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73화 (373/853)

제 373장. 중도에 돌아오다

양준이 그들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속도를 늦추고 혈시들과 거리가 좁혀졌을 때, 양준은 고개를 돌려 힐끗 보고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상했어?”

도봉과 당우선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이상한데?”

양준의 얼굴빛은 평상시처럼 담담했으며 아쉬움이나 후회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공자님, 왜 추 소저를 그렇게 보내셨습니까? 추씨 가문의 위세가 대단한 걸 아시지 않습니까. 계승 싸움에서 힘을 보태준다는 약속만 받아내면 물자든, 사람이든 지원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봉도 전혀 꺼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와 당우선은 가문 내에서 혈시들이 계승 싸움에 참여할 수 있게 허락한다면 양준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전처럼 양준의 일에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추억몽에게는 아직 망설임이 남아 있어, 확답을 꺼려 하잖아.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그걸 쉽게 없앨 수는 없겠지.”

“아닙니다. 오는 길에 보니 추 소저는 공자님께서 하시는 일마다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공자님을 많이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요. 우선한테 공자님에 대한 좋은 말도 여러 번 했습니다.”

도봉은 아연실색해서 말했다.

“맞습니다.”

당우선도 고개를 끄덕였다.

“추억몽이 날 좋아한다고? 도봉아,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양준은 놀란 표정으로 도봉을 바라보다가 실소하고 말았다. 도봉도 적은 나이가 아닌지라 양준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한 일들 때문에 호감을 가질 수는 있겠지. 내가 또래보다 강한 건 사실이니까.”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내가 남다르다고 여길지는 몰라도, 나를 좋아한다고 볼 순 없어.”

도봉과 당우선은 양미간을 찌푸리고서 여전히 양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추억몽이 누구야? 추씨 가문의 장녀이자 추씨 가문 젊은 세대 중 1인자야. 그런 사람이 본인의 앞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도봉과 당우선은 잠시 생각하더니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추억몽은 구애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데다, 중도에서도 유명 인사였다. 수많은 구애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고 중도의 어느 공자와도 엮이지 않았다.

이는 추씨 가문의 가주 추수성이 추억몽에게 일찍 장가드는 이는 추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추수성의 말은 얼핏 들으면 딸을 아껴 남의 집으로 보내지 않으려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추씨 가문에서 가문의 조력자를 포섭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뿐이었다.

한마디로 추억몽의 미래는 그녀 자신이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반드시 추씨 가문의 이익을 위해 장기판 위의 말처럼 정략 결혼에 희생될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도 아마 가족지상주의였을 것이다. 그녀는 남녀 간의 사랑, 출산, 결혼 등 종신대사를 모두 추씨 가문의 결정에 따라야만 했다. 그런 교육을 받은 이가 어떻게 계승 싸움 전부터 양준의 편에 서겠다고 쉽사리 결정하겠는가. 설령 그녀가 무모하게 양준을 선택한다고 해도 추씨 가문에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못 믿겠어?”

양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혈시를 바라보았다.

도봉과 당우선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랑 중도로 같이 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증거야. 만약 정말로 추억몽이 나를 좋아했으면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거야.”

양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걔는 나를 동맹을 맺을 수 있는 양씨 가문의 공자로만 봤어. 만약 나보다 더 나은 이가 있다면, 추씨 가문은 앞으로 반드시 내 적이 될 거야.”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두 혈시는 얼굴빛이 엄숙해졌다. 비록 은연중에 양준의 견해와 생각이 너무나 극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명문 세가 출신의 공자나 낭자들이 남녀 간의 사랑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가족의 영향을 받아 그들은 영원히 가족의 이익,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했고, 남녀 간의 사랑 같은 것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도봉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혈시는 비록 실력이 출중하여 지위도 낮지 않았지만, 확실히 명문 세가의 공자, 낭자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평온한 마음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시진 뒤, 세 사람은 드디어 중도에 이르렀다. 중도성은 거대한 만큼 성문도 많았다.

세 사람은 남쪽 정문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일반인도, 무인들도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실력이 괜찮은 무인 몇 명이 문 앞에 서서 느긋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남쪽 정문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이는 중도 양씨 가문의 전용 성문이었다. 중도 8대 가문은 각각 전용 성문이 따로 있었다.

성문에 들어서면 바로 전용 통로로써 양씨 저택으로 직통했다. 8대 가문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 성문과 통로를 이용하여서는 안 되며 이를 어기는 자는 죄다 죽음을 면치 못했다.

남쪽 정문을 지키는 무인들은 모두 가문에서 파견해, 지키는 시늉만 할 뿐 실제로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그들은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세 사람이 성문 앞에 이르렀을 때, 무인들은 모두 숙연한 얼굴빛으로 서둘러 이쪽을 바라보았다. 두 혈시의 허리춤에 찬 요패를 보자 모두 공수하며 공손히 맞이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온통 숭배심과 존경심뿐이었다.

