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78화 (378/853)

제 378장. 스스로 조제한 약

능소각은 양준과 양응봉 둘 다 몸담았던 종문이었다. 양응봉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양준은 어두운 얼굴로 능소각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부당한 일들을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양응봉은 그의 말에 얼굴빛이 음울해지더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래도 지금 많이 좋아졌어요. 추억몽이 능소각을 재건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거든요. 그리고 능소각도 이제 제 이름으로 관리하고 있어서 종문이 오명을 씻고 재건하기 전까지는 제 사업체 정도로 간주하면 됩니다.”

양준의 미간에 서렸던 음울함이 천천히 걷혔다.

“추억몽? 추씨 가문의 장녀 말이야?”

양응봉과 동소죽은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네.”

“우리 종문이 잿더미가 된 게 추씨 가문의 고수 때문인데 그 아이가 왜 능소각 재건을 돕는 것이지?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

양응봉은 미간을 찌푸리고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인연이 닿아 도움을 준 적이 있습니다. 오고 가는 것이 확실한 사람이고, 능소각을 재건하는 것이 그녀에게 그리 큰일도 아닙니다.”

양준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네가 도움을 준 적이 있다고?”

양응봉은 얼굴빛이 더욱더 이상해졌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밖에 있는 동안 추씨 가문 장녀와 알고 지낼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동소죽은 방글방글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양준을 바라보았다.

“아들, 그 낭자랑 친하니?”

“친하지는 않은데, 그렇게 어색한 편은 아니에요.”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소죽은 붉은 입술을 오므리고 짚이는 바가 있는지 히히 웃었다.

“추씨 가문의 그 낭자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아니야. 만약 남자로 태어났으면 분명 차기 가주가 됐겠지! 꼭 친하게 지내야 한다. 아들, 힘내렴.”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추억몽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이 없었다. 추억몽은 매력적이었고, 배경이 있어 그녀의 선택을 받으면 계승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되겠지만 왠지 본능적으로 그녀가 끌리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영리했다. 그녀와 협력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상의 것은 불가능했다.

“종문의 이름을 바로 세운다라… 추억몽이 가문의 실세가 아니라면 그것까지는 힘들지.”

양응봉은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중도 8대 가문 중에서 어느 한 가문이 나서서 능소각을 위해 이름을 바로 세우려 한다면 능소각에 씌워졌던 오물들은 언제든지 씻어 낼 수 있었다. 사악한 종문이라는 이름은 별거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능소각에 사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능소각을 경계하고 싫어하는 원인이었다.

“혹시 스승님의 소식은 들은 게 있으세요?”

양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양응봉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러 방법으로 소식을 알아보고 있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 전투 이후에 스승님과 몇몇 장로들이 실종되었다.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가 없었어.”

양응봉은 잠시 말을 멈추고 문득 뭔가 떠오른 듯이 기대를 품고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정말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르셨느냐?”

당시 추씨 가문 고수들이 전갈을 보내왔을 때, 양응봉도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씨 가문 고수들의 말이고, 혹시라도 그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꾸며 낸 것일 수도 있기에 양응봉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양응봉뿐만 아니라,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이들도 지금까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보잘것없는 이등 종문에서 어떻게 그런 대단한 고수가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틀림없습니다.”

양준이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에게서 확답을 받고서야, 양응봉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서재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우뚝 멈추더니 다시 허벅지를 철썩 두드렸다.

“옳지! 스승님께서는 분명 경지에 오르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어.”

이 말을 하면서 양응봉의 얼굴빛은 마치 마음속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 보였다. 능태허는 당시 두 제자의 일로 마음속 응어리가 생겨 십몇 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다가 지금에 와서야 경지를 돌파했다. 틀림없이 마음속 응어리가 풀렸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양응봉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스승님도 사실은 전화위복한 것입니다.”

양준은 눈알을 굴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주가 곤룡골에 나타나 종문의 고수들과 전투 끝에 장로 한 명을 죽이고, 스승님께 중상을 입혔습니다.”

“버러지 같은 놈!”

양응봉은 참지 못하고 원한에 차서 욕을 내뱉었다. 사주는 양응봉의 사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종문의 명성을 더럽히고 동문을 살해하는 짓을 벌였으니 당연히 화를 낼 만했다.

“언젠가는 내가 반드시 스승님 앞에 그놈을 무릎 꿇리고 말 테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느냐?”

양응봉은 한참 화를 내다가 다시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사기에 몸이 묶여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귀한 약을 드렸습니다.”

“네가 드렸다고?”

양응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소죽도 입을 틀어막았다. 부부는 숨을 죽이고 긴장했다.

“네. 제가 스스로 조제한 약이에요. 예상 외로 증상에 딱 맞아서 스승님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체내 사악한 기운도 모두 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는 완쾌되자마자 곧 경지를 돌파하셨습니다.”

양준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거짓말을 꾸며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었다.

“네가 조제한 약이라고?”

