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2장. 천하제일성
“천원성은 지위가 어떻게 돼?”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일등 세력입니다만 어찌하여 물으십니까?”
도봉은 양준이 왜 갑자기 천원성에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양준은 흰 송곳니를 드러내고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소에는 교활함이 묻어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추억몽이 한쪽에서 입을 삐죽거렸다.
“또 뜯어먹을 곳을 찾은 거잖아.”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양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가 부인하지 않는 것을 보자 혈시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씨 가문은 이렇게 멀리서 일어난 일에도 애꿎은 봉변을 당하고, 잘못한 것도 없이 갈취를 당했는데, 근처에 있는 천원성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양준이 천원성의 세력 범위 내에서 습격을 받았으니 크든, 작든 천원성의 책임이 어느 정도 있었다. 문제는 천원성의 고위층들이 눈치가 얼마나 있을지였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는 사소한 일도 큰 사건으로 번질 수 있었다.
“천원성에 전갈을 보낼까요? 전하실 말씀이 있으면 제가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들도 뭐라고 하지는 못할 겁니다.”
도봉은 이미 경험이 쌓여 양준의 말에 당장 천원성으로 달려가려 했다. 심지어 당우선도 흥분된 표정으로 도봉 대신 자신이 가겠다며 나섰다.
“됐어. 이런 일은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제 출발하자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으니 중도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네.”
“둘의 상처는 좀 어때? 좀 더 쉬는 게 낫지 않겠어?”
추억몽이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도봉은 당우선과 눈을 마주치더니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도봉이 이렇게 말하자, 추억몽도 더 말하지 않았다.
답운구가 없어 다섯 명은 날아서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속도가 많이 느려졌다.
하루 밤낮이 지나자 몇몇 사람들의 실력 차이가 훤히 드러났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날았지만 양준은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는 듯이 표정이 담담했다.
추억몽은 살짝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두 신유 경지를 따라잡느라 그녀는 진원 소모가 심했다. 낙소만은 더욱 힘들어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의 뒤를 따라갔다. 당우선이 지켜보기 힘들어 일부러 그녀를 돌보지 않았다면, 낙소만은 벌써 한참 뒤처졌을 것이다.
외진 길을 택했기에 더는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들은 밤에 잠깐 멈춰서 쉰 다음, 이튿날 다시 길을 떠났다.
족히 여드레가 지나서야 멀리 거대한 성이 보였다.
드디어 중도에 다다랐다!
중도성은 마치 천하의 중심인 것처럼 광활하여 언어로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수백 리 떨어져 있어도 그 윤곽을 볼 수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중도를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남북이 서로 보이지 않는 천하제일성!
성의 남쪽에 서면 성의 북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중도는 마치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같이 광활한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끔 성안의 한쪽은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치는 상황에서도, 다른 한쪽은 푸른 하늘에 해가 높이 떠 있는 청명한 상황이 발생했다.
신유 경지 고수라 하더라도 성곽을 완전히 가로지르려면 날아서 적어도 두세 시진은 걸렸다. 이로써 성곽의 크기와 규모를 알 수 있었다. 천하제일성이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거의 소국과 맞먹는 규모의 성곽이 어떻게 지어진 것인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기록에 따르면 성곽은 오래전부터 세상에 존재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중도 8대 가문은 세상에서 가장 큰 성곽을 장악하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크기를 확장해 나갔고, 지금의 정세를 유지하게 된 것이었다.
다섯 명은 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중도를 바라봤다.
“이곳에서 평생 살아왔지만, 돌아올 때마다 감회가 새롭네.”
당우선이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도봉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뿐만 아니라 중도 밖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성곽을 바라보고 감탄하며 걸음을 멈췄다. 이곳에서 장기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나 처음으로 찾아오는 사람이나 매한가지였다.
몇 년 동안 떠나 있던 거대한 성곽을 바라보며 양준은 표정이 평온했다. 오직 부모님을 떠올릴 때에만 감정의 파문이 일었다.
추억몽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는 양준을 힐끗 보며 말했다.
“나랑 소만이는 여기서 이만 따로 갈게. 우리가 같이 있는 것을 본다면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양준은 가타부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봉이 문득 미소를 지으며 추억몽을 바라봤다.
“추 소저, 이번 계승 싸움에서 추씨 가문은 저희 작은 공자님 편에 서는 것이 맞습니까?”
