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62화 (362/853)

제 362장. 자네를 보지 못했네

양준의 고민을 알아차린 듯, 여사가 또 웃으며 말했다.

“한발 양보하자면 연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내가 모아 줄 수 있네. 만약 단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아주기만 하면 양정옥상을 넘겨주지!”

“정말이십니까?”

양준이 기쁜 얼굴로 물었다.

여사는 저도 모르게 당황했다. 속으로 양준의 반응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왜 이 녀석이 흥분한 걸로 보이지? 당황하기는커녕 기뻐하는 얼굴인데? 설마 알고 있는 연단대사가 있는 건가?’

하지만 여사는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른 사람으로서,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어 담을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물론이네!”

“하하하하!”

양준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면 쉽습니다. 장로님의 양정옥상은 아마도 주인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양준이 이렇게 자신만만한 것을 보자 여사는 드디어 표정을 바꾸며 다급히 물었다.

“양 공자가 방법이 있는가?”

“네, 물론이죠!”

양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사는 저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 몇 년 동안 그는 단전 때문에 줄곧 양정옥상에 묶여서 외출도 극히 드물게 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지만 그 속에 담긴 고충은 자신만 알 뿐이었다. 그는 방 안에 갇혀 있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만약 정말 그 현단을 얻을 수만 있다면 여사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양정옥상이 아무리 귀해도 자유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힘겹게 침을 삼킨 여사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고 물었다.

“양 공자가 아는 연단대사라도 있는가?”

양준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약왕곡 운은봉에서 한동안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말에 여사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밖에 있는 여씨 가문의 사람들도 놀란 표정을 금치 못했다. 한참 뒤에야 여사가 입을 열었다.

“운은봉? 소부생?”

“네.”

여사의 표정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양 공자가 지금 농담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당연히 아닙니다.”

여사의 표정은 점점 더 이상해지더니 한참 뒤에야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양 공자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다만… 소 대사에게는 제자가 한 명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네. 게다가 그 제자는 여인이었지. 그리고 내가 두 달 전에 직접 운은봉에 간 적이 있었는데 자네를 보지 못했네.”

“두 달 전이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두 달 전에 저는 창운사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저를 보지 못하셨겠지요. 저는 운은봉에서 두세 달 정도만 지내다가 떠났습니다.”

말을 멈춘 양준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장로님께서 운은봉에 들르셨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대사님께 연단을 부탁하지 않으셨습니까?”

여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약왕곡은 지체되었던 일을 다시 시행하고 있었네. 소 대사도 매우 바빠 보였지. 그의 제자 말에 따르면, 소 대사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 같았네. 그래서 운이 좋게 운은봉에 올랐지만 대사의 얼굴은 보지 못했네.”

이 말을 하는 여사의 얼굴에는 민망한 기색 대신 아쉬움만 가득했다. 일등 세가인 여씨 가문의 1인자 여사조차 소부생은 쉽게 만나기 힘들었다.

“그러셨군요…….”

양준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만약 제가 대사님께 현단 제련을 부탁드린다면 아까 말씀하신 것을 지켜 주실 수 있나요?”

“자네가?”

여사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대사가 어떤 인물인데 어찌 자네의 말을 듣겠는가?”

밖에 있던 여량도 끼어들었다.

“양 공자,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여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허풍인지 아닌지는 한번 시도해 보시면 알 게 아닙니까? 제가 운은봉에 있었던 시간이 길지 않지만, 대사님께 현단을 제련해 달라는 부탁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여사는 그만 멍해졌다. 그는 뜨거운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밖에 있던 여량 일행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모두 소부생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그의 현재 지위도 알고 있었다. 여씨 가문의 1인자가 갔음에도 만나지 못하고 온 사람인데 양준이 무슨 수로 현단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무려 현급 중품단이었다. 소 대사가 만들려고 해도 시간과 정성이 꽤나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신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 겁니다. 여사 장로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양준은 웃는 얼굴로 여사를 바라보았다.

여사는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속으로 온갖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 젊은이를 믿어야 하나?’

상식대로라면 양 공자가 그를 속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젊은 치기에 허풍을 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겼던 여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양 공자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네가 이렇게 말을 하니 자네와 소 대사의 관계가 얄팍하지 않다고 생각되네.”