양응봉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동소죽은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일이 생기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사부를 시해한 악인의 명성은 사주가 아닌, 양준이 뒤집어쓸 뻔한 것이 아닌가.

‘정말 그렇게 되었다면, 저이는 아마 평생 자책감에 시달렸을 거야.’

양준이 코를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사실 제가 약왕곡 운은봉에서 약리를 조금 배웠거든요.”

“그렇게 된 거였구나.”

양응봉은 드디어 모든 것이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었다.

“두 분 알고 계신 건가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부모님이 전혀 의외의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진작 이 일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그래. 경한이가 몰래 우리한테 소식을 전해줬어.”

동소죽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경한은 동소죽의 조카이므로 소식을 전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소 대사님은 역시 대사시구나. 직접 나설 필요 없이 너에게 일러준 것들만으로도 그렇게 신비한 약효를 낼 수 있다니.”

양응봉이 연신 감탄했다. 그는 한참 감개무량해하더니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중에 대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양준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시간이 나면 내 직접 운은봉으로 한번 가봐야겠다. 스승이 입은 은혜는 제자가 입은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양응봉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절절하게 말했다.

그 말에 양준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버지께서 운은봉에 찾아가서 양자 대면을 하게 되면 내 거짓말이 탄로 날 텐데?’

“직접 가지는 마세요, 아버지. 대사님 성질이 괴팍해서 만나 주실지도 확실치 않으니 그냥 제가 가겠습니다.”

양응봉은 잠깐 생각해 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중도 8대 가문의 많은 이들이 운은봉에 찾아가 소부생에게 단약을 제련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 가운데서 성공한 이는 몇 안 되고, 모두 소부생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풀이 죽어 돌아왔다.

“그래. 알겠다. 나중에 갈 때, 선물 좀 많이 챙겨 가거라.”

“네, 그러하겠습니다.”

양준은 몰래 식은땀을 닦았다.

동소죽이 갑자기 흥분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물었다.

“아들, 약 만드는 방법은 아직도 기억하니?”

양준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죠.”

“그럼…….”

동소죽은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녀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긴장해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어머니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양응봉은 그때 당시 사주에게 부상을 입고서 고질병을 앓았다. 지금까지도 그의 체내에는 사악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 원인이 아니라면 양응봉이 아직까지 신유 경지 3단계에 머무를 리가 없었다. 지금 동소죽도 신유 경지 7단계였다.

그때 당시 양응봉은 능태허의 큰 제자이고 사주는 둘째 제자였다. 사주는 자질이 뛰어난 데다 기연까지 만나, 지금은 신유 경지 이상이 되었다. 양응봉은 그의 사형으로서 능태허의 눈에 들 만큼 자질적인 면에서 사주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만약 그때 일이 없었다면 양응봉은 적어도 신유 경지 8단계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양응봉과 능태허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모두 같은 뿌리로 오히려 후자가 더 짙었다.

신기한 약이 능태허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없애 버렸다면, 필시 양응봉 체내의 사악한 기운도 해소할 수 있었다. 만약 양응봉의 고질병을 고칠 수 있다면 그의 앞날은 매우 평탄할 것이며, 신유 경지 이상으로도 진급할 수 있었다. 당시 양씨 가문의 직계 가운데서 양응봉은 지금의 가주인 양응호보다도 자질 면에서는 훨씬 뛰어났었다.

“약은 금방 지을 수 있습니다. 필요한 재료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어요.”

양준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양응봉과 동소죽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럼 일단 아버지 몸부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좋다!”

양응봉은 고개를 끄덕이고 양준의 곁에 앉더니 한쪽 손을 내밀었다. 양준은 두 손가락을 올려놓고 진원을 살짝 돌려 자세히 살펴보았다.

진원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양응봉은 깜짝 놀라면서 의혹에 찬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진원이 이처럼 순수하고 거대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몸을 훑고 가는 기운에서도 평범하지 않은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양준의 기운은 그의 것보다도 훨씬 강했다.

‘이런 기운을 갖고 있으면서도 진원 경지 7단계라니. 만약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어느 수준까지 도달할지 알 수 없구나! 얘가 뭔가 신비로워졌어! 내 아들이 맞나?’

양응봉은 순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참 뒤에 양준이 숙연한 표정으로 손을 거두었다.

“어떠니?”

동소죽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스승님이 부상당했을 때보다는 낫습니다. 치료는 가능하나,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사기가 이미 단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기를 해소하려면 완쾌하실 때까지 제가 드린 약을 꼬박꼬박 드셔야 합니다.”

“치료만 된다면 됐어.”

동소죽은 그의 말에 기쁨을 금치 못했다.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서로의 눈에서 기쁨을 보았다. 지난 몇 해 동안 부부는 명의를 찾아다니며 각양각색의 방법을 다 써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단전 내의 사악한 기운을 제거할 수 없었다. 심지어 양씨 가문의 화룡지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아들이 돌아오자 오랫동안 부부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부부는 세상에서 아들이 가장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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