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77화 (377/853)

제 377장. 드디어 돌아온 집

양준이 가문을 떠난 지도 어언 5~6년이 지났다. 떠날 때만 해도 그는 수련을 할 수 없는 일반인이었으나 지금은 진원 경지 7단계에 이르렀다.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양준은 부모님이 걱정되었지만 가문의 규칙 때문에 집에 와서 찾아뵐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난번 동경한이 그에게 어머니가 몰래 그를 만나러 나왔다가 결국 가문에게 발각되어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신해 곤장 서른 대를 맞았다고 전해준 뒤로 걱정이 더 커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부모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셨을까?’

양준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급한 걸음으로 화룡지 금지 구역을 떠나갔다. 막 안개를 헤치고 나가려는데 그림자 두 개가 한쪽에 조용히 서서 금지구역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서로 상대방을 한참 바라보더니 모두 아연실색했다.

양준은 부모님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집에 돌아온 지 이제 반나절밖에 안 되었기에, 만약 전갈을 해준 이가 없다면, 부모님은 자신이 돌아온 것도 아직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양응봉과 동소죽도 아들이 이렇게 빨리 눈앞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방금 전 양응봉은 양준이 화룡지에 들어갔으니 적어도 하루, 이틀이 지나야 나올 거라고 했다. 그로서는 양준의 자질을 되도록 높게 짐작하여 한 말이었다. 그들은 도봉에게서 양준의 지금 무공 실력을 알게 되었고, 양준이 선천적 자질 문제에서 벗어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본 것이 아니니 그 말을 온전히 믿지 못했고, 그저 화룡지에서 하루 이틀 머물면 자질이 좋은 편은 아니더라도 정상일 것이라고 짐작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양준은 반나절 만에 화룡지에서 나왔다. 화룡지에서 이렇게 짧은 시간을 있었다는 것은 양준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세 사람은 한참을 서로 바라보다가, 양준이 먼저 미소를 지었다. 지난 몇 해 동안 이렇게 마음 편하게, 통쾌하게 웃어 본 적이 없는 듯했다.

동소죽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더니 또 눈물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둘러 달려오더니 아들을 품 안에 껴안았다. 그러나 지금의 양준은 전과 달리 키가 많이 자란 상태였다. 동소죽은 그보다 한참이나 작았다. 하는 수 없이 까치발을 하고 서서 양준의 목을 껴안고 그의 머리를 자신의 가녀린 어깨 위에 올려놓고 한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한편, 다른 한 손을 넓고 두툼한 등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말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결국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눈물이 방울방울 양준의 어깨에 떨어져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다. 어릴 때 좋아했던 향기를 맡으며, 양준은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고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후련함이 밀려왔다. 먼 길을 떠났던 배가 마침내 따뜻하고 평온한 항구에 돌아온 것이다. 양준은 코가 시큰해졌다.

강철의 사나이 양응봉도 지금 이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몰래 고개를 돌리고 눈을 깜빡여 눈물을 없앴다.

“돌아왔습니다. 어머니.”

양준은 조용히 속삭였다.

동소죽은 마침내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녀는 양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왔다. 잘 왔어.”

연거푸 열몇 번을 되뇌자 목소리가 점차 떨리지 않았다. 마지막에 그녀는 웃음을 되찾고 양준을 풀어주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양준의 어깨를 잡고 서서 위아래로 아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아름다운 눈동자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양준은 키도 많이 크고, 몸도 튼튼해졌다.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았던 아들이 이리 장성해서 눈앞에 있다니. 이제는 그녀가 의지할 만큼 든든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동소죽은 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성장은 시련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양준의 바뀐 모습은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그가 몇 년간 타향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알 수 있어 마음이 아팠다.

양준은 아버지에게 어서 어머니를 위로해 주라고 눈짓하려고 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아버지도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비스듬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 나는 새를 바라보듯 여유롭게 두 손을 뒷짐 지고 서 있는 모습이었으나, 눈가는 이미 젖어 있었다.

양준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위로했다.

“이제 그만 우세요.”

“그래, 남들이 보면 웃겠구나.”

동소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다.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양준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양응봉을 바라보았다. 양응봉은 여전히 그 자세를 취한 채, 꼼짝달싹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

양준이 가볍게 불렀다.

양응봉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흠칫 떨더니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정색하고 양준에게 공수하며 입을 실룩거리다가 무언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지. 상대가 동년배도 아니고 아들인데 내가 왜 예를 갖추는 거지?’

그는 순간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옷소매를 툭툭 털고는 다시 두 손을 뒷짐 지고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왔느냐?”

양준은 코를 훌쩍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돌아왔습니다.”

“그럼 이제 집으로 가자.”

양응봉은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크게 흔들더니 먼저 자리를 떴다. 어느 샌가 그는 귀밑까지 빨개져 있었다. 양준과 동소죽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양응봉을 뒤따라가면서 몰래 웃었다.

양응봉은 양준을 만났을 때, 별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의 모습만 보면 누구든 그의 기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그는 기분이 들떠서 걸음마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웠다.

