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74화 (374/853)

제 374장. 양소

화룡지는 잉어가 용문(龍門)을 뛰어올라 용이 된다는 말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이곳은 양씨 가문에서 중요한 곳이자 명당이기도 했다.

화룡지의 물은 어떤 현묘함을 가지고 있는지 무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곳에 몸을 담그기만 해도 경맥이 정화되고 신체가 강인해지며 환골탈태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무인이 며칠 동안 그 속에 있으면 실력이 증진되고 본연의 자질도 높아진다고 했다.

무인의 자질은 성장의 기초로서 자질에 따라 그 무인의 최종 성취가 결정되었다. 또한 자질은 타고난 것으로, 특별한 천재지보를 복용하지 않는 한 후천적으로는 바꾸기 쉽지 않았다. 양씨 가문의 화룡지는 바로 그런 효과가 있었다. 양씨 가문 사람들은 늘 서로 그곳에 들어가려고 다투었다.

양씨 가문의 직계 자제라도 화룡지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장로원(長老院)에서 심사를 거쳐 그 직계 자제가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만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양씨 가문에 종사하는 다른 성씨 사람들은 화룡지에 들어가기가 더욱 어려웠다. 큰 공로를 세운 다음에야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공자님, 저와 우선도 화룡지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정말 좋은 곳이었죠.”

이 말을 들은 도봉은 조금 흥분된 듯 양준에게 속삭였다.

“저는 지난번 매(梅) 아가씨를 보호하다가 중상을 입었을 때, 매 아가씨가 다섯째 나리께 부탁해서 화룡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상처가 치료됐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증진할 수 있었습니다.”

당우선도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도 화룡지의 귀중함과 그 효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윤천유의 말을 듣자 웃음을 금치 못했다.

과거에 양응봉은 양준의 선천적인 부족함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양준을 화룡지에 들여보내 달라고 몇 번이고 장로들에게 요청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요청해도 번번이 반려되었다. 폐인 하나 살리자고 화룡지의 효능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양준의 아버지 양응봉은 자신의 고질병 때문에 아들이 선천적으로 부족한 것 같아 그를 보기 부끄러워했다. 그때 어머니 동소죽(董素竹)은 종일 슬픔에 빠져 눈물을 흘리곤 했다. 부부는 가족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주 집을 비웠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공로를 쌓아 양준을 화룡지에 데려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음에는 갈 수 있을 거다.”

장로전(長老殿)을 다녀올 때마다, 양응봉은 자신을 위로하는지, 아니면 양준을 위로하는지 항상 똑같은 말을 했다. 양준은 그때 아버지의 눈빛 속에서 느껴졌던 자책감과 서글픔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우리 부모님께서 그렇게 노력하셔도 허락해 주지 않던 것이 이리 쉽게 내어 줄 수 있는 거였다니. 그럼 부모님께서 흘리신 피와 땀은 아무 소용이 없었던 거잖아.’

양준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시 울컥 했으나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빛을 반짝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천유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 공수하며 말했다.

“작은 공자님, 지체해서는 안 되니, 지금 바로 화룡지로 가시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양준은 왠지 거부감이 들어 눈썹을 찌푸린 채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때 맑은 독수리 울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독수리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양준의 어깨에 있던 금우응도 날개를 퍼덕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오늘은 겹경사가 있는 날이군요. 또 한 분의 공자님께서 돌아오셨나 봅니다.”

윤천유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공자들을 여러 날 기다렸는데, 예상치 못하게 오늘 한꺼번에 두 명이나 돌아온 것이다.

그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을 때, 뒤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선두에 선 이는 스무대여섯 살 돼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잘생기고 늠름했으며 형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답운구에 앉아 느긋하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역시 두 명의 혈시가 따랐다. 혈시 뒤에는 실력이 괜찮은 고수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양준과 청년의 눈길이 허공에서 살짝 마주쳤다. 청년은 눈빛을 반짝이면서 의외라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그는 미소를 지으며 양준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도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양준은 그의 얼굴을 보고 곧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양소(楊詔)는 직계 서열 2위로 백부 양응호의 아들이었다. 백부 양응호는 양씨 가문의 현임 가주로, 그가 창운사지에서 내상을 입어 가문의 자제들을 예정보다 일찍 불러들였던 것이다.

무명이었던 양준과는 달리 양소는 그동안 세상에 공개된 적은 없었지만, 양응호와의 관계로 가문 내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존재와 얼굴을 알고 있었다. 양준도 그와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지만, 잘 아는 사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윤천유는 양소를 보자 표정이 진중해졌다. 덩달아 뒤에 있던 이들도 숨을 죽였다. 양소 자신의 실력이 어떠하든, 그는 현임 가주의 아들이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다.

“작은 공자님.”

윤천유는 약삭빠른 사람이라 그래도 먼저 양준에게 공손한 태도로 인사했다.

“난 상관 말고 가서 볼일 봐.”

양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작은 공자님.”

윤천유는 말을 마친 뒤 재빨리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서 양소가 가까이 다가오자 방금 전에 양준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양소는 시종일관 답운구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다가 윤천유의 보고를 듣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는 말을 마치고 시선을 돌려 양준을 바라보았다.