양준은 대답하지 않고 태연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양 공자가 운은봉에서 한동안 머물렀다고 하니 내 몇 가지 질문을 하겠네.”

여사는 양준이 한 말이 사실인지 떠보고 싶은 것이었다.

“얼마든지 물어보시지요.”

여사는 그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소 대사에게 제자가 한 명 있다고 했는데 양 공자는 그 제자를 본 적이 있나?”

양준이 실소하며 말했다.

“장로님께서는 그 제자의 성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않으셨습니까?”

“동경연이라고 하더군. 동씨 가문의 금지옥엽이라지.”

“동씨 가문과 양씨 가문은 친척 관계입니다. 동경연은 제 사촌동생이지요!”

여사는 깜짝 놀랐다. 그제야 뭔가 떠오른 듯,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이 양 공자였구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양준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운은봉에 갔을 때, 누군가 말하더군. 소 대사가 반년 전에 시험을 설계하고 제자를 들였는데 한 남녀가 성공하여 통과했다고. 그 여인이 동경연이었고, 사내는 동씨 가문 아가씨의 호위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 사람이 호위가 아니라 양 공자 자네였구먼!”

“그렇습니다!”

양준도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는 대사의 제자가 아닙니다.”

여씨 가문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표정을 굳혔다.

그들은 양준이 소부생과 이런 관계일 줄은 몰랐다. 소부생의 시험을 통과했다면 소부생의 제자였다. 소부생 같은 연단대사가 뒤를 봐주고 있는데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이다.

여량은 눈을 반짝였다. 그는 양준을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사도 지금은 팔 할 정도 양준을 믿고 있었지만, 그래도 신중을 기하기 위해 마지막 문제를 냈다.

“운은봉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 운 좋게 동 소저에게서 소 대사가 연구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네. 감히 묻겠네만 대사께서 연구하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 양 공자는 알고 있나?”

양준은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진법입니다!”

소부생이 골머리를 앓으며 연구하는 것은 분명 연단술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운은봉을 떠날 때, 하응상을 통해 소 대사에게 전해주라고 했던 연단 영진일 거야.’

여사는 깜짝 놀랐다. 드디어 그는 양준과 소부생의 관계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양준이 이런 정보를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아마도 이런 진법일 것입니다!”

양준은 말하면서 손을 움직여 바닥에 영진을 그렸다.

여사는 다급히 숨을 가다듬고 집중하여 바라보았다. 이 진법은 현묘하고 복잡하여 보고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사도 한 번밖에 보지 못한 탓에 그중의 일부분만 기억날 뿐, 자세히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양준은 손을 휘두르며 온전한 진법을 손쉽게 그려냈다.

“바로 그것이네!”

여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진법을 다 그린 양준은 영진을 지운 뒤, 시선을 들어 여사를 바라보았다.

지금 여씨 가문의 고수는 더 이상 양준을 얕볼 수 없었다. 그는 현단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을 눈앞의 이 젊은이에게 걸고 있었다.

긴장된 표정을 한 여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양 공자, 아까 말한 현단은…….”

“제게 붓과 종이를 주시면 서신을 한 장 써 드리겠습니다!”

“어서 붓과 종이를 가져오너라!”

여사는 다급히 바깥을 향해 외쳤다. 그의 얼굴에는 홍조가 드리웠다.

밖에 있던 사람들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여사의 외침을 들은 그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여량은 다급히 한 사람에게 분부했다.

“어서 다녀오게!”

지시를 받은 신유 경지의 고수도 지체하지 않고 빛의 속도로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붓과 먹이 들려 있었다. 그는 공손하게 들어가 양준의 앞에 물건을 내려 놓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양 공자, 여기 있네!”

여사가 직접 종이를 펼치고 또 붓에 먹을 묻히고는 양준에게 건네주었다.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붓을 받아들었다.

여사는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양준이 서신을 쓰는 것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양준이 쓴 서신은 매우 평범했고 내용도 여사가 생각한 대로였다. 여사에게 현단을 제련해 주라고 소 대사에게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서신을 다 쓴 양준은 곧바로 여사에게 건네주었다.

여사는 진원을 움직여 종이에 써진 먹물을 말린 다음 조심스럽게 접어서 품에 넣었다. 그리고 더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 간다면 지난번처럼 문전박대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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