*양응봉 저택.

세 사람은 나는 듯이 달려 잠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양응봉의 저택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저택에는 하인과 시녀도 겨우 십여 명밖에 되지 않아, 다른 곳에 비해 오히려 좀 아늑해 보였다.

저택에 들어서자 만나는 하인과 시녀들이 모두 양준에게 예를 올렸다. 양응봉은 급히 요리를 준비해 아들의 환영회를 열고, 동소죽은 아들을 끌고 그의 예전 침실로 갔다.

양준은 방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침실은 기억하고 전혀 차이가 없이, 물건을 놓았던 위치와 구조도 하나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탁상, 의자, 침대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매일 누군가가 청소하는 것이 분명했다.

양응봉이 귀신처럼 번쩍하고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간 뒤, 네 엄마가 매일같이 청소하고 여기 앉아 있었단다. 네가 멀리 간 게 아니라, 잠시 어디 놀러 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동소죽이 몰래 양응봉을 꼬집었다. 살갗이 두꺼운 양응봉은 말없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부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네 아버지께서 거짓말하는 거야. 난 그냥 가끔 들렀어.”

동소죽이 서둘러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방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자주 들렀을 거야.’

집 안에는 부모님의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양준은 방 안에 서서 한숨짓는 양응봉의 모습과 침상에 앉아 눈물로 지새우는 동소죽의 쓸쓸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양준은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호흡이 가빠졌으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럼 난 식사를 이곳으로 가져오라고 해야겠다. 오늘은 가족끼리 여기서 먹자꾸나.”

양응봉은 본인이 뭔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발뺌을 했다.

“나도 도우러 가야겠다. 아들은 여기서 쉬고 있어.”

얼마 안 되어 하인들이 수많은 요리들을 가져왔다. 모든 음식은 동소죽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양응봉은 오랫동안 소장하고 있던 좋은 술을 내놓았다. 세 식구가 오랜만에 한 식탁에 둘러앉아 화기애애하게 식사했다.

잠시 뒤, 양응봉이 먼저 술에 취했다. 아마 술보다 기분에 취한 듯했다. 얼마 뒤에 동소죽도 정신이 해롱해롱해졌다. 양준만 맑은 정신이었다.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나와 네 엄마는 먼저 일어나마.”

양응봉은 궁굼한 게 많았지만, 양준이 집으로 돌아온 첫날이라 묻지 않았다. 그는 말하는 한편, 휘청거리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소죽은 턱을 괴고 앉아서 몽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혼자 가세요. 전 오늘 아들이랑 같이 잘 거예요.”

이 말에 양준은 대경실색했다.

양응봉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버지……!”

양준이 급히 그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양응봉이 뒤돌아보며 물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양준이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양응봉은 진지하게 한참 생각하다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

“뭐가 문제냐?”

양준은 머리가 아파 이마를 짚었다.

‘부모님은 지금 술에 취해 내가 어린애로 보이는 모양이군.’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부모님들이 들을 리가 만무했다. 양준은 하는 수 없이 밖에서 시녀를 불러 동소죽을 방으로 모시게 했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동소죽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조용히 해. 나 오늘 아들이랑 잔다니까. 지금 나 끌어내는 사람은 내가 저주할 거야.”

‘앞으로 절대 두 분이 술에 취하게 하지 말아야지.’

양준은 몰래 다짐했다.

이튿날 날이 밝았다.

양준은 일찍 일어나 아침 해를 맞으면서 평소와 같이 수련했다. 체내의 진원이 불안정한 것이 또 경지가 오르려는 모양이었다. 여씨 저택에서 그렇게 큰 양정옥상을 흡수하고, 매일 만약영액을 복용해 경맥과 신체를 정화했으니 지금 경지를 돌파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는 마음이 평온하고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그리고 순리에 따르기로 했다.

반 시진 뒤, 그는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을 그만두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하인이 와서 양응봉이 부른다고 전했다.

양준은 부모님이 할 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정돈한 뒤 서둘러 서재로 갔다.

예상대로 부모님이 서재에서 뚫어지게 출입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이 문에 들어서는 것을 보자 동소죽은 얼른 일어나 그를 옆에 끌어당겨 앉혔다.

자리에 앉은 다음, 양응봉이 헛기침을 하더니 동소죽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먼저 묻겠소, 아니면 내가 먼저 물을까? ”

“당신이 먼저 하세요. 제가 궁금한 건 그리 중요한 일들이 아니라서요.”

양응봉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색하고서 잠깐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나와 능소각의 관계는 스승님께 들었겠지?”

“네, 모두 들었습니다.”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왜 널 능소각으로 보냈는지도 알겠구나. 지금 능소각의 상황은 어떠하냐?”

양응봉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나서 물었다. 양응봉은 추씨 가문 고수들이 화가 나 능소각에 불을 질렀고, 능소각의 수천 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모두 흩어졌으며, 종문의 장로들이 행방불명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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