추억몽은 허허 웃으며 눈도 깜빡하지 않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내가 너희 공자랑 친분이 있다고 한들, 그런 건 쉬이 결정할 일이 아니지. 나도 고민을 좀 해봐야 해.”
“뭘 더 고민하십니까. 추 소저께서 다른 공자님을 아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력도 모르는데 경솔하게 추씨 가문 전체를 그들에게 거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듯하군요. 물론 판돈을 아무렇게나 걸으셔도 추씨 가문의 저력이 크게 영향을 받지도 않겠지만요. 하지만 저희 공자님은 기대를 걸어 볼 만한 분인 걸 아시지 않습니까?”
당우선이 방그레 웃으며 말이 나온 김에 밀어붙였다.
추억몽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무엇을 기다리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참 동안 기다려도 양준이 입을 열려 하지 않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화가 나서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너희 공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이 말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지금 본인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계승 싸움에서의 공자님의 실력 발휘를 말하는 걸까?’
도봉과 당우선은 눈알을 굴리더니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무슨 큰 비밀을 발견한 듯이 둘 다 추억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추억몽은 얼굴빛을 바꾸지 않은 채 여전히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봉은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 불을 지폈다.
“공자님과 추 소저께서 손을 잡으신다면 정말 완벽한 조합이 될 겁니다. 중도의 미래도 두 분께서 좌지우지하시게 될 거고요. 그리고 나중에 또 좋은 소식이 생기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흠흠…….”
당우선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러니 추 소저께서는 주저하지 마세요.”
“허허…….”
추억몽은 담담하게 웃었다. 마치 도봉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난감해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고,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양준을 힐긋거릴 뿐이었다.
도봉이 뭔가를 더 말하려는데 양준이 입을 열었다.
“다음에 보자.”
이 말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도봉과 당우선은 더 노력해 양준에게 큰 동맹을 맺어주려 했으나 뜻밖에도 양준이 먼저 작별인사를 건넸다. 양준은 말을 마치고 곧 발걸음을 옮겼다.
두 혈시는 한참이나 넋을 놓고 있다가, 이윽고 추억몽에게 공수하고는 급히 양준을 따라갔다.
추억몽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빠르게 떠나가는 양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양준이 이렇게 깔끔하게 작별을 고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저 자식! 너무 예의가 없는 것 아냐? 그래도 동고동락하던 사이인데, 일언반구 없이 그냥 가 버리다니.”
낙소만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추억몽은 눈을 반짝이며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설마 내 심중을 눈치챈 건가? 아마 눈치챘겠지. 그래서 더 왈가왈부하지 않고 떠난 거야. 양준,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었어.’
“언니, 화나지 않아? 어떻게 그렇게 무시당하고도 가만히 있어?”
낙소만은 추억몽 대신 억울하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됐어, 먼저 우리 집에 가자.”
추억몽은 심호흡을 크게 하며 낙소만을 잡아당겼다.
“그래.”
“우리 집에 도착하면 먼저 자미곡에서 걱정하지 않게 전갈을 보내자.”
“알겠어.”
“이렇게 오랫동안 범홍 사형을 못 봤는데 그립지 않아?”
추억몽이 웃으며 물었다.
“아니, 무슨 영문인지 오랫동안 생각나지 않았어.”
낙소만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건 네가 멋진 바깥 세계를 봤기 때문이야!”
두 소녀는 일 년 전에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그러나 능소각에 함께 가면서부터 지금까지 동고동락하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둘은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친자매처럼 정이 들었다. 때문에 낙소만은 추억몽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양준과 혈시들은 중도 남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도봉과 당우선은 양준의 뒤를 따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준이 왜 추씨 가문처럼 큰 세력에 아무 관심이 없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여씨 가문이 성에 안 찬다고 한들, 추씨 가문은 다르잖아. 8대 가문 중 어느 한 곳이라도 포섭해 두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텐데?’
게다가 추씨 가문에서 추억몽의 지위가 높아 추억몽을 설득하면 추씨 가문을 포섭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도봉과 당우선은 양준에게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었다. 둘은 내내 양준의 뒤를 따라가며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참 뒤에 당우선은 조용히 도봉에게 경기(勁氣)를 날렸다. 도봉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깜짝 놀라 낮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에 당우선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도봉을 흘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