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9장. 여씨 가문뿐입니다
신유 경지 세 명을 감싸고 있던 안개가 고함소리와 함께 신속하게 흩어졌다. 이윽고 도봉이 온몸으로 붉은빛을 반짝이며 신형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더욱 험상궂어졌고, 얼굴의 흉터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패혈광술이었다.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너는 가서 공자님을 도와.”
도봉은 담담하게 한마디 말하고 나서 음산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세 명을 바라보았다.
당우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날려 싸움터에서 훌쩍 빠져나가더니 재빨리 양준 쪽으로 날아갔다.
한창 양준과 격전을 벌이던 중년 남자는 당우선이 날아오는 것을 보자 더는 머무를 수가 없었다. 그는 이번 계획에서 양씨 가문 공자를 죽이는 임무를 맡았을 뿐이었다. 그의 실력으로는 혈시와 맞붙어 싸워 봤자 승산이 없었다.
그는 당황한 나머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양준을 잠깐 방해하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도망쳤다. 그가 떠나자마자 당우선이 양준의 곁에 다가와 다급하게 물었다.
“공자님,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양준이 손을 휘두르자, 천 개의 꽃잎이 길게 줄을 지어 중년 남자를 쫓아갔지만 이미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양준이 다급하게 말했다.
“가서 놈을 잡아와.”
당우선은 잠깐 어리둥절해 있다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곧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우선은 중년 남자를 들고 날아왔다. 신유 경지 3단계 무인은 당우선 앞에서 너무도 무력했다.
그는 이미 온몸의 진원이 봉인되어 있었다. 당우선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양준 앞에 내동댕이쳤다.
중년 남자는 잿빛이 된 얼굴로 겁에 질려 당우선을 바라보았다. 아마 이제서야 혈시의 무서움을 실감한 것 같았다. 중년 남자는 처연하게 웃더니 양준에게 시선을 돌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소용없다. 양 공자! 내 입에서는 어떤 단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양준은 씩 웃으며 침착하게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코앞에 이르러서야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뭘 물어본다고 한 적이 있었나?”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핏빛 장검이 유려한 선을 그렸다. 진원이 봉인된 중년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은 채로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내 비밀을 아는 자는 내 사람이 되거나 죽어야 한다.”
양준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당우선은 순간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의 말속에는 뼈가 있었다.
‘이 남자는 도대체 작은 공자님의 무슨 비밀을 알게 되었을까? 공자님께서 과감하게 살인하여 입을 막을 정도의 비밀이 뭐지? 그럼 난? 나도 혹시 무의식중에 작은 공자님의 비밀을 알게 된 건 아닐까?’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양준은 이미 장검을 거둬들이고 담담하게 말했다.
“가서 추억몽과 낙소만을 도와주도록.”
“예!”
당우선은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뛰쳐나갔다.
양준은 그 자리에 서서 멀리 바라보았다. 추억몽과 낙소만은 비록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상태였다. 상대방은 그녀들을 해치려는 생각이 전혀 없고, 그저 그녀들의 발을 묶어 둘 뿐이었다.
당우선이 그쪽으로 갔을 때, 상대방의 두 명은 아예 반응하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했다.
다른 한쪽, 도봉과 신유 경지 고수 세 명도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아마 상대가 일이 틀어진 것을 알고, 패혈광술을 펼치는 혈시와 싸우기 싫어 도망을 친 듯했다.
도봉이 한창 그들을 바싹 따라가고 있었다.
잠시 뒤, 추억몽과 낙소만은 당우선의 인솔 하에 양준과 합류했다.
두 여인의 표정에는 긴장감과 걱정, 그리고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추억몽이 의문스러운 눈초리로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넌 어떻게 다친 곳도 하나 없이 멀쩡해? 아까 공중에서 한 대 맞고 떨어진 것 아니었어?”
당우선은 그녀의 말을 듣고 걱정되어 관심 어린 눈빛으로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방금 전 양준이 위험에 빠졌을 때, 그녀는 한창 상대방 고수들에게 발이 묶여 양준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물론 이쪽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추억몽은 달랐다. 사전에 자신의 생명에 위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당연히 양준 쪽을 더 주시하고 있었다.
