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6장. 너 솔직히 말해
답운구 다섯 필이 빠르게 달렸다. 추억몽과 낙소만도 뒤쪽에서 점차 거리를 좁히며 따라왔다.
여씨 저택을 떠난 뒤, 도봉과 당우선은 줄곧 안색이 어두웠다. 둘은 양준을 대신해 언짢아하는 듯했다. 그들이 떠날 때 여량은 말투가 진지하고 자태도 대범한 것 같았지만, 사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여씨 가문에서 정말 양준과 교분을 쌓을 생각이 있었다면 마지막 순간에 인사치레로 돈만 건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승 싸움에서 무엇을 경쟁하는가? 결국 각 공자들의 인맥과 수단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재와 물자였다.
여씨 가문에서 만약 정말로 계승 싸움에 참여해 양준의 편에 서려고 한다면, 적어도 인재나 천재지보, 무기, 무공 같은 것을 주는 것이 나았다. 단순히 돈을 조금 준 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세상에서 어떤 경우에는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을 때가 있으며, 특히 좋은 물건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봉과 당우선은 양준과 함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의 자질이 비범하고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혈시는 양준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여씨 가문이 양준을 이리도 무시하자, 두 혈시의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여씨 가문에서 양준의 편에 설 생각이 없으면서 왜 은표를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둘 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행동은 여씨 가문이 양준과 교분을 쌓으려 하면서도 가문의 운명을 양준에게 걸지 않는, 즉 양다리를 걸치고 줄타기를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오직 양준만이 소부생의 면목을 봐서 여량이 은표를 준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가 소부생과 인연이 없었으면 여량은 아마 아무것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두 혈시의 불만을 눈치챈 듯, 추억몽이 눈을 흘겼다.
“할 말 있으면 해.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도봉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럼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추 소저께서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주십시오.”
“그래. 나도 들어보고 싶어.”
“공자님, 제가 헤아려 봤는데, 여량이 준 은표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삼백만 냥입니다. 너무 쪼잔한 것 아닙니까?”
도봉이 목소리를 높여 한마디 했다.
“그럼 넌 얼마나 받고 싶었는데?”
양준은 그를 뒤돌아보고는 실소를 터뜨렸다.
“여씨 가문이 그래도 일등 세가 아닙니까. 고작 삼백만 냥이 말이 됩니까? 좋은 단약 몇 병이나, 비보를 몇 개 사면 금방 없어질 돈입니다. 돈을 주려면 적어도 천만 냥은 주어야 여씨 가문의 신분에 맞죠.”
“맞습니다. 너무 쩨쩨합니다.”
당우선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백만도 적지 않아. 난 지금 수중에 한 푼도 없으니 삼백만 냥 정도면 쓸모가 많지.”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계승 싸움이 시작되면, 이 정도 돈으로는 쓸 곳이 없을 겁니다. 여량은 이 사실을 알고도 이런 짓을 벌인 겁니다. 만약 추 소저께서 여씨 가문과 아무 관계가 없었다면 제가 혼쭐을 내주고 은표를 그 늙은이 입에 쑤셔 넣었을 것입니다.”
도봉이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
추억몽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여량이 확실히 과하게 신중했지. 그래도 그를 탓해서는 안 돼. 이건 너희 공자가 연기를 너무 잘한 탓이니까.”
“어째서 여씨 가문의 치졸함을 저희 공자님 책임으로 떠넘기시는 겁니까?”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 여씨 가문에 머무는 동안 어떻게 행동했는지.”
추억몽은 말하는 한편, 답운구를 몰아 양준의 옆으로 가서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이 자식, 지금 형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는 있어? 왜 아직도 그렇게 멋대로 행동하면서 여씨 가문의 도움을 내팽개친 거야?”
양준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내 말 듣고 있어? 아군 하나를 잃은 게 아니라 적이 늘어난 셈이야. 그걸 몰라? 이러다 보면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진다고!”
추억몽이 금세 화가 나서 말했다.
“나한테서 자신이 얻을 이익만을 쫓는 자는 나와 동맹을 맺을 자격이 없어.”
양준이 냉소했다.
“당연히 이익을 위해 동맹을 맺는 거지.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너한테 얘기해 봤자 뭐 하겠어. 내가 하는 일에 남의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아!”
추억몽은 말문이 막혀 눈을 희번덕거리다가 화가 나서 되는 대로 내뱉었다.
“너 딱 기다려! 이번에 중도로 돌아가면 다른 양씨 공자와 손을 잡을 거야! 네놈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콧대를 반드시 눌러 주겠어.”
도봉과 당우선은 깜짝 놀라 얼른 나서서 말했다.
“추 소저,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양준은 연신 냉소하며 말했다.
“해봐. 내가 나중에 중도에서 추씨 가문의 이름을 지워 버릴 테니까. 그때 가서 날 탓하지나 말라고.”
추억몽은 잠깐 멍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이처럼 매정한 말을 쏟아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도봉과 당우선도 깜짝 놀랐다.
