여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입니다. 누구도 그것을 탐낼 수 없습니다.”
오늘 몇 번이나 양준 때문에 화가 났지만 여량은 매번 억지로 참았다. 하지만 지금 양준이 양정옥상을 탐낸다는 말을 듣자, 그는 더 이상 참고 넘어갈 수 없었다.
여량의 어조는 강경하기 그지없었지만, 양준은 그 말을 듣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여사는 양준의 반응을 살펴본 뒤,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양 공자가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양준은 가볍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여 가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양정옥상 얘기는 잠시 넣어 둡시다.”
양준의 말을 듣고 방 밖에 있던 여량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우리 가문의 보물만 노리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다 괜찮아.’
“여사 장로님, 괜찮으시다면 장로님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습니까?”
양준이 여유롭게 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른 여사도 양준의 이런 태도에 조금은 놀라웠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에 대해서 말인가?”
“네.”
양준은 태연자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양 공자가 먼저 얘기해 보게. 잘 들어 보겠네.”
여사는 웃으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한낱 젊은이가 내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것도 모자라, 나에 대해 얘기하자고 하다니 참 재미있군.’
그는 신유 경지 이상에 이른 다음부터 자신을 이렇게 편하게 대하는 사람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었다. 여사도 양준이 무슨 말을 할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양준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전혀 겸손한 기색이 없이 입을 열었다.
“여사 장로님께서는 이미 신유 경지 이상에 이르셔서 무도의 정점에 서 계십니다. 같은 신유 경지 이상의 사람이 아니면 여사 장로께서는 세간에서 적수를 찾아보시기 힘드시겠죠.”
여사가 미소를 지었다.
“신유 경지 이상이 어떤 경지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 정도 경지에 다다르면 외부의 힘에 의지하기 힘들다는 것은 압니다. 그 어떤 영단묘약, 비급이라 할지라도 장로님의 실력이 더 오르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무도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천지의 구속을 벗어날 수 있죠!”
여사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 놀라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 공자가 어떻게 이것을 알고 있지?’
양준은 줄곧 여사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터라 그의 표정 변화를 재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 양준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장로님께서는 이 침대에 앉아 계시면서 한치도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말이죠!”
“그랬지.”
여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이 옥 침대의 힘을 빌려서 수련하며 자신을 강화하려는 것이겠죠. 하지만 제가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실력이 이 정도까지 다다르면 이미 외부의 힘을 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원인은 배제했지요!”
“양 공자가 너무 쉽게 단정을 짓는 것은 아닌가?”
여사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지금 실력으로는 외부의 힘을 빌려서 자신을 강하게 만들 수는 없으나 이 옥 침대를 이용하여 경지를 공고하게 다질 수는 있네.”
“아닙니다. 여사 장로님께서 수련하시는 공법은 양성을 띤 공법이 아니기에 이 위에 앉아 계신 것은 수련과 무관합니다!”
양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여사는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수련하는 것이 양성 공법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실력이 이 경지까지 오르게 되면 온몸의 기운을 거둘 수 있었다. 진원을 펼치지 않는 이상, 신유 경지 정상에 오른 사람도 눈치챌 수 없는 것을 양준이 어떻게 이리 단언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양준은 싱긋 웃으며 해명하지 않았다.
여사는 놀란 얼굴로 더 이상 부인하지 않고 말했다.
“양 공자의 말이 맞네. 내가 여기 앉아 있는 것은 경지와 무관하네.”
양준은 자세를 바로잡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하나뿐이겠죠. 장로님께서 앉아 계시는 이유는… 치료를 위해서죠. 또는… 치료와 연관된 일을 하기 위해서겠죠.”
여사는 실눈을 떴다. 방 밖에 있는 사람들도 숨을 죽인 채, 감히 크게 숨을 들이쉬지도 못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한기를 느끼며 양준의 혜안에 깜짝 놀랐다.
여사는 여씨 가문이 일등 세가를 유지하는 근본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은 여씨 가문의 가장 큰 비밀이었다. 이 비밀이 소문이라도 난다면 어떤 여파를 끌고 올지 모를 일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근처의 일등 세가에서 시비를 걸러 올 것은 분명했다.
여사의 시선에 담긴 위험한 눈빛을 읽은 것인지 양준은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여사 장로님께서는 티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호흡하고 계시지만 은은하게 허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진원의 흐름도 원활하지 않고, 가끔씩 막히는 느낌도 전해집니다. 제 예상이 맞는다면… 경맥이 막혀 있는 것이지요?”
여사는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이 젊은이는 진원 경지 7단계의 수준밖에 안 되는데 안목은 신유 경지 고수보다도 훨씬 정확하군.’
양준의 추측은 지금 그의 상황과 거의 비슷했다.
여사의 표정이 점차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밖에 있는 여씨 가문의 사람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치 들켜서는 안 될 비밀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양준은 웃음을 터뜨리며 여유롭게 말했다.
“만약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렇게 장로님 앞에서 말했더라면 아마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맞네!”
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씨 가문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사람 몇 명쯤 죽이는 것은 큰일이 아니지!”
“하지만 저는 다르죠? 여씨 가문은 저를 죽일 수도, 또 감히 죽이지도 못하죠.”
양준은 시건방진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여사는 실소를 터뜨렸고, 여량 일행도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제가 여씨 가문의 가장 큰 비밀을 알았으니 장로님께서는 무엇으로 제 입을 막으시겠습니까?”
양준은 웃는 얼굴로 여사를 바라보았다.
여사의 표정이 한층 더 이상해졌다. 그는 처음으로 새파란 젊은이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양준의 배경과 신분 때문에 여사는 골치가 아팠다.
“양 공자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얘기하게. 하지만 이 양정옥상은 절대로 내어줄 수 없네.”
그는 처음부터 양준이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순간적인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들어오라고 했던 것이 매우 후회되었다. 결국 돌을 들어 제 발을 찍은 셈이 아닌가?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도 양정옥상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커다란 옥 침대는 적어도 현급 이상의 천재지보였다. 안에 담긴 양기는 순수하고 거대하여 여사가 이 속에 담긴 양기로 경맥 안의 매듭을 풀려고 하는 것이었다.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던 양준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여사 장로님께서 처한 상황에 다른 해결 방법은 없습니까?”
만약 여사가 더 이상 양정옥상의 힘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면, 설득을 해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면 양준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있네.”
양준의 예상과 달리 여사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어떤 방법입니까?”
양준은 순간 희망을 본 것 같았다.
“현단 한 알이 필요하네!”
여사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만약 공자가 현단을 가져온다면 이 양정옥상을 흔쾌히 내어주겠네.”
여사가 대수롭지 않게 얘기를 꺼냈지만, 양준은 그가 말하는 것이 보통 단약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급 단약 말인가요?”
양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맞네. 그것도 현급 중품단이어야 하네!”
여사가 덧붙였다.
양준은 어이가 없었다. 현급 중품단을 제조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서 손에 꼽혔다. 연단에 성공할 확률을 얘기하기 전에 재료조차도 찾기 쉽지 않았다. 현급 중품단치고 백만 냥이 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단을 만들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양준이 알기로는 두 명이 가능했다.
바로 소부생과 하응상이었다.
소부생은 천하에서 으뜸가는 연단사로 현급 상품단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하응상은 전에 현급 하품단을 만들 수 있다고 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분명 실력도 늘었을 터, 지금 현급 중품단을 만드는 것은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