“준이 맞지?”

“예, 둘째 형님!”

양준은 공수하고 씩 미소를 지었다.

“역시 준이 동생이었구나! 하하!”

양소는 크게 웃더니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여자들이 크면서 열여덟 번은 변한다 하더니, 남자도 마찬가지구나. 몇 년 못 봤더니, 못 알아볼 뻔했어! 예전의 왜소한 아이는 어디 가고 훤칠한 사내가 됐구나! 역시 우리 양씨 가문의 사람답다!”

그의 언사에서는 마치 자신이 양씨 가문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한 티가 났다.

“과찬이십니다. 형님!”

양준은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양소를 따라온 몇몇 고수들은 모두 양준을 훑어보고 있었다. 잠시 뒤, 그들은 양준을 깔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직 두 혈시만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도봉과 당우선도 마찬가지였다. 혈시들은 양씨 가문에 충성을 했다. 양소와 양준은 모두 양씨 가문 공자이므로, 그들은 당연히 둘 중 누구에 대해서도 호불호를 나타내지 못하고, 나타낼 수도 없었다.

낯선 이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알아차린 도봉과 당우선은 양미간을 찌푸리고 차가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몇몇은 겸연쩍게 재빨리 표정을 거두었다.

양소는 눈을 반짝이며 의아한 듯 도봉과 당우선을 힐끗 보았다. 두 혈시가 양준을 이토록 위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듯했다. 그마저도 오는 길에 그를 데리러 온 두 혈시의 존경을 받지는 못했다. 두 혈시는 그저 담담하게 호송 임무를 완수했을 뿐, 그와 한마디도 더 하지 않았다. 이에 양소는 무언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준이가 두 혈시들의 마음을 얻은 것 같군! 어떻게 된 일일까?’

양소는 의문을 잠시 억누른 채,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동생은 여기까지 날아서 온 거야?”

그는 양준 일행에게 탈것이 없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이리 생각했다.

양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동안 고생이 많았겠구나.”

양소는 동감한다는 듯이 탄식했다. 그러고는 답운구에서 내려 곧장 양준 앞으로 다가오더니 살갑게 말했다.

“괜찮다면 화룡지에 같이 가지 않을래? 근 몇 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저야 좋죠.”

양준은 그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가자!”

양소 역시 크게 웃으며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맞다. 화룡지로 가면 사흘에서 닷새 정도는 걸릴 듯하니, 너희는 우선 저택으로 돌아가 있도록.”

양소의 뒤를 따라왔던 몇 명의 고수들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두 혈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들은 양소를 안전하게 가문으로 데려오면 되었다. 이제 집에 도착했으니 임무를 완수하고 혈시당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는 길에 고생 많았어. 너희도 쉬도록 해.”

양준도 도봉과 당우선에게 미소를 지었다.

두 혈시는 이구동성으로 인사했다.

“예, 잘 다녀오십시오. 공자님.”

이런 다정한 태도에 양소와 다른 두 혈시들은 이들을 계속 곁눈질했다.

양준과 양소가 떠나간 뒤에야 네 혈시들은 서로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동시에 몸을 날려 혈시당으로 날아갔다.

반쯤 갔을 때, 양소와 함께 온 혈시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도봉, 너랑 우선을 보니까 작은 공자님을 제법 신경 쓰는 것 같네. 그분에게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지 좀 말해 봐.”

혈시들은 서로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지만, 그들만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도봉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글쎄? 상냥하신 분이야.”

외부인이 아니라지만, 도봉은 양준을 팔아먹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언제 양준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인 데다, 지금 양준에 대해 잘못 정보를 흘렸다가는 나중에 가서 그를 해칠 빌미를 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 혈시는 도봉의 말을 믿지 않았다. 도봉의 대답에 그는 한참 동안 입을 삐죽거렸다.

“너희는 공자님 모시고 와 보니 어때?”

도봉은 화제를 돌려 한마디 되물었다.

두 혈시의 표정은 담담했다. 양준에 대해 먼저 물었던 혈시가 대답했다.

“글쎄? 특별한 점은 없고 그저 틀에 박힌 것처럼 바른 분이시지 뭐.”

네 혈시는 서로 한 번 보고는 허허 웃었다. 서로 상대방이 허튼소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까발리지 않았다. 이런 때일수록 어느 혈시든 공자들의 정보를 마음대로 누설해서는 안 되었다. 설령 가주와 장로회에서 와서 물어도 대답해서는 안 되었다. 혈시는 곧 충신의 대명사였다.

*그 시각, 양준과 양소는 한가롭게 화룡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형제는 몇 년간 밖에서 겪었던 자질구레한 일들만 이야기할 뿐, 무공이나 종문에 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형제이지만 동시에 적이기도 했다. 자칫하면 언제 어디서 상대방이 음모 혹은 계략을 써서 나락에 떨어뜨릴 지 모를 일이었다. 계승 싸움은 형제간의 싸움이자, 힘과 지혜를 겨루는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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