‘공자님께서 좀 지나치셨어. 추 소저께서 마음이 크게 상했을 거 같은데.’
그들은 조마조마해서 양준을 대신해 추억몽을 몇 마디 위로해 주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추억몽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방그레 웃더니 눈에 이채를 띠고 물었다.
“너 솔직히 말해. 그 요녀를 제외하면 널 도와줄 만한 인맥이 몇이나 되고, 네가 포섭할 수 있는 세력이 몇이나 돼?”
양준이 이처럼 방자하게 굴자, 추억몽은 곧 무언가를 알아채고서 곧바로 흥미를 가졌다.
양준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코웃음을 치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없어. 나 혼자뿐이야.”
“내가 네 말을 믿으면 사람이 아니다.”
*남강(嵐江)은 동서로 굽이굽이 흐르며 마치 기다란 용처럼 대지를 둘로 갈라놓았다. 또한 남강의 너비는 수백 장이 넘었고, 물살이 강했다. 강기슭에는 물보라가 하얗게 일고 있었다.
양준 일행은 남강 기슭에 이르러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멈췄다.
“거의 다 왔습니다. 남강을 건너 풍주(豊州)를 지나면 바로 중도입니다. 답운구의 속도라면 사흘 안에 도착할 겁니다.”
도봉은 양준이 집을 떠난 지 오래되어 돌아가는 길을 잊었을까 걱정됐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
양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여러분은 쉬고 계십시오. 저는 강 건널 배를 찾아오겠습니다.”
도봉은 웃으며 잠깐 동안 신식을 풀어 감지하더니 몸을 돌려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일행은 모두 진원 경지 이상이라 남강의 너비가 몇백 장이 되어도 쉽게 날아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날 수 있지만 답운구는 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룻배를 찾아 답운구를 싣고 건너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배 한 척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도봉은 뱃머리에 서서 그들에게 외쳤다.
당우선은 방그레 웃더니 자신과 도봉의 답운구를 끌고 가며 말했다.
“이제 갑시다.”
사람 넷과 요수 다섯 필이 막 배에 오르려고 하는데, 뱃사공이 눈썹을 찌푸리며, 도봉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어찌하여 제게 말도 다섯 필이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소?”
낙소만은 이 말을 듣고 몰래 웃었다.
답운구는 생김새가 확실히 말과 비슷하지만, 같은 종류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반인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추억몽과 당우선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도봉이 말했다.
“말이 있으면 뭐 어떻소? 말은 안 실어 주는 거요?”
“그건 아니지만, 말도 실어다 주려면 돈을 더 받아야지요.”
뱃사공은 쉰 살이 넘은 노인으로 도봉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도봉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돈이야 내면 되지 않소. 떼먹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뱃사공은 그 말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맙네 그려. 그럼 어서 배에 오르시오.”
일행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모두 신분이 낮지 않은 데다 무인으로서 뱃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평범한 노인이 무뢰배 같은 면이 있다고 해서 따질 생각은 없었다.
배는 크지 않았지만 한꺼번에 사람 다섯과 요수 다섯 마리를 태울 수는 있었다. 뱃사공의 능숙한 노질에 따라 배는 경쾌하게 강 중심으로 나아갔다.
뱃전에 선 당우선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배를 타본 적이 없어서 흔들거리는 느낌이 영 낯설어. 자주 타는 사람이 아니면 금방 기절하겠는걸?”
도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네. 강가에서 사는 것도 힘들겠어.”
추억몽과 낙소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 그 말에 찬성한다는 표정이었다. 둘 다 한 번도 배를 타 본 적이 없는 듯, 흔들리는 배에 몸을 맡긴 채 물결치는 강물을 가리키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강물이 이렇게 거친데 바다는 어떨까?”
도봉은 말하다 보니 말이 샛길로 빠졌다. 그는 비록 실력이 강하고 견문이 넓었지만 평생 바다에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뱃사공에게 물었다.
“노인장, 바다에 가 본 적 있소?”
뱃사공은 그 말을 듣고 무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평생 남강에서 살았는데, 바다를 언제 가봤겠소? 듣자 하니 바다에서 다니는 배들은 길이가 몇백 장에 이를 정도로 크다더이다. 아무리 파도가 거칠어도 배 위는 안정감 있다고 하오. 잔에 물을 가득 채워 놓아도 한 방울 넘치지 않는다지.”
“정말이오?”
도봉은 믿기 어렵다는 듯이 가볍게 허허 웃었다.
“왜 사실이 아니겠소. 생각해 보시오. 배가 그처럼 큰데 바다의 파도가 아무리 세차다 한들 배를 흔들 수는 없을 것이오.”
뱃사공의 말에 혈시 두 명과 추억몽, 낙소만은 금세 흥미로워했다. 그들은 뱃사공의 말을 다 믿는 건 아니었지만 여정이 지루하기에 이야기 삼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