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1장. 기꺼이 받아들일게
“공자님께서는 참 세심하십니다.”
도봉이 허허 웃었다.
양준이 눈을 반짝이더니 이상야릇하게 웃음을 흘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러 세력이 있으니 분명 더 많은 고수가 있겠지.”
두 혈시의 안색이 변하더니 놀라서 말했다.
“매복한 자들이 더 있을 거라는 말씀입니까?”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가는 길에 매복한 자들은 그게 다일 거야. 그렇다면 그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고수들은 어디로 갔을까?”
몇 사람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내 양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래. 보아하니 우리 형님들도 가는 길이 평탄하지는 않겠어. 이는 모든 양씨 가문 자제를 겨냥한 것으로 아주 커다란 계획이야.”
만약 양준의 추측이 맞는다면 그림이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여러 세력이 양씨 가문의 자제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죽이려 하다니. 그리고 양씨 가문 공자들의 머리 위에서 맴도는 금우응이 오히려 매복하는 자들에게 방향을 알려 주는 등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양준 쪽에는 그나마 아무 일도 없었다지만, 다른 양씨 가문의 공자들은 어떨까? 만약 정말 죽는 이가 있다면? 누군지는 몰라도 배후에서 이 일을 기획한 사람은 실력도 대단하고 담도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너희 양씨 가문에서 척을 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자업자득이지.”
추억몽이 비웃듯이 한마디 했다.
“계승 싸움은 연루된 사람이 많아서 원수 가문의 소행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워.”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추억몽은 이미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이 아연실색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뭐, 가문에서 어떻게든 조사하겠지. 우리는 더 생각하지 않아도 돼.”
양준은 담담하게 웃더니 몸을 일으켜 한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도봉과 우선은 따라와.”
혈시들은 차가운 표정으로 급히 일어나 양준을 쫓아갔다.
추억몽과 낙소만은 함께 입을 삐죽거렸다.
“비밀도 많다니까.”
어둡고 구석진 곳에 이르러서야 양준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두 혈시를 바라보았다.
도봉과 당우선은 양준이 왜 그들을 불러냈는지 알 수 없어 긴장했다. 그들은 오늘의 일 때문에 자책하고 있었다. 비록 앞으로는 반드시 조심하리라고 다짐했지만, 이미 발생한 일은 어쩔 수 없었다.
‘공자님께서는 우리를 훈계하시려는 건가?’
도봉과 당우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 다 부끄러운 마음에 어둠 속에서도 얼굴이 붉어졌다.
“상처 입은 곳은 어때?”
두 혈시가 한창 의문스러워할 때, 양준이 물었다.
양준이 상처에 대해 물을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도봉은 어리둥절했다. 양준의 친절한 물음에 두 혈시는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도봉이 정신을 차리고 얼른 대답했다.
“몸이 조금 허하여 육 할의 실력만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저보다 나으나, 역시 내상을 조금 입어 회복하려면 며칠 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선과 제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공자님을 댁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당우선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이제 무모한 행동은 삼갈 것입니다. 경솔하게 행동했던 일에 대해서는 돌아간 뒤,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에 두 알의 단약을 내밀며 말했다.
“한 명이 하나씩.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먹도록.”
혈시들은 잠깐 머뭇거렸다. 그들은 양준이 왜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들을 해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전혀 주저하지 않고 단약을 받아 입에 넣고 삼켰다.
‘그냥 상처를 치료하는 평범한 단약 같은데… 기껏해야 지급 상품 정도?’
혈시들은 단약을 맛보며 곧 등급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왜 꼭 무슨 신비한 묘약을 꺼내는 것처럼 행동하시지?’
두 혈시는 의아했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양준이 그들에게 범급 단약을 복용하게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성의였다.
“내가 너희를 포섭하려 한다고 생각해도 되고, 죽기 싫어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해도 돼. 가는 길에는 너희에게 의지해야 하니, 이 약을 먹고 보다 빨리 회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주는 거야.”
양준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혈시들은 더욱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아니 지급 상품의 단약을 주면서 빠른 회복을 운운하다니?’
두 혈시는 이해할 수가 없어 몰래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서 약 기운을 흡수하도록. 약효가 낭비되면 안 되니까.”
양준이 손을 흔들었다.
“예.”