“공자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당우선은 양준이 자신의 상태를 속이고 있을까 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다쳤는데 괜찮아.”
양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사실 그는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 전 상황이 위험했던 만큼 만약 그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고 하면 의심만 살 뿐이었다.
“너라는 인간은 진짜…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니까.”
추억몽은 무거운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땅 위의 시체 세 구를 보자 당우선도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이미 죽었지만 그녀는 죽은 세 사람 모두 경지가 양준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중 한 명은 신유 경지였다. 그러나 양준은 아무 도움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세 명을 모두 죽였다. 심지어 신유 경지 3단계 무인과 꽤 오래 대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괜찮은데, 너는 어때?”
양준은 고개를 돌려 당우선을 바라보며 화제를 돌렸다.
추억몽과 낙소만은 그제야 당우선이 심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당우선은 옷가지가 찢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채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있었다. 체내 원기가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것이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흰 팔뚝에는 기다란 상처가 있었는데 지혈은 했지만 옷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의 실력으로 만약 혼자서 세 명과 싸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녀는 희생을 감수하고 도봉에게 패혈광술을 펼치게 하고 자신이 몸을 빼 양준을 구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녀와 도봉은 상처를 입지 않고 신유 경지 고수 세 명과 싸워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준의 안위와 관계되는 일이었기에 그녀와 도봉은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일 대 삼으로 적을 상대하는 것이 버겁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우선은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도봉 역시 패혈광술을 펼치면 생명력이 줄어드는 줄 알면서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혈시의 충성심이 이번 전투에서 특히 잘 드러났다.
“저는 괜찮습니다. 공자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우선은 감동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제자리에서 몇 분도 채 기다리지 않았는데, 도봉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그의 몸에는 살기가 짙어 마치 마두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추억몽마저도 그 살기에 오싹해질 정도였다.
도봉은 손에 사람 머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바로 방금 전에 두 혈시와 싸우던 고수들이었다.
급히 돌아온 그는 머리를 땅에 던지더니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자진했습니다. 그리고 한 명은 도망쳤습니다.”
그가 계속 뒤쫓아오자 신유 경지 7단계, 5단계 고수는 중상을 입은 뒤 곧 혀를 깨물고 자진했다. 실력이 가장 강한 자만이 황급히 도망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쪽도 다 죽었어.”
당우선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재미있군. 이 자들의 배후도 제법 능력이 있는 모양이야.”
양준은 음산한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자객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혀를 깨물고 자진할 리가 없었다. 죽을지언정 어떤 정보도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니 정말 대단한 능력이었다.
“공자님의 행방을 미리 알 법한 곳은 여씨 가문뿐입니다.”
도봉이 얼굴에 살기를 짙게 드리우고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암살은 바로 그와 당우선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상대방은 어떤 수단을 썼는지 모든 이의 기운을 깔끔하게 숨겨 두 혈시가 전혀 감지하지 못하게 했다. 만약 결정적인 순간에 양준이 경계심을 높이지 않았다면 그자들은 목적대로 양준을 죽일 수도 있었다.
실력이 막강한 두 혈시의 보호를 받고 있는 양씨 가문 공자가 살해당했다. 만약 이런 소문이 퍼지면 혈시당은 크게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두 혈시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 목숨으로 죗값을 치러야 할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양준의 경계심이 본인의 목숨뿐만 아니라 도봉과 당우선의 목숨도 구한 셈이었다.
도봉은 감격하는 한편,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여씨 가문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악의적으로 덤터기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패혈광술을 펼치는 바람에 살기가 들끓고 전의가 불타올라 냉정하게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양준에 대한 여씨 가문의 태도도 그를 화나게 했었다. 자연스럽게 그는 이 기회를 빌려 분풀이하려 했다.
이 말을 들은 추억몽은 안색이 달라지며 급히 말했다.
“여량은 절대로 이런 자충수를 둘 사람이 아니야.”
도봉은 추억몽의 신분과 체면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여량은 그럴 인물이 아니지만, 여씨 가문의 다른 이들까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추억몽은 순간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양준을 바라보며 그가 시비를 가려 주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