도봉과 당우선은 냉담한 표정으로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양준의 뒤를 따라 성큼성큼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세 사람이 떠난 뒤에야 문 앞의 무인들은 저마다 놀란 눈빛으로 몰래 뒤돌아보았다.

“어느 공자님께서 오신 거지? 많이 젊어 보이는데?”

“설마 막내 공자님인가?”

“막내 공자님이라면 수련을 못 하는 분이라, 그냥 일반인 아니신가? 저 분은 기운도 안정적인 것이 비범해 보이던데?”

“평범하든, 비범하든 우리하고는 상관없지. 우리는 그냥 입구만 잘 지키면 돼.”

“그래. 뒤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마. 만에 하나 가문 내 고수들이 들으면 좋지 않아. 그러고 보니 가장 먼저 도착하신 것 맞지?”

“맞아. 다른 공자님들은 아직 안 오셨어.”

*양준과 두 혈시가 통로를 따라 몇십 분 정도 걸어가자, 앞쪽에는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략 열몇 명쯤 되어 보였다. 우두머리는 작달막한 키에 똥보로, 커다란 배를 내밀고서 사람들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서 있었는지 퉁퉁한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자는 네모난 비단 손수건으로 수시로 이마와 목의 땀방울을 닦고 있었다.

뚱보는 세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잠깐 당황하다가 곧이어 크게 기뻐했다. 그는 서둘러 손수건을 옷소매 안에 넣고는 뒤에 있는 이들과 함께 얼굴빛을 바로 하고 환영하는 자세를 취했다.

양준과 혈시들은 그들 앞 오 장 정도 되는 곳에 멈춰 섰다. 양준은 얼굴이 넓적한 뚱보를 보자 저도 모르게 양미간을 찌푸렸다. 뚱보는 양씨 본가가 아닌 다른 성씨로, 실력도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필시 가문의 지시 때문일 것이다. 양준은 가문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 분께서는 오는 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뚱보는 먼저 도봉과 당우선에게 예를 올렸다. 다시 작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웃음꽃을 활짝 피우고서는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안목이 미천해서, 혹시 이쪽 공자님께서는 어느 공자님이신지요?”

도봉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양응봉 대인 슬하의 공자님이시다.”

가문 내 공자들은 집에서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뚱보가 양준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도봉은 그에 대해 따질 생각이 없었다.

뚱보의 얼굴에는 살짝 놀라움이 서렸다. 아마 첫 번째로 돌아온 공자가 양준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놀라움을 거두고서 등 뒤의 사람들과 함께 얼른 공수하고 땅에 닿도록 읍을 하며 말했다.

“삼등 총관 윤천유(尹天遊), 가문의 명을 받아 공자님께서 무사히 귀가하신 것을 축하드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오시는 길에, 그리고 가문을 떠나 계신 몇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삼등 총관은 양씨 가문에서 지위가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하지만 윤천유의 실력은 너무나 보잘것없어 아마도 무인 출신은 아닌 듯했다. 양씨 가문은 대가족으로서 각종 분야의 관리인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관리인들은 실력보다 그 분야에서의 재능이 우선시되었다. 양준은 윤천유가 맡은 바 직책이 무엇인지, 왜 이곳에 나와 귀가하는 각 공자들을 맡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이 표정을 살짝 고치고서 친절하게 윤천유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윤 총관도 고생 많았어. 여기서 오래 기다렸지?”

윤천유는 양준이 이처럼 친절한 것을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곳에서 공자님을 맞이하는 것은 소인의 영광입니다. 전혀 고생이 아닙니다.”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가문에서 우리에게 따로 내린 말씀 없었어?”

양씨 가문은 일반 가문과 달리 직계 자제들의 양성 방식이 잔인하여 문중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별로 살갑게 굴지 않았다. 이전에 양씨 가문 직계 자제들이 귀가했을 때는, 모두 곧바로 각자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한 번도 이처럼 접대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삼등 총관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분명 다른 지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윤천유는 양준의 질문에 마음속으로 놀라움을 느끼며 말했다.

“공자님께서는 역시 혜안이 있으시군요. 소인 감복했습니다.”

도봉이 냉담하게 한마디 했다.

“아부는 그만하고 공자님 질문에 대답이나 해.”

“네. 가문에서 돌아온 공자님들은 귀가하기 전에 먼저 화룡지(化龍池)에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윤천유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고 얼굴빛을 바로 하며 말했다.

“화룡지!”

도봉은 놀라서 되뇌었다.

양준도 놀란 표정이었다. 당우선도 아름다운 눈동자에 이채를 띠었다. 누구도 양씨 가문에서 돌아오는 공자들을 위해 이렇게 큰 선물을 준비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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