도봉과 당우선은 대답하고서 뒤돌아 몇 걸음 걷다가 멈추었다. 두 혈시는 마주 보고 서로의 눈빛 속에 숨어 있는 뜻을 간파하자 재빨리 뒤돌아 양준과 마주했다.
“왜 그래?”
양준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의아한 눈빛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작은 공자님……!”
도봉이 진지한 얼굴로 정색하며 말했다.
“만약 가문에서 이번 계승 싸움에 혈시들의 참여를 허락한다면, 비록 실력은 미천하나, 저와 우선은 공자님의 곁에서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고 싶습니다.”
양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봉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하하 웃으며 말했다.
“기꺼이 받아들인다.”
도봉과 당우선은 희색이 만면하여 황급히 땅에 반쯤 무릎을 꿇은 채 절절하게 말했다.
“그럼 저희는 혈시당에서 불러 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반드시 너희를 부르도록 할게.”
양준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도봉과 당우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그러고는 양준의 분부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하여 약 기운을 흡수했다.
양준은 두 혈시가 좌선하는 곳을 바라보면서 벅찬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한참 뒤에야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두 혈시의 마음을 얻게 되었군!’
오는 길에 비록 의식적으로 수단을 펼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심코 한 행동이었다. 결국 여러 가지 신비스러움과 괴이함이 도봉과 당우선의 마음을 정복했고, 그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계승 싸움에서 혈시들의 참여 여부는 미지수라지만 미리 준비해 두면 좋지.’
만약 혈시들이 참여하게 된다면 양준 쪽에는 두 명의 강한 조력자가 추가된 셈이었다. 그리고 도봉의 말도 절절한 것이 결코 불복하는 마음이 없었다. 두 혈시가 양준 앞에서 스스로 부하라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양준은 고개를 들어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번 계승 싸움에 대해서도 기대를 품게 되었다.
*밤새 평화로웠다.
다음날 날이 밝자, 도봉과 당우선은 눈을 뜨고 마주 보았다. 두 혈시는 서로의 눈빛에서 짙은 기쁨과 놀라움을 읽을 수 있었다. 하룻밤 동안 좌선하고 운기한 결과, 둘은 상처가 완쾌되었다. 원래 보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하룻밤 만에 호전된 것이다.
지난밤 양준이 준 단약을 흡수하면서 느꼈던 현묘함을 떠올리면, 두 혈시는 오리무중에 빠진 것처럼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양준이 준 것은 분명 지급 상품 단약이었다. 평소라면 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등급의 단약이었다. 만약 양준이 준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결코 복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에게는 천급 상품의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이 있었다.
그들이 보잘것없다고 여겼던 지급 상품 단약은 흡수하는 과정에서 믿을 수 없이 강한 약 기운을 뿜어 내었다. 약 기운들은 경맥과 육체를 훑으면서 이번에 입은 상처뿐만 아니라 이전 전투에서 얻은 내상도 모두 치료해 주었다.
혈시는 태어나자마자 전투를 위해 양성되었다. 양성된 혈시는 모두 수백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겪어 왔으며 사람마다 모두 내상이 있었다. 이런 상처는 단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여서 약물을 조제해 복용하고 장기간 요양해야만 완쾌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혈시로서 요양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도봉은 내상이 있어 진원이 가동될 때면 옆구리 아래쪽이 찌르는 듯이 아팠다. 하지만 그는 이런 미묘한 통증을 무시했다. 당우선도 내상이 있어 분노할 때마다 명치가 시큰시큰하게 쓰렸다. 이는 독에 중독된 뒤에 깨끗이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상은 매우 까다로워 단시간 내에는 전투력과 진원 가동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언젠가는 그런 내상 때문에 죽게 될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둘은 이전 전투에서 입었던 내상마저 모두 사라졌음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지급 상품 단약의 효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 혈시는 곧 양준이 준 단약에 무언가 신기한 효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 알 수 없는 물건은 필히 희소하며 값어치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한순간, 혈시들은 양준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격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양준은 일찍 깨어났다. 심지어 밤새도록 쉬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혈시들은 약 기운을 흡수하며 치료하고 있었고, 추억몽과 낙소만은 여자였기에 주위를 경계하는 일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두 혈시는 양준을 바라보면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둘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려는데 양준이 그들을 담담하게 힐끗 보고는 물었다.
“이 근처는 누구의 세력권이지?”
도봉은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는 천원성(天元城)의 세력 범위일 것입니다.”
천원성은 성곽의 이름이자 세력의 이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